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220화 (220/227)

<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3) >

“자, 이건 돌려 드리죠.”

스카이데일리 사장 정찬성이 테이블을 톡 두드린다. 손끝이 닿는 그곳에는 전 블랙보이 멤버 남수혁과 일반인 여성이 함께 찍힌 사진이 놓여 있었다.

“마 기자가 고생 많았어요. 다른 기자들이 냄새 맡을까 봐 무척 신경 썼다니까, 혹시 몰라 애들 입단속도 시켰습니다. 특급 톱스타 A는 이시현이지만 이시현이 아니니까요.”

말장난 같지만, 정확한 말이기도 하다. 금요일이 되면 특급 톱스타 A는 다른 배우로 바뀐다. 물론 계약이 잘 끝날 경우에.

“근데, 미국 쪽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정찬성 사장의 미소에 성 팀장은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시현 씨가 그쪽이랑 얘기할 때는 항상 상무님을 거쳐요.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번 일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설득해야죠.”

이시현이라는 존재는 이제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다. 그래서 지에스도 나름 장치에 장치를 설치해 놓고 이시현과 미국 사이를 컨트롤 하고 있었다.

“담배 한 대 피우겠습니다.”

“그러세요. 사장님 사무실이니까.”

정찬성 사장이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내물었다. 곁에 있는 국장이 라이터를 잽싸게 내민다.

치익.

“그쪽한테도 좋은 것 아닙니까. 우리가 3년으로 잡아두면, 그쪽도 재계약하기 수월할 테고. 지에스와 이시현의 남은 계약이 1년 이죠? 기껏 키워놓았는데, 이시현이 미국으로 영영 떠나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지. 안 그래 유 국장?”

“그죠, 우리와 3년을 계약한다면 이시현이야 어쩔 수 없이 지에스와 재계약을 해야 하죠. 물론 지에스에서 그동안 잘 케어해준걸 이시현도 알고 있을 테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로 불편한 거 지우고 윈윈하자는 얘기였다.

이번 계약으로 스카이데일리는 앞으로 3년간 이시현의 수익을 지에스와 나눈다. 비율은 블랙보이 때와 같지만, 그 액수는 훨씬 커질 것이다. 그리고 지에스는 이시현과 재계약할 구실이 생긴 거고.

“근데 이시현이 받아들일지는 몰랐네요.”

“시현 씨하고 소리. 예쁜 커플이에요.”

성 팀장의 목소리가 싸늘하다.

이번 스캔들의 목적은 이시현의 수익이지만, 타겟은 오소리였으니까.

스캔들 특성상 여배우가 더 치명적인 만큼 오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시현이 이 계약에 응해야 한다. 그걸 스카이데일리가 파고든 거다.

“안 챙기면 그대로 이시현이한테 데미지죠,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이 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아무리 월드라고 해도 기본 베이스가 한국 아닙니까? 아시아 시장 노리려면 한국 팬들 버릴 수가 없는 거고.”

스카이데일리 유 국장이 뱀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얘길 했다.

이리가도 저리가도 이시현한테는 막다른 길이란 얘기를 길게도 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성 팀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때, 강 팀장이 손을 뻗어 남수혁의 사진을 챙기고 일어났다.

“그럼 수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래요, 그때 한잔하자고요. 이시현도 부르고.”

정찬성 사장이 흡족하게 미소 짓는다. 그 미소를 잠시 보던 강 팀장이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하고 뒤돌았다.

“시현이하고 얼굴 한 번 보신 적 없는 것 같은데, 다음부터는 씨자 붙여주시죠.”

**

“스캔들에, 대본 유출까지. 환장하겠네.”

잘 굴러가던 마차가 바퀴가 빠지고 박살 난 격이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 스카이데일리하고 잘 얘기하고 있으니까, 시현이 스캔들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급히 서울에서 내려온 박 상무가 일단 박태 감독을 진정시켰다.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기획사에서 다 처리했으면, 대한민국에 스캔들 기사 한 건 없었지. 그리고 예전에 소리 스캔들도 터졌었잖아?”

“그때야 저희가 인지를 못 했던 거고, 이번에는 확실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박 상무는 단호했다. 그제야 박태 감독도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화수목금··· 앞으로 나흘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 하려고요?”

“자세히는 말씀드리기 곤란한데, 적당히 주고받기로 했습니다.”

“시현이 정도면 꽤 클 텐데.”

돌아가는 생리를 알기에 박태 감독은 신음하며 그 액수를 가늠했다.

“아무튼 정리할테니까 감독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나야 뭐 촬영만 열심히 하면 되죠. 문제는 소리 때문에 그러지. 지금이야 팬들이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지, 이거 소문 새면 소리 촬영 못 해요. 아시잖아요?”

박 상무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럼 일단 하나는 해결했고······.”

문제는 대본 유출인데.

“작가님들은 좀 어떠세요?”

“패닉이죠.”

대본 다 뜯어고치게 생겼는데 제정신인 게 이상한 거다.

생각만으로도 또 머리가 지끈거려서, 박태 감독은 지친 얼굴을 쓸어내리고 물었다.

“중국 쪽에선 뭐랍니까?”

“다행히 크게 생각은 안 하더라고요. 오히려 대본 유출이야 고쳐서 찍으면 되는 거 아니냐더군요.”

박 상무의 쓴 미소에 박태 감독도 실소를 터트렸다.

그래, 고치라면 고치고 다시 찍으라면 다시 찍을 수 있다. 그걸 생각 안 해보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스태프들 쪼개고 새로 뽑아서 촬영팀 둘, 셋으로 돌리면 어찌어찌 되겠지. 근데 그것도 손발이 딱딱 맞는 조연출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더니만.”

KIS에서 나올 때만 해도 큰 그림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손발을 다 두고 나온 격이었다.

**

-천사포들 기사 봤어? 이거 진짜 우리 오빠야? 아니지?

-스카이데일리 왕짜증. 무슨 생각으로 오빠 입국 사진을 쓴 거야?

-지에스 왜 이렇게 조용해? 이럴 때 빨리 아니라고 나서야지!

-증권가 찌라시에는 오빠하고 블랙보이 둘 중 하나라고 적혀 있대.

-그럼 블랙보이네! 오빠는 연애할 시간도 없었잖아? 한국에 있던 시간이 없었는데 무슨 스캔들이야?

-이럴 때 오빠 끼워서 판매 부수 올리는 거지 뭐!

-안 되겠다. 얘들아 우리 뭉치자!

-그래그래, 뭉치자!

수포 카페가 온통 스캔들 얘기로 도배가 됐다. 후속 기사들도 쏟아지고 있고, 추측성 기사도 제멋대로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촬영은 계속하고 있는데, 소리하고 시현이 왜 이렇게 짠하냐.

강 팀장 목소리가 착잡하다. 최재환은 한숨을 내쉬고 소파로 자리를 옮기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뭘 어떻게 해. 우리가 가진 거 뻔하고, 걔들이 원하는 거 뻔한데. 맞춰주기로 했지.

최재환은 강 팀장의 얘기가 무슨 뜻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이은 한숨 뒤에 다시 물었다.

“회사 분위기는 어때?”

-어수선하지. 다른 곳이면 이래저래 대응하겠지만 스카이데일리는 바라는 게 너무 확실하니까. 뭐, 정리됐으니까.

“알았어. 뭔 일 있으면 또 전화해 줘.”

전화를 끊은 최재환은 휴대폰을 힘없이 내려놓고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후.”

온몸에 기운이 빠져 축 늘어진다.

‘내가 너무 일렀나.’

너무 빨리 이시현의 곁을 떠났던 걸까.

“오빠가 가서 도와줘요.”

최재환은 고개를 들어 권혜선을 바라봤다.

“지금 시현 씨 많이 힘들 거예요. 곁에 있어 줄 사람, 오빠밖에 없잖아요.”

“차 대표님한테 찍히면 나 백수 된다. 그래도 돼?”

“훗, 내가 먹여 살리지 뭐. 아니다, 이참에 오빠 연기 다시 해요. 내가 뒷바라지해줄게.”

“하하.”

최재환은 크게 웃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가. 연기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관두기에는 딸린 식구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수정도 자리를 잡았고, 진동원도 이제야 한발 내밀었고, 또 그동안 준비시킨 연습생들도 간신히 출격할 준비를 끝냈으니 말이다.

“나 농담 아닌데. 진심인데.”

권혜선의 미소에 최재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지금으로 충분히 만족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마침 휴대폰이 울린다. 이시현이다.

“여보세요?”

-형, 나 좀 도와줘라.

**

「KIS 드라마국」

“C가 대체 누구야? 뭐 들은 거 있어?”

“글쎄요. 이시현이 누구 만난다는 얘기는 들은 게 없는데.”

“야, 연예인이 누구 만나면서 광고하는 거 봤냐? 다들 알아서 만나는 거지. 음악뱅크 봐봐, 복도며 대기실에서 몰래몰래 잘도 만나잖아.”

“하긴, 그 나이에 여자 한번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지.”

두 사람만 모이면 이시현 스캔들 얘기다. 아직 밝혀진 건 없지만, 다들 이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문에 실린 실루엣이 이시현 아닌가.

“근데 뭐 스캔들 기사가 처음도 아니잖아?”

“그거야 할리우드 얘기지. 그쪽에서는 허구한 날 스캔들이니까.”

남의 연애사 얘기에 열을 올리는 피디들을 보며, 윤찬 씨피는 혀를 차고 국장실로 향했다. 노크하고 들어가자마자 황 국장이 펼치고 있는 신문이 보인다.

“야, 박태 이놈 뭐 하고 있냐?”

신문을 덮은 황 국장 얼굴이 활짝 피었다. 제집 박차고 나가더니 스캔들에 대본 유출까지. 현장의 곡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기분이라며 실실 웃는다.

“정신없겠죠.”

“그러니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니까. 내가 그럴지 알았어.”

섭섭했던 마음이 심술 맞은 말이 돼 툭툭 튀어나온다.

“지에스에서는 어떻게 한대?”

“스카이데일리와 만난 것 같은데, 뭐 알아서 잘 처리하겠죠.”

“에휴.”

한숨 한 번 쉬고, 황 국장은 유출된 대본을 손에 집었다.

“이거, 천상 다시 써야지.”

“시간이 될까 모르겠어요. 스태프들이야 쪼개든가 새로 모으든가 하면 되겠지만, 그것도 손발이 맞아야 하는 거지. SBC에서는 뭐랍니까?”

“전화 안 해봤어. 해서 뭐해? 우리가 도와줄 것도 아닌데. 편성 취소하든 밀어내든 알아서 하겠지.”

“에이, 말은 그렇게 하셔도 걱정하고 계시잖아요.”

“내가 할 일이 그렇게 없냐? 집 나간 자식 걱정하게?”

“아휴, 박태 그놈이 문젭니까. 세상이 변하는 거지.”

“왜? 너도 나가게?”

황 국장의 레이저 눈빛에 윤찬 씨피는 피식 웃고 말했다.

“저야 국장님, 우리 형님 모셔야죠.”

“박태 그 자식도 술만 먹으면 그 말 했어 임마.”

살랑대면서 말이지.

“뭐라더라? 형님 사랑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개뿔.”

똑똑.

“누구야?”

콧방귀를 끼던 황 국장이 문을 바라본다. 지리산에서 곰 한 마리가 탈출했냐고, 저 얼굴이 왜 들어오는 거냐고 투덜거린다.

“안녕하셨어요, 국장님.”

“여기 웬일이야?”

최재환이 넉살 좋게 웃으며 소파에 엉덩이를 붙였다.

“진동원 얘기 꺼낼 거면 그냥 가.”

“아휴, 아닙니다. 동원이 태안에서 촬영하고 있는 걸요 뭐.”

“그럼 이수정이야?”

“아시면서.”

황 국장이 제 입술을 텁석 깨문다.

“박태 얘기할 거면 그냥 가!”

“좀 도와주세요.”

“뭘 도와줘? 최 사장이 낄 일 아니야.”

“제가 국장님 마음 모릅니까? 걱정돼서 잠 못 이루고 계신 거 압니다.”

“뭔 헛소리야?”

끙하고 다리를 꼬는 황 국장 모습에 윤찬 씨피가 낄낄거리며 웃는다.

“야 웃지 마!”

“국장님, 박태 감독님 한번 도와주세요.”

집 나간 자식 발 벗고 도와줄 사람 누가 있나. 밖에 있는 사람들이야 뜯어먹고 벗겨 먹기 바쁘지. 결국엔 집에서 도와줄 일이다.

“가라니까.”

반쯤 넘어온 황 국장 모습에 윤찬 씨피도 살을 붙였다.

“박태 그 자식이 전에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국장님이라나 뭐라나.”

“이 자식들이 진짜!”

<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3) > 끝

ⓒ 고고3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