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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24화 (24/254)

24화-움직임(2)

아직까지는 그 이름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기괴한 생김새를 가진 20층계 줄기의 주인.

하지만 놈이 어떤 놈이든 간에 군단은 이미 승리를 판단하고 공격을 시도했다.

정찰병을 통한 집요한 정찰과 관찰.

[군단은 애초에 질 것이라 생각하면 싸움을 걸지도 않았겠지]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적을 향해 그들은 함께 있던 맹독주머니두꺼비를 손으로 잡아 '투척'했다.

"그으으으으-"

두꺼비들이 펑펑 터져나가며 강산을 놈의 몸에 뿌렸다.

낮고 웅웅 울리는 놈의 울음소리가 줄기 전체에 울렸다.

쉽지 않다는 걸 증명하듯, 놈은 강산을 뒤집어 쓰고도 그리 타격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놈의 가죽이 생각보다 튼튼하다. 그렇다면 독침과 이빨은 어떤가]

거칠게 몸부림치는 놈을 향해 짐승형 군단병들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힘에서 당연히 밀리지만 숫자로 커버할 수 있었다.

놈의 팔 하나에 십수마리의 도마뱀이 매달려서 물고 늘어졌다.

하늘에서 덮친 비행종들은 눈과 같은 놈의 약점을 찾으려 마구 독침으로 찌르고 있었다.

[놈은 눈도 귀도 코도 없었다. 약점이란게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아직 수단이 하나 더 있다]

"...드디어."

놈의 움직임이 제한당하고 있을때.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손에 꼬나쥔 검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른다.

"그아아악!"

놈이 비명을 질렀다.

자꾸 거슬리게 하는 비행종을 공격하기 위해 목을 늘려 쩍 벌린 입 안쪽을, 파고든 병사 하나가 땅을 도약하더니 검을 쳐올려 그대로 찍어버렸다.

[거대한 거인이, 작은 생채기 하나로 무너지는군]

"입 안이 약점이었나?"

비틀거리다 넘어진 놈의 몸을 군단이 뒤덮기 시작했다.

입이 약점인걸 알았다.

억센 힘을 가진 대형종들이 놈의 입을 강제로 벌리기 시작했다.

"으음..."

나는 참혹한 광경에 눈을 찌푸렸다.

억지로 벌려진 놈의 입으로, 병사들이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씹지 않는 이상 이빨로는 갑각에 상처를 낼 수 없다.

그렇게 목 깊숙한 곳까지 억지로 기어 들어간 병사는, 목 내부를 칼로 난자하기 시작했다.

[대줄기수호정령: 4c0080]

"정령.."

그 이후로는 역사가 끝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우리가 쓰러트리고 분해흡수한 괴물의 이름은 대줄기수호정령.

[보아라. 놈들은 하나가 아닌건 같군]

"...대체 얼마나 넓은건지."

그 사이 군단은 다시 전쟁을 준비했다.

이 줄기와 연결된 다른 가지들에서 놈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이미 승리를 경험하고 데이터를 습득한 군단에게는 풍부한 영양분을 가진 식량일 뿐이었다.

[발달한 군단의 지능과 분석력은 수호정령들에게서 한가지 특이점을 발견하였다]

"특이점?"

[놈들이 동족의 죽음을 듣고 어떻게 곧바로 찾아왔을까. 소통의 힘이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수호정령들의 신체기관 중에,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초음파를 발산하는 기관을 발견했다.

과거의 군단이라면 그 기관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넘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일정한 초음파를 발산하는 그것을 보며, 이것이 동족간의 소통을 위한 기관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결국 계속 한계를 넘어서 뇌를 키워야 전체적인 분석력도 올라간다는거네. 근데 왜 군단은 소통수단에 관심을 갖지? 어차피 군체의식으로 묶여 있는데. 설마?"

[그 설마가 맞다. 군단은 외부의 존재와 소통해보려 하고 있다. 바로, 너와]

글자를 읽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알아주었다고. 나를, 드디어.

"나, 나는..."

[한창 호기심을 키워가는 군단에게 너는 가장 큰 흥미의 대상이다. 지성을 키워가는 생명체에게 부모의 존재는 당연히 비중이 크다]

"그러면 상을 줘야겠는걸. 상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는데."

기분이 좋아진 나는 동생이 준 돈으로 잔뜩 구매했던 고열량의 음식들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했다.

과연 이걸 상이라고 인식해 줄까?

[승전, 그리고 떨어진 달콤한 음식. 군단은 그동안 반복되었던 행위들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이유를 추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오오!"

이제 적어도 넙죽 받아먹지만은 않았다.

빠르게 흡수되어가는 그것들을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훈련에 잘 따르는 애완견을 보는 것 이상의 성취감이었다.

부모. 분명 그렇게 말했다.

완벽한 비유는 아니었지만, 내게 군단은 당연히 단순한 애완동물 같은게 아니었다.

[더 이상 줄기에도 우리의 적은 없다. 그러니 이곳도 우리의 것이다]

군단은 쉴새 없이 움직였다.

정찰병들은 이미 사방으로 퍼져 이곳과 연결된 모든 가지를 뒤지고 있었고, 위로 올라가는 통로도 발견했다.

늘 해왔던 것처럼 단 하나의 생명도 살려두지 않으며 잔가지들을 모조리 먹어치우고 동시에 계속해서 위로 올라간다.

"우리가 있던 곳. 사실상 가지라기 보다는 '뿌리'에 더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 군단이 눈뜬 곳은 이 미궁의 최하층. 이 곳에서 가장 깊은 곳. 그렇기에 지금 진출한 이 줄기 역시 줄기의 최하단부에 속한다]

"동굴에 끝은 있는거지?"

내심 불안해졌다. 자꾸 재촉하는 것 같지만 그만큼 불안하니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동굴은 시작점 따위가 아니니. 네 계정의 레벨이 4로 올랐다. 슬롯과 용량이 늘어났다]

"이건!"

[그리고, 우리가 최하단의 줄기에 도달함에 따라, 군단의 역사는 챕터 1이 끝나고 챕터 2에 들어섰다]

화면에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아이콘 두개가 좌측에 추가되었다.

"이것들은 뭐지?"

[챕터 1이 적응이라면 챕터 2는 시작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유닛과 플레이어는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스트링이 강화된다]

순간 가슴이 간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단지 이것만으로는 딱히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첫번째 아이콘. 그것은 하사품이다]

나는 첫번째 아이콘을 터치했다.

카메라가 켜졌다.

[네가 선택하지 않았기에 굳이 말하진 않았지만, 샘플을 전해주며 느끼지 않았느냐. 샘플을 전송할 때 사물은 보낼 수 없었다]

"...그러고보니 그러네."

흰개미를 찍어보낼때 사육통은 그대로였다.

고블린들을 찍어보낼때 무기도 그대로였고.

아니 애초에 표본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특화된 능력이었다.

[네가 상대해본 쥐들을 떠올려봐라. 그들이 갖고 있던 물건들. 그것들 모두 하사품이다. 애초에 그것이 모든 플레이어가 갖고 있는 기본 기능이다]

"아, 아니 그러면 다른 애들 다 챕터 2로 넘어갔는데 나만 이제 넘어온거야?!"

천천히 생각해보다 기겁했다.

당장 쥐들을 만난게 언제적인데.

[느리긴 하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그 이유는 일종의 패널티이기도 하다]

그러나 녀석은 담담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에 나도 한숨을 쉬었다.

[하사품에는 시간 제한이 있다. 두번째로 넘어가지. 두번째는 제물이다. 이건 유닛들이 플레이어에게 바치는 보은이다]

"설마 오윤아의 유닛들이 녀석에게 준 낙인 같은거? 그러고보니 챕터 3에 가야 그렇게 소통할 수 있다며?!"

[아니다. 하사품과 제물은 오직 사물에 국한된다. 기술과 가르침은 시스템과 무관한 그들의 능력이다. 만약 정말 뛰어나다면 이미 초기 단계의 희미한 스트링 만으로 물건마저 전달할 수 있을만큼 강하겠지]

"..."

순간 차지연이 가지고 있던 탐색용 돌이 뇌리에 스쳤다.

그걸 차지연이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은데.

거 더럽게 불공평하네.

나는 방을 나가 부엌을 뒤져보았다.

우연찮게 하나 얻게 된 두꺼운 새 중식도가 있었다.

어머니는 무섭다며 쓰지 않았으니, 이번에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군단이 너의 하사품에 반응하고 있다]

"뭔지는 알겠지?"

날이 번쩍이는 중식도가 둥지 한가운데 툭 하고 떨어졌다.

군단은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스멀스멀 뻗어 온 촉수는 중식도의 형태나 성분이 이미 자신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금속임을 알아차렸다. 이것이 무언인지는 안다. 단지 그 의도를 분석하는 것이다]

"오오..?"

의도를 분석한다. 그 한마디는 만족스러웠다.

어쨌든 그냥 받아먹기만 하는건 아니란 뜻이니.

"무, 뭐야. 나 뭐 안줘?"

[군단에게 등가교환, 무언가를 받으면 대가를 치룬다 따위의 개념은 아직 없다. 그래서 판단한 결과가 이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 군단이 내게 제물을 바치는 일은 없었다.

하다못해 감사 인사라도 하던가!

다만, 터벅터벅 다가 온 고블린형 군단병 하나가 그 중식도를 손으로 덥썩 잡았을 뿐이다.

[강해진다. '그'는, 우리가 강해지길 원한다. 그러니 더 강해진다. 그것이 결론이다]

군단은 지금까지 오직 한가지 길만 걷고 있었다.

그러니 애초에 그것밖에 모른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내가 바라는 길이기도 하니까.

"좀 더...기다리지 뭐."

[가지인줄 알았으나 뿌리였던 하층계를 모조리 공략함과 동시에, 군단은 이제 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두번째 줄기다. 정찰병은 딱히 위협이 되는 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군단은 착실히, 아니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어느새 다음 줄기를 향해 세력을 뻗쳐나갔다.

어중간한 짐승과 세력은 이제 우리를 못이긴다.

타 플레이어의 유닛인 쥐들과 만났던 이후로, 아직까지도 우리의 호적수들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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