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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5화 (5/254)

5화-끝없는 확장(2)

나는 가까스로 납득했다.

맞다. 저긴 이세계, 즉 외계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게 없지.

애초에 지구의 개미들도 독과 산을 쏘는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염산을 쏘는게 말이 돼?!"

흰개미 찾기를 포기한 나는 산모기에게 뜯긴채 집에 돌아왔다.

흡혈은 이미 우리도 가능하니까 모기, 아니 좆기는 진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놈들이었다.

[명심하는게 좋다. 저 동굴은, 결코 만만히 보아서는 안되는 미궁이니]

"그건 나도 알아."

킹크랩 크기의 대형 거미, 꼬리 여섯개 달린 거대 전갈 등등.

지구 고생대 뺨치는 괴물들이 사는 저곳이 무슨 괴물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범상찮은 곳임은 알고 있었다.

[오늘 일이 종족의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우리 종족이, 최초로 상대 다운 상대를 만난 날로]

"...이길 수 있나?"

[그건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우리 군단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애물이 있다면 부수고 적이 있다면 먹어치운다. 선택지는 그것 뿐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불어나고 불어나고...그럼 나중엔 어쩌지? 세상을 전부 먹어치우면."

[그렇다면 또 다른 세상을 먹어치울 것이다]

글자에 광기가 엿보였다.

나는 딱히 그것에 대해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인터넷으로, 사육용 흰개미를 판매한다는 사이트를 찾아 볼 뿐이었다.

이 게임에서 제일 중요한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내린건 뽑기 운과 플레이어의 재력...아니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

그게 내가 알바를 그만둔 후 생긴 이 피 같은 주말에 열차에 실려 샵에 가는 이유였다.

배달보다 내가 가는게 더 빠른게 이유였다.

[이해가지 않는군. 그냥 찍으면 되는건데. 돈이 아깝다 하지 않았느냐]

"그건 도둑질이야."

[고작 개미 한마리인데도?]

"...솔직히 좀 혹하긴 해."

개미 하나쯤 그냥 슬쩍해도 되지 않을까?

여차하면 죽은지 얼마 안된 시체라도 얻으면 되는데.

하지만 도착즈음 내린 결론은 그냥 수상한짓 하지 말자였다.

돈 몇 천원 아끼자고 괜히 걸려서 추궁당하면?

지금의 나로서는 사진 찍으면 뿅하고 사라지는 현상을 설명할 재주가 없었다.

"전쟁에 대비해서 힘을 비축하는거지."

나는 구입한 흰개미들을 통째로 찍어 둥지로 전송했다.

흰개미들을 그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 단위까지 분해한 군단은 이제 나무를 소화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나는 다시 뒷산을 찾았다.

사실 나무를 훔치는 것도 불법이다.

다른건 모르겠는데 이건 어쩔 수 없었다.

CCTV가 없는 산 속. 슬쩍 바닥을 구르던 통나무 하나를 카메라로 찍었다.

20kg 제한이라 그런지 전부 전송되지는 못하고 일부분만 뚝 끊겼다.

"나무정도면 어때."

[우리는 이번에 획득한 능력을 기존의 능력과 결합하여 그 효율을 극대화시킬 것이다]

둥지 한가운데 떨어진 통나무에 실타래가 뻗치기 시작했다.

전쟁을 앞두고 보급은 무사히 도착했다.

이제 남은건 이렇게 얻은 보급을 바탕으로 전쟁을 벌이는 것 뿐이다.

[영양분을 보급 받은 군단이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휴면하던 둥지도 다시 깨어나, 병사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군단은 지능적이다.

흡수한 여러 유전자가 단순히 신체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획득한 유전자에 각인된 각 종족의 전투 방법 등을 모방하고 결합해, 하나의 전략전술을 만들어냈다.

특히 집단 전술은 벌과 개미의 유전자에서 이미 얻은 후였다.

[군단이 정찰부대를 파견했다. 놈들과 계속해서 국지전을 벌이며 놈들의 모든 것을 끄집어 낼 계획이었다. 날개를 단 병사들이 출격했다. 놈들은 이번에도 타액을 뿜는 병력을 전방에 배치했다]

지구의 개미에 비하면 엄청나게 강한 놈들이다.

하지만 이쪽도 준비를 단단히 했다.

그리고 군단과 군단의 전쟁이라 한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무기가 있었다.

[군단은, 한번 당한 것엔 다시 당하지 않는다]

놈들이 뱉어낸 대공포를 정찰병들은 정확한 움직임으로 피해냈다.

비슷한 규모의 병력끼리 붙으면 우리가 과연 질 수가 있을까.

우리는 하나. 한몸처럼 움직인다.

그 어떤 두려움도, 비효율도 없다.

정찰병들이 급강하하며 억센 턱과 발로 적들을 움켜쥐었다.

그리고선 꼬리를 말아 독침을 찔러넣었다.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이었다.

[군단은 판단을 마쳤다. 이길 수 있다고]

화면을 바꾸니 대기하고 있던 본대가 일제히 출발하고 있었다.

큼직한 머리와 강력한 턱, 단단한 갑각 등.

상대가 바닥에서 굴을 파고 사는 이들임을 알고 그것에 최적화된 모습으로 개조된 병력들이었다.

[하늘의 정찰병들에 집중하고 있던 적들이 우리 본대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는 놈들이 뿜어내는 강력한 산성 공격에도 피해를 감수하고 앞으로만 전진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조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 전쟁에서 우리의 목적은 오직 적의 말살, 적들의 목적은 생존이었으니까.

죽음을 불사하는 공격에 생존을 우선하던 이들이 밀리는건 인간의 역사에서도 증명되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이세계의 개미들은 오직 죽임을 위해 움직이는 군단의 병력을 막지 못했다.

꽤 넓직한 동공 전체가 전쟁터가 되었다.

괜히 찾아 왔던 다른 생명들도 졸지에 휘말려 우리에게 뜯어먹혔다.

[우리는 야전에서 승리했다. 놈들이 허겁지겁 굴의 입구를 몸으로 막기 시작했다]

동공 전체를 두고 벌어진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했다.

그리고 적들은 요새로 후퇴했다.

그러나 이미 다 예상하고 있었다.

우리측의 비밀 병기가 등장했다.

머리 부분에 두꺼운 갑각을 두른, 뱀.

크지 않은 뱀이지만 적어도 놈들의 굴을 뚫어버릴 정도는 된다.

산을 뿜어봐도 두꺼운 갑각으로 밀어버릴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뚫린 굴 안으로 나머지 병력이 차례차례 들어가기 시작했다.

고작 개미 둥지 하나 털면서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되는지.

하지만 사실 전세는 이미 많이 기울었다.

처음부터 힘싸움을 걸어 온 상대는 이미 박살났고, 그렇게 저항이 무의미해진 상대는 방어전도 실패해 이제 학살당하는 일 뿐이었다.

[너는 생각을 넓게 보는게 중요할 것이다]

"...이 자그마한 전쟁이 커졌을 때를 대비해서?"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군단은 절대 여기서 안주하지 않을테니까.

더욱 성장하고, 더 큰 적들과 싸울테니까.

[적들의 여왕을 토막내고 애벌레와 알들을 식량으로 삼는다. 우리는 군단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 일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슬쩍 시계를 봤다.

고작 4시간.

4시간만에 4층계를 지배하던 흰빛동굴개미 군락은 우리에게 함락당했다.

단순히 그게 전부가 아니다.

멸망 당한 상대는 우리에게 유산을 남겨주었다.

그들의 무기, 이제는 우리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저 위층의 존재들을 잡아낼 수 있는 무기로.

"진짜 쉬지를 않는구나?"

[쉬는 그 순간에도 우리의 영양분이 소모되니까]

군단은 멈추지 않는다.

*

"..."

평화롭던 동굴의 너른 동공.

유독 넓은 이곳은 중앙에 자리한 호수를 중심으로 식생이 꽤 발달한 곳이었다.

그것은 곧 영양분이 풍부하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자라난 진균은 어린아이만한 거대한 버섯이 되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 살아가던 두꺼비 하나가, 바닥을 기어가던 무언가를 날름 집어먹었다.

어지간한 소형견 수준인 이 두꺼비는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을 마음껏 즐겼다.

강산성으로 무장한 흰빛동굴개미는 층계의 지배자로 대군체를 이룬 아래층과는 달리 이곳에선 소규모로 근근히 살아가는 최하급 생명체 중 하나였다.

두꺼비가 입을 쩍 벌리더니 하품을 하곤,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공동의 외곽 지역이었다.

멍하니 감각기관을 움직이던 두꺼비는 순간, 자신의 발 밑을 보게 되었다.

[이제 보다 고등한 생명을 잡아먹고 우리 군단의 크기를 키울 시간이다]

무수히 많은 개미, 아니 개미라 부르기 힘든 괴물들이 모여들어 두꺼비의 몸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두꺼비는 펄쩍 뛰며 몸을 털어내었다.

하지만 허공에서 웅웅거리며 날고 있던 또다른 괴물들이 두꺼비에게 달려들었다.

[강산성을 조합한 새로운 독이다. 대상의 신경과 혈관을 다 녹여버리는 강력한 극독]

독침이 달린 꼬리를 박아넣고 주입하는 독은 이제 평범한 벌독이 아니다.

산성에 면역인 두꺼운 가죽도, 직접 찔러넣고 내부에 집어 넣는 산성을 견딜 수 없었다.

이 집요한 공격에 발버둥치던 두꺼비의 거대한 몸이 서서히 쓰러져갔다.

[포식자의 포식자도, 우리의 먹이다]

두꺼비의 시신을 발견한 무언가가 빠르게 허공을 가르고 날아들었다.

피막에 쌓인 두쌍의 날개를 파닥이는 커다란 박쥐였다.

그러나 발톱으로 두꺼비를 움켜쥔 그 순간.

두꺼비의 몸을 뒤덮고 있던 군단은 박쥐에게도 달려들었다.

당황한 박쥐가 날아올랐다.

박쥐의 몸은 털에 쌓여 있지만, 두꺼비의 가죽보다 훨씬 얇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군단의 병사들은 박쥐의 몸을 악착같이 기어다니며 퍼덕이는 날개의 얇은 피막을 마구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날개가 걸레짝이 된 박쥐는 결국 이리저리 비틀거리다 바닥으로 추락했다.

가장 빈약했던 미궁의 최하층에서 기어 올라는 검은 물결이 이 미궁의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뒤집어 엎어버리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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