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0화 (10/254)

10화-최하층의 그것들(3)

[10층계, 수많은 잔가지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가지. 우리는 이곳의 주류를 카테고리 3a의 도마뱀들이라고 판단했다]

지도는 계속해서 업데이트 중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 끝을 보지 못했음에도, 우리가 기어 올라왔던 '잔가지'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곳이었다.

주류가 도마뱀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 '도마뱀'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 미안한 놈들이 많았다.

날개 달린 도마뱀, 수영하는 도마뱀, 땅굴 파는 도마뱀, 독가스 뿜는 도마뱀 등등...

그리고 놈들은 단순한 파충류라기에는 너무 강했다.

[네 말이 맞다. 따라서 군단은 이곳의 도마뱀들을 두 종류로 구분했다. 하나는 무난히 잡아먹을 수 있는 약한 놈들. 남은 하나는 지룡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거대한 놈들]

"대책은 있겠지?"

[물론이다]

군단은 데이터를 얻은 즉시 격변한 주변 환경에 맞춰 새로운 형태로 확장의 가닥을 잡았다.

이곳에는 지난번에 잡았던 쌍두 도마뱀처럼 강한 놈들이 많았다.

그런 놈들을 잡기 위해 군단병들은 더더욱 커지고, 억세졌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지난번에 사냥한 푸른비늘쌍두지룡. 놈은 이미 소화가 끝나 우리의 양분이 되었으나, 놈의 비늘은 아직이다]

"어째서지? 이빨도 독침도 안통하는 그 비늘, 굉장히 탐나던데.."

[지금 당장은 놈의 비늘을 소화할 효소가 없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기껏 쓰러트린 강적의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불을 뿜는 기관은 복제하는데 성공했으나, 그 불의 연료가 버섯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축척하는 성분인 것을 인지한 순간 불도 남발할 수는 없었다.

"시간과 다양성이 우리 종족의 약점이구나."

나는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의 약점을 깨달았다.

자체적으로는 폭발적인 성장속도를 갖고 있지만 그렇게 시간을 가속해 단축시킬 수 있는건 결국 우리에게만 해당한다.

다른 이들에게도 평등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어쩔 수는 없었다.

또한 쌓여가는 데이터가 늘어갈수록, 조합식이 보다 고등하고 다양해질수록 한군데가 비면 실현하기 힘든 경우가 늘어갔다.

[군단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먹어치우려 한다. 어렵다...끝없는 탐식은 우리에게 약이지만 독이다]

약이지만 독.

나는 그 말에 동의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은 또 성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봐라. 다음 목표가 된 공동이다. 어둑하고 습하지만 충분한 식생이 자라고 있다. 흐르는 물 속에 수생생물들도 살고 있다]

"대단한건...없어 보이는데?"

[군단도 그렇게 판단했다. 곧바로 군단의 병사들이 움직였다]

군단은 늘 정찰을 확실히 한다.

그렇게 정찰해서, 만약 약하다고 판단되면 그대로 찍어 누르고 곧바로 초토화 시킨다.

만약 상대가 강하다고 해서 물러서는 것도 아니다.

이미 군단은 강하고 거대한 개체를 사냥하는 법을 익혔으니까.

[아직까지 군단에 필적할 세력을 가진 놈들은 정찰에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의 주류인 도마뱀들은 개체당 강함이 큰 대신 작게 무리짓는게 전부였다]

"결국 또 학살이군."

동일한 크기, 동일한 숫자라면 일반적인 생명체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군단의 병사들은 설령 실존하는 짐승들을 베이스로 한다 한들 그 모습이 굉장히 기형적이었다.

생식기관, 소화기관 등 모든 불필요한 기관들은 전부 없애버리고 오직 전투에 쓰일 기관들로만 몸을 구성했다.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워 쓰러지면 그대로 군체로 돌아가 에너지를 보급 받아 다시 새로운 병사로 태어나는 기적의 사이클.

애초에 우리와 싸우는 적은 단수히 병사 뿐만이 아닌 이 거대한 둥지 전체와 싸워야 했다.

[군단이 공동을 점령하고 있다. 살아나갈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언제나와 같은 풍경이다. 나는 거기서 휴대폰을 덮었다.

"시험은 잘 봤냐?"

"...아니, 아마 완전 망했을걸."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이 끝난 시점.

강의실에 앉은 나는 동기의 말에 허탈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책보다 휴대폰을 더 많이 봤는데 잘 봤을리가.

"그래도 한잔 해야지? 진수랑 명호형도 온데."

"...그럴까?"

술? 솔직히 좀 땡기긴 했다.

원래 시험 끝나면 항상 모이는 파티가 있는데, 이번에 모두의 군복무가 끝나며 다 같이 모일 첫 기회가 생겼다.

결국 나는 그자리에서 저녁 약속을 잡았다.

"게임하냐? 그러고보니 너 계속 붙잡고 있더만."

"별거 아냐."

나는 휴대폰을 숨겼다.

어차피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알림이 올 테니까.

결국 오후 강의가 끝난 우리는 채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만나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즐거운가, 알코올을 몸에 집어넣는 그 행위가]

"...왜 갑자기 분위기를 깨고 그래?"

한창 즐겁게 떠들고 술을 마시고 살짝 알딸딸 해질때 쯤.

화장실에 들어 와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본 나는 떠오른 메시지에 피식 웃었다.

슬쩍 화면을 보니 딱히 특이사항은 없었다.

"어차피 알아서 잘 하잖아. 이젠 딱히 넣어줄 것도 없고."

[네가 자신의 욕망을 챙기는걸 뭐라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네게는 우리에게도 아주 중요한 임무가 있다]

"...무슨 헛소리야?"

[살아남는것 말이다. 그것이 플레이어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네 목숨은 네것만이 아니거늘]

메시지를 본 순간. 나는 잠시 굳었다.

그리고 그 직후.

"돌발 게이트다!!"

"당장 대피하세요! 당장!"

"시간이 없습니다!"

화장실 밖에서는 이미 대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할 틈이 없다.

나는 허겁지겁 뛰어나가 사람들과 함께 달렸다.

"아 씨 한창 잘 먹고 있었는데!"

"그래도 큰일 안난게 다행이지 형.."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에서, 나는 저 멀리 보이는 공간의 일렁임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게이트. 세상을 덮친 이계의 재앙.

묘하게 아쉬웠다.

뭐가 튀어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군단에게 먹이와 표본을 제공할 기회인데.

경찰들이 엄중히 쳐둔 방어벽 너머에는 그들이 있었다.

헌터, 상태창이라는 기적에 저 괴물들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부여 받은 이들.

지금이야 덜하지만 헌터들은 어린 내게 우상이고 영웅이었다.

내 원수를 대신해서 갚아 줄 희망들이었으니까.

"어디 회사래?"

"주식회사 개벽. 중소규모네. 간판 헌터는 차지연?"

물론 헌터들을 좋아하는건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내 옆에 있는 동기들도 무슨 연예인 보는 것 마냥 휴대폰으로 지금 급히 달려 온 헌터들의 정보를 찾아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차지연이야?"

"어. C급이라 그리 높은 등급은 아닌데, 애초에 중소기업이라 그런가."

나는 동기의 말을 듣고 현장과 휴대폰을 번갈아 보았다.

저 멀리서 가까스로 보이는, 교차로 한복판에 서 있는 검은 정장의 여자.

그리고 휴대폰 속 프로필에 나와 있는 긴 하늘색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여자.

동일인물이었다.

머리와 눈색은 염색이 아니라 자신의 이능에 의해 변색된 것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었다.

"게이트 열렸다!"

"차지연의 이능은 전격이랬는데!"

이제 10년차, 마물과 게이트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무슨 쇼를 보듯이 환호하며 현장을 관람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괜히 긴장한 마음으로 지켜보길 1분여.

"우아악!"

무언가 공간을 찢고 나타나는 순간 게이트를 향해 손을 겨눈 그녀의 몸에서 뇌전이 번쩍이더니, 뻗은 손을 타고 번쩍이는 섬광이 수차례 번쩍였다.

바로 근처에서 번개를 보는 것 같은 눈부심과 굉음이 계속해서 울렸다.

"와."

"미친..."

상황이 끝났다.

여전히 스파크를 두르고 있던 차지연은 천천히 손을 내렸고, 게이트 앞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들이 주르륵 쏟아지고 있었다.

"C급이라며...?"

"그, 그러게. 저게 무슨 C급이야 최소 A는 될 것 같은데!"

그 압도적인 광경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도 잊을 정도었다.

*

"오늘은 더 없죠?"

"그, 그래 지연아. 수고했어. 잠시만, 나는 일처리좀."

현장을 뒤로한 차지연은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그녀의 매니저는 잠시 차에서 내려 경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덕에 시트에 몸을 기댄 그녀는 차 안에서 혼자가 되었다.

[그분께서 만족하시는군. 자신의 아이들 중, 네 배움이 가장 뛰어나다고 하신다]

"감사합니다."

[번개의 주술은 본디 자신의 몸에도 무리를 가한다. 남발하진 마라]

"명심할게요."

[그렇다면, 피를 바쳐라]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그녀는 무엇에 홀린 것 처럼 혼자서 중얼거렸다.

피를 바치라는 목소리와 함께 작게 한숨 쉰 그녀는 품에서 날카로운 나이프 하나를 꺼냈다.

손잡이에 고풍스런 나무장식이 들어간 이 칼은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하사품'.

"읏..."

그녀는 그 칼로 손바닥을 길게 그었다.

당연히 피가 주륵주륵 흘렀으나 그 피는 칼이 전부 빨아먹듯 흡수해버렸다.

피가 일정량 흡수되자, 손바닥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다.

"다, 다음 하사품은 언제 주시는거죠?"

[네가 더 수련해서 주변의 인간들을 누르고 너희들 사이에서 인정 받는 S급에 도달한다면. 아니면, 다른 플레이어의 유닛들을 처치한다면]

그녀의 뇌리에 되뇌이는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매니저가 다시 차에 탔을 때.

그녀는 이미 지쳐 눈을 감고 잠든 이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