25화-그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1)
"윤아는 지금 챕터 2, 현재 부족 통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주변으로 세력을 넓혀가는 중이래. 인구수는 대략 1만명 정도?"
"그러고보니 걔는 대체 자기 사람들 한테 뭘 준건데?"
"내가 듣기로는 식량과 무기 같은거. 총 말고 헌터용 무장 말이야. 근데 나한테 해준 이야기를 들어보면, 애초에 유닛이 되는 것 만으로 뭔가 있나봐?"
"...그렇겠지."
나는 특정 키워드를 최대한 조심하면서 동생이 물어 온 정보를 경청했다.
아마 유닛이 되는 것 만으로 주어진 것은 종족 특성일 것이다.
[맞다. 종족특성은 가장 기본이 되는 힘이고 혜택이다]
"역시 뽑기가 실력이었어."
방으로 돌아온 나는 혀를 찼다.
수많은 종족이 서로서로 플레이어와 유닛으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고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서로 소통이 가능한 이들은 빠르게 앞으로 치고나갈 수밖에.
나는 군단이 승리 끝에 짓밟고 거의 절멸시킨 쥐새끼들을 생각했다.
그런 애들이 뽑힌 플레이어는 뒤늦을 수밖에 없겠지.
[글쎄. 과연 그럴까? 종족이 품고 있는 잠재력은 그 누구도 모른다]
"아니, 모르는건 모르는거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기에 고개를 저었다.
냉혹한 현실과 자연은, 우유부단한 성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화면을 보아라. 이제 2번째 줄기다. 21층계이자, 다른 수많은 가지로 뻗어나갈 수 있는 곳이다]
"여기도 수호정령들이 있나?"
나는 코웃음을 쳤다.
"크아악!"
"크륵..."
있었다.
두번째 줄기의 수호정령들, 놈들은 여러 마리가 모여들어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내고, 코를 킁킁거리며 푸른 안광을 번득이고 있었다.
"다행히 기괴한 괴물은 아닌 것 같네."
[놈들은 우리의 존재를 미리 알아차리고 집결해 있던 것 같다. 놈들의 모양새는 전체적으로 4족 보행에, 몸에는 부드러운 털이 덮혀 있다. 날카로운 이빨은...]
"검치호잖아!"
나는 한단어로 놈들을 축약할 수 있었다.
이 미친 동굴속 세상에 드디어 박쥐와 쥐를 제외한 덩치 큰 포유류가 등장했다.
지구의 신생대에 살았던 검치호.
창백한 털을 가지고 있는 놈들을 표현하면 아마 백검치호라고 부를만 한 것 같았다.
단지 덩치는 더 거대해 보였지만.
[놈들이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하지만 걱정 마라. 불은 이미 저 밑에서부터 겪고 온 군단에겐 아무 효과 없다.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래."
물론 지구에 살던 검치호가 입에서 화염 방사기 같은 불길을 뿜어내진 않았을 테지만.
선두에 선 군단병은 머리 갑각에 검푸른 갑주를 두른 대형도마뱀.
그들은 불길을 정면으로 맞으며 그대로 타죽었다.
[대형 비행종의 발톱에 매달렸던 군단병들이 공중에서 낙하, 놈들을 덮쳤다]
육공합작은 군단이 날개를 손에 넣은 순간부터 시도된 유서 깊은 전술이다.
지상에서 놈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하늘로 날아오른 비행종들이 아래를 향해 잡고 온 병사들을 강하시켰다.
[놈들이 당황했다. 놈들의 앞발치기는 튼튼하고 강력했으나, 한번 얻어 맞은 군단은 단숨에 그 특성을 파악했다]
"그렇겠지. 내가 고양이도 넣었었으니까."
[발차기를 피하고, 입에는 팔을 내주었다. 그러면 훤히 드러난 옆구리에 또다른 군단병이 검을 깊숙히 찔러넣었다]
지능도, 전술도 전투력도 훌륭한 고양이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게 전부였다.
끝도 없이 퍼져나가는 우리를 막기엔 부족하다.
나는 부상입은 놈들에게 달려든 다른 군단병들이 집요하게 들러붙는걸 보고 승리를 확신했다.
선두에 선 고블린형 군단병의 손에 무언가가 번쩍였다.
내가 준 중식도...핏물에 범벅이 되어 제대로 활용되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30분도 안걸렸다.
[대줄기수호정령:4c1557]
"역시 이놈들도 수호정령. 대체 수호정령이라는 생물종은 뭐 하는 애들이지?"
[놈들에 대해 다른 생각이 있느냐]
"그럴 수밖에. 놈들은 분명 다른 생물들과 다른 종인것 같으니까."
두 번이나 겪었는데 의심하지 않을수가 없다.
우선 기존의 동굴 생물들도 참 해괴하게 생기긴 했지만, 이들은 특히 더 했다.
검치호는 첫번째 줄기에서 만났던 코드 0080의 괴물에 비하면 멋지게 생기긴 했지만.
"놈들의 행동도 이상해. 내가 이쪽 전공은 아니지만, 어쨌든 상식적으로 생물답지 않은 행동 양식을 보였어. 혹시 놈들도 유닛인가?"
[네가 느끼는 위화감은 군단도 느꼈다. 생존이 최우선인 생물의 본능과는 달리 놈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감히 우리에게 맞섰다. 그리고 유독 강했지]
"이 동굴, 분명 뭔가 있는것 같은데."
그동안은 눈앞에 있는 나무 밖에 못봤지만 이제 슬슬 숲을 보고자 하니 걸리는게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들면 이 동굴에 인간과 견줄 지성체가 살고 있을 확률이라던가.
[군단은 모든 가능성을 검토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알 수 없음이다. 데이터가 부족하다. 따라서, 우선순위대로 행동한다. 21층계와, 그에 딸린 모든 가지들을 먹어치운다]
"편하네."
내가 끙끙거리는 사이 군단은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연산력을 바탕으로 모든 결론을 도출한 것 같았다.
그 연산력으로 내린 결론이 그래봤자 고블린 수준이라는건 차치하고 어쨌든 지금은 군단이 내린 결론이 맞는 것 같았다.
아마 오늘 밤을 자고 일어나면 싹 청소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거기서 휴대폰을 덮었다.
"끄익..."
"..."
신우가 휴대폰을 덮고 수면을 취하는 순간.
줄기로 향하는, 하나의 가지인 대층계인 이곳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의 주류는 들창코를 통한 극히 예민한 후각.
그리고 튼튼한 어깨와 목을 가진 돼지와 비슷한 발굽동물이었다.
그 돼지를 쓰러트린 군단병이 무심히 들어올린 칼로 목을 쳐버렸다.
동맥을 잘라 뿜어지는 녹색 핏물이 군단병의 몸을 적셨다.
어느새 꿈틀거리는 육벽과 촉수가 이 대층계도 덮어가며 둥지로 만들고 있었다.
버섯들의 번식 방법을 모방한 군단은 언제 어디서든 영양분만 있다면 그곳을 바탕으로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일부분으로 만들 수 있었다.
촉수가 다가와 군단병의 몸에 연결되었다.
모든 병사들의 영양분 공급은 소화흡수를 담당한 둥지가 직접 지급해준다.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느냐]
군단 전체의 정신에 의문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
목소리가 들려온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당연히 군단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목소리가 자신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수 있었다.
[처음부터 계속 너희는 그를 생각하고 있다]
군단병이, 핏물이 묻은 중식도를 눈높이로 들어올려 스윽 닦았다.
번쩍이는 칼날에 붉은 안광이 보였다.
지금 이 순간.
군단 전체가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느껴진다. 감정이, 깊은 의심과 경계심, 그리고 흥미가]
감정.
군단 전체가 동요했다.
처음 그것을 깨우치고난 이후 군단은 계속해서 경험을 쌓아왔다.
자신을 간질이는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고뇌했다.
성장하는 뇌덕분에 그 바리에이션이 전에 비해 굉장히 넓어졌다.
희열, 투지, 오만함 등등.
[너희의 궁금증을 해소할 기회가 머지않았다. 기회는 아직 여러번 남았다]
목소리는 거기서 끊겼다.
다만 그 이후 군단의 행보는 조금 더 과격해지고 빨라졌다.
군단은 이제 그 급진적인 움직임을 감당할 만큼 빠르고 강했다.
*
"오윤아가 보자고 했다고?"
"응. 정확히는 차지연씨의 호출이랬어."
"그럼 설마?"
"새로운 동맹을 찾았나봐."
강도연이 아침부터 내 방으로 건너왔다.
자다 깬 나는 휴대폰부터 찾았다.
알림이 울리지 않았다. 특이사항은 없다는 뜻이었다.
"다른건 몰라도 그런 미팅은 가보는게 맞는 것 같은데."
"나만 갈게."
"미친소린 하지마. 차라리 내가 혼자가지."
나는 동생의 헛소리를 컷했다.
결국 내려진 결론은 우리 둘다 같이 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엄마 일나가셨으니까. 가자."
"...수업 자꾸 빼먹어도 돼?"
"지금 상황에 강의가 중요해?"
곧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 예상대로 도착한 곳에는 차지연 말고도 다른 사람도 있었다.
"이쪽은 박준석씨."
"안녕하세요?"
"...설마 이 사람들이?"
다시 보게 된 차지연은 젊은 남성을 소개했다.
그는 우리를 보고 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증명은 된건가요?"
"그럼요."
오윤아의 말에 차지연이 즉답했다.
박준석이라 소개한 그는 자신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의 유닛들이 자리한 곳은 확실히 완벽한 제 3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여러분께, 제 플레이어가 한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다만 오늘의 용무는 단순한 미팅이 아니었다.
차지연은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타깃을, 찾았습니다."
휴대폰에 나타난 정보는 평범한 중년 여성을 보이고 있었다.
차지연의 말에 따르면 이 여성이 차지연의 플레이어가 있는 세한샤에 유닛을 가지고 있는 상대라고 했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죠?"
"...저도 잘 모르지만, 제 플레이어는 굉장히 다양한 잡기술을 가지고 있더군요. 아마 역추적이 아닐까 싶은데."
역추적.
그 말에 플레이어 출신들은 얼굴이 굳었다.
굳이 자신의 정보를 드러내지 않았다 한들, 유닛을 사로잡아 정보를 뽑아내면 그간의 상호작용을 알 수 있다.
그것으로 대상을 유추했다는 것이다.
"윤아야...너 혹시 그 사람들한테 너에 대해 말했니?!"
"그, 그게..."
그 와중에 오윤아는 구석으로 데려간 자기 어머니의 다그침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분명 말했군. 하지만 이해 못할건 없다.
얼마나 입이 근질근질했을까.
나나 강도연이나 작게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