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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9화 (19/254)

19화-게임판(2)

"일단 유닛은 마주치는 다른 소속의 유닛은 무조건 적으로 간주한다."

강도연이 차분히 이야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입이 봉인 상태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플레이어 역시 같은 플레이어를 적대한다. 하지만 여기서 모순이 생기잖아. 만약 상대 플레이어의 유닛들이 전혀 다른 세상에 있으면 어떡하지? 다른 '서버'라면."

"그래, 네 말이 맞아."

같은 세상의 유닛과 유닛은 무조건 적이지만 플레이어끼리는 아닐수도 있다.

오히려 여차하면 서로 동맹을 맺을 수도 있다.

같은 소속인 또 다른 플레이어를 저격하는 용도로.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지금 지구에서 난리친다는 유닛들, 우리와는 관계 없는 놈들이잖아. 하지만 바꿔 생각해봐. 지구에서 깽판치는 놈들의 주인이 오빠의 세상에 있는 플레이어라면."

"유닛뿐만 아니라, 그런 부류 역시 찾아서 죽이려고 들겠지."

플레이어를 죽이면 굳이 전쟁을 겪을 필요도 없다.

슬슬 머리가 아파왔다.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근데 그게 오윤아를 이용한다는거랑 무슨 상관이야. 네가 위험하다고. 네가 다쳤다고!"

"나도 용서 안해. 하지만 어차피 윤아는 오빠에 대해 몰라."

녀석이 다소 거친 호흡과 흔들리는 눈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애는 자신의 신변을 최우선으로 두고 다른 플레이어와도 접촉하고 싶어해. 세상이 겹치지 않는 플레이어를.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세력을 키우겠다고 했어."

"계속 옆에 붙어 있겠다고?"

"내가 계속 물어다 줄테니까, 더 확실한 기회를 봐."

먼저 움직일 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얻고, 역으로 이용하고.

합리적. 그래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동생의 말이 맞다.

하지만 그게 되면 내가 군단이지 사람이겠냐고.

"네가 걱정돼."

"...그럼 빵이나 사줘."

녀석이 힘 없이 웃었다.

나는 결국 그대로 방을 나왔다.

"지금 저 녀석이 '유닛'이 아닌건 확실하지?"

[그렇다. 유닛과 플레이어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추가적으로 영입, 속박, 계약한 이는 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우려했던 마지막 가능성도 종식시켰다.

*

[자책하지 마라]

"안하게 생겼어?"

[오히려 목표는 명확해졌다. 확인해라. 네 계정 레벨이 3으로 올랐다]

레벨 업 더럽게 느리다.

그래도 지급가능한 표본수와 영양분이 늘어난건 다행이었다.

"..이건 투자거든."

나는 100만원이 든 봉투를 흔들었다.

아직 어린 녀석이 자기 목숨 걸고 벌어 온 돈, 단 한푼도 쓰지 않았지만 지금은 써야했다.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때가 아니다라는 말은 기억한다.

하지만 언젠가.

그 때가 찾아왔을 때.

나는 무엇이든 찍고, 먹일 것이다.

그것이 설령 사람이라 한들.

[군단을 보겠느냐. 덩치가 커진 만큼 유지비도 많이들지만, 종족 특성상 성장과 소화도 그만큼 빨라진다]

화면을 확인했다.

실제로 군단은 대층계에 가득하던 쥐새끼들의 흔적을 지워나가는 중이었다.

장담하는데 전체로 본다면 이 동굴에 과연 우리보다 큰 생물체가 존재할까?

우리는 2개의 대층계를 포함 20개의 층계를 전부 채웠다.

"멈추지 않겠지?"

[당연하다. 승리는 승리일 뿐. 아직 먹어치워야 할 곳들이 너무나 많다]

내 시야에 쥐들의 도구를 수거하고 있는 군단의 모습이 보였다.

어째 고심이 깊어보였다.

[도구, 분명 매력적인 개념이었으나 과연 우리가 이것을 놈들이 다루는 것처럼 곧이 곧대로 써야 할까]

"글쎄. 지금으로서는 한계가 있어."

[맞다. 군단 역시 그렇게 판단했다]

군단은 도구를 포기했다.

정확히 말하면 외부에서 습득하는 도구를 포기했다.

애초에 강철은 우리가 만들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언젠가는, 강철보다 단단하고 날카로운 무기를 우리 스스로가 생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충분히 가능할껄."

도구의 개념은 저장한 채, 군단은 새로운 곳들로 정찰병들을 날려보냈다.

[이 일대는 이미 쥐들로 인해 풍비박산이 되었군. 하지만 놈들의 사체는 물론 놈들이 지은 버섯집이나 구조물들도 우리는 소화가 가능하다]

주변은 이미 쥐들의 앞마당이었다.

종족보전권을 써서 어디로 도망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먼곳으로 도망쳤다면, 글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래도 그놈들이 길을 다 닦아놔서 먹어치우는데는 그리 오래 안걸리겠네."

[그렇다. 오히려 놈들의 시체를 먹어치우는게 더 오래걸리겠지...이것을 봐라. 정찰병이 또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니 이게 무슨 민폐야?"

나는 화면을 확인했다.

정찰병이 발견한 것은 이미 쥐새끼들이 전부 닦아 놓은 윗층계로 향하는 길.

그리고 놈들이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삼았던 그 길 끝에 자리한 무언가였다.

"분명 다른 길인데, 여길 왜 다 막아놨지?"

큼직한 돌, 버섯조각, 흙등으로 단단히 밀봉한 하나의 통로.

쥐들이 한 짓이 분명했다.

정황상 위로 올라가는 길은 이곳뿐이다.

그말은 즉 그놈들은, 위로 세력을 늘릴 유일한 길을 스스로 막았다는 뜻이었다.

"어째서일까. 밑으로는 잘만 내려오던 놈들이. 아니, 애초에 우리가 기민하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아래쪽도 막았으려나."

[안타깝게도, 군단에 뇌속의 데이터를 분석하는 능력은 없다. 하지만 군단도 알고는 있다. 쥐들이 고의로 저 통로를 봉쇄했다는 것 쯤은]

"그럼 어떻게 행동하려고."

[당연한 것 아닌가?]

군단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힘이 좋은 병사들을 움직여 봉쇄를 조금씩 부숴나갔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멈추면 곧 죽음이다. 이제 우리의 덩치는 주춤거리기엔 너무 많이 성장해버렸다]

설령 저 너머에 무슨 해괴한 생물들이 살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싸우고 먹어치워야만 했다.

"당연히 믿지."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걸 바랬다.

군단은 더 강해져야했다.

더 성장하고 강해져서, 내 힘이 되어주야 했다.

[거의 치워지고 있다. 드러난 희미한 틈으로 지금 정찰병들이 들어가고 있다]

틈이 드러나자마자 몇마리의 작은 정찰병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정찰병이 보는 시야가 연동되었다.

일단은 평범한 동굴이었다.

평범한 동굴이었는데...

[이번엔 군단도 처음 하나의 '가지'인 대층계에 도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충격을 덜 받았다. 이곳은...분명 '줄기'의 일부라고 부를만하군]

"막막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네."

분명 동굴은 맞았다.

하지만 겉보기에만 동굴일 뿐, 나는 이렇게 커다란 동굴은 본 적 없었다.

어지간한 나무만큼 큰 버섯을 포함한 빼곡한 식생도, 수십 미터 위에 자리힌 저 높다란 천장도, 그 천장에서 별처럼 빛나고 있는 발광석들도.

지금까지 봐 왔던 동굴은 어린애 장난 수준이었다.

[문제 되느냐?]

"그럴리가."

나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군단은 계속해서 이곳까지 먹어치울 테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자인 유닛이 있는지에 대해서.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감히 우리와 맞설 수 있는 세력, 혹은 강자가 있는지에 대해서]

정찰병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다녔다.

환경이 너무 급격히 변해서 그런지 주변의 모든것이 새로운 정보였다.

"지룡?"

그런 와중에, 익숙한 무언가가 보였다.

자동차만한 불뿜는 거대 도마뱀 붉은비늘땅굴지룡.

한때 10층계의 지배자였던 저 도마뱀이 버섯 숲 사이를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래도 익숙한 얼굴을 보니 반갑기도 한데.

"음?"

[역시, 이곳은 상위 층계다. 밑에서는 자신만만하게 살았을 놈도 손쉽게 사냥당하는 그런 곳]

나는 깜짝 놀라 눈을 꿈벅거렸다.

그 큼직했던 지룡이, 단숨에 사냥당했다.

"...허."

지룡을 사냥한 괴물은 거대한 딱정벌레였다.

그 크기가 지룡과 맞먹었다.

근처의 바위라고 생각했던 건, 먼지로 덮힌 딱정벌레의 갑각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세계.

그게 저 동굴이다.

[아직 모든 부분을 정찰하진 않았지만 세력이라 부를만한 집단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중간층계에는 우리 행보를 방해할만한 이들도 없다는 뜻]

통로를 막고 있던 동굴이 완전히 부숴졌다.

예상대로 군단은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유지비도 든다. 그러니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가 좋으니까.

[무턱대고 덤벼들진 않는다. 우리는 학습하는 존재, 그동안 쌓은 경험은 모두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미 제대로 된 전쟁을 겪었지."

나도 인정했다.

이제 단순한 무리사냥의 개념을 넘어섰다.

다양한 병종을 섞어 전투력을 극대화, 사냥 따위가 아닌 오직 전쟁을 위해 조합된 이들이다.

잡아먹고자 하는 사냥꾼에서 첨예하고 냉철한 군대로 바뀐 군단의 병사들이 지룡을 뜯어먹던 딱정벌레를 덮치기 시작했다.

[갑각이 상당히 단단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하층계 생물들의 갑각보다 더더욱. 그래서 탐이난다]

딱정벌레는 자신의 등껍질을 믿고 빠르게 땅에 파고들어 방어 태세를 갖췄다.

아마 대부분의 포식자들은 이렇게 되면 놈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군단은 집요하게 괴롭힌 녀석을 결국 뒤집는데 성공했다.

산채로 토막나는 녀석을 본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별 것 아니지 않느냐. 결국 아무리 진화해도 덩치 큰 짐승일 뿐, 감히 우리에 비할 바 아니니라]

"...너 그거, 네 의견을 말하는게 아니라 군단의 입장에서 말해주는거지?"

[그렇다. 무언가를 느꼈느냐]

느꼈느냐고? 나는 점점 이 공동을 잠식해가는 검은 물결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싸가지가 없어지면 어쩌지?"

군단은 분명 지난 번 전투에서 감정의 씨앗을 발달시켰다.

어린애나 마찬가지인 이 생물이, 오만하고 비뚤어지는건 나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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