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이상한 어플(2)
[에너지.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다]
"...그럼 그 에너지를 어떻게 주냐고."
[방금 우리는 동굴에서 살아가는 진균을, 그리고 네가 채집한 지구산 개미의 유전 정보를 손에 넣었다. 그들의 영양분 흡수 방법을 배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하."
나는 무심코 곁에 있던 과자 봉지를 바라봤다.
뜯지도 않은 새것이다. 근데 과연 이걸 먹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개미가 먹을 수 있다면 먹을 수 있는거다.
[그렇다면 사진을 찍어라]
나는 그대로 카메라를 들었다.
명령 받는게 묘하게 기분 나빴지만 어쩔 수 없지.
[네가 찍은 과자가 그들에게 전송되었다]
봉다리를 뜯고 펼쳐놓은 과자가 사진 찍힘과 동시에 휴대폰 속으로 이동했다.
어둑한 동굴에 후두둑 소리와 함께 과자가 쏟아졌다.
나는 세포들의 반응을 살폈다.
처음에는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 뻗어내기 시작했다.
[진균의 방식과, 개미의 방식이 섞인 것이다]
세포들이 하나로 뭉치더니 마치 아주 얇은 실타래 같은 것들이 천갈래 만갈래 뻗어가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뻗어지던 그 실타래들은 과자를 덮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식물의 뿌리가 영양분을 흡수하듯 과자를 소화시키려는 것이다.
더욱더 확대하니, 진균을 물어 죽인 턱을 단 세포들이 과자에 붙어 과자를 갉아대고 있었다.
[아직 우리는 원시적이다. 소화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 보이네."
소화시키는 동안 딱히 할게 없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이거 꽤 재미있었다.
저 작은 녀석들이 꼼지락 거리는 것도, 점차 성장하는 것도.
키우는 맛이 있었다. 어지간한 육성 게임 이상이다.
"흠..."
나는 휴대폰을 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뭐 재밌는건 재밌는거고, 나는 검색창에 스마트폰 해킹을 검색했다.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볼 요량이었다.
다만 그 결과는 깔끔.
혹시 몰라 영어로도 쳐봤는데 비슷한 증상의 사례는 단 하나도 없었다.
메신저를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솔직히 직접 보여주는게 아닌 이상 믿을 것 같지도 않고, 놈이 한 협박도 마음에 걸렸다.
헛소리 같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당장 사진으로 찍은 것들이 사라지는 것도 봤다.
단순 해킹 따위로 치부할 일이 아니란 뜻이었다.
[현명한 선택이다]
"우와악!"
그 순간 화면이 암전, 또다시 흰 글귀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이 미친놈이 이제는 내 컴퓨터까지 넘보다니!
[더불어 굳이 티내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네 휴대폰 기록을 지키는건 차치하고...네 목숨과도 관련된 일이니 더더욱]
그저 글자일 뿐이지만 스산함이 느껴졌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갑은 저쪽이다.
그러고보니 분명 게임이라고 했지.
이 게임이 싱글플레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왜 하필 나지? 다른 뛰어난 사람도 많아. 난 평범한 대학생이야."
[말하지 않았나. 네가 스스로 다운받은 것이라고. 나는 시스템을 구동하고, 그 주인을 찾은 것 뿐이다 강신우]
"..."
말문이 막혔다.
그냥 재수가 없다는데 여기서 뭘 더 따질 수도 없고.
결국 나는 컴퓨터를 끄고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웠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 공부가 손에 잡힐리가 없었다.
"...음?"
그대로 잠들었었다. 그 상황에 잠이 오나 싶었지만 밤샘공부의 타격은 꽤 컸다.
내 귀 옆에서, 휴대폰이 시끄럽게 알람을 울리고 있었다.
"뭐지?"
[습격이다. 어둑한 동굴에 갑자기 떨어진 달콤한 과자. 그 냄새를 맡은 놈들이다]
알람의 근원지는 이 정체불명의 게임이었다.
나는 서둘러 어플에 접속했다.
"적이라며. 어디 있어?"
[확대해라]
놈의 말대로 화면을 확대했다.
침입자들은 매우 작은 생물들이었다.
애초에 이 동굴에 큰 동물들은 안 사는건가?
[오히려 잘 된 것일 수도 있다. 덩치 큰 적들은 지금 우리 수준으로 상대하지 못하니까]
내 의문은 금세 풀렸다.
어쨌든 지금 여기로 기어오는 놈들은 벼룩과 비슷한 수준으로 아주 작은 놈들이었다.
[우리에겐 비축한 에너지가 충만하다. 놈들을 상대할 수 있다]
점차 다가오는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 이쪽에서 대응하기 시작했다.
소화중인 과자에 몰려오는 놈들을 향해 촉수가 뻗어졌다.
[진균의 성장 방식에, 개미의 유전자를 결합했다]
뿌리끝이 종양처럼 부풀더니 무언가 빠르게 형태를 잡아가며 생성되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굉장히 놀랐다.
생성된 것은 크기가 작을지언정 분명 개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촉수와의 연결을 끊은 개미들은 자신들의 식량을 노리는 적들을 향해 몰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수이자 하나이다. 우리의 움직임에 조금의 비효율도 없었다. 심지어 크기도 더 크고 힘도 더 센 우리는 적들을 손쉽게 물어 죽였다. 그리고 죽여버린 적들은 또 다시 우리의 자산이 되었다]
[동굴흡혈벼룩: 1B1557]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우리의 승리로.
거기다 흡수하게 된 적의 능력치가 있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생명의 피도 영양분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대단하네."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수상한건 둘째치고 흥미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오빠 뭐해?"
"아무것도 아니야."
그날 저녁. 학교와 학원에 갔다 온 녀석이 거실에서 바닥에 코를 박고 있는 나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나와 6살 차이나는 동생 강도연, 이제 고등학생이 된 녀석이었다.
"...벌레 있어?"
"잡았으니까 신경 꺼."
녀석이 움찔거렸다.
유독 벌레를 싫어하던 녀석이었다.
어쨌든 잡은건 맞으니까, 나는 손을 저어 녀석을 방으로 들여보냈다.
[초파리와 유령거미. 모두 우리의 자산이 되었다]
내가 집을 뒤져 찾아낸 새로운 표본들.
나는 작은 벌레들인 그것을 찍어 동굴로 전송시켰다.
허공을 날던 초파리를 향해 수백마리가 '점프' 해서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벼룩의 유전자에서 가져 온 단단한 각력을 도입한 것이다.
유령거미는 개미들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잡아먹혔다.
[단 하루만에 우리는 이렇게나 성장했다]
놈의 말대로였다.
오전에 시작해서 지금 저녁 9시.
그저 작은 물웅덩이 수준이던 세포 덩어리들은 어느새 꽤 넓은 지역에 뿌리를 뻗고 버섯의 형태로 자라나며 상당히 많은 병사들을 뽑을 수 있게 되었다.
"더 커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표본]
이젠 나도 이녀석들이 어디까지 커지나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뭐야. 내 빵! 오빠가 먹었어?!"
"...이따 사줄게."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는 어제 사둔 빵부터 찾는다.
좀 억울하지만 변상은 해야지.
다만 그 많던 빵은 내가 먹는게 아니었다.
고스란히 포장지만 뜯겨서, 대체 어디인지 모를 동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한 종족의 번식을 위한 양분이 되면서.
"...엄청 빨리 자라네."
[양분이 충분하다면, 속도를 늘리는 것도 가능하니까]
이른 아침 일어난 나는 휴대폰부터 살폈다.
그리고 경악했다.
고작 8시간만에, 이 녀석들은 먹어치운 빵 이상의 성장을 이룩했다.
[거미집과 진균의 성장을 결합해, 태초의 '둥지'가 만들어졌다]
"엄청...크잖아."
화면을 돌려본 나는 감탄했다.
사람 발자국만한 웅덩이에서 시작한 세포들이 이제는 이 지하 공동의 반절 이상을 자신들의 뿌리와 몸으로 덮었다.
물론 아직은 발에 채이는 수준이지만 이게 고작 하루만의 성장이다.
이틀, 사흘 나흘이 넘어간다면 어떨까.
[양분. 양분이 더 필요하다]
"좋아."
나는 동생이 어젯 밤 사다 놓은 빵을 도로 털어 넣었다.
좋아 죽는 자기 빵이 또 싹 털린걸 알면 길길이 날뛰겠지만, 다시 사주지 뭐.
"지금은 이렇게 빵으로 충당하지.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때, 내가 너희를 위해 내 식비를 다 털어 넣을 순 없을 것 같은데."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러니 네가 잘 유도해야 한다.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사냥 및 탐색 실력, 소화력, 에너지 사용 효율 등등]
또 어려운 소리를 늘여놓는다.
어쨌든 나는 외출 준비를 마치고 가족 중 가장 늦게 집을 나왔다.
오늘은 오후 수업 하나만 들으면 되니까.
"설계하고 유도하라는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일단은 뭘 알아야 하지."
전철에 몸을 실은 나는 학교가 있는 도시로 실려가기 시작했다.
남들 눈엔 혼자 떠드는 미친놈 처럼 보이겠지만 다행히 요즘엔 무선이어폰을 꽂고 통화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맞는 말이다. 2일차인 네게 하나의 기능을 더 열어주겠다]
보상도 안주는 주제에 튜토리얼은 끝나지 않는다.
녀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콘 하나가 더 생겼다.
이건 척 봐도 안다. 지도였다.
[하지만 지도를 밝히기 위해서는, 정찰이 필요하다]
"...그말 할 줄 알고 있었어."
정찰이라. 막막한 이야기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둥지에서 수십마리의 정찰병들이 출발했다.
모두 초파리의 날개를 단 이들이었다.
정찰이 뭐 대수인가 정찰기 풀어놓으면 되는거지.
[우리의 가장 큰 장점, 하나의 뇌를 이용해 수십개의 눈으로 보는 모든 정보는 빠르게 쌓여간다. 지도의 업데이트 속도가 폭발적이다. 어지간한 이들은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정찰병들은 구석구석 흩어져 이 동굴의 모든 곳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알아낸 것은 이곳이 동굴 최하층이라는 것, 그리고 대체 얼마나 깊은 곳인지 가늠하기 힘들다라는 것.
군체의식.이 '하나로 연결된'이 얼마나 사기스런 능력인지 알 것 같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정찰병이라도, 획득한 정보를 곧바로 전체가 알 수 있었다.
"방금 뭐지?"
[포식자다. 지금의 우리는 넘보지 못할]
바로 그 순간.
가장 선두에서 조금씩 층계를 올라가던 정찰병 하나가 무언가에 의해 뚝 끊겼다는 보고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