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209화 (209/227)

< 스타 다큐 (3) >

「스타 다큐 촬영 마지막 날」

-오는 13일부터 18일까지의 일정으로 금강산여관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던 제5차 이산가족상봉이 북측의 일방적인 불참 통보로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게 됐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상봉이 인도주의 현장임을 강조하고 마지막까지 북한을 설득하겠다는 방침입니다···

TV 속 말끔하게 차려입은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하는 사이, 나른한 오후를 맞은 피디들은 커피 한잔에 단내나는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 스타 다큐팀이 계속 붙어 다니는 거야?”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란다. 아까 애들한테 슬쩍 물어보니까, BBC하고 인터뷰 중이라고 하더라고.”

“BBC? 허, 월드스타가 다르긴 다르네. 스타 다큐팀 계 탔네.”

“계 타긴. 이시현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서 곡소리 난다던대? 오늘도 새벽에 촬영이 끝났는데, 바로 3시간 있다가 다시 만났다고 하더라고.”

대세의 스케줄은 24시간이 모자란다. 몸은 하나뿐인데, 원하는 곳은 넘치고 넘치기 때문이다.

“그럼 이시현은 앞으로 뭘 하려나? 할리우드 영화도 찍었고, 노래도 잘 되고 있고··· 이제 드라마 하려나?”

작년 대박을 터트린 드라마 ‘스텝’ 이후 국내에서 이시현의 연기 활동을 더는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팬들은 간절히 원하는 상황이고, 방송 3사는 이시현과 지에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이제 드라마 하겠어? 영화판에만 있겠지. 물이 다른데.”

“에이 그건 아니야, 내가 지에스 매니저한테 넌지시 물어봤어. 가능성 다 열어놓고 있다더만.”

“그러면, 이참에 이시현이 로맨스코미디나 하면 좋은데.”

“로맨스?”

“여성 팬들 1순위야 당연히 로맨스지.”

이시현이 로맨스를 찍는다고 하면 분명 난리가 날 거다.

광고는 당연히 완판이고, 기획사들은 어떻게든 배역 하나 따내려고 기꺼이 전쟁에 뛰어들 거다. 방송국이야 당연히 황금시간대 편성 잡아줄 테고.

한마디로 지각변동이 일어날 일이다.

“요즘같이 우울한 기사들로 가득할 때, 연예계에 태풍이 한번 불어닥쳐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나 볼 수 있겠냐?”

입맛을 쩝 다신 피디는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가봐야겠다.”

“어디 가려고?”

“오디션 있어.”

**

“사장님, 아침에 뉴스 보셨어요?”

“뭐가?”

“이번에 5차 이산가족상봉이요. 북측에서 일방적으로 안 하겠다고 통보했대요. 걔들은 또 뭘 바라길래 생떼래요?”

대체 얘가 그걸 왜 궁금해할까.

대본을 읽다 말고 튀어나온 뜬금없는 소리에 최재환은 어이가 없어서 눈만 깜빡였다. 하지만 오디션을 앞둔 배우 기죽일 수 없으니 애써 웃고 다시 말했다.

“우리가 지금 남 신경 쓸 때는 아니지. 오디션 시간 아직 남았으니까, 대사 한 번 더 맞춰보자.”

“다 외웠다니까요. 지금 저한테 필요한 건 최대한 스트레스 안 받는 겁니다.”

하여간 입만 산 놈이다.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오지만, 최재환은 꾹 참고 다시 말했다.

“백번 해도 모자란 게 연습이야, 떨어지고 후회하면 너만 손해고.”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먹을 기세로 대본을 봐도 모자랄 만큼 중요한 오디션을 앞두고 있건만, 어쩜 이리 천하태평인지. 한때 이시현도 뺀질이 구석은 있었지만 그래도 하는 흉내는 냈었는데.

“근데 어제 이시현이 수정이 누나 촬영장에 왔다면서요? 매니저들, 경호원들, 스타 다큐팀까지 엄청 많이 왔다던대?”

“이시현이 니 친구냐?”

“어? 지금 화내시는 거예요?”

“화는 무슨.”

한 번 더 참을 인을 새기고 미소 짓는다.

“아 나도 실제로 한번 보고 싶다. 누나 말로는 맨날 송승국 발연기만 보다가 이시현 연기 보고 체기가 싹 내려갔을 정도라던대.”

이수정한테 연기 좀 배우라고 붙여줬더니만 둘이 노닥거리기만 한 모양이다.

“그래, 나중에 기회 되면 밥이나 한번 먹자.”

“오오, 우리 사장님 멋있는데요?”

아드득.

인내 끝에 이를 악문 최재환은 대본을 돌돌 말았다. 그리고.

“이 자식이 그냥! 정신을 못 차리고 확 그냥!”

신나게 녀석의 머리를 두드리는데, 이럴 때 꼭 휴대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최재환은 저만치쯤 도망간 녀석을 보며 숨을 쎅쎅 내쉬고 전화를 받았다.

-최재환 매니저님 맞으시죠?

“예, 맞는데 누구시죠?”

-저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

인터뷰는 BBC 측의 요청으로 명동 한복판에서 이뤄졌다.

대신, 과열 분위기에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해 이동 없이 카페 안에서만 이뤄졌다.

“바글바글하네. 무슨 영화 같다, 영화.”

“저 유리벽 단단한 거겠죠?”

스타 다큐 피디와 작가들은 카페 밖 풍경을 바라보며 넋두리를 했다.

“깨지기야 하겠어? 허허.”

하지만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다. 팬들은 계속 모이고 있지, 이시현은 오늘따라 메이크업도 잘 먹어서 어제보다 한층 더 빛나고 있었다.

“얼굴 뽀송뽀송한 거 봐라. 쟤는 무슨 젊은 애가 잠도 없고, 피곤해 보이지도 않냐?”

“그러게요. 우린 죽겠는데.”

사흘 동안 스타 다큐팀은 영양제와 피로회복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어가며 이시현을 쫓아다녔다. 정말이지,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내가 다시 이시현 촬영하면, 곽 씨가 아니라 똥 씨다.”

“저도요, 두 번 쫓아다니다가는 피똥 싸겠어요.”

그렇게 이시현 좋다던 작가들도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된 게 새벽에 촬영이 끝났는데, 새벽에 촬영이 시작된다.

겨우 3시간 잤을 게 뻔한 이시현은 매번 방긋 웃으면서 나타나서는 스타 다큐팀 작가들에게 오늘도 잘 부탁한다고 파이팅을 외치는데, 그게 꼭 악마 같았다.

“아무튼, 오늘은 촬영 끝나고 다들 무조건 퇴근이야. 편집은 내일부터.”

피디가 콧잔등을 찌푸리고 결의를 다졌다.

“그러니까, 다들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우자고.”

“옙!”

스타 다큐팀 카메라 감독도 온 힘을 다해 인터뷰 중인 이시현을 담는다.

“한국과 미국에서의 활동 비율을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요? 혹은 유럽이나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활동할 계획도 있나요?”

BBC의 질문은 여태 있었던 연예매체 인터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인기에 대한 초점보다는 이시현으로 인해 일어난 현상에 대해서 더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요즘에는 몸이 여러 개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시현이 옅은 미소를 보이고 다시 대답했다.

“사실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습니다. 이번에 다시 미국에 돌아간다면 새 앨범 작업에 집중해야 하는데··· 글쎄요, 다른 나라에서의 활동은 앞으로 월드투어를 생각하고 있지만, 이는 아직 확정적인 건 아니고 멤버들과 상의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제는 제 뜻대로 움직이기가 쉽지가 않네요.”

“한국의 팬들이 많이 서운해하겠는데요?”

“실은 어제 좀 달래주려고 갔는데, 오히려 제가 응원받고 왔습니다.”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다가 팬들이 오히려 그를 놀라게 했다는 얘기,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아주 혼났다는 얘기에 파란 눈의 기자는 눈썹까지 꿈틀거리며 흥미로워했다.

“팬들과의 사이가 매우 친밀한 편이라고 들었는데, 비결이 뭔가요?”

“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니까요. 팬이 있기에 제가 존재하죠. 한국의 팬, 미국의 팬, 혹은 다른 나라에 계신 팬들 모두가 제게는 소중합니다.”

“북한의 팬들도요?”

기자가 툭 던진 질문에 이시현이 잠시 눈을 깜빡이고 되물었다.

“북한이요?”

“곧 있으면 금강산에서 제5차 이산가족상봉이 열릴 텐데,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이시현 씨가 출연한 ‘우리 오빠’가 인기인 거 아시나요?”

“아, 그래요?”

이런 질문까지 나올 줄 몰랐다는 듯 이시현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러자 기자는 마지막이라는 듯 수첩을 덮고 말했다.

“다시 만난 우리 오빠라는 프로그램에서 이시현 씨가 부른 노래는 제게 아주 큰 감동을 주었어요. 그 노래, 지금 불러주실 수 있으실까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이시현은 눈을 감고 노래를 시작했다. 한음 한음 속삭인 노랫말이 끝날쯤에는 땀 한 방울이 그의 이마에 스몄다.

“시현 씨, 이게 마지막 촬영이에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인터뷰에 만족한 BBC 팀이 철수 준비를 하자, 스타 다큐팀도 바로 클로징멘트 촬영을 준비했다.

“저녁까지 같이 하시지. 함께 저녁도 먹고.”

이시현이 시원섭섭한 얼굴로 말하자, 작가들이 다들 손사래를 친다.

“아이고, 아니에요. 바쁘신데.”

“에이, 아직 3일 안 지났어요. 혹시 알아요? 제가 이따가 여자친구 만나러 갈지?”

“여자친구요?”

작가들이 콧방귀를 뀐다. 언제 그런 기미나 보였었나.

“제발 좀 만나세요, 일 좀 그만하시고. 그리고 나중에 여유 되실 때, 스케줄 하나도 없으실 때, 그때 저희 밥 한번 사주세요.”

“후후, 그래요.”

이시현이 알겠다며 카페 유리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팬들을 바라보는 그의 옆모습을 카메라가 담는데, 매니저가 그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내밀며 귓가에 속삭인다.

**

장례식장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풍경이었다.

그리운 이를 보내기 위해 눈물 흘리는 사람, 호상이라며 위로하는 사람, 담담히 받아들이는 유가족의 모습··· 그들의 한가운데서 최재환이 빈자리에 앉자, 눈에 익은 얼굴이 다가와 육개장을 내려놓았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고맙긴요.”

여점례 할머니의 손녀와는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 이시현과 김 작가가 할머니를 초대했을 때, 그녀도 자리에 함께했었으니까.

“시현이는 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연락은 했는데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이해해요. 이렇게 매니저님이 와주신 것만도, 할머니 참 기쁘실 거예요.”

다시 일어선 그녀 모습에 최재환은 수저를 들고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문득 재작년 일이 떠오른다.

당시 그는 일본에 있다가 부랴부랴 한국에 들어왔었다.

그 사이 어머니의 빈소를 지킨 건 이시현이었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고마움은 생각해봤지만,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여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타인의 죽음을 느껴야 할 책임 따위는 녀석에게 없었다. 그런데도 자리를 지킨 건 어떤 기분이었을까.

육개장을 입에 밀어 넣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들어왔고, 시선은 또다시 그곳에 머무른다.

‘시현이도··· 이랬을까.’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를 기다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생각이 왠지 아련하고 깊이 박혀서, 육개장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울 때까지 최재환은 몇 번이나 고개를 들어야 했다.

그렇게 더 기다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때, 누군가의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귀에 익숙한 멜로디에 머릿속에선 노랫말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 밤 그대를 꿈에 뵈리까

사랑은 그대를 기억하기 위한 내 고집이란 말이오

사랑은 그대를 꿈에 보기 위한 내 욕심이란 말이오

허니 그대는 내 곁에서 잠시만 있다 가오

나 그거 하나 간절히 바라니

오늘 밤도 나는 그대를 찾아가리

달이 길을 가르쳐준다 해서 바람과 함께 찾아가리

그대 나를 기다리면 되니

달 밝은 밤 또 찾아뵈리까 내 그대를 그대를

그대 보지 못해도 나 슬피 슬피 웃음 지으리 그대 보지 못해도 나 기뻐 기뻐 울음 지으리

붉어진 눈시울도 식혀야 했고, 이대로 혼자 계속 있기도 뭐해서 담배나 한 대 피울까 싶어 일어났다. 그러다가 멈칫.

“왔냐.”

사람들의 시선에도 녀석은 담담한 얼굴로 들어와 절을 했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을 녀석의 하루가··· 이 순간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해 보인다.

< 스타 다큐 (3) > 끝

ⓒ 고고3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