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운명의 굴레(2)
"진짜 걱정되네 하."
나도 학교를 가야 한다.
강도연은 이미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간 상태.
이 상황에 무슨 학교냐 싶지만 벌써부터 모든걸 놔버리고 매달릴 수도 없고.
머리를 마구 긁었다.
내 선에서 어떻게 처리, 아니 진실이라도 알고 싶었다.
[그걸로 되겠느냐]
"항상 붙어 다니는 친구니까 뭐라도 알겠지. 운명 어쩌고 떠들던 네가 제대로 말만 해줘도 이러지 않잖아. 혹시, 설마 정말로 이 게임이랑 관련 있냐니까?"
불안함은 분명 있었지만 아직 극초기다.
이 게임에 엮였다기보다는 그냥 개인적인 문제일 확률이 더 크다.
그런 상황에서 대뜸 이 비현실적인 상황, 즉 플레이어와 게임에 대해서 먼저 말하기에는 힘들 것 같았다.
[그건 말할 수 없다. 판단은 네 몫이다]
"그럴 줄 알았다...됐어. 일단은 알아보면 그만이지."
결국 탄식하며 선택한 방법은 그다지 끌리지 않는 방법이었다.
일단 sns의 메시지로 평소 알고 있던 동생의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알려달라고.
결국 그렇게 찝찝하게 끝맺은 상태로 나는 학교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답장은 금세 왔으며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
오늘은 물론 어제도, 평소와 다름 없이 친구들과 놀고 학원에 가고 하는게 전부라고 했다.
물론 이 친구를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따로 생각해 봐야했지만.
나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문자를 돌려보았다.
"나도 모르겠다. 암만 생각해도 나는 군단보다 멍청한 것 같네."
[내가 보기에도 그렇게 보인다]
"..."
나는 멍하니 휴대폰을 켰다.
딱히 특이사항이 없어도 들여다 보는게 습관이 되었다.
군단은 늘 그렇듯 지금도 전쟁을 준비중이었다.
[이제 슬슬 놈들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진지하게 대응을 생각하는 듯 하다]
이미 대층계 하나를 대부분 잠식한 군단의 '본체'는 어느새 13층계까지 그 뿌리를 뻗었다.
하나이자 여럿인 이 거대한 생명체는 동굴 최심부의 단단한 돌까지 부수고 파고들며 그 모양을 변형시키고 자신의 덩치를 팽창시켰다.
이 오래되고 깊은 동굴이, 우리에 의해 그 역사가 바뀌고 있는 것이었다.
[놈들의 정찰병들이 나타나 조사를 시작했다. 놈들중 일부는 특이하게도 길들인 것으로 보이는 조류 비슷한 생명체를 타고 있었다]
쥐새끼들을 본 이후 층계를 올라갈수록 슬슬 식생에 또 하나의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계속 보던 파충류나 양서류가 아닌, 깃털을 단 생명체의 등장은 이 동굴에선 처음이었다.
[물론 이미 조류에 대한 정보가 있는 군단에게 깃털은 그다지 신비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세포시절부터 착실히 경험을 쌓은 군단은 정찰병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 역도 성립한다.
상대의 정찰을 틀어막는 것.
곧바로 공중을 장악하기 위한 군단의 공중 유닛들이 출격했다.
지금까지 쌓은 데이터상, 지금 저 정찰대의 무력은 형편 없다.
[놈들이 타고 있는 깃털달린 생명체의 속도는 꽤 빨랐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놈들의 정찰대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당했다.
[하지만 아직 시작도 안했다. 보아라, 놈들의 힘은 과연 다른 대층계를 넘볼만큼 강했으니]
휴대폰의 화면이 반전했다.
나는 정찰병이 보는 그 화면을 보고 말을 잃었다.
거칠고 험한 지류를 타고 올라가 도달한 두번째 대층계인 15층계의 풍경은 첫번째 대층계였던 10층계와는 그 모습이 사뭇 달랐다.
척박한 동굴인건 똑같았지만, 식생이 보다 다양하고 무엇보다 이끼가 아닌 작은 식물들도 눈에 띄었다.
"...저곳이 놈들의 본거지였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대층계 전체를 수놓은 요새와 길, 수많은 둥지와 적어도 수천마리 이상은 되어 보이는 쥐새끼들.
막연히 물량이 우리 군단의 자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군단이 다시금 전략을 수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놈들은 작은 무리였을 뿐. 진정한 전쟁은 지금부터다]
놈들도 전쟁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놈들이 우리 정찰병을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우리는 놈들의 영토 구석구석을 뒤질 수 있었다.
그때 내 눈에 대량으로 운반되고 있는 쇳조각들이 보였다.
"아니 이런 미친."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걸 보고 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깔끔하게 잘 빠진 은색 몸체.
그립감 좋은 손잡이 등.
"저게 왜 저기서 나와?"
[군단이 모르는 도구의 등장이었다]
조잡한 갑주와 치렁치렁한 장신구로 무장한 쥐 한마리가 조심스레 들어 옮기고 있는 그 물건은 군대서도 못본 대구경 권총이었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플레이어가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것 같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문질렀다.
대구경 권총? 수박도 가루로 만드는 저 권총이 과연 우리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을까?
"할만 할 것 같기도 하고."
[놈들이 새로운 도구를 꺼낸 이상 군단은 신중하게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우선은 저 도구가 대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
살짝 답답했지만 서로 소통할 방법이 없는 지금은 군단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보다 똑똑한데 금세 총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군단이 선발대를 보냈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를 갖춘 이들이 더 단단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놈들이 준비를 전부 마치기 전에 움직일 생각이었다]
기동성 좋은 공중 유닛들이 다시금 날아올랐다.
목적은 하나, 본대가 구성되어 들이치기 전까지 놈들을 끊임 없이 괴롭히기 위해서였다.
[놈들도 우리의 공격을 알아차렸다. 첫번째 습격은, 단순한 맛보기다. 요새 위에서 다급히 움직이는 놈들을 향해 독침과 발톱이 날아들었다]
놈들도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대로 합심하여 자신들보다 큼직한 군단병을 향해 창을 내지르고 화살을 쏘았다.
근거리에서 쏘아지는 화살은 은근히 관통력이 있는듯, 병사들이 두른 갑각이 뚫리기 시작했다.
[과연, 굳이 여기에다 비밀병기를 쓰지는 않겠다는건가. 하지만 군단은 이런 게릴라를 계속해서 시도할 것이다. 우리는 지치지 않으나 놈들은 분명 지칠 것이니]
서로 상처만 남은 소모전.
군단은 이것이 이득이라 판단하면 계속해서 반복할 것이다.
이미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저 쥐들은 분명 흔들리겠지.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생존 본능은 생명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본능.
하지만 군단은 예외였다.
*
"..."
또다.
또다시 하층계에서 몰려오는 저 검은 물결이 하늘을 가로질러 이곳으로 쇄도했다.
그들은 이번에도 싸우기 위해 창을, 석궁을, 검을 들었다.
이제 그들은 일개 동굴땅쥐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특성인 빠른 번식, 빠른 성장은 빠르게 사이클을 돌리고 개체수를 늘려갔다.
세대 교체의 사이클이 빠르게 돌때마다 그들은 점점 성장하고 똑똑해졌다.
이제 다른 동물들의 시체나 파먹던 쥐가 아니다.
이 대층계를 점령하고 그 세력을 외부로 팽창하려는 지방세력이다.
신세대의 그 자부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
그들은 용맹하게 이 침략자들과 싸웠다.
전투를 한두번 겪은게 아니었다.
그리고 학습을 통해 뒷세대는 빠르게 해답을 배우고 새롭게 발전시켰다.
자신들보다 훨씬 거대한 적들도 차근히 쓰러트려 멸종시켰다.
무리 짓는 적들도 있었지만 일개 짐승무리는 그 단결력과 조직력에서 감히 그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
그러나 이번에 상대하는 적들은 지금껏 상대해본 짐승들에 비해 어딘가 달랐다.
당황한 이들이 수십씩 죽어나갔다.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강하해 찍어누르는 공격은 조밀하고 치밀했다.
목청이 터져라 지휘하는 지휘관의 지시를 듣는 그들 이상이었다.
"@#~!!!"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수많은 동족의 시체를 딛고 계속해서 싸웠다.
죽음도 불사하고, 두려움은 투지로 찍어눌렀다.
전사라면 싸우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자신들에 대한 믿음 역시 굳건했으니까.
그리고, 괴물들과의 그 처절한 전투 끝에.
그들은 승리했다.
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저 검은 괴물들을 벌써 몇번이나 물리쳤다.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비록 죽어나간 동족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생산활동과 탐색활동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어쨌든 승리는 승리다.
이 승리는 그들만의 힘은 아니었다.
그들은 제사장의 지휘에 맞춰 하늘을 향해 예를 표했다.
언제나 자신들에게 신묘한 무기를 주고 가르침을 주는 누군가를 위해서.
내려오는 지식에 따르면, 그들이 성장하기 시작한건 그 누군가가 주기 시작한 은총 덕분이었다.
"&...!"
비록 짧은 수명 탓에 그리 오래 살지는 못하나, 분명 머지 않아 끝을 알 수 없는 이 동굴을 모두 점령할 만큼 성장할 것이라고 모두가 믿었다.
[그러나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당장의 승리가 과연 진정한 이득일까]
"%@*..."
그들의 기세는 이번에도 얼마 가지 못했다.
전멸당한 전진요새에서 생존자들을 통해 가까스로 전해진 정보가, 이제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끔찍한 괴물군단의 대진격이.
계속해서 괴롭힘 당하는 사이, 밑층계를 모조리 먹어치운 군단의 둥지가 스멀거리는 뿌리를 어느새 이곳까지 뻗치고 있었다.
[군단은 놈들의 전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놈들의 당황한 얼굴이 보인다. 아마 놀랐겠지, 몰랐겠지. 우리가 군단이라는 것을]
쥐들만큼이나, 다양한 병종이 섞인 군단병은 천천히 행진하며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부숴버렸다.
쥐들은 서둘러 요새에 결집하고 있었다.
심상찮음을 감지한 것인지, 그 숫자가 상당했다.
[군단이 다시 한번 싸움을 걸었다. 맹렬하게 돌격하는 지상군 위로 공중을 장악한 유닛들이 허공을 갈랐다]
이제 공중 유닛들은 철저하게 서포트 역할로 전환했다.
발톱으로 맹독주머니두꺼비를 잡아채 허공에서 투척했다.
쇄도하는 화살들이 부푼 두꺼비들의 몸을 터트려도, 뻥 하고 터진 두꺼비들은 강산성을 흩뿌릴 뿐이었다.
폭격에 패닉에 빠진 사이 사거리에 도착한 포격대가 독가시를 마구 뿌렸다.
그 사이 본대가 요새에 진입하는게 군단의 공성 전략이었다.
[아, 이제 등장하는건가. 사기를 북돋고 강적을 처리하기 위해서]
그때 요새 위에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번뜩이는 은빛이 발광석 빛을 받아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