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게임판(3)
-자칫하면 10년 전의 악몽이 다시 재현될 수도 있다.
"..."
나는 멍하니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10년전이라 하면 아직 대응 체계가 미숙했던 때.
마물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그때.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게임에 대해 언급하는게 규정상 잘못된 일은 아니야. 그렇지?"
[그렇다. 어차피 모든 책임은 너희가 직접 지게된다]
"...아직 모르는건가?"
나는 스크롤을 주르륵 내렸다.
최근 이런 이야기밖에 없다.
진화하는 마물, 일명 변이종.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확실히 헷갈릴만 하다.
하지만 놈들은 굳이 따지자면 변이한게 아니다.
성장하고, 교류하고 학습하는 거겠지.
한국은 아직까지 저런 변이종에 대한 보고가 없지만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군단은 어떻지? 대체 얼마나 더 커야 나와 상호작용 할 수 있는거야?"
점차 상황이 급박해지니 다급할 수밖에 없던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상위 개체의 신체 일부라도 넣어 정보를 뽑으면 안되겠냐 문의했지만, 지금 군단이 가진 해석능력으로는 완전한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았다.
내가 내 유전자와 세포가 든 피를 전송시킨다 한들 군단은 그것만으로 인간을 복제하지는 못한다는 뜻이었다.
[언제쯤 소통이 가능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당장일지도, 먼 미래일지도. 하지만 장담하건데 그것을 조절하는게 너의 역할이다]
나의 역할.
나는 아직 여유가 있는 표본 슬롯을 확인했다.
어느 정도 각오는 다졌다.
마물들이 나오면, 놈들을 찾아가 찍을 생각이었다.
"..응?"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밖에서 울려퍼졌다.
*
"분명 이 근처?"
어수선한 길거리 분위기, 자차를 끌고온 차지연은 길가에 차를 대고서는 손바닥에 작은 돌을 올려두었다.
돌은 웅웅거리며 울리고 있었다,
우선 찾아보기로 한 서울을 반 이상 싹 뒤져서 겨우 잡은 신호.
이 신호를 바탕으로, 그녀는 어느 정도 타깃의 범위를 확정지었다.
[정확한 위치를 찾는건 불가능하다. 다만 지근거리 내로 접근하게 되면 수상한 이들을 찾아낼 수 있을터]
"알겠습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렸다.
특유의 외모덕에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기 시작했지만,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그녀는 애써 시선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2개의 학교, 수많은 아파트와 상가, 지하철역 등.
범위를 줄이긴 했으나 아직 찾아야 할 상대가 너무 많았다.
"..."
그러나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녀는 물론 그녀의 뒷배도 알 수 없는 또다른 존재.
하늘을 빙빙 돌던 참새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던 놈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히죽거렸다.
"...위치는 벌써 몇시간이나 고정되어 있는데. 그러면 유동인구가 아닌 집, 학교, 자영업자?"
동네를 돌아다니는 차지연은 머리를 굴려 어떻게든 후보를 추론했다.
이 일대는 전형적인 베드타운, 그러니 이런 곳에서 평일 오전에 진득히 한곳에 있으면 그래도 몇몇 후보군은 찾을 수 있었다.
[이런]
하지만 찰나의 순간 평화로운 오전의 여유로움은 깨져버렸다.
그녀가 고개를 쳐들었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돌발 게이트다!"
"고, 고블린이다! 근데 이놈들 생김새가..."
헌터의 예민한 청각은 희미한 비명을 정확히 캐치했다.
사람들의 고함으로 그녀는 지금 무슨 일이 터진건지 알아차렸다.
[우연? 절대 우연은 아닐 것이다. 몸을 피해라. 놈들은 너를 쫒아 온 것이다]
"...그러니까 굳이 티를 냈어야 했냐고요."
혀를 찬 그녀는 반사적으로 비명이 들려오는 곳으로 달렸다.
당연했다. 그녀는 헌터, 괴물을 사냥하는 사람.
동시에 사람들을 구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아니, 지금 당장 퇴각해라. 변수를 만들 수 없다는게 카르코스의 뜻이다]
"사람들이 죽는다고요! 우리 때문이잖아!"
[안타깝게도 네 플레이어에게 그딴건 고려 대상이 아니다]
"큭..."
그녀는 척추를 관통하는 짜릿한 고통에 비틀거렸다.
이건 경고였다.
그녀의 플레이어는 신비로운 힘을 가진, 명백한 강자.
애초에 그녀에게 은총을 내리며 자신의 수족으로 부리기 위해 제약을 건 상태였다.
[물러나서 상황을 봐라. 놈들의 전력이 확인되면 그때 합류해서 공적을 쌓아라]
명령을 들어야했다.
결국 입술을 깨문 그녀는 비명소리가 커지든 말든 서둘러 몸을 피했다.
"무슨 고블린들이..."
차지연이 몸을 피할 당시.
공간의 비틀림에선 놈들이 쏟아져 나와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키.
짙은 녹색 피부와 일그러진 얼굴 등.
그 모습이 창작물 속 고블린과 닮아 오크처럼 정식 명칭 대신 고블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소형 집단종 마물.
사실 D등급 최하의 마물로 1대1만 두고보면 평범한 사람도 이길 수 있다고 알려진 허접한 마물들이었다.
"이, 이게...컥."
하지만 지금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놈들은 달랐다.
놈들은 더 이상 일개 짐승무리가 아니었다.
조잡하긴 하지만, 그 낡은 천에 무려 피로 쓴 글자가 적힌 깃발이 휘날렸다.
"●●●!!"
다급히 달려와 권총을 쏴대던 경찰 몇이 강궁에서 쏘아진 화살에 맞아 죽었다.
놈들은 이미 하나의 군대였다.
약탈과 학살을 위해 뛰어다니는 놈들을 풀어놓고 그 뒤로 잘 짜여진 편제와 진형에 맞춰, 수염을 길게 기른 지휘관이 군대를 지휘했다.
"..."
놈은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술로 한쪽 시야와 연결 된 곳에는, 지금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연결되어 있었다.
목표를 찾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다만 계속 추적해 왔던 목표물은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 ●●!"
물론 그래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 온 이유가, 단순히 상대의 유닛 하나를 사냥하고자 온건 아니었으니까.
놈이 지휘봉을 휘둘러 병사들을 흩뿌렸다.
"꺄아악!"
"이, 이거 놔!"
무차별적 살육을 이어가던 놈들도 특정 대상은 죽이지 않고 사로잡았다.
사냥 대상은 가임기 여성.
애초에 고블린들은 타종족의 암컷이 없으면 번식이 불가능한 이들이었다.
"●..."
선봉에 나선 전사 하나가 코를 킁킁거렸다.
큼직한 건물에서 허겁지겁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
그곳에 사냥감들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얘, 얘들아! 정신 차리고 메뉴얼대로만 행동하자! 어서 대피소로! 지금 나가면 안돼!"
잔잔하던 학교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미친듯이 사이렌이 울리고 저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지만 대피는 시작부터 삐걱였다.
"얘들아..!"
실상황이 터지자 교사의 통제는 삐걱거렸다.
안전불감증 같은건 아니었다.
그냥 극한의 공포심이었다.
"뭐해? 어서 가자."
"묘하게 침착하네? 하지만 대피소로 가는건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강도연은 그 혼돈 속에서, 오윤아의 곁에 딱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작 오윤아는 어서 대피소로 가자는 강도연의 말에도 밍기적거렸다.
"무슨 소리야?"
"까딱 잘못하면 몰살일 수도 있으니까. 메뉴얼을 못믿는게 아니야. 게이트에서 '어떤 놈들'이 튀어나올지 확신할 수 없어서 그렇지."
이 상황에 피식 거리는 친구를 본 그녀는 몰살이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플과 게임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그녀들은 평범한 여고생일 뿐이었다.
"잘 모르겠네. 편을 먹을라해도 게이트에서 기어나오는 괴물들과 접촉하는게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고."
"꺄아아악!"
그렇게 오윤아가 한창 자기 이야기를 떠들던 사이 어수선한 복도의 창문을 깬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흑요석 같은 광석을 뾰족하게 깎은 화살촉.
그걸 본 강도연은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고블린이다!"
누군가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을 질렀다.
학교를 타깃으로 잡은 고블린들이 다른 곳을 무시하고 담벼락을 기어 넘어 개미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도망치자."
"그래."
지금 이 순간은 두 사람의 의견이 합치했다.
일개 고블린 따위가 대피소의 강철문을 어쩌겠느냐 싶겠지만, 두 사람은 저 고블린들이 범상찮은 놈들임을 알고 있다.
"모두 밖으로 도망...무슨 짓이야?!"
"지금까지 똑똑하게 굴었으면서 마지막에 멍청하게 판단하지마. 다 같이 밖으로 뛰쳐나가면 제대로 도망가기 힘들어. 그럴 시간도 없고."
다른 학생들과 교원들을 밖으로 대피시키려던 오윤아의 입을 강도연이 막았다.
설마하니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 몰라 당황한 오윤아가 경악했다.
"...친구들이야. 미끼로 쓰자는거야?"
"미끼로 쓴다고? 미끼는 사냥할때나 쓰는거야. 이건 그냥 발버둥이지."
그녀는 단호했다.
분명 갑은 자신인데도, 오윤아는 그 기세에 밀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 그녀들은 미친듯이 복도를 내달렸다.
이미 뒤쪽부터 침투해 온 고블린들이 저항하는 이들을 죽이고 미처 피하지 못한 학생들을 붙잡기 시잡했다.
"히익..."
그러던 와중 결국 계단을 내려가던 그녀들의 앞에도 피 묻은 검을 들고 서 있던 고블린 한마리가 히죽이며 서 있었다.
희생자는 학교의 교장과 학생부 부장교사.
초임 교사들도 학생들을 지키겠다며 함께하는데 학생들도 버리고 자기들끼리 도망치다 앞질러 온 괴물에게 살해당했다.
"나, 날 지켜! 그러라고 힘을 준거잖아!"
"알고 있어."
기겁한 오윤아가 덜덜 떨며 작은 몸을 그녀의 등 뒤로 숨겼다.
강도연은 결국 앞으로 나섰다.
어차피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죽는다.
어쩌면 더 끔찍한 짓을 당할수도 있고.
그나마 지금은 미약한 힘이나마 있었다.
"●●."
고블린은 히죽 웃으며 그녀를 향해 검을 들이밀었다.
고블들의 검이지만 그래도 마체테 수준의 길이다.
'제발 정신 차려.'
강도연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직간접적으로 마물만 보면 트라우마로 그날 일이 떠올랐다.
지금까지도 자신을 괴롭히는 어린날의 끔찍한 기억.
"후.."
그날의 사건은 그녀의 멘탈에 여러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은 특정한 사건에 그녀를 순식간에 패닉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지만.
"씨발 징그러운 괴물 새끼야!"
"●!"
때로는 끓어오르는 혐오와 분노도 주었다.
분노가 두려움을 찍어누른 순간 그녀가 땅을 박찼다.
동시에 옆에 있던 소화기를 한손으로 번쩍 들어, 조금도 예상치 못한 고블린의 안면을 정확히 후려쳤다.
살이 터지며 뼈가 으깨지고 부러지는 소리와 깡! 하고 청명하게 울리는 타격음이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