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휴대폰에서 군단이 자란다-1화 (1/254)

1화-이상한 어플(1)

"뭐야 이거?"

평소와 같이 평범하기 짝이 없던 그날.

나는 늘 하던대로 휴대폰을 뒤져보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생전 처음 보는 어플이 다른 어플들 사이에 멋대로 깔려 있었다.

이름도 없고, 아이콘은 그냥 새까만게 전부였다.

처음엔 무슨 오류인가 했지만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요즘 한창 스마트폰을 이용한 사기나 해킹 범죄가 떠오르고 있었으니까.

설마 내가 그 타깃이 되었단건가?

카메라를 해킹해서 그걸로 날 협박한다거나?!

당황해서 괜히 휴대폰을 손에서 놔버렸다.

곧바로 기억을 뒤져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구실이 될만한게 없었다.

나는 이상한 문자에 온 링크를 누른 적도 없고, 이상한 사이트에 들어가거나 다운 받은 적도 없으니까.

"말도 안돼."

그러나 나는 이어지는 광경에 털썩 주저 앉았다.

내 손에서 떨어져 침대에 톡 내려 앉았던 휴대폰에서 그 정체 불명의 어플이 저절로 실행되었다.

무슨 귀신 들린 것도 아니고 휴대폰이 자기 혼자 움직이는 광경이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지켜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휴대폰의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소용 없다]

그 순간, 딱 나는 숨을 들이켰다.

검은 화면에 떠오른 단 4개 글자만으로 굳어버려 숨도 쉴 수 없었다.

"..."

[수리 센터에 가져가도 소용 없다. 이건 네게도 기회이니, 들어봐라]

조용히 휴대폰을 손수건에 칭칭 감아 가방에 넣으려는데, 또 다시 새로운 글자가 떠올랐다.

마치 내 생각이라도 읽었다는 듯이.

"별 미친..."

[게임을 거부하면 인터넷 사용 내역과 잠금이 걸려 있는 파일 및 캡쳐본등을 지인들에게 뿌리겠다]

"대체 누구시죠?"

이렇게 된 이상 난리법석을 떨어도 소용없다. 자세를 공손히하고, 카메라 렌즈만 가리고 휴대폰을 다시 내려 놓았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만 스르륵 나타나던 휴대폰 액정에, 이번에는 새로운 화면이 나타났다.

"계정..연동?"

[말 하지 않았나? 게임이라고. 애초에 이 어플을 스스로 깐게 너인데 왜 그런 반응이지?]

게임을 하면 흔히 볼 수 있는 메일 계정 연동 화면이었다.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 연동하는 순간 해킹당하거나...아니 애초에 이미 다 털렸으니 의미 없나.

그보다 스스로 깔았다는 대체 무슨 헛소리야.

내가 평소에도 얼마나 조심하면서 썼는데.

[연동해라. 자세한 설명은 그 다음에]

"씨..."

선택지가 없었다.

이 정체불명의 해킹범은 게임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이게 어떻게 게임이란 말인가.

당장 이 미친놈은 도청에 도촬까지 하는지 나와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까딱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것 같은 위기감에다, 이 미친 해킹범이 내게 해코지 할 것 같은 불안함까지 겹쳐 어쩔 수 없이 내 깡통 이메일중 하나를 입력했다.

"안 되는데?"

[이 게임의 참가자는 이메일 따위로 연동하지 않아]

의아해 하는 사이, 예고 없이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전면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터지며 내 사진이 찍혔다.

[네 영혼이 대가다]

사진이 찍히는 순간 직감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헛소리라며 비웃겠지만, 지금 내 몸을 훑고 지나간 이 소름끼치는 한기는 거짓이 아니었다.

심장이 쿵쿵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진짜다.

[게임을 시작하지]

내가 충격을 받든 말든, 화면이 저절로 넘어갔다.

새롭게 나타난 환경은 마치 실사 영화 같이 엄청난 그래픽을 자랑했다.

"동굴."

[보아라. 네 영혼을 대가로, 너는 한 종족의 모든 것을 얻었다]

이곳은 동굴이었다.

군데 군데 희미하게 빛나는 돌들이 벽에 박혀 있어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화면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 '그것'이 있었다.

"이게 대체..."

놈은 이것을 생명이라 불렀다.

그러나 내 눈은 아무리 봐도, 그냥 동굴 바닥에 고여 있는 검은 물로밖에 안보였다.

[아아..참 애매한 상황이군]

"무슨 헛소리지?"

[변변찮은 네 영혼에 걸맞는, 하지만 그 잠재력은 충분한 종족이다. 어떻게 성장하냐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갈 수 있는 그런 종족]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이거 결국 가차 실패라는거 아닌가?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보다 자세한 정보를 보고 싶다면, 한번 터치해 봐라]

이렇게 보니 참 친절한 튜토리얼 가이드였다.

나는 놈의 말대로 화면을 터치했다.

"세포잖아."

[맞다. 하지만 단순한 세포가 아니다]

확대된 화면에서 꿈틀거리는 세포들이 서로서로 뿌리를 뻗어가며 엄청난 속도로 분열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면 지금 육안으로도 그 웅덩이가 늘어가는게 보일 정도였다.

[이해하기 쉽게, 이들의 종족 특성을 보여주겠다. 종족 특성은 각 종족이 가진 고유한 속성이다]

[군체의식] [유전자 조작] [과속성장]

세가지 기능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 키워드를 보고, 이 세포들의 특성을 눈치챘다.

"저x?"

[비슷하나 다르다. 폭발적으로 증식하며 말그대로 무엇이든 될 수 있으나, 그 과정은 돌을 깎아 해변을 만드는 고난이다]

말이라도 쉽게 하던가.

다시 화면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래서 무슨 게임처럼 화려한 ui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화면만 덜렁 보여주면서 어쩌라는거지.

[이제 튜토리얼을 진행하겠다]

심지어 진행은 내가 아니라 지 마음대로였다.

[힘이 부족하다. 한계 없는 폭발적인 증식은 장점도 있으나, 에너지의 고갈이라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은 일개 세포 단위인 그들에게 표본을, 그리고 에너지를 지급해라]

놈은 내게 멋대로 명령을 내렸다.

표본, 그리고 에너지.

에너지는 그렇다 치고 표본은 대체 뭘 뜻하는거지.

[유전적 샘플을 얻을 수 있는 그런 표본. 지금 성장 상태로는, 너무 큰 생명체는 복제할 수 없다]

"무슨 소린지 알겠네."

나는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맡아야 한다는 이 종족이 어떤 놈들인지는 이미 감을 잡았다.

포식하고, 복제하고, 조합하고, 강해진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샘플이 필요했다.

"얘들은 어때. 작잖아."

집 앞으로 나온 나는 찾던걸 발견했다.

작은 개미 한마리가, 담벼락을 타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금 상태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걸로 찍어라]

곧 어플이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카메라가 켜졌다.

나는 얼떨떨한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어 개미를 겨누고 찍었다.

"...사라졌어."

[봐라. 네 아이들이 한줄기 빛을 보았다. 이 순간이 종족의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화면은 다시 그 웅덩이를 비추고 있었다.

내가 찍은 그 개미 하나가, 그곳으로 이동해서는 그 웅덩이에 톡 떨어졌다.

포식, 그리고 해체.

나는 개미가 그 수많은 세포들에 둘러 쌓여 세포단위로 분해당하는걸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거시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너는 이 능력을 가진 이들을, 어떤 종족으로 키울 것이냐]

"갑자기 거창한걸 묻는군."

다시 방으로 돌아 온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당장 중간고사랑 레포트 걱정이나 해야 할 내가 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지.

하지만 녀석에게 듣길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전부 꿈이 아니라면 어쨌든 마냥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듣자니 종족 특성이 가장 강력한 무기 같은데, 그럼 그걸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지."

세포 단위에서 시작하는 대가로 얻은게 저 세개의 특성이었다.

그러니 저것들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목표를 위해 꾸준히 에너지와 표본을 획득해야 한다. 일단은, 전쟁을 준비해라. 침입자다]

"엉?"

뜬금 없는 이벤트가 터졌다.

서둘러 화면을 확대해 보니, 진짜로 침입자가 있었다.

놈들은...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의 포자였다.

[이 동굴에 사는 진균의 한 종류다. 바람을 타고 온 진균의 포자들이 네 아이들과 접촉했다]

진균이라지만, 내가 아는 곰팡이와는 좀 다른 놈들 같았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터치해서 확대하니, 그 치열한 전쟁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진균은 힘과 털이라는 무기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크기도 네 아이들보다 훨씬 크다. 하지만 네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의 무기를 가지게 되었지]

세포들 중 특이한 놈들이 있었다.

마치 개미의 턱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 돌기를 가진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무수히 몰려들어 진균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자만하고 있던 진균은 참혹히 뜯겨나가기 시작했다. 조각조각 분해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렇게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 역시 종족의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화면 한쪽에 아이콘이 생겼다.

아마 놈이 언급한 종족의 역사를 뜻하는 것일게 뻔했다.

[그리고 진균의 유전 정보를 얻게 되었다. 확인해라]

또 하나의 아이콘이 밑에 생겼다.

나는 놈의 말대로 그 아이콘을 클릭했다.

[동굴 야광 버섯: 1A1237]

방금 우리가 싸웠던 생명체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진균이라더니, 그 말대로 은은히 빛나는 버섯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지..?"

[흡수한 진균을 모방하는 것이지]

세포들 중 일부가 또 다시 엄청난 속도로 격렬하게 분열하기 시작했다.

그 모양새가 방금 전 먹어치운 진균과 비슷했다.

무슨 가속을 돌린 것도 아니고 정말로 버섯이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흡수한 야광버섯은 흰색이지만, 지금 내가 보는 버섯은 검다는 것.

[버섯의 번식 방법을 모방해 이곳 이상으로 세력을 더 늘리려는 것이다. 포자를 타고, 더 넓게 퍼지려는 것이다]

이유를 듣고 살짝 놀랐다.

내 생각 이상으로 이 정체 모를 종족은 똑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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