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219화 (219/227)

<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2) >

[특종] ‘특급 톱스타 A’ 아무도 몰랐던 그의 비밀연애

(스카이데일리 마영환)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국내외를 활발히 오가며 활동 중인 ‘특급 톱스타 A’의 비밀연애를 본지가 포착했다. 안정감 있는 연기력뿐 아니라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특급 톱스타 A는 지금까지 연애 사실이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는 상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철저히 ‘비밀연애’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본지는 다가오는 금요일, 특급 톱스타 A와 그의 연인 C에 대해서 낱낱이···

신문에는 ‘특급 톱스타 A’라고 적혀 있지만, 공항에 입국하는 이시현의 사진이 실루엣 처리돼 있었다.

‘또 스카이데일리.’

오소리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고통이라도 느끼고 싶은 심정이었다. 촬영을 앞두고 있어 힘껏 깨물지 못해 아쉬울 정도였다.

갑자기 터진 스캔들 기사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술렁이고 있다. 그나마 유 작가는 둘의 사이를 알고 있었고, 박태 감독에게는 처음에 귀띔을 해줬기 때문에 크게 놀라진 않는 것 같지만, 앞으로 전개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거다.

“하······.”

초조하고 답답해서, 오소리는 바다를 바라봤다.

촬영 중간중간 방파제를 걷는 것은 꽤 괜찮은 위로가 된다.

강미래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고, 그 마음을 엿보고 물든 슬픔을 잠재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회사에서 움직일 테니 지켜봐야 한다. 그러라고 회사가 존재하는 거니까. 배우들은 그저 지켜보다가, 선택하면 될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했듯이 말이다.

“소리야.”

가슴을 울리는 따뜻한 목소리였다.

오소리는 뒤를 돌아봤다. 바다가 서운한지 바람이 거칠다. 동물병원 가운이 정신없이 펄럭인다.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니까.”

“내가 할 소리를 왜 오빠가 해.”

“후후. 그러게.”

그는 바닥에 아무렇게 앉았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눈은 바다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는 아주 먼 곳을 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드라마 탓이려니 했다. 드라마의 분위기 그가 맡은 역할이 너무 힘든 거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아니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아주 먼 곳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대본리딩현장에서도 넋 놓고 있었었지 아마.

“후후.”

마지막에 문득 떠오른 기억에 오소리는 피식 웃었다.

그러자 이시현이 고개를 돌린다. 그의 목선에서부터 눈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이거 하나만 믿어줄래?”

“뭐가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내 종착역은 너일 거라는 사실.”

오소리가 싱긋 웃고 말했다.

“그 열차 언제 도착하려나? 후후. 가요, 스태프들 기다린다.”

**

“그래서 사진은 확인했어?”

“예. 시현 씨하고 소리 맞아요.”

모자를 푹 눌러쓴 두 스타가 차에서 내려 마주한 사진.

“어떤 것 같아?”

“글쎄요. 수위도 약하고, 연애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데······.”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사진이 공개되면 난리가 날 거다.

“그 사진이 다인지, 아니면 또 뭔가 있는 건지도 알 수가 없어요. 홈페이지 기사도 안 내린다 하고.”

“젠장, 찌라시야 뭐야? 특급 톱스타 A는 개뿔. 블랙보이 때는 귀띔이라도 하더니만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찌르네. 원하는 게 뭐래?”

스카이데일리가 실명을 터트리지 않고 떡밥을 던졌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대중에게는 기대감을, 지에스에는 여지를 준거다.

“남수혁 때와 같은 거죠.”

홍보부 권 팀장이 씁쓸한 얼굴을 가로저었다. 전에도 남수혁의 스캔들을 두고 밀고 당긴 끝에 블랙보이 수익 3%를 스카이데일리에 넘기는 조건으로 봉합했었다.

“그건 말도 안 되지.”

지금 이시현은 블랙보이 때와는 수익 구조 자체가 다른 데다가 미국의 에이전시 때문에 수익을 나누기도 어렵다. 물론 스카이데일리도 계산 없이 움직이진 않았을 터.

“미국 쪽은 뭐래?”

“아직 얘기 못 했어요. 그런데 전에 가십지에 스캔들 떴을 때도 대수롭지 않았던 걸 보면, 이번에도 크게 생각하진 않을 것 같아요.”

“하긴, 미국은 스캔들에 덜 민감하니까.”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여기는 스캔들 한 번에 팬들 반이 떨어져 나간다. 팬들 개개인이 느끼는 배신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배신감이 화실이 돼 오소리에게 쏟아질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다들 왜 이렇게 심각해?”

회의실 유리문이 펄럭이고 차 대표가 들어왔다. 이 사태에 고심하던 팀장들은 곧바로 그의 얼굴부터 살폈다. 화가 났을지, 찌푸려져 있을지.

하지만 차 대표의 얼굴은 전에 없이 부드러웠다.

“겨우 기사 하나에 뭘 그렇게 긴장들이야. 스캔들 한두 번이야? 지금 가장 힘든 건 배우들인데, 각 팀의 장이라는 사람들이 조바심내면 어떻게 해?”

그 말대로 회사는 이런 상황을 수차례 맞닥뜨렸고, 또 해결했다.

차 대표는 우왕좌왕하는 직원들에게 그걸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팬카페에 벌써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잘됐네.”

차 대표가 성 팀장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고 되레 웃는다.

“어차피 벌어진 거 더 떠들라고 해. 마무리만 제대로 지으면 되니까.”

직원들 얼굴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차 대표가 나서면 어찌 됐든 해결은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 이시현이 뭐 하고 있어?”

**

19# 버스 정거장 / 낮

미래의 모습은 마치 너무 황당해서 말을 잃어버렸다.

“우리 친구 하자고요. 가끔 회에다 소주도 한 잔씩 하고, 힘든 거 있으면 얘기도 하고. 그렇게 하자고요.”

“아니요. 난 그렇게 못해요.”

일부러 미소까지 짓고 말하는 창수의 모습이 안쓰럽다 못해 아파 보이기까지 한다.

“나 그쪽 좋아요. 그러니까······.”

“왜 이렇게 모릅니까?”

“뭘 몰라요? 내 마음이 그렇다고요. 내가 내 마음 모르겠어요?”

미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작 모르는 건 그라는 듯이.

결국 또 창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일그러진 눈썹처럼, 발밑 아래에 개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속삭인다.

“미래 씨··· 아직도 모르겠어요? 나, 내일모레 죽을 사람이라고요. 그쪽하고 함께한 이 짧은 시간도 조금 있으면 잊어버린다고요. 잊는다고. 기억 못 한다고.”

기억을 잃는다는 건 무엇일까.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미래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으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아 답답했다.

사실 살면서 그런 순간들은 많았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던 날들. 손으로 꼽을 수 없이 허송세월했던 시간이 너무 많은데, 그래도 그건 최소한 내가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니다. 알츠하이머는 마치 시한폭탄처럼 기억의 숲을 쾅쾅 터트릴 거다. 처음에는 저쪽이, 그다음은 이쪽이. 그 한쪽에 그녀가 있는 거다. 가장 소중해진 그곳에.

“잊어버리면 어때서요? 또 기억하면 되잖아요.”

“그만 해요. 그걸로 충분하니까.”

“창수 씨야말로 그만 해요! 알아요, 안다고요. 나 지금 억지 부린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근데 그러면 좀 어때서요? 나한테 좀 기대면 어때서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이 휘몰아친다. 그는 대체 이 마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동정이니 연민이니 그런 겁을 먹고 있는 걸까.

답답해서 한숨을 쉬니, 땅만 쳐다보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든다.

“그래서··· 뭐가 바뀌는데요?”

미래는 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답답해서가 아니다. 그의 눈이 그녀 자신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어서였다.

20# 버스 / 낮

마을로 향하는 버스는 텅 비어 있었다. 나이 좀 있어 보이는 운전기사는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운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관심은 가지지 않는지 둘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미래는 또 권창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창틀에 팔꿈치를 기대고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래, 말도 안 된다는 거 알고 있다. 그와는 어떻게 될 수가 없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또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의 남은 삶에 연애 따위가 가당키나 할까.

무엇보다 그녀 자신이,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런 감정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자꾸 마음이 간다. 그래서 얘기한 거였다.

‘뭘 어떻게 하자는 게 아닌데······.’

그저 곁에서 함께 있고 싶을 뿐인데, 그에게 허락된 남은 시간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것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걸 알고 또 충분히 알고 있다. 그에게 그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창수 씨?”

마을에 가까워짐을 느껴서 미래는 일어나서 그를 불렀다. 그런데 대답이 없어서 옆자리에 다가가 그를 살폈다. 여전히 그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마을에 다 왔는데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창수 씨······.”

핑 돌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안 내립니까?”

기사의 채근 어린 목소리에 미래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간신히 들었다.

“잠깐만요. 아저씨··· 잠깐만요.”

창수의 손은 따뜻했다. 어쩌면 지금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이 사람이 아파서······.”

기사는 멀쩡히 차에 탔던 사람이 멍한 모습으로 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미래의 초연한 모습이 백미러에 스치고서야, 버스는 창수가 머물렀던 짧은 시간을 가지고 떠났다.

“잊으면 안 되는데. 우리 시간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흐느낌 속에서도 미래는 여전히 창수의 손을 꼭 놓지 않았다. 그는 마치 꿈길을 걷듯 아무런 표정 없이 걷기만 했다. 이렇게 곁에 있는데, 마치 딴사람처럼.

“창수 씨··· 자고 일어나면 나 기억해야 해요. 이상한 말 안 할 테니까, 화도 안 내고, 놀리지도 않을 테니까. 나한테 짜증 내도 좋으니까 나 기억해야 해요? 그러니까 잊으면 안 돼요.”

미래는 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꼭 손을 잡았다.

마을에 가까워지자 바람이 선선히 불어온다. 창수가 습관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쏟아지는 눈물을 닦는 오소리의 모습을 박태 감독은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이 상황에 저렇게 몰입하는 게 대견하다.

‘하, 이걸 어떻게 한담.’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미 터진 거 대책은 마련하고 있어야 했다. 회의도 해야 하고 SBC에도 알려야 한다. 머릿속이 핑핑 돈다. 스캔들이라니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감독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걱정 안 해?”

다가온 이시현의 미소에 박태 감독은 미간에 잡힌 주름을 서둘러 폈다.

“회사에서 잘 처리할 거예요. 촬영에 아무 지장 없을 겁니다.”

“스캔들이 괜히 스캔들이야? 말 그대로 구설수야. 사건사고 아니라도 기자들 전화 빗발칠 테고, 팬들 난리 날 텐데 어떻게 하려고? 아무리 차 대표님이라도 이번에는 힘들어.”

한숨을 내쉰 박태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또 얼굴을 구겼다. 스태프가 이번에도 놀란 승냥이마냥 달려오고 있었다.

“또 뭐야?”

“대본이··· 대본이 인터넷에 유출됐습니다.”

박태 감독은 털썩 주저앉았다.

“뭐가··· 이렇게 연달아 터지냐.”

넋을 잃고 이시현을 바라봤다.

이런 개판 오 분 전인 상황에도 녀석은 평온한 얼굴이다.

“쉬운 삶이 어딨겠어요. 평온한 삶이 어딨겠어요. 제아무리 잔잔해 보이는 바다도 수없이 많은 태풍을 겪어 그 자리에 있죠. 태풍이 불면 비바람도 몰아치고.”

인생이란 그런 것.

<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2) > 끝

ⓒ 고고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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