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기억 (4) >
이시현의 은퇴 소식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지에스엔터테인먼트 앞은 매일 팬들의 울음소리와 원망이 끊이질 않았다.
꽤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
사고로 죽었다더라. 결혼했다더라. 군대에 갔다더라. 납치됐다더라. 자살했다더라.
별의별 추측과 소문이 난무했지만 이시현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 편지 한통이 카페에 올라와서 또다시 난리가 났다.
편지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글자들이 얼룩져 있어 팬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팬들 사이에서 케이시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검찰에 진정서도 내고, 거리에서 시위도 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잊혀갔다.
“임마!”
버럭 소리 지른 최재환의 얼굴은 눈물이 침이 뒤섞여 엉망진창이었다. 번들거리는 입술 사이에서 거친 숨이 쏟아진다.
“빨리도 온다.”
녀석이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바위에서 내려왔다. 이럴 수가, 어쩜 그 모습 그대로일까. 어떻게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요즘 말로 방부제 외모였다.
“너 뭐냐? 임마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이시현을 보고 또 볼 뿐이었다. 지난 12년 동안 못 본 것만큼 다 보려는 최재환의 기세에 이시현이 피식 웃는다.
“많이 늙었네. 우리 형.”
“자식··· 나 관리받아. 이 정도면 젊은 축이야.”
“얼굴 좀 닦아라. 그게 뭐냐.”
그 말을 하더니 이시현은 거침없이 웃통을 훌렁 벗었다. 하얀 셔츠를 움켜쥐더니 제멋대로 최재환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야야 하지 마! 옷 아깝게 뭐하는 거야?”
웃음소리.
“놔, 내가 할게.”
최재환은 팔을 허우적거려 티셔츠를 낚아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코를 킁 하고, 눈물도 닦았다. 짠내 나는 티셔츠야 바닷물 좀 적셔 빨면 되니까.
“지중해는 지중해네, 셔츠에서 바다 냄새만 잔뜩 나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이시현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시현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케이시?”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시현이 샤워를 하는 동안 최재환은 질문 공세를 펼쳤다.
케이시는 그동안 이시현과 연락이 안 된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더 거짓말이란 걸 이제야 알게 됐으니 화가 나고 답답해서 입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였다.
“후······.”
그녀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렸다. 환히 열린 창에서 하얀 커튼이 펄럭이고,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다.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녀가 고개를 다시 돌려 그의 눈을 마주했다.
“대기실에서 사고가 있었어. 시현이 마이클 본과 얘기를 끝내고 나올 때였어.”
폭주한 마이클 본은 이시현에게 달려들었다.
보안요원도 미처 막지 못할 만큼 제대로 미쳤었다.
이시현의 몸이 붕 떠오르고, 머리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챌 새도 없이 두꺼운 손이 하얀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모두가 달려들어 마이클 본을 뜯어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한테 애원해! 내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내 영화에 말이야! ‘나에겐 신이 가엾이 여겨 주신 예술이 있어! 내 카메라는 널 가질 자격이 있다고! 그러니까 너만은··· 너만은 나를 그렇게 보면 안 돼··· 너만은······.’
그때를 다시 떠올린 케이시는 이마를 찌푸리고 말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어.”
“다음?”
최재환의 눈이 꿈틀거린다.
“병원에서 깨어난 시현은··· 시현인데, 시현이 아니었어요.”
대체 그게 무슨.
“그게 무슨 말이야? 수수께끼도 아니고.”
재촉하자 그녀가 힐끔 휴대폰을 살폈다. 그러더니 낯빛이 변해 화장실로 향하는 복도를 바라본다. 거기에 이시현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시현아.”
“형··· 여기가 어디야?”
“어?”
“오디션 보러 가야 하는데··· 여기가 어디야?”
최재환은 당황해서 케이시를 돌아봤다. 그녀는 마치 익숙한 일이라는 듯, 씁쓸히 미소 짓고 말했다.
“2000년 5월 31일의 이시현이야.”
케이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시현은 쓰러졌다.
“시현아!”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최재환은 지친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케이시의 얘기가 다시 떠오른다.
‘병원에서 깼을 때, 시현은 지난 3년을 기억하지 못했어. 무대에서 공연한 영상을 보여줘도, 촬영장 영상을 보여줘도, 우리와 웃고 떠들던 비디오를 보여줘도 시현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어.’
기억상실?
‘우리도, 시현도 당황했어. 시현은 영상 속 자신을 낯선 사람처럼 바라봤다. 심지어 영어도 못 했고. 그래도, 그래도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그 끝은 최재환도 알고 있는 결말이다.
은퇴.
‘시현은 계속 당신을 찾았어. 그래서 한국으로 가려고 했는데··· 시현이 돌아온 거야.’
3년의 기억을 간직한 이시현.
‘병원에서의 기록을 보고, 우리에게 얘기를 들은 시현은 오히려 놀랄 만큼 담담했어.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는 듯이 말이야. 아무튼 우린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이제 괜찮아졌으니까.’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계속 증상이 반복됐어. 어느 날은 기억하고, 어느 날은 기억을 못 하고. 이상한 건 기억을 못 하는 이시현의 시간은 늘 2000년 5월 31일이었어.’
멤버들은 결국 선택을 해야 했다. 세상에 알려야 할지, 감춰야 할지.
‘어느 날 시현이, 그러니까 기억이 돌아온 시현이 나를 잡고 말했어. 그만하자고 말이야. 충분히 행복했다고··· 웃더라고.’
진실을 듣고 있는데, 뭐 하나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
최재환은 얼굴을 쓸어내리고 일어났다. 바닷바람이라도 쐐야 할 것 같았다.
“생각이 좀 정리됐어?”
케이시가 바닷바람에 금발 머리를 흩날리며 물었다.
“여전히 모르겠어.”
“어느 때는 하루걸러, 어느 때는 일주일, 어느 때는 몇 달 만에. 이번에는 반년이었어. 시현의 기억이 돌아온 거. 하··· 그래도 좀 오래 버티는 것 같았는데. 멤버들한테 뭐라고 말해주지? 월드투어만 아니었으면······.”
“돌아오면 시간이 흐른 건 알아?”
“알려줘야지. 오늘이 언제라고, 그러면 시현이 나한테 물어봐······.”
“뭐라고?”
“최재환은 잘 지내냐고.”
케이시는 최재환을 향해 다시 말했다.
“한국으로 그냥 돌아가. 저런 모습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거야. 우리도 그렇고.”
얘기는 끝났다는 듯 케이시는 바다만 바라봤다.
최재환은 발길을 돌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시현의 방이었다. 약에 취해서 자고 있었다. 간호사가 힐끗 쳐다보다가 자리를 비켜준다.
‘색연필······.’
흉기가 될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뾰족한 것도 없고, 거울도 없고, 무거운 것도 없고. 그저 둥근 책상 하나와 서재, 통유리에 가려진 TV 한 대가 전부다.
여기는 감옥 아닌가.
톱스타 이시현이. 이런 데서 지내고 있다니.
눈시울이 붉히던 최재환은 문득 바닥을 보고 멈칫했다. 그곳에 수북이 쌓인 종이가 여러 더미 놓여 있었다.
“이건······.”
곡이었다. 대본이었다. 이 많은 게 다.
최재환은 다시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나하나 살피면서 그는 알 수 있었다. 이시현이 외치고 있는 것을.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치고 있는걸.
“형.”
최재환은 파르르 떨리는 얼굴을 들었다. 이시현이 그를 보고 있었다.
“시현아. 그래 시현아.”
한달음에 다가간 최재환은 눈물을 대충 닦고 말했다.
“오늘 날짜가 말이야. 그러니까······.”
“가자.”
“어?”
“돌아가자. 한국으로.”
이시현의 눈에 서울이 보인다.
“그래··· 가자.”
출국준비는 순조로웠다. 케이시는 끝까지 만류했지만, 이시현의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팬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그 어떤 이유가 아니라 그저 보고 싶다고. 어차피 가야 하는 곳이라고. 그곳에 가야 모든 게 끝날 것 같다고. 이제 그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국에 케이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에는 그녀가 직접 움직였다. 전화 한 통에 모든 게 뚝딱이었다. 출국 날짜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전세기가 늘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그 사이 최재환이 할 일은 하나였다.
이우정에게 전화하는 일이었다.
-한국은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시현 씨를 기억하는 팬들이, 수포 카페가··· 다들 축제 분위기라고요.
울먹이는 목소리.
-근데 시현 씨는 어때요? 몸은 괜찮은 거예요?
“너무 좋아서 탈이네.”
-하아··· 보고 싶다. 빨리 보고 싶다.
“그럼 서울에서 봐요.”
마지막으로 병원 검진을 받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시현은 대본 몇 권과 곡 몇 곡을 챙겼을 뿐이다.
하나는 3W 꺼, 하나는 재인이 꺼, 하나는 지훈이 꺼, 수혁이는 잘하니 필요 없다고, 그리고 하나는 누구 건지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곡 제목이 ‘여배우의 미소’였으니까.
긴 비행시간.
어두워졌다가 밝아지는 비행기 안에서 이시현은 조용하게 대본을 넘겼다. 그 옆모습을 보면서 최재환은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시간을 지금 순간은 느낄 수가 없었다.
“시현아.”
녀석이 고개를 돌린다. 미소를 들고 바라본다.
“이우정 기자랑 통화했는데, 공항에 난리 났단다.”
이시현이 옅게 웃는다.
“자식 웃기는. 놀라지나마.”
**
눈을 뜨니 부스스한 빛이 들어온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기분이다. 잔 기억도 없는데, 아무래도 책을 보다 잠들었던 것 같다.
“얼마나 남았나요?”
스튜어디스에게 한국에 도착하는 시간을 물었다.
“1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그녀가 속삭여 말해줬다. 왜냐하면 바로 옆에 케이시가 자고 있으니까. 담요를 살짝 덮어주고 조금 떨어진 자리를 보니 최재환이 내 쪽을 보고 자고 있다. 꼭 동면하는 곰 같다.
잠도 안 오고 심심해서 다른 책을 펼쳤다.
촤르르.
처음 본 책인데, 첫 장을 본 순간 잠깐 당황스러웠다.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배우의 몸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뭐야 이 작가.
“음··· 일어났어?”
“응.”
최재환이 기지개를 켠다. 케이시도 수면 안대를 벗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이시현! 이시현! 이시현!
게이트 밖에서 팬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지에스엔터테인먼트 직원들과 보안요원들이 밖을 정리하는 동안 잠시 대기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많이 왔을까. 날 기다려줬을까.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래 꽤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까.
그래도 행복했던 순간을 되새기긴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냥 꿈일지도 모르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책을 보고 잠든 건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나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를 바라보던 많은 시선.
팬들, 스태프들, 동료들, 매니저들.
색도 다르고 빛도 다른 그 눈들이 나를 바라봐주었다.
근데 문득 궁금하네.
그들이 본 나는 누구였을까.
나는 이시현이었을까, 아니면 최재환이었을까.
“가자 이시현!”
최재환이 나를 부른다.
그래, 나는 배우 이시현이다.
< 아름다운 기억 (4) > 끝
ⓒ 고고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