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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2화 (12/254)

12화-진정한 힘(1)

"목적이 생겼다고?"

[네가 잠든 순간 관측된 영상이다]

실려가는 전철 안에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제 관측된 것이라는 이 영상은, 거대한 도마뱀이 화면을 향해 커다란 불덩이를 뱉는 것으로 끝을 맞이했다.

"그래서?"

[늘 그렇지만, 군단은 기뻐했다. 더 강한 상대다. 즉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상대다]

"...가능성은 있는거지?"

[적은 더 거대하고 강해졌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분명 군단은 이미 한번 지룡 중 하나를 쓰러트렸다.

그리고 그 유산도 착실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수많은 정보를 획득하고 그것들을 조합하는 압도적인 연산능력.

나는 이미 군단이 나보다 똑똑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아라. 군단이 선보이는 가장 강한 병사들이다]

화면에 알을 찢고 나오는 이들이 보였다.

베이스는 도마뱀, 당연하다.

현재까지는 군단의 데이터베이스상 제일 강한 개체들이니까.

그러나 그 외형은 어지간한 도마뱀과는 달랐다.

[최근 획득한 가장 강력한 요소들을 이용한 것이지]

검푸른 갑각이 번득였다.

저 갑각은 지금까지 쓰던 평범한 갑각이 아니었다.

거북을 사냥하고 얻은 거북의 등딱지, 그것에 이번에 소화한 지룡의 비늘을 더했다.

비늘의 형태를 벗어난건 효율 때문이겠지.

전신 플레이트 아머보다는, 부분적으로 단단한 갑주를 두르는게 더 경제적이니까.

"크기도 크잖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계속 쌓여가는 군단의 경험은 이제 어느 정도 덩치 큰 생물도 곧잘 다룰 정도였다.

병사들이 위풍당당하게 통로를 가로질렀다.

이미 이 대층계에 소문이라도 난 것인지, 우리가 점령한 곳으로는 벌레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지룡의 위치는 계속 감시하고 있다. 애초에 놈도 절대 멍청하지 않다. 이변을 눈치쟀다. 코를 킁킁거리며, 공기중에 생긴 변화를 감지하고는 경계를 끌어올렸다]

"도망치나?"

[놈은 오만한 폭군이다]

놈의 불이 닿지 않는 곳에서 관측하는, 지룡의 모습이 보였다.

저런놈이 혼자라서 다행이라 할지.

만약 저런 지룡들이 떼지어 몰려들면 군단도 답이 없어보였다.

[애초에 포식해야 진화할 수 있는 우리는, 병사 하나하나의 힘을 두고보면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합하고 진화한다. 한계를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우리는 군단이다]

군단의 정찰병들이 본격적으로 녀석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공동에서 붙는게 아니다.

이 대층계의 거대한 통로에서 정면으로 맞붙는다.

[높은 확률로 이 싸움의 승자가 이 대층계의 지배자가 된다. 하지만 군단은 확신했다. 이미 이 대층계의 일부는 우리의 일부가 되었으며, 오만한 폭군은 오늘 실각할 것이라고]

하늘을 어지러이 나는 정찰병들에게 시선을 빼앗긴 지룡이 조금씩 이끌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놈은 계속해서 코를 킁킁거리고, 사방을 경계하고 있다.

[헛수고다. 놈이 예민한 감각기관을 갖고 있다는건 이미 3a, 지룡 계열의 유전 정보를 갖고 있는 우리도 알고 있다. 뻥 뚫린 통로에서 매복 따윈 하지 않았다]

"크륵.."

지룡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지금 놈을 향해 병사들이 대놓고 행진하고 있다.

맞서 싸울 것인지, 아니면 패배를 인정하고 도망질 것인지.

[우리는 이미 불에 대한 내성을 일부 얻었다]

놈이 불덩어리를 뿜었다.

그러나 불길에 타죽고 휩쓸리는건 옛 이야기다.

거북의 등딱지를 베이스로 같은 지룡의 비늘과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진 군단병의 갑각.

이제 이정도 불길은 너끈히 견뎌냈다.

"뒷, 뒷걸음치잖아. 도망가는데?? 안 쫒는건가?"

결국 부담감을 느꼈는지 지룡은 천천히 뒷걸음질 치더니 이내 몸을 돌려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다만 군단은 놈을 추격하지는 않았다.

[효율적인 계산이다. 어차피 아직 흡수해야 할 대층계는 넘쳐난다. 놈이 도망쳐봤자, 언젠가는 사냥당할 뿐이다. 라고 판단했다]

비록 잡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승리한 셈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건 모든 방해에서 벗어난 군단의 일반적인 포식과 학살.

이제 이 대층계도 점차 우리로 물들고 있었다.

[군단이 욕심을 내비쳤다. 다음 층계, 다음 세상에는 대체 무엇이 있을까]

위로 향하는 통로는 분명 있었다.

설명으로 듣길 군단은 이 넓은 동굴의 끝을 보고자 하는 열망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했다.

그 기반은 당연히 탐식이었다.

"흠..."

그날 저녁. 나는 휴대폰을 옆에 둔채 컴퓨터를 켜 인터넷을 확인했다.

주로 확인하는건 뉴스였다.

특히 요즘 한창 시끌시끌한 뉴스를 위주로.

솔직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갑자기 등급이 올라가는 헌터들이 많아졌다고 하지. 전문가들도 이유를 모르고 본인들도 그 이유를 모른다며 둘러대고 있고. 참 미스테리한 일이지만 나는 솔직히 끔찍한 생각을 지울수가 없는데."

[...그걸 왜 내게 묻지]

"다양한 종족...그렇다면 다양한 플레이어? 솔직히 말해봐. 그 다양한 종족에 인간도 포함인가?"

아마 남들은 절대 이해 못할 헛된 망상이다.

그만큼 괴이하고 이상한 생각이고.

나도 지금 내 휴대폰에 깔린 어플이 아니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내가 너무 망상하는건가?"

애초에 헌터와 게이트는 10년 넘게 연구해도 아직 제대로 밝혀진게 거의 없는데.

[설령 그렇다 한들, 무엇이 문제지?]

"뭐?"

[네가, 그리고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의무'는,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이 일어나도 변하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딱히 할 말이 없다.

만약 내 예상이 사실이라면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내게 남는건 더더욱 이것 뿐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너무 여유롭게 행동했던 것이다.

[다른 놈들은 모르겠지. 최하층에서 기어올라온 우리라는 존재를. 화면을 봐라]

"이건..."

[상당히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동굴 안에서. 흥미로워...아주 흥미롭다. 흰빛동굴개미 집단 이후 우리 군단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세력'의 흔적으로 보인다]

화면에 비치는건 정찰병들이 발견한 핏자국과 전투의 흔적이었다.

군단은 처음으로 버퍼링에 걸린듯 사고가 느려졌다.

처음 획득하는 흔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우리가 쫒아낸 그 지룡이 사냥당한것,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그 사냥꾼들이 검과 화살 같은 금속 무기를 쓴다는건 내게도 충격이었다.

"...바늘? 송곳?"

설령 그 금속 무기가, 내가 보기에도 익숙한 물건이라면 더더욱.

[위화감을 느꼈느냐]

"백번 양보해서 설령 그런 세력이 있다 한들, 이건 선 넘었지."

이 동굴에서 대체 어떻게 쇠를 캐내고 제련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옷을 만들때 써야 할 바늘이 무기로 쓰인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었다.

"다른 플레이어네."

[그리고 우리의 적이다. 명심해라. 아직까진 군단이 너와 상호작용 할 정도로 발달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언어조차 습득하지 못한 이들이다. 그러니 군단은 늘 그렇듯 적을 잡아먹으려 들 것이다]

"...과연 질까?"

대체 어떻게 지룡을 잡았을까.

바늘을 무기로 쓰며, 이 대층계의 도마뱀들에 비하면 작은 발자국을 가지고, 꼬리를 끌고 다닌 흔적까지 있다.

집단적으로 전술을 사용하며 도구를 사용하고 전쟁을 벌일 줄 아는 이들이란 뜻이었다.

지룡을 잡을 정도면 한방도 있다는 건데.

[다행히 군단은 이미 나름의 경험을 쌓아왔다. 새로운 유형의 적이다. 정보를 모으는것. 그것이 가장 우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상대가 우리 정체를 알 가능성은 적었다.

보니까 밑으로 내려 온 흔적은 보이지도 않았다.

애초에 군단은 탐식이 곧 종족의 목적.

그렇기에 여기까지 파죽지세로 치고올라온 것이지만 다른 놈들이라면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겠지.

*

"야! 너 요즘 너무 휴대폰만 보는거 아니야?! 내 말 또 안들었지!"

"어어?!"

여느때나 다름 없는 시끄러운 교실.

미간을 찌푸린 강도연은 자신의 친구에게 결국 한마디 했다.

화들짝 놀란 그녀의 친구 오윤아는 서둘러 휴대폰을 끄고 움찔거렸다.

"대체 무슨 게임이길래 그래? 아니면 너도 뭐 코인 같은거 해서 계속 보는거야?"

"아, 아니야 그런거. 이젠 안볼게."

오윤아는 친구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폰만 보는 것에 대해 사과했다.

강도연은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그 이상은 뭐라 하지못했다.

"나도 한창 드라마 볼때는 달고 살긴 했었는데..."

"드라마 같은게 아니야."

"그럼 대체 뭔데?"

그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었다.

정작 당사자인 오윤아는 입꼬리를 크게 비틀었다.

"아주...재밌는거.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굉장히 재밌는 게임. 그곳에 또 다른 세상이 있거든."

"...일부로 그러는거지? 진짜 중독자 같은데?"

"당연하지."

잠짓 어두운 목소리로 중얼거린 오윤아는 살짝 당황한 그녀가 어색하게 웃자 이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투?'

그렇게 수업종이 울리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흩어질 때.

강도연은 가디건에 덮여 있던 친구의 손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손등에 새겨진 검은 문양.

사실 작은 타투나 바디페인팅 정도야 요즘 학생들 사이에선 대수로운 것도 아니었으나, 그녀는 묘하게 그 문양을 보고 찝찝함을 느꼈다.

그 이유는 분명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최근에 보았기 때문이었다.

약간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자리에 앉은 그녀는, 이내 책을 펴들고 수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기분을 전환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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