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4화 (4/254)

4화-끝없는 확장(1)

[동굴실뱀: 1c1601]

[외눈깡총거미: 1d0080]

군단은 윗층계로 올라가고 나서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뜯어 먹고 초토화시켰다.

획득해가는 유전자풀도 늘어났다.

그나마 좀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던 버섯이나 이끼 군락은 여지없이 싹 털렸다.

[네가 더 이상 에너지를 넣어주지 않자, 그동안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하던 군단은 슬슬 에너지의 효율 문제를 걱정하게 되었다]

"미리 할걸 그랬네."

[효율을 가장 우선으로 두면 전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병사들의 숫자는 줄고, 확장은 느려진다]

"시간이 부족한건 아니잖아."

내가 눈치 안보고 마트 같은 곳에서 사진을 마구 찍어 거기 있는걸 먹이로 준다면 모를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상 자기들이 답을 찾아야지.

그나마 다행인건, 이 녀석들은 제대로 된 뇌조직도 없는 주제에 상당히 똑똑하다는 것이었다.

[당연하다. 우리 군체의 크기 그 자체가 우리의 뇌니까]

"왜 니가 우쭐해 하는거지?"

나는 멍하니 침대에 늘어져 있었다.

오늘은 공강이다. 원래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영 집중이 안된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선택한 종족은 뭐가 있는데? 뭐 늑대? 토끼나 이런건가?"

[그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다. 하나 말하자면 지성체도 있다]

"...뭐?"

대수롭지 않게 질문했는데 꽤 충격적인 답이 돌아왔다.

지성체라니, 다 같이 동물 키우기 하는 것 아니었나?

[다양하다 말했었지. 말 그대로다]

"아니 그럼 너무 불공평한데?"

누구는 지금 세포키우기 하는데, 누구는 문명키우기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건,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다만 녀석은 단호했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내가 징징거려도 뭐 바뀌는 것도 없고.

나는 결국 다른 플레이어에 대해선 생각을 깔끔하게 접었다.

[군단이 효율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끊임없이 사고하고 실험한다던가.

현재 직면한 문제에 대해, 그들은 새로운 방침을 정했다.

이게 맞지. 나는 되도록 그들이 자급자족하길 바랬다.

[병사들의 숫자를 조절하면서, 대신 개체당 전투력을 늘리며 최적의 숫자를 찾아낸다. 이미 성장을 마친 몇몇 둥지는 휴면상태에 들어가 에너지를 극단적으로 아끼는 방법도 고안했다]

그들은 새롭게, 스스로 찾아낸 방법들로 무장했다.

물론 정복과 포식은 멈추지 않는다.

이 두번째 층계도, 거의 우리 손안에 떨어졌다.

업데이트 된 지도에도 우리 영역이 늘어나고 있었다.

[세번째 층계, 그곳의 주류는 이제 척추동물들이다. 놈들을 사냥하기 위해 우리도 강력한 병사가 필요했다]

나는 콜라와 과자를 가져와 관람했다.

이정도면 게임이 아니라 다큐라고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문득 어렸을 때 재밌게 했었던 개미 사육이 떠올랐다.

[얻은 데이터 이상의 결과는 만들어낼 수 없지만, 결합하고 조작하는건 가능하다]

가장 무서운점은 일개 짐승에 불과한 상대에 비해 이쪽은 하나의 군단이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가지며 단체로 움직이는 군체는 사냥을 넘어선 '전쟁'을 위한 병사들을 만들어냈다.

거기에 각 역할에 맞는 병종까지 구성되니 아무리 숫자를 줄인다 한들 마치 벌집을 부수는 곰처럼 규격 외의 압도적인 피지컬로 찍어누르지 않는 이상 나는 우리가 딱히 질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철저한 정찰을 통해 움직인다.

다음 층계는 다 고만고만한 애들이 사는 곳이었으니, 차근차근 사이즈를 늘려가는게 최적의 조건이었다.

[다시 한번, 사냥의 시간이 되었다]

짧은 재정비를 마친 후.

군단은 다시 윗층계로 진입했다.

불쌍한 토착 생물들은 엄청난 속도로 먹어치우고 진화하는 그들을 막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사냥당할 뿐이었다.

"하나의 개체에 크기를 몰빵하면 안되는거야?"

과자를 까먹던 나는 문득 든 생각을 중얼거렸다.

지금 우리는 자그마한 크기로 수많은 병사들을 굴리고 있다.

차라리 그 크기를 더욱 키워서 하나의 체급 깡패를 만들면 되는거 아닌가?

[효율]

놈은 단 하나의 단어로 내 입을 막아버렸다.

아주 만능 단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지켜 보고 있는 너는 모르겠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라. 지금 우리의 세계는 이 동굴의 동공 몇개가 전부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

[이들은 인간이 뭔지도 모르는 이들이다. 지금까지 취한 정보도 극히 적다. 어마어마한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지금까지 취한 정보에 고등한 뇌를 가진 종족은 없다. 즉 하드웨어를 굴릴 소프트웨어가 없다는 뜻이다]

"이 동굴을 계속해서 올라가다보면, 언젠가 다른 지성체를 만날 수 있을까?"

지금 열심히 성장하는 애들도 그렇지만 나도 문득 궁금해졌다.

대체 이 동굴의 끝은 어디인가.

이 동굴이 세상의 전부인가?

이 동굴 너머서가, 어쩌면 진짜 세상이 아닐까.

[...바로 그것을, 네가 계속 지켜보며 아이들에게 알려주면 되는것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호기심과 흥미등을]

아직 상상은 잘 안가지만 분명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단세포 덩어리에서 불과 사흘만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빵 사왔다."

"..."

"이번엔 안 뺏..."

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더니 내가 들고 있는 빵 봉지 전부를 홱 낚아채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다시 문을 닫았다.

[양질의 양분...]

"웃기지 마. 이제 간에 기별도 안가잖아."

한숨을 쉬며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하루종일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뭐 목숨이니 영혼이니 게임이니 다 거르고 보는 재미가 있었으니까.

"3층도 별거 없고, 이대로 계속 가면 되겠는데."

약간의 버섯과 이끼가 전부던 최하층에 비해 3층은 그 숫자가 조금 더 많아졌다.

흐르는 물과 동굴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추가로 발견되었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소동물들의 종류도 늘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다 먹어치웠다.

"농...농사의 개념을 가르칠 순 없나? 눈에 띄는걸 그냥 다 먹어버리면 어떡해."

[지금 우리에게 농사는 사치다]

하긴, 내가 뱉어냈지만 별로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 동굴에서 농사는 무슨.

무엇보다 농사를 짓는건, 내가 이용하지 못하는 에너지를 식물을 이용해 열매나 낱알로 치환하여 내가 섭취하는 것이다.

우리 종족은 굳이 농사를 거치지 않아도 이곳에서 생산자인 식물 역할을 하는 잡아먹은 진균의 방법을 그대로 모방하여 곧바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중요한건 그냥 절대적인 에너지량이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량은 상대를 포식하거나 외부에서 넣어주지 않는 이상 늘릴 방법이 없었다.

"어디 가니?"

"어..운동가요."

결국 나는 해 떨어진 지금 다시 집을 나왔다.

방법을 찾아 볼 생각이었다.

자급자족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은 내가 채워주는게 좋을 것 같았다.

[방법을 찾았나?]

"생각을 조금 바꿔봤지. 굳이 인간이 만든것만이 음식이 아니야. 봐, 어떤 동물들은 이 큰 나무를 파먹고 에너지를 얻는다고."

[우리 종족에게 나무를 소화시킬 능력은 없다]

"뭐가 문제야. 그런 생명체를 보내주면 되잖아."

내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 적극적으로 써먹기로 했다.

우리 집은 유독 유난떠는 녀석이 하나 있어 바퀴벌레 하나 못보는 청결지지만, 이 뒷산은 다르지.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미친듯이 찍다보면 뭐든 걸리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지금 우리는 무슨 벌레가 떨어져도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잠깐, 그 방법은 좋지 못하다]

"엉?"

[막무가내로 찍지는 마라]

다만 셔터를 누르기 전에, 태클을 받았다.

[네 계정의 레벨은 아직 1이다. 즉 능력 사용에 제한이 있다]

"그런건 듣지 못했는데."

[말할 필요 없었으니까]

...이 새끼가?

하지만 납득 가는 제약이긴 했다.

만약 내가 엄청난 부잣집 권력자라 도덕이고 법이고 나발이고 다 무시하며 능력을 악용하면 개사기다.

당장 돈을 들여 고기를 창고 단위로 사서 찍어 보내면 어떻게 될지.

"앞으로 그런건 미리 말해. 그럼 지금 뭘 할 수 있지?"

[1레벨에는 총 10개의 표본을 제공할 수 있고, 하루 최대 20kg의 먹이를 제공할 수 있다]

"...왜 네가 자꾸 고효율을 추구했는지 알 것 같아."

꽤나 현실적인 제약이었다.

이러면 왜 음쓰를 극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수분 같은 현지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배제하는게 맞았다.

"좋아. 지금까지 개미, 초파리, 거미, 벌, 풍뎅이...나비에 비둘기..."

[총 3번의 기회가 남았다]

"하."

사진 한번 찍기 힘들다.

나는 플래시를 키고 뒷산 중턱, 쓰러진 나무 곁으로 다가갔다.

동산 수준이라 둘레길을 따라 야간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나는 플래시를 이용해 나무 표면을 자세히 살폈다.

내가 원하는건 흰개미였다. 나무를 주식으로 하는 곤충.

너튜브 보니까 그냥 산에가서 막 잡던데.

"뭐야. 왜?"

[흰개미는 나중에 찾고, 지금은 보는게 좋을 것 같군]

알람이 울렸다.

대수롭지 않게 봤으나, 도저히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목표로 설정한 4층에는, 또 다른 군단이 있었다. 공중을 한번 훑은 기존의 정찰로는 발견하지 못한 이들이지. 이들은 주로 지하와, 땅에서 서식하는 이들이었다]

"개미네?"

설명만 들으면 개미였다.

보여지는 화면에, 땅에서 턱을 딱딱이며 장수말벌을 베이스로 한 우리 정찰병들과 대치하는 놈들이 보였다.

크기는 크지만 머리가슴배로 이루어진 전체적인 형태는 개미와 유사했다.

"...?"

[그들을 만만히 보지 마라. 그들의 군단은 4층계의 지배자들이니]

대치하고 있던 흰색 개미가 턱을 쫙 벌리더니, 갑자기 무슨 액체를 대공포마냥 뿜어내었다.

그 액체가 정찰병에 명중했다.

접촉한 부위가 연기와 함께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며 얼이 빠진 나는 말문이 막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