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224화 (224/227)

< 아름다운 기억 (2) >

“Four Warriors!”

내리던 이시현이 깜짝 놀랄 만큼 엄청난 환호성이다.

동양인에게 열광하는 소녀들의 모습은 기성세대에게는 낯선 광경이기에 기자들은 이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찍기 위해서 치열하게 셔터를 눌러댔다.

일제히 쏟아지는 플래시 속에서 이시현이 차 안으로 손을 뻗는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클레어가 차에서 내렸다.

“클레어, 이쪽 좀 봐주세요!”

“두 분 잡은 손 좀 약간 들어주시겠어요?”

“시현! 오른쪽, 오른쪽을 좀 봐줘요!”

사방에서 요구가 쏟아지는 가운데, 또다시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오!”

“마이클 본 감독이다!”

차에서 내려 레드카펫을 밟은 작고 뚱뚱한 남자. 그를 보는 이시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 순간 기자들의 손이 빨라진다.

촬칵! 촬칵! 촬칵!

플래시에 물든 이시현 얼굴이 하얗게, 더 하얗게 변해간다. 그리고 유독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을 때, 모두가 놀라서 입을 열지 못했다. 심지어 일부 기자는 카메라를 떨어트리기까지 했다.

이시현이 주먹이라도 내지를지 알았다.

줄곧 마이클 본을 비난해왔던 Four Warriors니까.

그러던 지금··· 그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시현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미성이 도시의 소음마저도 일순 악기 연주로 만들고 있었다.

돌발행위일까? 계획된 퍼포먼스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세등등하게 차에서 내렸던 마이클 본은 멍한 얼굴을 들고 이시현을 바라볼 뿐이었다.

**

“초라했던 마이클 본. 그는 이시현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크크.”

기사를 읽는 내내 클린턴은 흥얼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동안 뻔뻔한 낯짝에 예술을 운운하는 모습을 보느라 속이 뒤집혔었는데, 기사에는 웬 겁먹은 돼지 한 마리가 있으니까.

“이시현이 노래를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을걸?”

“얘는 진짜 이런 거 할 거면 미리 알려주던가.”

케이시가 입이 댓바람 나와서 투덜거렸다. 뭘 알아야 준비를 하지. 이시현은 돌발행동이 잦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슈가 된다.

“이게 그 녀석 매력이지.”

팻시가 탁 뱉은 말에 다들 입을 벌렸다가 다문다.

반박할 말이 없으니까.

“그래서 얘는 왜 안 내려와?”

“무슨 소리야? 새벽에 공연장으로 출발했는데.”

멤버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시각이 오전 9시라는 건, 스타라면 응당 자고 있어야 할 시간 아닌가?

“걔는 리허설에 목숨 걸었어? 무슨 리허설을 공연 며칠 전부터 해?”

파기 공연은 데럴의 2주기를 기념하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기획한 일이었다.

“언제는 안 그랬어?”

“아니 프레디를 봐, 공연 두 시간 전에 입국하고 리허설 따위 걷어차고 사운드 체크만 대충 하고 공연하잖아?”

어쩌겠는가. 이시현은 프레디가 아닌데.

“마빈하고 올리비아는?”

로돌포가 토스트를 한입에 베어 문다. 한가한 아침, 따뜻한 햇볕 아래서 맛있는 커피와 토스트가 프랑스에서 처음 아침을 맞는 이들의 아침 식사다.

“공연장에 갔지. 리허설하는 모습도 담으려고.”

최고의 뮤직비디오 감독과, 최고의 댄서로 변한 올리비아의 소식에 클린턴이 대뜸 일어났다.

“가자. 리허설 하러.”

그를 보는 멤버들의 눈이 가늘어진다.

저런다고 올리비아가 쳐다나 볼까.

“그래 가자.”

하지만 실컷 투덜대도 결국에는 이시현 옆에서 리허설에 매진하는 멤버들이다. 그리고 이제는 뭉그적거릴 수도 없다. 왜냐하면···

“Four Warriors?”

소녀들이 붉게 물든 얼굴을 하고 다가온다.

왜냐하면, 이들은 스타이기 때문이다.

**

「Four Warriors 파리 공연」

동원된 살수차에서 물이 쏟아진다. 달아오른 팬들을 식히고 더 뛰어다닐 수 있도록. 이시현에게 더 열광하게끔.

“여러분, 다 같이 불러요!”

Shining Time

코니아일랜드

괜찮은 하루

마이클 본, 지옥에나 떨어져라!

아름다운 기억

다섯 곡의 타이틀 곡과 스무 곡에 가까운 수록곡.

매번 다음 곡을 소개할 때마다 이시현은 땀방울을 머리에 매달고 웃었다. 그 싱그러운 미소가 무대 화면에 비치고 있으니 팬들의 열광은 당연한 것.

“와 시현이 저 녀석 멋있네.”

박한영은 감탄하고 또 감탄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이시현을 볼 줄이야. 그것도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이시현에게 열광하는 걸 보게 될 줄이야.

“희수야, 시현이 멋있지 않냐?”

“그걸 이제 알았어?”

물에 흠뻑 젖은 정희수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니 질투가 나야 하는데, 박한영은 그럴 새가 없었다. 무대를 봐야 하니까.

“아, 노래를 부르기에 앞서 잠깐 얘기 좀 할까요?”

기계처럼 노래만 부르고 내려가는 가수들과 달리 이시현은 얘기를 많이 했다. 평소에 과묵한 녀석이 팬들 앞에서는 수다꾼이 된다. 콘서트 후기를 봐도 얘기하다 새벽까지 공연이 이어진 적도 있다고 하니까.

“오늘 두 가지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해요.”

무슨 소식일까.

팬들이 발뒤꿈치를 치켜들자, 박한영도 정희수의 허리를 힘껏 잡아 올렸다.

“첫째는, 드디어 로돌포의 비디오플레이어가 고장 났습니다!”

애니메이션 광인 로돌프의 비디오플레이어 소식에 팬들의 웃음이 공연장에 일제히 퍼졌다.

“로돌포. 이제 현실 세계로 돌아와 줘.”

이시현이 윙크와 함께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무대 화면에 비친 그 모습에 또다시 터진 환호성.

“뭐야? 무슨 일 있어요?”

이시현이 뒤를 돌아볼 때마다 터지는 환호성.

그렇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이유를 깨달은 이시현이 마이크에 대고 입을 벙긋거린다.

‘Je t'aime.’

사랑한다는 뜻의 프랑스어.

환호가 가라앉기까지 한참이나 기다린 끝에 이시현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두 번째 소식······.”

말꼬리를 흐리자 로돌포는 드럼을 두두두, 클린턴은 기타 줄을 튕긴다. 그러자 팻시가 소리를 꽥!

“시끄러 그냥 얘기해!”

팬들의 웃음에 이시현이 엄살을 피우다가 마이크를 꽉 잡았다.

“두 번째 소식은, 오늘 아코르 호텔 아레나에 정말 정말 최고의 팬들이 모여 있다는 소식입니다.”

아레나 공연장이라면 바로 이곳 아닌가.

낯간지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남자라니.

“그럼 다음 곡을 부를 건데, 이번에는 게스트 한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이시현이 마이크를 입에서 떼더니 무대 화면을 바라봤다. 팬들의 시선이 따라붙자, 화면이 지지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하이 마이클!”

팬들은 눈을 부릅떴고, 그다음은 파리가 떠나갈 만큼 소리를 질렀다.

팝의 황제.

무대 화면에는 서로가 특별한 사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할 만큼 이시현을 좋아하는 또 다른 스타가 나타났다.

이시현이 많은 조언을 해주고 때로는 주의를 줘서 여러 고비를 넘겼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두 사람은 아주 가까웠다. 황제의 네버랜드에 밴드의 동상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마이클, 바로 시작할까요?”

시작. 그리고 하모니.

이시현의 목소리, 황제의 목소리, 팬들의 목소리가 공연장에 퍼진다. 지금 순간은 굉장한 광경이었고, 모두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될 게 분명했다.

감정에 복받친 이시현은 마이크를 내민 채 눈을 감았다.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빛을 발하고 흩어진다.

**

“누가 수건 좀 더 가져와!”

“팻시 머리가 자꾸 풀리잖아! 꽉 묶을 수 있는 끈 좀 줘봐!”

항상 그렇지만 무대 뒤는 정신이 없다. 앵콜 무대를 준비하는 잠깐의 시간에 우리는 의상을 갈아입고, 스태프들에게 몸을 맡긴다.

메이크업하고 헤어스타일을 고치고, 준비를 마친 멤버들이 악기를 조율하는 동안 나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시현.”

케이시가 곁에 다가와 손부채를 했다.

“소리가 들려.”

“어? 무슨 소리?”

“환호.”

그것은 팬들의 신호, 그리고 약속.

“징그러운 소리 좀 작작해. 준비됐어?”

하여간 팻시의 무자비한 언어 폭행은 이겨낼 재간이 없다니까. 근데 저 목소리를 들으면 불안이 한 방에 날아가 버린다.

“왜 그렇게 봐?”

마냥 웃는 내 모습에 팻시가 코를 찌푸린다.

‘행복해서.’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근데, 그랬다가는 팻시한테 먼지 나게 두드려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니야.”

뿌드득.

소파 가죽이 늘어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박 상무가 곁에 앉았다. 이상한 일이지. 내가 아는 박 상무는 차 대표의 손발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에게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고 요구한 것도 없건만··· 그가 먼저 차 대표의 계획을 내게 얘기해줬다. 뭐 안 그래도 됐었지만.

“상무님.”

“왜.”

“우리 끝나고, 김치찌개에다 소주 한잔할까요?”

“그러자.”

무뚝뚝한 그도 이럴 때는 좋은 미소를 보인다.

“자 그럼 이제 나가볼······.”

일어서던 우린 순간 어금니를 힘껏 깨물었다. 대기실 안의 소란스러움도 사라졌다. 기타가 구르는 소리만이 크게 들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클린턴이 달려간다.

마이클 본.

160센티미터의 단신, 넙데데한 턱과 큰 코, 흐지부지한 갈색 눈에 딱 어울리는 곱슬머리까지. 그가 대기실에 들어왔다.

“이 자식이 여기가 어디라고!”

경호원들이 클린턴을 뜯어말린다.

“죽여버리겠어!”

발버둥을 치는 클린턴 앞에서 마이클 본은 미소를 이죽거리고 말했다.

“5분만 시간을 줬으면 좋겠는데.”

“그래.”

바로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다들 놀라서 웅성거렸다. 굵고 제멋대로 자리 잡은 마이클 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다들 밖에서 기다려줘. 부탁이야.”

“퉤!”

클린턴이 침을 뱉고 나간다. 로돌포와 스태프들도 뒤를 따라 나갔다. 마이클 본의 몸을 수색한 보안 요원까지 나가고서야 단둘이 됐다.

“5분도 안 남았네.”

손목시계를 보여주자, 마이클 본은 웃으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바로 얘기하지. 내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없나?”

“영화?”

“잘 생각해봐, 넌 배우잖아? 좋은 작품에 출연하는 기회를 버리는 게 죽은 데럴에 대한 의리야? 그거야말로 헛소리지.”

마이클 본은 나무토막 같은 다리를 꼰 채로 다시 말했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손에 쥐여주지.”

“훗.”

뭐, 마이클 본이라면 내게 그 상을 줄 자신이 있겠지.

“알잖아. 나를 비난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세상은 나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

“좋아. 사실을 얘기해줄까? 난 네가 필요해.”

“잘됐네. 나도 당신이 필요한데.”

“뭐?”

히죽히죽 웃던 마이클 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나는 상체를 바싹 숙이고 그 얼굴을 자세히 보며 말했다.

“마이클 본 당신은 아주 훌륭한 밑밥이니까.”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데럴에게 한 그 모든 것들, 언제까지고 사람들이 기억하게 할 거야. 잊을 것 같으면 다시 꺼내고, 또 꺼내고··· 당신과 우리는 영원히 이 상태를 유지하는 거야.”

갈색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린다.

“뭐야 그 실망하는 눈빛은? 혹시 당신이 뭐 대단한 존재,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

그 특별하다는 생각, 자신감이 바로 우리가 마이클 본에게 피운 연기다.

“당신은 계속해서 우리의 앞길에 괜찮은 스토리로서 남아있어야 해. 사람들은 말이야, 언젠가는 밴드를 잊게 될 거야. 그렇지만··· 스토리는 남을 거야.”

데럴의 죽음은 기폭제였다. 미국에서 밴드의 인기가 폭발했던 것도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노래만 잘하는 밴드? 퍼포먼스가 특출난 밴드? 그 무엇도 스토리를 이길 순 없는 법이다.

“아 그리고, 당신은 그냥 변태일 뿐이야.”

얘기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대기실 문을 열자 나를 기다리는 멤버들과 스태프들이 보인다.

지금 마이클 본에게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내 등이, 멤버들의 미소가, 스태프들의 싸늘한 시선이 어떻게 비칠까. 뭐 그게 무슨 상관이야.

“가자.”

무대로, 팬들에게로, 내가 있을 곳으로.

“아니야! 너만은··· 너만은 나를 그렇게 보면 안 돼··· 너만은!”

**

-쾅!

귀를 때리는 소리에 최재환은 고개를 들었다. 적막해서 틀어놓은 TV에서 지금 막 주인공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깜짝이야.”

놀란 마음에 서류에 사인을 휘갈기고 일어났다. 마침 노크 소리가 들린다.

“들어와요.”

열린 문으로 진동원이 씨익 웃으며 들어온다. 메이크업이 잘 먹었는지 신수가 훤하다.

“귀국하자마자 온 거야?”

“사장님 보고 싶어서 도쿄에서 한달음에 날아왔죠.”

“자식.”

소파에 마주 앉았다.

“나가요, 오늘 사장님이 쏘는 날이니까.”

“미쳤냐? 한류스타 두고 내가 왜?”

“에이, 잘나가는 ‘정’ 엔터테인먼트 대표님이 너무 쪼잔하시다.”

“자식. 뭐 먹고 싶은데?”

“앗싸!”

진동원이 주먹을 쥐고 일어났다. 뜯어먹을 생각에 환히 웃던 녀석이 갑자기 달력을 보고 멈칫한다.

“아휴, 달이 지나간 지가 언젠데. 아니 업계 사장님께서 이렇게 허술하실까.”

녀석이 달력을 서둘러 한 장 넘겼다.

[2015년 9월 1일」

최재환은 달력의 날짜를 멍하니 바라봤다.

보고 싶지 않은 날짜였다. 12년 전 오늘, 이시현이 은퇴를 선언한 날이니까.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아름다운 기억 (2) > 끝

ⓒ 고고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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