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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5화 (15/254)

15화-운명의 굴레(1)

"무슨 헛소리인지 모르겠어. 신고할거야."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어."

오윤아가 피식 웃었다.

몸을 돌려 도망가려던 강도연은 그자리에 경악한 얼굴로 굳어버렸다.

분명 의식이 있는데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기묘한 감각.

"넌 내 명령에 복종해야 해. 기사가 주인의 말을 듣는건 당연하잖아?"

"...대체 무슨 짓이야."

"단순한 게임이 아니야. 이 세상의 비밀이지."

오윤아는 그녀를 강제로 벤치에 앉혔다.

그녀는 당황한 채, 곁에 앉은 오윤아가 보여주는 화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여, 영화야?"

"그럴리가. 대족장, 성공했어요."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오윤아는 어깨동무를 하며 손을 올리더니 씩 웃으며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그 이후 벌어진 광경에 강도연은 깜짝 놀라 눈이 크게 떠졌다.

마치 영화 속 한장면 같던 화면 속에서,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고개를 꾸벅 숙인 것이었다.

"이게 대체..."

"이 사람들은 내 유닛, 내 백성들이야. 최근 그들과 처음 만나게 된 나는 그들과 함께 서로를 위해 노력했어. 오늘 있은 일도 그중 하나지."

오윤아는 천천히 휴대폰 속 상황을 이야기 해주었다.

당연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 자신의 몸이 말 한마디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빼면.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흘러들었지만 강도연은 정신을 붙잡느라 진땀을 흘렸다.

*

"왜이렇게 늦게 들어왔어? 엄마가 너..."

"강도연!"

이런, 나는 그냥 슬쩍 옆으로 빠졌다.

문을 닫아도 어마어마하게 혼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리 오래지 않아 건너편 방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이정도로 끝나는건가?

[네 몸은 물론, 네 주변도 잘 살펴라. 이번 회차가 어느새 극초기를 벗어나고 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들과 유닛들이 어플에 적응하고, 새로 얻은 힘을 휘두를 것이다]

"차지연처럼 말이지. 근데 우린 너무 느린데?"

[무한한 가능성, 그에 따른 패널티는 당연히 있어야지]

우리는 사실상 무에서 시작했다.

작은 세포 하나에서 조금씩 조금씩 더 큰놈들을 잡아먹어가면서.

다만 그덕에, 이미 어느 정도 기틀이 잡혀 있던 이들과 연결된 플레이어들에 비하면 그 속도가 더뎠다.

[하지만 군단의 성장 속도는 분명 폭발적이다. 그리고 성장하면 할수록 그 속도도 더 늘어난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건 나도 알아."

대신 우리에겐 그만큼 강력한 강점이 있다.

나는 화면을 확인했다.

현재 군단은 여전히 전쟁을 준비중이었다.

그 와중에 시험적으로 만든 생명체 하나가 알을 찢고 나왔다.

구부정한 자세, 정교한 앞발.

갑각등을 두르고 있었지만 체형은 분명 이번에 잡아 먹은 쥐를 베이스로 만든 것이었다.

"단순한 실험작인가?"

[그렇다. 분명 흥미롭고 끌리는 형태지만, 군단은 효율상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저 쥐를 베이스로 한 병사들이 양산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군단은 자신들의 강점을 더 잘 살리는 방향으로 가는게 맞아보였다.

그리고 그 강점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저건 아니었다.

[놈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채고, 경계하는가]

놈들이 제멋대로 전진 요새를 구축하고 있던 12층계를 깨부수고.

작은 벌의 형태를 한 정찰병은 곧바로 패잔병을 쫒아 13층계로 올라갔다.

그곳에도 놈들의 요새가 있었다.

이미 전쟁 준비가 한창이었다.

[비록 우리와는 그 결이 다르지만 어쨌든 놈들에겐 배울게 많아보였다. 단지...우리는 그것을 배울 수 없다는게 문제였다]

군단은 이제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놈들이 더 단단한 방어 체계를 갖추기 전에 병력을 움직였다.

[그래도 군단의 탐식은 멈추지 않는다. 포식으로 배울 수 없다? 그렇다면 그냥 눈으로 보며 학습하면 된다. 군단의 덩치는 곧 군단의 뇌. 지금까지 성장한 군단의 학습과 연산능력은 이미 초월적이다]

전면에 나선 방어형 도마뱀들이 단단한 갑주를 세웠다.

그 뒤로 본대가 차례로 진군했다.

놈들이 쏘는 투석기도 소용 없다.

불 붙인 버섯조각들도 의미 없다.

[든든한 방패 뒤에 숨은 포격대가 놈들의 공격에 맞서 가죽을 찢고 나오는 독가시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놈들이 픽픽 쓰러져나갔다.

원거리 공격에 대한 대비책이 형편 없다.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놈들은 이런 전쟁이 익숙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그 시작부터가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으며, 앞으로도 전쟁을 위해 진화할 것이다. 군단이 돌격을 시작했다. 새로운 군단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탐색전을 끝내자마자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분명 이전과 같은 요새 공성전이다. 하지만 놈들과는 달리 우리는 성장한다. 이번 공성전, 분명 전과는 다를 것이다]

맹렬히 달리던 군단이 쫙 갈라지기 시작했다.

두꺼비와 벼룩의 각력을 더한 하나의 생명체.

하지만 그 모습은 어딘가 징그럽게 생겼다.

모든 능력을 각력 하나에 투자한 그들은 크게 부푼 몸을 뒤뚱이며 요새로 다가갔다.

"와."

그리고 사거리가 닿은 순간.

단번에 그 각력을 폭발시켰다.

충격파가 일어나고 땅이 파일 정도의 각력은 스스로의 다리마저 부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날개를 달아도 날수 없을 만큼 기형적인 이 몸에는, 다른 장기는 단 하나도 없이 커다란 주머니만 존재했다.

농축한 강력한 산성용액을 흩뿌릴 수 있는 주머니.

몸과 함께 주머니가 터지며 사방에 용액을 뿌리자 연약한 포유류의 살가죽은 그 강산을 견디지 못하고 타들어갔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놈들의 요새가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기세가 꺾였다. 대기하던 공중전 병력들이 요새 안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끝났네?"

사실상 리매치.

승자는 당연히 새로운 전술 전략을 개발하고 사용한 우리의 차지가 되었다.

아마 다음번 싸움도 이렇게 될 확률이 컸다.

변화무쌍한 전술에 대응하지 못하면 그들은 이길 수 없다.

"상을 줘야겠네."

피식 웃은 나는 휴대폰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 책상에 올려 둔 것을 꺼냈다.

프로틴, 포도당 사탕 등등.

맨날 나무만 퍼먹이던게 미안해서 준비한 물건들이었다.

단지 내 주머니 사정 때문에 40kg을 채우는 택도 없는 짓은 하지 못했지만.

"그러고보니, 다른 플레이어들에겐 무슨 제약이 들어가지? 유닛이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도 분명 제한이 있을 거 아니야."

[당연하다. 애초에 레벨에 따른 제한은 속도를 제한하고 형평성을 맞추려는 것, 각자마다의 조건들이 다 따로 있다]

"..그게 공평한지 어떻게 알아?"

[설령 네가 불공평하다 생각해도 방법이 있느냐]

말문이 막혔다. 하긴 늘 을인 입장은 나였지.

"에이."

나는 그냥 준비한 프로틴과 포도당 사탕 같은 것을 사진으로 찍어 전송했다.

운동 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샀다가 처박은 프로틴들이 친구나 동기들 중 분명 더 있을 것이다.

"진짜 알바해야겠다 야."

나는 슬슬 바닥을 보이는 통장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전 세계가 들썩이고 목숨이 달린 일에 휘말린 주제에 돈이 없어 일을 해야 한다니.

어차피 공부는 물건너 간 것 같으니, 빨리 할만한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이게 무슨 돈이냐?"

그러나 알바를 탐색하던 내 행위는 그날 저녁 강도연의 의미심장한 행동에 제동이 걸렸다.

"상금."

"뭐? 무슨 상금?"

"그냥 그렇게 알고 받아! 그동안 용돈 받은거 갚는거니까!"

녀석은 내게 돈봉투를 던지고 방에 들어가버렸다.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봉투를 열어보았다.

황금빛 종이 열장.

이런 큰 돈을 알바도 안하는 미성년자 고삐리가 어떻게 얻었다는 건지.

"야. 구라까는거 아니까 솔직히 말해. 어디서 난거야 이거."

나는 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내가 진지하다는걸 알아줬으면 해서.

"진짜...아무것도 아니야.."

"문 안 열어?"

겨우겨우 짜내는 대답에 눈물을 참는게 티나니 내 마음도 조급해졌다.

갑자기 안 그러던 애가 이러니까 더더욱.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대답 대신 메신저가 도착했다.

내 얼굴이 굳었다.

다만 여기서 더 채근하지는 않았다.

이제 저녀석도 어느정도 컸다.

단순히 윽박지르고 소리지른다고 입을 열진 않을 것이다.

어머니한테 말하면...그날로 다 끝장이고.

"범죄야? 그것만 말해."

"그런거 아니야. 그냥...친구랑 같이 뭐 하는것 뿐이야."

"설마 코인?"

내 얕은 마음으로는 딱히 떠오르는게 없었다.

답답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답안지도 없고.

"누가 네 몸에 손대는거면 진짜 큰일날거니까 그것만 조심해."

"...응."

결국 답도 아닌 답만 듣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친구랑 뭘 한다라. 나와는 달리 저녀석은 친구가 너무 많아서 감도 잘 안왔다.

당장 내가 얼굴 아는 남여 친구만 열손을 넘어갈텐데.

[운명을 믿느냐]

"넌 또 무슨 헛소리야?"

[너희 가족에게 닥친 운명...어차피 너도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다]

"제발, 넌 또 왜 그러는데 대체?"

나는 짜증을 내며 휴대폰을 침대에 던지듯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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