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최하층의 그것들(2)
[군단은 이제 단순한 세포 덩어리가 아니다. 엄연히 하나의 생태계를 먹어치운 세력이다]
영역의 확장이라 하면 이해하기 쉬웠다.
인간도 전쟁에서 승리해 자신의 영역을 늘리고 생산력을 늘리는 경우는 흔했으니까.
[8층계와 9층계를 먹어치운 에너지가 교두보가 되어, 군단은 이 일대를 점령해 나가고 있다]
"아니, 근데 이건 점령이 아니라..."
[이것이 군단의 방식이다]
나는 화면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영역확장이라고 단순히 생각하면 안된다.
지금 9층계에서 이곳 10층계의 복도로 이어져 나오는 입구는, 점차 꿈틀거리는 육벽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저 끈적이고 꿈틀거리는 고깃덩이 전체가 살아있는 군단이고 영역이다.
이정도면 영토를 넓힌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자신의 덩치를 키운다고 이해하는게 맞는 것 같았다.
서서 넓혀가는 육벽은 저녁을 먹을 즈음에는 어느새 목표로 삼았던 공동 근처까지 닿아 있었다.
[소형 정찰병들이 목적지를 보다 자세히 정찰했다. 그리고 군단은 적에게 맞춤인 병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같은 도마뱀인가..."
[그렇다. 현재 군단이 가진 데이터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강한 형태의 개체다]
두터운 검은 갑각을 비늘처럼 두르고, 억센 턱과 긴 팔다리로 무장했다.
아직 군단이 가지고 있는 가장 뛰어난 집단전술은 개미와 벌에 머물러있다.
힘을 중시한 도마뱀을 베이스로 하지만 그 운용은 개미와 흡사했다.
[알에서 성장하는 새로운 병사들은 내일이면 쏟아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목표지를 공격할 것이고, 학살할 것이고, 먹어치울 것이다]
"질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진심이었다.
분명 우리가 관측한 그 거대한 푸른도마뱀.
그놈은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적보다 컸다.
가히 보스몹이라 부를만한 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군단의 전력은 병사들 뿐만이 아닌 둥지, 저장된 양분, 그리고 쌓인 데이터와 사고능력 전부다.
이 집단을 혼자서 막을 수 있을리가 없다.
[군단이 먼저 탐색전을 벌였다]
먼저 움직인건 당연히 군단이었다.
이 너른 공동, 빽빽한 버섯 숲에 놈이 있었다.
이 공동의 지배자. 놈만 제압하면 이곳은 통째로 우리가 먹어치울 수 있다.
[정찰병들이 놈에게 선공을 날렸다. 그들의 무기는 꼬리에 달린 독침이다. 하지만 저 거대한 도마뱀은 불을 뿜기는 커녕, 단 한번의 꼬리질로 정찰병 셋을 쳐죽였다. 하나가 놈의 등에 안착해 독침을 찔렀지만 독침이 부러졌다]
"...센데?"
[분노한 놈이 두개의 머리에서 불을 뿜었다. 우리에게 불에 대한 내성은 없다. 정찰병들이 모두 패배, 활동을 정지한 군단의 일부가 놈의 먹이가 되었다]
결착은 순식간에 나버렸다.
도마뱀 주제에, 승리의 표효를 내지르는 놈을 본 나는 잠시 굳었다.
괴수영화 크리쳐 같이 압도적인 저 쌍두 도마뱀은 우리가 상대해온 작은 생태계의 도마뱀 따위와는 그 격이 달랐다.
잘못 걸렸나?
순간 불안해졌다.
[불안하다면, 선택해라]
[척살권]
내 마음을 읽었는지 화면에 내가 가진 아이템이 떠올랐다.
여기서 이걸 나한테 맡긴다고?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여기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척살권을 쓴다. 그러면 군단은 쉽게 이 위기를 넘기고 놈의 힘을 손에 넣어 더 강해진다.
하지만 만약 저 쌍두룡이 이곳에서는 약한 놈이었다면.
혹시 끝판왕급 존재가 나타난다면.
그럴때는 어쩌지?
"야..뒤로. 뒤로 무르기 이런거 없어?! 정찰 기록이라도 더 보던가!"
나는 휴대폰에 대고 소리쳤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특유의 음산한 음악만 계속 깔리고 있었다.
그렇게 떠드는 거 좋아하던 녀석도 말이 없었다.
머리를 쥐어뜯었다.
왜 하필 이런 중요한 순간에.
[사용하지 않겠다라. 재고하는게 어떠냐, 군단은 네가 원하는대로 움직이는 장기말이 아니다. 네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저 도마뱀과 사생결단을 낼 것이다. 만약 다 늦어서 척살권을 사용한들, 소모된 에너지는 온전히 회수할 수 없다]
"아니, 아껴. 언제가 될지 모르겠는데 존버해."
결단을 내렸다.
나는 척살권을 사용하지 않았다.
"언젠가 더 큰 놈에게 쓰자고. 믿으라며. 그러니까 믿을거야."
[...역시나, 이번에도]
"뭐?"
[군단은 다시 움직인다. 그런데 무엇을 하려는 것이지?]
"도움을 줘야 할 거 같아서!"
정찰을 통해 놈의 전력을 평가힌 군단은 다음 번 공격을 준비했다.
나는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허겁지겁 집을 뛰쳐나왔다.
별로 똑똑하지도 않은 짱구를 열심히 굴렸다.
지금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군단이 선택한 전술은 정공법이었다. 놈의 비늘은 독침도, 턱도 안통할터. 그러니 수많은 병사를 보내 힘으로 짓누른다. 그것이 개미에게서 배운 전술이었다]
"그건 너무 무식해. 이긴다한들 어마어마하게 죽어나갈거야."
[그럼 대체 어떤 전술을 써야 한단 말이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지만 지금 내가 줄 수 있는건 강력하고 독특한 특성이나 유전자는 아니었다.
다양한 생물들의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전투 방법.
실제로 군단은 넣어준 표본이든 동굴에서 사냥한 놈들이든 잡아먹은 생물체의 장점은 그대로 모방하고 응용하여 써먹었다.
그러니 내가 그것들을 알려주면 분명 군단은 그중에서 답을 찾아낼 것이다.
*
[군단은 새롭게 들어오는 정보를 빠르게 해석, 정확히 분석했다. 새로 들어 온 표본은 폭탄먼지벌레, 지네, 사마귀, 장수풍뎅이, 고양이, 딱따구리, 까치, 까마귀...]
군단 전체가 딱 멈춰섰다.
쏟아지는 정보는 모두 처리하기 위해 전체가 버벅일 정도로 많았다.
[군단은 의도를 이해했다. 보다 다양한 전술, 전략]
분명 외적으로는 똑같지만 지금 군단의 병사들은 한단계 진화했다.
받아들인 생물들의 습성과 방식을 모방ㆍ개조하여 새로운 전투법을 확립했다.
[군단은 대전략을 수정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우선 병종을 유기적으로 섞어 목표를 포위하는 일이었다]
군단이 다시 움직였다.
직전과는 그 기세가 조금 달랐다.
길을 막는 토종 생명체들은 그대로 짓밟고 도망치는건 굳이 쫒지 않았다.
[놈의 시선을 빼앗고, 비늘의 틈을 노린다. 연약한 급소를 집요히 물고 늘어진다]
단순한 지식의 습득은 자신에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은혜를 받아서 스스로 가공하고 조합하여 발달시키면 된다.
"크륵.."
이변을 눈치 챈 쌍두도마뱀이 당황했다.
놈은 지금까지 이렇게 집단적으로 린치를 받은 적이 없었다.
[군단이 전쟁을 개시했다. 노리는건 단 하나, 놈의 급소였다]
"크아악!"
분노한 쌍두도마뱀이 불을 뿜었다.
그러나 군단은 타죽을지언정 물러서지 않는다.
한번 작전이 세워지면, 무조건 그 임무를 해낸다.
[포위당한 놈이 발을 쿵쿵 구르고 꼬리를 휘저어 일격에 수십을 죽였다. 그러나 땅에서, 하늘에서 대기하던 이들이 일제히 덤벼드니 곧 몸 전체가 군단에 뒤덮였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틈에, 내지른 독가시가 정확히 놈의 눈 하나를 깊게 찔렀다]
애초에 군단은 눈, 생식기와 배설구 같이 비늘이 덮이지 않은 곳을 집중 공략하며 후벼팠다.
당황한 쌍두도마뱀이 괴성을 지르며 버섯을 무너뜨리더니 몸을 털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놈은 군단의 술수에 걸려들었다. 애초에 이곳은 우리가 쳐둔 함정이었다]
공동 입구에서, 놈은 자신의 몸을 덮치는 끈적한 거미줄에 휘감겼다.
쥐죽은 듯 매복하고 있던 매복조가 계속해서 거미줄과 독한 화학물질을 뿜어냈다.
끔찍한 비명이 공동은 물론 온 통로에 울려퍼졌다.
[함정에 빠진 놈의 몸에서 힘이 빠져간다. 놈은 이제 불을 뿜을 힘도 없다. 군단은 놈의 남은 세 눈에도 자비 없이 독침을 쑤셔박았다. 곧 그 거체의 몸에서 움직임이 멎어갔다]
"...하."
승리. 나는 그걸 보고 비틀거리며 벤치에 주저 앉았다.
이 늦은 시간까지 산을 뛰어다닌 보람이...있는건가 싶었다.
[푸른비늘쌍두지룡: 3a2002]
"지룡..?"
거창한 놈을 잡았다.
놈은 지금, 통째로 육벽 속에 잠기고 있었다.
비늘을 깨부술 수 없으니 통으로 소화시켜 분해하겠다는 것이었다.
[역사에 기록된 순간이다. 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다양한 표본을 넣지 않았더라면, 그덕에 더 많은 데이터를 얻어 전략과 전술의 다각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효율적인 승리는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이제 우리는 보다 큰 세상을 본격적으로 먹어치울 수 있게되었다]
늘 그렇듯, 군단은 멈추지 않았다.
세상을 먹어치운다는 끝없는 탐식을 본능으로 갖고 태어난 이들.
멍하니 휴대폰을 보던 나는 비틀거리며 산을 내려왔다.
"얼굴 왜 그래? 대체 어디 갔다 온거야?"
"...많은 일이 있었어. 힘들다 진짜."
동생이 보고 놀랄 정도인가?
피식 웃은 나는 운동이라고 둘러대고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휴대폰...지금은 잠잠하다.
나는 오늘 오후에 느꼈던 감정을 다시금 떠올렸다.
대체 내가 왜 그리 절박하게 뛰어다닌걸까.
마치 그 순간은 내가 군단과 하나된 것 같았다.
단순히 내 목숨이 걸려서 뭐 그런 와닿지 않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정말 그냥이었다.
이 감정을 애정이라고 봐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헛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