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4화 (14/254)

14화-진정한 힘(3)

[이 게임의 끝은 나도 모른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은 넓다는 것]

"뭐야 그게...도움 전혀 안되잖아."

[전에도 말했듯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어라. 내가 줄 힌트는 그게 전부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녀석의 말대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면, 정말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와 같이 이계의 생물들을 키우던지, 아니면...그 역도 성립하던지.

"만약 군단이 있는 세상에 플레이어가 있다면 어쩌지? 죽여야하나?"

[...네 선택이다. 다만, 세계가 다르다면 초반에는 별 의미 없을 수도 있다]

"굳이 건들 필요는 없단건가?"

이제서야 대충 룰을 이해할 것 같았다.

결국 하나의 세상이 하나의 서버.

굳이 다른 서버에 있는 사람을 건들 의미는 없다는 뜻이겠지.

결국 내 진정한 경쟁자는 지구에 있든 아니면 다른 세상에 있든, 지금 '군단이 있는' 이 세상에 관여하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

마치 저 쥐새끼들의 플레이어처럼 말이다.

[놈들이 당황한 듯 보인다]

나는 긴장을 유지한채 화면을 노려보았다.

전쟁은 지금 막 시작했을 뿐이다.

물론 시작을 알리는 작은 전투일 뿐이지만 일단 이번을 이겨야 답이 있다.

[당황했지만, 금세 태도를 바꾼 놈들이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저항이 생각 외로 거세다]

미친듯이 석궁을 쏘고, 창을 내질렀다.

나는 눈을 비볐다.

조잡하게 만든 투석기까지 등장했다.

일격에 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끌리기 시작했다.

[군단이 위화감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체계와 소통]

"그래...내 생각에, 저 쥐들은 단순히 유전자에 새겨진 것만이 전부가 아니거든."

나는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군단이 판독한것 보다 저 쥐새끼들의 전투력이 더 강한 이유.

저들은 지금 인간처럼 도구와 소통의 힘을 이용해 유전자의 한계를 벗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물리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는법]

요새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숫자로 밀어 붙인 군단은 마침내 놈들의 저항을 뚫어내고 놈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물어죽이고, 베어죽이고, 깔아죽이고, 쏘아죽였다.

[하지만 놈들이 도망치는걸 전부 붙잡지는 못했다]

"여차하면 우리의 존재가 알려지겠어."

대체 저 쥐들의 종족특성이 뭘까.

일단 우리 같은 군체의식은 아닌 것 같고.

분명 살아서 도망친 패잔병들은 본거지에 돌아가 우리에 대해 발설할 것이다.

그렇다면 상당한 확률로 상대 플레이어가 우릴 의심하지 않을지.

"하지만 확실한게 없네. 일단 저 쥐새끼들이 플레이어와 소통하는게 가능한가? 나는 못하는데."

[그건 모른다]

내가 예상하건데 저정도 수준이면 석기시대 토인들보다 못한 이들에게 장비와 정보를 제공하는 현대인 수준이다.

분명 서로 자유로운 대화는 힘들 것이다.

다만 저 쥐들이 정체 모를 상대에게 가르침과 병기들을 사사 받고 있는 것은 팩트였다.

[놈들을 먹어치우고, 흡수한다. 하지만 군단은 또다시 크나큰 의문에 빠졌다.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가? 기껏 놈들을 소화시키고 그 정보를 얻었지만 결과는 답보였다. 놈들이 보여주던 조직적인 움직임, 분명 군단만 못한 허술한 움직임이었지만 어쨌든 군단은 그것을 '배울 수' 없다는데 집중했다]

"그럴 수밖에. 경험과 지식을 배우는건 단순한 포식으로는 부족하니."

[군단은 드디어 뇌의 필요성을 직감했다. 뇌, 그리고 뇌를 넘는 무언가. 감정, 경험, 지식의 탐식]

군단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그저 뭐든지 먹어치울 뿐이다.

갖지 못한,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무조건 먹어치운다.

이제는 그것이 무형의 지식이든 경험이든간에.

"그럼 그걸 어쩌려고?"

[물론 군단은 스스로 답을 찾고 있다. 까치나 까마귀 같은 고지능의 조류에 대한 정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군. 너는 도움을 주지 않을건가?]

나는 휴대폰에 아른거리는 그 문자를 보고 굳었다.

내가 대체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솔직히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이제 군단의 덩치가 이다지도 커진 지금이라면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인간을...포식하는 것.

"미안하지만 글쎄...동물원에 가서 원숭이라도 찍어야 하나? 난 무고한 사람을 산채로 뜯어먹히게 할 수는 없어."

[사실 나도 시기상조라 생각한다. 이건 조금 더 신경을 쏟아야 하는 문제다. 말 그대로 군단의 자아가 생기려는 것이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신을 찬양하고 숭배한다. 하지만 신을 원망하고 떨구려는 이들도 분명 있다]

단숨에 이해하지 못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사색이 되어 입술을 깨물었다.

"애들이 나를 적대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니 네가 잘 잡아줘야지. 이제 막 생겨가는 군단의 고등한 자아는 어린애 수준도 못되니]

결국 가능성이 있다.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물론 딱히 예상 못할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지금 나는 군단이랑 가치관이 생각이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계속 말하지만, 너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다]

"...좋아."

마음이 무거웠으나 피할 방법은 없었다.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과연 어디로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해서.

무엇보다 저 쥐새끼들에 비해 우리가 당장 밀리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군단은 속으로 고뇌하는 것과는 별개로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분명 상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대응하기 전에 몰아쳐서 끝낼 생각이었다.

전초기지까지 만들고 하위층계에 원정까지 보낼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을 상대 플레이어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그 대응을 보면 플레이어의 정체나 위치를 특정할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역으로, 내가 플레이어를 죽여서 군단의 적들을 없앨 수도 있다는거 아니야."

[그렇다]

무서운 게임이었다.

그것도 굉장히.

"시험 끝나고 놀러 간다더니 안가니?"

"이번엔 그냥 집에서 쉬려고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는 그 이상 묻지는 않으셨다.

물론 어머니 말대로 더 늦기 전 이번 여름에 좀 제대로 놀아 볼 생각이었지만 지금 내 처지가 처지니만큼.

...여자애들도 같이 간다고 했는데.

"저것 좀 봐. 저 여자애 계속 티비에 나오더니, 결국 A등급을 달았나봐."

그때 어머니가 티비를 가리켰다.

내 고개가 자동으로 티비로 돌아갔다.

그곳에 어째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C등급 차지연. 아니 이제는 A등급 차지연."

카메라 세레를 받으며 관리국에서 나오는 여인은 지난번에 한번 봤던 그 여자였다.

최근 세계에서 주목 받는 급성장하는 헌터들 중 하나.

그녀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서도 수십명 뿐인 A급 헌터가 되었다.

"..."

혹시나 싶었다.

만약 그녀가 플레이어의 은총을 받은 유닛이라면.

듣자니 플레이어든, 유닛이든 정해진 규칙이나 상하관계 따위는 없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철저한 이심동체의 관계다.

문득 한숨이 나왔다.

암만 생각해도 나는 너무 무력한 쓰레기였다.

"너도 걱정되지? 이놈의 기집애를 그냥..."

그런데 내 한숨을 오해했는지, 어머니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휴대폰을 들었다.

나는 그제서야 계속 비어 있는 내 옆자리를 확인했다.

*

"게, 게임?"

"응. 진짜 재밌고...벗어날 수 없는 게임."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있을 그 늦은 저녁 시간.

별생각 없이 집 근처 공원에서 친구 오윤아를 만난 강도연은 주춤거렸다.

분명 평범한 친구였을 뿐인 오윤아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어. 그 게임이란 것도 그렇고..."

"대족장이 말하길, 이 문장을 새길 수호자를 구하래. 그들이 내 목숨을 지킬 전사가 될 수 있다고."

그녀의 말을 무시한 친구, 오윤아가 손을 들었다.

그 손 안에,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걸 보고 경악했다.

"너 헌터로 각성했어?!"

"그런게 아니야. 내 사람들이, 나를 위해 준 마법이지!"

오윤아는 주춤거리던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아챘다.

깜짝 놀란 강도연은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 했으나 실패했다.

키 차이는 155cm와 170cm.

하지만 강도연은 놀랍게도 평소 안아들기까지 하던 머리 하나 작은 자신의 친구를 뿌리치지 못했다.

"아, 아파!!"

"조금만 참아! 너도 강해질 수 있으니까!"

살이 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른 그녀가 버둥거려도 놔 주질 않았다.

마침내 손이 풀렸을 때.

강도연은 자신의 아래손목에 선명히 찍힌 낙인을 보고 경악했다.

"자, 봐."

"이게 무슨 짓이야!"

그때 눈 앞에 날아든 주먹만한 무언가.

분노한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것을 쳐냈다.

"...이럴수가."

그리고 경악했다.

자신의 손에 맞은 큼직한 돌이 산산조각이 나버렸기에.

"이제 너는 내 기사야 도연아. 적들에게 맞서고 날 위해 죽어줘. 우리 학교 인기녀가 날 지켜준다니, 듬직한걸."

오윤아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정작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강도연은 창백히 질린 얼굴로 손목만 잡고 있었다.

"이제는 비밀을 알려줄게."

선심 쓴다는 듯 웃은 오윤아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분명...'

그 순간 보인 손등은 자신이 봤었던 문양은 언제 사라졌는지 온데간데 없이 깨끗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