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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3화 (13/254)

13화-진정한 힘(2)

군단은 분명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 잠재력으로 최하층의 세포덩어리에서 대층계를 넘보는 세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 드넓은 동굴의 생태계에는 너무나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고 있었다.

[정찰 결과가 나왔다. 무수한 흔적을 발견했지만 안타깝게도 다음 층에서는 집단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군단은 어떤 판단을 내렸지?"

[사실 군단은 이런 일에 익숙하다. 미지의 정보를 획득하여 분석하는 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조심스럽다]

실제로 군단은 정찰을 강화했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고 있었다.

집단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게 우리였으니까.

애초에 아직 대층계를 전부 흡수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상대로 추정되는 단순한 집단이 아니잖아. 이런 경우는 어떡하지?"

[플레이어의 유닛끼리 맞붙는것 말이냐. 당연히 답은 하나뿐이다]

단순한 글자인데도 어딘가 서늘하다.

나는 대답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싸우라고?"

[경쟁, 승리, 도태.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본디 생태계란 그런 것인데]

우리는 거의 동시에 말했다.

물론 이렇게 알고 있다 한들 마음이 편한건 아니었다.

"우리가 승리하면, 상대 플레이어는..."

[우리가 패배하면, 너도 죽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애초에 내가 이 이상한 어플에 휘말린 순간.

그 순간부터 모든게 꼬인 상태다.

개미 사육하는 것 처럼 즐겼지만 이젠 그렇게 가벼이 넘길 순 없었다.

"...그럼 이겨야지. 뭘 해야 하지?"

[늘 그렇듯, 너는 너의 아이들을 지켜보아라. 그들이 막히는 것 같을때. 그때 방법을 알려주어라]

결국 할 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할 일은 지금까지 그랬듯 지켜보는 것.

그리고...혹시라도 줄 수 있다면 뭐든 도움을 주는 것 뿐이었다.

"일단 대체 뭐 하는 놈들인지는 알아야 하잖아."

[그렇다. 실제로 군단은 폭발시킬 에너지를 축적하면서 정찰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가 11층계라고 부를 곳은 대층계로 분류할만한게 아닌 하나의 작은 지류였다. 이곳엔 놈들의 흔적 뿐이고, 그 흔적은 윗층계로 이어져 있다]

군단은 지금까지 만든 다양한 사이즈의 정찰병들을 알뜰하게 써먹었다.

작은 벌부터, 새, 박쥐의 날개를 단 와이번 같은 도마뱀까지.

11층계를 싹 뒤진 결과 얻은건 흔적뿐.

그렇다면 결론이 나왔다.

놈들은 윗층계에서 아래쪽으로 '원정'을 나온 것이다.

"만약 상대방이 우릴 봤다면...잘 모르지 않을까?"

나는 당연한걸 잊고 있었다.

우리 군단의 종족특성이자 가장 강한 강점.

[맞다. 데이터가 없는건 우리 뿐만이 아니다. 아니 정보전에서 불리한건 오히려 상대다. 보아라. 군단의 정찰병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마침 뭘 발견했다면서 화면이 휙 바뀌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참으며 화면을 살폈다.

벌의 형태를 띈 정찰병이 관측하고 있는 12층계의 모습이 보였다.

"...쥐?"

한무리의 생명체들이 보였다.

단지 그놈들은, 이곳에 사는 수많은 짐승들처럼 내 상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놈들이었다.

복슬복슬한 털.

새까만 눈동자와 킁킁거리는 코.

길게 뻗은 꼬리와 이 동굴을 기준으로는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소형의 체격.

적어도 생긴것만 봐서는 완벽한 쥐의 모습이다.

"아니 근데 무슨 쥐새끼들이..."

단지 놈들이 취하는 행동이나 디테일한 움직임은 오히려 내 상식 속의 쥐와는 완전히 상반된 놈들이었다.

우선 마치 정찰대라는 듯 한데 모여 사방을 사주경계 하고 있는 놈들은, 구부정한 자세로 서서 양손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손에는 각종 도구들이 들려 있었다.

끝에 날카로운 송곳이 달린 창, 바늘이 장전된 석궁, 금속 조각으로 만든 방패나 투구 등등.

[군단은 금속에 대한 정보가 없다. 단지 지룡을 사냥할 정도라면 상당히 강할 것이라 추측할 뿐. 무엇보다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생명체보다 집단적이고 똑똑한 놈들이었다]

"아직은 본거지가 어딘지,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으니."

[놈들이 아군의 정찰병을 발견했다. 박쥐의 날개를 단 소형 도마뱀이다. 군단은 먼저 시비가 걸린김에 놈들의 전투력을 측정하고자 고의로 정찰병을 던져주었다]

그때 충돌이 일어났다.

쥐들 중 몇몇이 달려드는 날도마뱀을 향해 석궁을 겨눴다.

정교히 만들어진 초소형 석궁이다. 나는 저 쥐새끼들이 저걸 직접 만들었을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

찍찍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광석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늘들이 쏘아져, 도마뱀의 날개와 몸을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다.

애초에 하늘을 날아야 하는 정찰병들은 내구도가 약했으니까.

"..쯧."

다만 쓰러진 정찰병의 시체를 보며 자기들끼리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배알이 꼴렸다.

[아아, 군단은 기뻐하고 있다]

"뭐?"

그러나 아직 내가 군단을 이해하기엔 수행이 좀 부족한 것 같았다.

[도구, 도구가 탐이 난다. 저 반짝이고 단단한 뾰족한 물건이 탐이 난다. 저 작달막한 털짐승들이 신묘한 물건을 사용하여 훨씬 큰 상대를 잡았다. 바로 그 힘이 탐이 났다. 군단은 저것이 바로 우리를 한단계 진화시킬 새로운 단서임을 확신했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군단이 도구란 것을 처음 접하는 순간이다]

"...그렇지. 도구라는 개념이 처음 생기는 거지."

[바로 저것이 저 쥐들이 강해진 비결임을 눈치 챈 군단이 목표를 설정했다. 저들을 잡아먹어 저 힘을 가져야 겠다고. 하지만 놈들은 저 조잡한 도구들을 이용해 지룡을 잡았다. 분명 저것이 저들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럼 어쩌려고."

[답은 하나다. 우선 놈들의 일부를 잡아먹고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낸다]

음울한 울음소리가 밑에서 들려왔다.

저 쥐들에겐 애도를.

만약 저 쥐들이 우리 같이 군체 의식을 갖고 있다면 모를까.

저 정찰병들은 이곳에서 사냥당할 것이다.

[놈들이 가진 종족특성이 뭔지는 모른다. 애초에 군단은 그런건 신경 쓰지도 않았다. 설령 지금 이 순간을 들킨다 한들 무엇이 문제느냐. 놈들은 그냥 밑층계의 덩치 큰 신종 도마뱀에게 잡아먹히는 것 뿐이다]

지룡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한 검푸른 갑각의 군단병들이 기어 올라와 놈들을 맞이했다.

쥐의 얼굴인데도 표정이 보인다. 잔뜩 굳어버렸다.

[놈들은 영리하다. 고작 다섯으로는 상대가 안될 것 같으니 도망치려한다. 하지만 군단은 진심이다]

천천히 기어나오는 소형차 수준의 도마뱀 뒤로, 박쥐의 날개를 단 대형 비행종 수십마리가 동시에 솟구쳐 올랐다.

"@%#&!"

경악한 놈들이 석궁을 쏘며 반격한다.

하지만 애초에 정찰이 아닌 공중 전투를 상정하고 만든 개체들.

맹금의 날개와 견줄 커다란 날개.

거기에 발톱, 독침 꼬리와 갑각을 두른 이들이 단번에 쇄도하여 놈들을 난도질했다.

[...홀로 다니는 덩치 큰 짐승은 손쉽게 사냥했겠지. 하지만 놈들이, 감히 우리를 사냥할 수 있겠느냐. 우리와는 사냥이 아닌 전쟁을 해야 할 것이다]

도륙당한 시체는 전부 수거되어 소화흡수를 맡고 있는 밑층계의 둥지에 배달되었다.

생명체가 아니라 흡수가 불가능한 바늘과, 석궁, 창 같은 도구들도 모두 회수되었다.

[군단은 궁금해하고 있다. 대체 이 도구들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

군단의 탐식이 이제는 단순한 포식을 넘어서고 있었다.

*

[군단은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찰은 계속되고, 13층계에서 놈들을 추가로 발견했다.

돌과 버섯을 이용해 지어 놓은 요새가 보였다.

투박하지만 분명 요새다.

그곳에 적어도 100마리는 넘는 쥐들이 있었다.

"설마 바로 놈들을 모방하려는건가?"

나는 몸을 움찔거리며 중얼거렸다.

군단이 도구를 원한다면, 내가 줘야했다.

상대 플레이어처럼.

[효율과 가능성 모두를 고려하여 최적의 결론을 내렸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분명 더 좋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진화할 미래를 구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군단은 도구에 집착하지 않았다.

목적에 있어서는 한없이 이성적이고 차갑다.

애초에 인간의 감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였으니까.

[놈들의 대응은 건조하고 미적지근하다. 모르고 있는게 확실하다. 상대 플레이어마저 말이다]

그동안 축적시킨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알들이 수백, 수천개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와 같이, 지금까지 짐승들을 사냥해오며 승승장구한 오만한 털복숭이들에게 진정한 전쟁을 알려줄때다. 분명 같은 종류의, 하나의 세력들끼리 벌이는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을 더 잘하는 쪽은 어딜까. 군단은 우리라고 확신했다. 우리만큼 전쟁을 잘 하는 군단은 없다고]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착실히 병사들을 보충한 군단은 압도적인 물량, 군체의식 특유의 칼 같은 지휘와 기술로 단번에 찍어누르는 전술을 쓸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만약 저 쥐들이 숨겨 둔 수단이 없다면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만약 플레이어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무슨 보상이 있지? 아니, 이제 솔직히 말해봐. 저 쥐들의 플레이어...지구에 있나?"

나는 화면을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의문으로 남겼던 것중 하나.

대체 이 게임판의 규모는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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