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끝없는 확장(4)
박쥐들은 군단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무리지어 모여 살기만 할 뿐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배설물로 뒤덮인 땅에 대체 뭐가 있는지 관심도 없었다.
몇몇 개체가 이변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냥 무시하고 사냥이나 나갈 뿐이었다.
[어리석고 어리석다. 저런 짐승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느냐. 하지만 우리에게는 호재다]
"나참..."
나는 감탄에 가까운 탄식을 흘렸다.
어느새 뻗어나간 육벽은 7층계의 일부분을 완전히 뒤덮었다.
만 하룻동안 빠르게 분열한 저 고깃덩이들은 둥지가 아니었다.
군단으로서는 생산둥지와 뇌 다음으로 만든 새로운 둥지, 전투를 위해 만든 일종의 전진기지였다.
[군단은 물음을 던졌다. 지금 당장, 여기서 저놈들을 몰살시켜야 하는가? 그리고 그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내렸다. 답은 아니다였다. 우리는 그저 저놈들을 쫒아내기만 해도 충분하다]
"어째서지? 투자한 에너지가 너무 큰데?"
[어차피 시간의 문제일 뿐, 모두 우리의 먹이가 될 것이기 때문에]
군단은 박쥐들과 전쟁을 벌인다.
박쥐들은 높은 확률로 결사항전하기 보다는 그냥 쫒겨나 자리를 떠날 확률이 높았다.
쫒겨나간 박쥐들은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들은 위나 아래로 갈 수밖에 없다.
[아래층으로 오는 놈들은 우리의 밥이 될 것이고, 윗층계로 쏟아지는 수백마리 박쥐떼는 균형에 균열을 낼 것이다]
"그 균열, 혼돈에서 우리는 어부지리를 취하겠다고."
[그렇다. 기존 생태계에 급격한 혼돈이 찾아와 붕괴하면 우리는 그걸 통째로 먹어치운다]
영악하고 간사하다.
하지만 분명 효과적인 전술일 것이다.
박쥐들이 먹히든 먹든 어차피 사냥감들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 뿐이다.
그 모든 사냥감, 군단은 그것을 통째로 먹어치울 생각이었다.
"아니 근데, 저렇게 고깃덩이로 벽을 덮어서 어쩌려는거지?"
[요새를 만들었으니, 이제 원거리에서 선공을 가해야지]
육벽이 꿈틀거렸다.
대체 뭘로 선공을 하겠다는건지?
박쥐 몇이 흥미를 가지는 듯 시선을 두었지만 지능은 그리 높지 않은지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뭐야?"
"끼이이익!"
"끼익! 끽!"
박쥐들이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날개를 피고 미친듯이 발버둥쳤다.
그 와중에 적어도 수십은 되어 보이는 박쥐들이 땅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대체 뭘 어떻게 한거지?
[군단은 흰빛동굴개미의 전략을 모방했다. 놈들은 산을 입으로 쏘아냈지만, 우리는 더 강력한 산성독을 보다 발전된 형태로 쏘아보낸 것이다. 육벽에서 쏘아지는 독침들이 적들의 몸에 틀어박혔다. 그냥 독침이 아니다. 속이 빈 뼈와 같은 성분으로 된 독침이다]
"미친."
내 상상 이상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잘 먹혀들었다.
박쥐들은 그 가죽이 얇다.
게다가 피막에 싸인 날개는 더 약하다.
쏘아내는 독침에 굉장히 취약하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수백마리가 뭉쳐 있다면 효과는 극대화된다.
[군단의 노림수가 먹혀들었다. 박쥐들은 위협을 느끼고 제대로 맞서기 보다는 혼란에 빠져 도망가기를 택했다. 우리의 승리다]
텅 비어버린 7층계는 이제 우리 차지가 되었다.
둥지는 계속해서 성장하며 바닥에 떨어져 부들거리는 박쥐들의 숨통을 끊고 그들의 몸을 피 한방울 털 한가닥까지 양분으로 삼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아마 더 난리가 난건 이 윗층, 8층계일 것이다.
수백에 달하는 박쥐들이 흥분한채 일거에 몰려갔을테니까.
"파죽지세네 파죽지세."
[그렇게 보이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다]
시험을 보고 나오고 좀 가볍게 중얼거렸는데, 놈이 바로 반박했다. 사람 무안하게.
"뭐가 아닌데?"
[군단이 최상의 효율을 발휘할 전술을 찾아내어 그것이 효과를 보았을 뿐, 우리는 아직 압도적인 힘을 가지지 못했다]
"..."
철저하다 해야 할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는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계정의 레벨이 올라 2가 되었다. 이제 제공 가능 표본은 20가지, 급여 가능 먹이는 40kg까지 올라갔다]
"결국 나보고 계속 일하란거네?"
헛웃음이 나왔다.
다만 그것이 나, 플레이어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면 어쩔 수 없었다.
해야만 했다.
"일단 당분간은 나무로 버티자."
[생각한 계획이 있나?]
"...잘 몰라."
참 어려운 문제였다.
구하기 쉽고 저렴하며 고열량의 음식을 어디서 구한다.
동기들과 이야기를 좀 나누던 나는 그대로 집으로 복귀했다.
"내일 둘 다 오후에 일정 없지?"
밤 늦게 퇴근하신 어머니가 나와 동생을 불렀다.
이미 알고있던 우리 둘다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우리 대계에 문제가...]
"그런거 아니야 미친놈아. 그냥 잠깐 갔다 오는거니까."
방으로 돌아 온 나는 선을 넘는 녀석에게 한마디 했다.
"내일, 아버지 보러 간다."
이딴 정체도 모를 해킹범한테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다고.
한숨을 쉰 나는 침대에 걸터 앉았다.
이제 딱 10년이다.
아버지가 우리 눈앞에서 처참히 찢겨 죽은게.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해도 그때 일은 다시 생각하는 것도 힘들었다.
"다른 고민이나 하자고. 뭘 표본으로 넣어줄지 말이야. 내 생각에 그 기회를 함부로 써먹을 순 없겠어."
[좋은 생각이다]
"이제 곤충으로는 좀 부족하지 않냐. 물론 그쪽 동네 괴물들을 보면 여기 동물들은 하나같이 순둥순둥한데."
내 생각은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확장되었다.
문제는 걔들을 어떻게 구하냐는 것.
사실 저 거칠고 끔찍한 외계 동굴을 보면 꼭 넣어주고 싶은 비슷한 놈들이 있는데, 걔들은 감히 내가 접근할 수 없는 놈들이었다.
*
"우리 왔다가서 아버진 기분 좋으시겠네."
"...네."
"이제 가자."
이제 10년째.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평소 성격과는 달리 말 한마디 없이 딱딱하게 굳은 동생이 먼저 자리를 벗어났다.
그 참사가 있었을 때 저녀석은 고작 7살, 나보다 충격이 컸었으니까.
[볼일은 끝났나? 현재 군단은 8층계를 점령하고 있다]
휴대폰 화면에 메시지가 흘렀다.
나는 굳이 앱을 열어보진 않았다.
알아서 잘 하고, 어차피 큰일 있으면 알려준다.
휴대폰을 접고 슬쩍 백미러를 봤다.
멀어지고 있는 납골당 건물이 보였다.
"자주 와야 하는데."
어머니의 목소리가 촉촉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벌써 10년, 익숙해져도 늘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돌아가야겠네."
"그렇게 해요."
저물어가는 석양을 향해 침묵 속에서도 잘 나가던 자동차는 길을 가득 메운 다른 차들에 막혔다.
저 앞에 군인과 경찰들이 바글거렸다.
경찰들은 호루라기를 불며 차들을 우회시키고 있었다.
"모두 주의하십시오! 이 앞에서 곧 게이트가 열립니다!"
"이곳은 통제구간입니다! 돌아가세요!"
몇몇 경찰들은 확성기를 들고 쉴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군인들이 모여든걸 보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게이트가 맞았나보다.
"괜찮아요. 군인들이 이미 준비하고 있잖아요. 아마 헌터들도 있을거에요."
"으..으응."
나는 기어를 움켜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차갑고 계속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게이트를,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그 괴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어디에 있겠냐만 유독 더.
그럴 수밖에. 그놈들은 우리 가족을 한때 파멸로 몰아넣은 지옥의 괴물들이니까.
대응 시스템, 사람들의 대처 등등 모든게 미숙하던 10년 전.
지옥과도 같았던 놈들의 습격으로 어렸던 나를,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가 희생하신 그날 이후로 지금 같이 체계적인 체계를 갖추고 숙련도가 쌓이기 시작되었다.
나는 괜히 입술을 깨물었다.
놈들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원수기도 했다.
물론 나는 아무 힘 없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군대에 갔을 때도 재수가 억세게 좋아서 게이트 때문에 출동해 본 적은 없었다.
"저거, 헌터들인가봐."
그때 어머니가 저 멀리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 멀리, 날아든 헬기를 타고 강하하는 몇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마물들과 싸우는 건 군인들과 저 사람들 처럼 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마물들이 나올거야."
"...얼른 돌아서가자."
입을 다물고 있던 강도연도 한마디 거들며 어머니를 재촉했다.
정작 내 시선은 계속 그곳으로 향해 있었다.
[네가 말한 그 먹이와 표본들이, 저 이계의 괴물들을 말하는 것이냐?]
메시지를 읽은 나는 뜨끔했다.
아무짝에 쓸모 없는 엿 같은 쓰레기들.
차라리 우리 애들을 위한 먹이로나 써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네 말이 맞아. 난, 마물들을 먹이와 표본으로 쓰면 어떨까 고민했어."
방에 돌아와서 속 시원히 털어놓았다.
시체조차 엄중히 관리되는 놈들의 사진을 찍는게 가능할지나 모르겠지만.
만약 그걸 성공한다면 나는 사진이 문제가 아니라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 아닌가.
[지금 당장은 힘들지도 모르지. 하지만 성장, 더 많이 성장한다면 다를지도]
"대체 어떻게?"
[우리의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군단에 자아가 생긴다면 물어보아라. 우리가 너란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동안 받은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는지]
"퍽이나 든든하네."
코웃음이 나왔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 노력을 알아주고 감사해한다는데 싫을리가.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싸우고 먹어치워야한다. 이제 8층계다. 그 다음이 놈들이다. 우리의 정찰을 계속해서 틀어막은 거미들이 사는 곳]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새로운 목표가 갱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