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쇼타임(최종화) >
[이시현이 돌아왔다!]
[인천공항에 입국하는 이시현]
[방부제 드셨어요? 12년의 세월이 무색한 외모!]
[인천공항을 가득 메운 팬들의 모습]
[이시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가 돌아왔다. 공항은 몰려든 팬들로 몸살을 앓았지만, 팬들의 얼굴은 기쁨의 미소와 눈물이 가득했다.
러브유** 1시간 전 [좋아요 10053 싫어요 221]
완전 대박! 저 얼굴이 진짜 40? 스무 살 나 자살각이야?
답글 1835
내사랑** 50분 전 [좋아요 9021 싫어요 462]
컴백 생각하고 계신 아이돌 여러분, 지금 나오면 백프로 망합니다!
답글 780
아재척** 30분 전 [좋아요 7565 싫어요 6308]
아니 무슨 아재 한 명 왔다고 이렇게 난리야? 추억은 추억으로 묻어둬야지!
답글 980
시현Lov** 30분 전 [좋아요 5021 싫어요 135]
공항에서 펑펑 울고, 집에서도 펑펑 울었다. 정말 행복하고, 이대로 죽어도 원 없다.
답글 555
“댓글 작업할 필요 없겠다.”
백유진은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숙이고 있던 허리를 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작업 좀 할까 했는데 웬걸.
수포 카페 회원들이 웬만한 기사는 다 점령하고 있었다.
“애들 반응도 되게 좋아요!”
“하하. 우리 딸도 기사보고 팬카페 가입했다니까요?”
“팀장님, 시현 씨 굿즈도 제작할 거죠?”
당연한 소리. 콘서트에 굿즈가 빠지면 섭섭하지.
“업체 전화해서 오라고 해!”
백유진은 흥겹게 외치고 기콘부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이시현과 관련된 예전 자료부터 입국 기사까지 그 위에 한가득 올라와 있다.
“누가 강 부장님한테 연락해서 어디 계신지 확인해봐. 스케줄 좀 정리하게.”
직원이 서둘러 전화를 해 강현 부장의 위치를 확인해 보고한다.
“시현 씨하고 슬기 콘서트 갔다는대요?”
“뭐어?”
「슬기, 리멤버 콘서트」
작년 말 예능프로그램이 일으킨 복고 열풍에 힘입어 다시 활동을 재개한 3W 슬기.
소극장 앞에 팬들이 가득 찼다. 한때는 학생이었고, 청춘이었지만 이제는 다들 아재 소리 좀 듣는 남자들이 야광봉을 흔들며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 시절처럼 노랑머리, 진청색 바지에 라이더 가죽 재킷을 걸친 슬기가 무대 위에서 희미한 주름이 배인 입꼬리를 올리며 팬들을 바라봤다.
“아, 맞다. 번개콘서트 얘기하고 있었지.”
2000년대 초반에 스타들을 울고 웃게 한 예능프로그램.
정해진 시간 동안 게임도 하고, 홍보도 하면서 거리의 팬들을 당일 콘서트에 초대하는 예능이었다. 그때 3W는 무려 2만 9천 명에 가까운 팬들을 동원해 잠실종합운동장을 뜨겁게 달궜었다.
“그때 오셨던 분들 손!”
다수가 손을 든다.
슬기는 미소를 띠고 그들을 눈에 담았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야.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그때 혜선 언니가 다리를 다쳐서 수술하고 퇴원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여서 저하고 레니하고만 홍보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망했다 싶었는데, 그때 짠하고 시현 오빠가 나타난 거예요.”
이시현을 보기 위해서 동대문에 난리가 났었지.
“우리 그때 거리에서 춤추고 그랬는데. 보신 분 계세요?”
이번에도 팬들은 손을 흔들었다.
“무반주에 정신없이 추고 있었는데, 그때 오빠가 근처 매장 뛰어가서 오디오카세트 사 왔거든요. 하여간 그때도 센스가 장난 아니었다니까.”
3W 2집 타이틀 곡 ‘브로큰’의 비트가 갑자기 짠하고 터졌을 때의 그 감동이란.
슬기는 잠깐 얘기를 멈추었다.
어쩌다 보니 팀이 해체하고, 어쩌다 보니 노래보다는 예능을 나가고, 또 어쩌다 보니 어느새 12년이 흘렀다. 그래서 무대가 늘 그리웠다.
팬들의 모습이, 공연장의 암전이, 무대 바닥의 단단함이, 마이크의 무게가, 엊그제처럼 생생한 그 느낌이.
“후후. 참 멀리도 돌아왔네.”
그럼 이제 다음 무대.
“내가 너무 많이 떠들었죠? 이제 다음 곡 부를게요. 이번 곡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서 레니한테 부탁했거든요. 근데 아시잖아요, 걔 요즘 예능으로 바쁜 거. 예쁜 딸 낳은 덕에 아주 요즘 살맛 났잖아요. 후후. 그리고 혜선 언니는 또 결혼 준비하느라 바쁘고······.”
더구나 남편 될 사람이 곁에서 신부 챙기기는커녕 옛친구 찾으러 해외나 떠도니.
“그래서 뭐 별수 있나. 후배들한테 부탁 좀 했죠. 여러분도 아실 거예요. 제가 아끼는 후배 아이돌 엑······.”
이름을 외치려는데, 카메라 옆에서 인터컴을 쓴 스태프가 두 팔로 X를 만들어 신호를 주고 있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대 앞 프롬프트를 본 슬기의 눈이 대뜸 커졌다.
“이거 진짜야?”
프롬프트에 뜬 이름에 놀라서 다시 물었다.
“정말 오빠······.”
대답은 팬들이 해줬다. 굵은 함성이 터지자 슬기는 뒤를 보기도 전 눈시울이 붉어졌다. 겨우 돌아보니, 그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너무도 그리웠던 그 미소.
**
슬기의 콘서트가 끝나고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에 이시현이 올라왔다.
예고 없이 방문해서 슬기와 함께 3곡을 부르고 갔는데, 옛날 모습 그대로여서 놀랐다는 후기들이 쏟아져 올라왔기 때문이다.
직캠 영상은 불과 반나절 만에 백만뷰를 찍었는데, 국내보다 외국에서의 화력이 엄청났다. 댓글도 온통 외국어 천지였다.
팬들은 이시현을 통해서 과거와 현재를 보고 있었다.
이시현과 함께했던 시간은 그들에게는 가장 행복했고, 가장 순수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삶에 무료함에 지쳐갈 때쯤 이시현이 다시 나타났으니 매일이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지에스에서 우리 수포 카페와 오빠 홈페이지 회원들에게 우선 물량 배분한다고 합니다! 티켓팅 할 수 있는 링크는 일정 확인되면 알려드릴 테니까, 절대 유포하시면 안 됩니다!
공지가 올라왔지만 팬들은 근심에 사로잡혀야 했다.
현재도 수포 카페 회원이 10만 명을 넘는 상황에서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은 턱없이 비좁다.
거기다가 상당수 해외 팬들도 입국해서 관람하겠다는 상황이니, 분명 암표상들도 활개를 칠 것이다.
즉, 표를 구하는 건 예고된 전쟁이나 다름없다.
-얘들아 티켓팅이 뭐야? 이거 어떻게 해야 하냐?
-그거 회장님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공지로 올린다고 했어요. 컴퓨터에 깔 거 대개 많으니까 미리 준비해 둬야 해요.
-어린 팬들 얘기 들어보면 티켓팅 그거 1분이면 마감이라는데.
-뭐어? 1분? 그게 말이 돼?
-너 천사포 더 멘붕하게 하고 싶진 않은데, 1분 아니야. 이번 티켓팅은 1초 컷이야.
-헐.
-아니야 기회는 있어. 일단 티켓팅 서버 백프로 다운될 테니까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돼.
손이 느린 팬들의 답은 한가지다.
수포 카페 회원들에게만 알려주는 링크에서 어떻게든 쟁취해야 한다. 안 그러면 마우스 클릭 한 번 하는 동안 표가 매진됐다는 메시지를 보고 절망하게 될 것이다.
“후후. 우리 천사포들 고생 좀 하겠네.”
한참을 모니터를 들여다본 이우정 부장은 기지개를 쭉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불쑥 문이 열리고 국장이 발을 들이밀었다.
“야, 요즘 최고의 신랑신붓감이 누구라는지 아냐?”
“아 여기가 아직도 국장님 사무실인지 알아요? 왜 자꾸 이렇게 들락거리실까.”
“자식이. 큰 거 하나 터트렸다고 유세는.”
서로 세월이 묻은 만큼 위치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그것은 걸어온 길에 대한 보상일 뿐, 위세를 떨만한 일은 아니다.
둘은 예전처럼 마주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부장 국장 부르며 따라다니는 어린 기자들 챙기기 바쁜 삶이다.
“그래서, 요즘 최고의 신랑신붓감이 누군지 아냐고.”
“누군데요?”
“크크. 지에스 직원들이란다.”
국장이 웃음을 터트린다.
“혼수 품목 1순위가 이시현 콘서트 티켓이라는 거야.”
이시현의 콘서트는 단 2회.
지에스에서 왜 그렇게 정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시현의 입국 사실과 콘서트 공지 외에는 스케줄이며 향후 계획 등이 모두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지에스가 이번에 물량 제대로 쓴다더라고, 무대를 아주 돈으로 바를 기세라던데 말이야.”
“예, 저도 들었어요.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음향 스태프들 지원한다고 하더라고요.”
“···옛날 실력 나올까?”
국장은 회의적인 얼굴이었다.
“옛날 실력 안 나오면 어때요. 그 반만 나와도 지금 가요계에 명함 내밀 사람 누가 있겠어요?”
“하하, 그래그래. 빌보드 차트 1위가 괜히 1위가 아니지.”
“아무튼, 콘서트 당일에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아요.”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겠지.
“야, 그건 그렇고. 니가 좀 인터뷰 한번 따지 그러냐.”
국장이 결국에 이 방을 찾은 목적을 꺼냈다.
“조른다고 될 일 아니에요. 시현 씨가 준비되면, 알아서 연락주겠죠.”
“그러다 딴 데서 채가면?”
“뭐 별수 있나. 그리고 나 필드 빠진 지가 언젠데.”
“이번에 제대로 뛰었잖아? 복귀해라 그냥.”
이우정은 피식 웃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국장이 눈치를 슬며시 본다.
“아 또 왜요?”
“너는 티켓 어떻게 할 거냐? 너도 갈 거지?”
“저야 뭐.”
이우정은 국장의 의도를 눈치채고 말꼬리를 흐렸다.
티켓은 이미 최재환에게 살살거려서 부탁했다. 그래도 나름 오랜 협력관계이기에 최재환이 한 장 챙겨준다고 약속해줬다. 역시 인맥이란.
“야 그러지 말고······.”
“안 돼요.”
“아 쫌. 나도 세 장만, 아니 두 장만, 에이 한 장만!”
**
「서울월드컵경기장, 이시현 콘서트 당일」
-아 진짜, 너무한 거 아녜요? 그래도 한때 한솥밥 먹던 사이잖아요!
“지훈아 안 된다니까. 한류스타건 어쨌건 대통령이 와도 안 돼. 그러게 중고나라 들락거리지 말라고 그랬잖아! 끊어 임마!”
티켓을 구하기 위해 밀려드는 요청 전화에 강 부장은 귀가 빨갛게 익었다.
이례적으로 방송 3사에서 녹화 방송을 한다는 발표까지 했음에도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은 발을 구르고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지에스는 공연장 밖에 대형 화면을 설치해 미처 입장하지 못한 팬들을 배려하기로 했는데, 그 비용도 상당했다.
모르는 이들은 추억팔이 운운하지만 실상 티켓값도 최소한으로 맞췄기에 적자에 가까운 공연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게 이시현이 원한 거였다.
녀석은 입국 후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 슬기의 콘서트에 기습방문을 한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떤 스케줄도 없이 연습에만 매진했다. 덕분에 한지웅 부문장 얼굴이 홀쭉해졌을 정도니까.
“시현아, 가경 작가한테 연락 왔다. 찾아오겠다고.”
현재 일본에 체류 중인 가경 작가는 이제는 세계적인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시현에게 제안했었던 반추는 여전히 표류 중이다.
“그리고··· 소리 말이야.”
강 부장은 말꼬리를 흐렸다. 이시현의 미소는 늘 그랬다. 말문이 막히게 하지.
“오프닝 십 분 전입니다!”
백유진이 목청껏 외치고 이시현에게 다가왔다. 준비를 마친 이시현은 강 부장과 한지웅 부문장에게 둘러싸인 채로 마지막까지 목을 풀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유진 씨.”
“예?”
“우리 사진 한 장 찍어요.”
“정말요?”
정신사나울까 봐 부탁하지 못했는데. 그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백유진은 냉큼 달려갔다. 곁에서 V자를 내밀려는데, 그가 말했다.
“고마워요. 카페 관리하기 힘들었을 텐데.”
놀란 백유진이 눈을 화들짝 떴다.
지금껏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니까. 이시현이 미소 짓는다.
“우리 수포 카페 회장님이 보내주신 팬래터가, 기콘부에 있던 얼룩 묻은 편지봉투와 똑같은 거더라고요.”
“아······.”
그걸 봤구나.
주책없이 또 눈물이 흐른다.
“고마워요.”
이시현은 그녀를 한 번 더 눈에 담고 무대 뒤로 향했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미국, 유럽···
일반인뿐 아니라 각국의 스타들도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지에스 소속 가수들도 총출동해 풍부한 볼거리를 보여줄 공연, 그 주인공을 보기 위해서.
쿵쿵쿵···
전주 시작되자 함성이 터진다.
파파파!
화려한 무대 조명과 폭죽에 두 번째 함성이 터졌다.
그리고 전광판.
[He’s back!]
세 번째 함성이 터졌다. 이어 숫자가 나타났다.
10
9
8···
바뀌는 숫자들, 팬들이 카운트를 연호한다. 그리고 무대의 자욱한 안개. 선글라스를 쓴 이시현이 무대에 등장하자 네 번째 함성이 터졌다.
그가 선글라스를 벗는다. 숫자는 계속 바뀌었다.
4
3
2···
팬들을 충분히 눈에 담은 그가 다시 선글라스를 썼다. 그리고 전광판에 들어온 글자.
[Show time!]
< 쇼타임(최종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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