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운명의 굴레(3)
우레와 같은 굉음, 발광석의 빛 따위는 비교할 수 없는 섬광.
그리고 그 압도적인 물리력.
뉴트리아 사이즈인 저 쥐들이 함께 쏴도 반동 때문에 명중률이 형편없다.
하지만 빗나가기엔 우리 병사들이 너무 컸다.
[비록 가장 단단하고, 튼튼한 갑옷을 손에 넣었다한들 부족했다. 맨 앞에서 돌진을 맡았던 방패형 군단병의 검푸른 갑각이 단번에 부숴지며, 머리가 터져나갔다]
"...역시 총은 좀 센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구의 생물들과 비교하면 상식 밖의 능력을 보여주던 저 동굴 속 생명들도, 역시 현대 지구의 화약과 총탄 앞에는 어쩔 수 없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내게는 답이 없다. 지구의 그 어떤 동물도 총기 앞에 무력하다.
대체 저 플레이어가 누군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총기 규제가 없는 나라에 사는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군단에 대해 알고 있는 너는 걱정 안하지 않느냐]
"걱정은 안하지. 단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할 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총이라는 현시점 개사기 무기의 등장에 놀라긴 했지만, 나도 총이라는 무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고작해야 열발? 아홉발?"
저 권총의 장탄수는 잘 모르지만, 끽해야 열발 수준 아닌가.
겁먹지 않고 조금만 견디면 되겠지만 문제는 군단은 그걸 모른다.
어떤 선택을 내릴까.
궁금해 하던 무기의 위력을 봤으니 후퇴, 아니면 계속해서 진격?
[군단은 진격을 택했다. 설령 지금 파견한 병사들을 모두 잃더라도, 끝을 보려는 생각이다]
그리고 군단은 더더욱 진격하는 쪽을 택했다.
[총성이 연달아 울리며 대형종들이 하나 둘 쓰러져갔다. 방진이 깨지고 공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놈들의 숫자가 상당하고 요새도 상당히 튼튼하다]
"...분명 탄창이 빌텐데. 차라리 네가 전해줘. 군단의 생각을 안다면 당연히 내 말도 전할 수 있는거 아닌가!?"
[나는 안내자이자 관조자일 뿐이다. 네 말을 그대로 전한다 한들 그들은 알아듣지 못하지. 이해시킨다? 그런 개입은 할 수 없다]
"이런 쓸모없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쉬었지만 지금 당장은 지켜보는 것 뿐이다.
거센 저항에도 군단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병력의 양을 배로 늘렸다.
"이게 맞아?"
[어째서일까]
두 배, 아니 세 배...네 배?
둥지에서 기어나오는 병사들의 숫자가 줄기는 커녕 점점 늘어났다.
"뭐, 뭐야. 왜 끝장 볼 것 처럼 이래?"
[간질거리는 이것은 무엇일까. 전쟁을 반복하고, 놈들의 뜨겁고 격렬한 저항을 받을 때. 우리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느낌을 받았다. 원인을 알 수 없다. 그나마 추론해 보자면 그동안 꾸준히 키워 온 고도의 신경체, 군단의 뇌가 그 원인 중 하나일지도]
"그게 무슨 소리야."
[지고 싶지 않다. 죽이고 싶다. 먹고 싶다. 싸우고 싶다]
어마어마한 숫자에 당황한 것인지.
이제 전선은 요새 전체로 확대되었다.
허공을 빼곡히 매운 비행종들이 요새의 성벽을 너머 놈들을 공격하고, 빈틈에 대형종들이 머리와 갑주를 들이밀었다.
[타고난 본능으로 가지고 있던 탐식 외에, 또다른 무언가를 느끼는 순간이다. 아아...지금 이 순간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금 군단은 기초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었다. 이것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먹어서 배끼고 추출하는게 아닌, 오로지 스스로]
글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전율이 일었다.
어째서인지 병사들이 달라보였다.
수많은 개체, 수많은 병종.
하지만 본질적으로 저 병사들은 곧 하나의 존재다.
이제서야 내게도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껏 기계처럼 무미건조한 군단 병사들의 이빨에, 발톱에, 꼬리와 독침등에 기묘한 살의가 조금씩 담기고 있었다.
[감정이라는 것을 무시하지 마라.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칼을 꽂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한계를 넘게 해주는건 원초적이고 강렬한 갈망이다]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압도적으로 찍어누르지는 못하는 가운데 어느 한쪽이 먼저 나가 떨어지느냐에 승패가 갈린다.
군단은 이번 전투에서 패하면 에너지 부족으로 지금 같은 대병력을 생산하지 못한다.
대신 한꺼번에 폭발하는 생산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소모된 병력을 순환시킬 수 있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저 쥐들은 우리보다 순환율은 낮은 대신, 다양한 도구와 시설을 이용한 방어전을 치루고 있다.
거기에 지금까지 쌓아 둔 물량은 우리와 맞먹을 정도다.
"...백중세?"
[과연 그럴까? 저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봐라. 이상하다. 너무나 이상하다. 충만했던 자신감이 이제 점점 떨어지고 있다. 자만했겠지. 이길 줄 알았겠지. 그동안 우리의 견제를 몇번이나 물리쳤으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쥐들의 단결에 흠이 생기는게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서로 시체를 쌓아가는게 눈에 보이는데 왜 그럴까.
"@%*!!"
놈들 중 몇몇이 이제는 불을 뿜지 않는 총을 보며 절규하듯 찍찍거렸다.
당연하다. 총탄이 무한한 총은 가상의 게임에서나 나온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군단이다. 생전 처음 듣는 굉음을 뿜는다고, 가장 강한 병사가 일격살 당한다고 주춤거리지 않는다. 그저 죽이고, 싸우고 먹어치운다. 우리의 병사들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한몸처럼 움직인다]
분명 서로 단결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잘 싸웠지만, 분명 차이는 존재했다.
우리는 선택이 가능한 종족이다.
투지와 분노는 느낄지언정, 목표를 눈앞에두고 두려움과 공포로 대열이 깨지고 와해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 쥐들은 다르다.
[한번 의심이 심어지면 두려움은 곧바로 그 의심을 먹고 커진다. 감정을 가졌다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군단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군단은 저들이 갖지 못한것을 가지고 있다]
틈이 생기면 단숨에 그곳만 집요하게 후벼판다.
마침내 놈들의 성벽에, 대형종의 몸을 타고 기어오른 병사 하나가 날카로운 갑각이 칼날처럼 달린 꼬리를 휘둘러 창을 든 쥐새끼 하나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여럿이자 하나인 우리에겐 신뢰가 있다. 스스로에, 우리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하지만 저들은 어쩌겠느냐. 생존에 대한 욕망...그것은 생명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그건 동감해."
쥐들의 전열이 무너졌다.
원인은 위축된 녀석들의 탈주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능이 올라가고 다양해진 감정선은 득을 준만큼 실도 주었다.
군중에 퍼지는 공포감은 그 위력을 제곱으로 올려갔다.
[군단이 놈들의 상처를 째고 벌리기 시작했다. 사실상의 승리라고 확신했다]
마침내 군단의 지상종들도 놈들의 요새를 넘었다.
만약 실패했다면 두번 시도하기 힘들었을 대규모 공성전.
과연 이제 막 감정이란 무엇인지 알게 된 군단이 정말로 공포심이라는 쥐들의 감정을 역이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겼다.
[대학살의 시간이다]
전열이 무너지고 혼돈에 빠지면 피지컬 차이가 나는 이상 우리가 이긴다.
이 넓직한 대층계에 찍찍거리는 비명소리가 끊임 없이 울려 퍼졌다.
패자는 남김 없이 학살 당하는 잔혹한 생태계.
이 와중에도 군단은 성장한다.
"혹시 무슨 보상이 있나? 따지고보면 첫 PVP를 승리한건데."
[놈들을 '절멸'시켜서, 완전히 아웃으로 만든다면 보상이 있겠지]
"뭐?"
별 생각 없이 물었지만 답변을 본 내 얼굴은 굳었다.
그리고 슬쩍 내 손등을 확인했다.
아직 사용하지 않은 척살권이 남아있다.
과연 상대 플레이어는 뭘 가지고 있을까.
적어도 나와 같은 척살권이면 상관 없는데.
"보상 가능할거 같냐?"
[...상대가 종족보전권을 사용했다. 따라서 절멸 불가능. 보상은 지급되지 않는다]
"이런."
어느 정도는 예상한, 안 좋은 경우의 수가 나와버렸다.
쫄보 같이 도망이나 치기는.
"진이 다 빠진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벌써 밖이 어둑하다.
목도 뻐근하고 눈도 뻑뻑했다.
몇시간이나 이어진 전쟁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더니 어쩔 수가 없었다.
"..."
불 꺼진 방 안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강도연은 방금 집에 들어왔다.
문의했던 친구들은 입을 모아 오늘 하루 아무일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교차 증언에 시간상 사실인 것 같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가 없었다.
[...한가지 힌트를 주지]
"뭐? 네가?"
[대비를 해둬라]
그때 진동과 함께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 뜻밖의 내용에 나는 잠시 얼어 붙었다.
[게임이 본격적으로 메인 스트림에 올라서면, 아마...정상적인 일상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 있었던 일이 과연 지구에서 벌어지지 않을거란 확신은 없다]
이어지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다.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지. 플레이어와, 유닛]
"...이제 말해. 대체 넌 누구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거야?"
[말했을텐데. 난 관조자일 뿐이라고]
내 손이 떨렸다.
동시에 내 뇌리에서는, 방금 봤던 대규모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전쟁이 지구에서 펼쳐질 가능성...없다고 볼 수 있나.
[지독한 게임이다. 그러니 부디 살아남아라. 네가 원하는 것을, 네 사람들을 지켜라]
"난 힘이 없어."
[알고 있다]
"하지만 날 도울 수 있을거라며."
나는 휴대폰을 들었다.
강한 플레이어와 강한 유닛이 만나 서로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이 상황에 믿을 수 있는건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 이 애들 뿐.
"알바는...힘든가?"
아무래도 좀더 예의주시 해야할 것 같았다.
그전에 동생 일을 처리하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