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207화 (207/227)

< 스타 다큐 (1) >

「강원도, 스타 다큐 촬영 첫날」

“하.”

피디의 입에서 한숨과 담배 연기가 뻑뻑 흘러나왔다.

“지금 오고 있는 거 맞아?”

“예, 전화해봤는데 거의 다 왔다고 합니다.”

막내 작가가 휴대폰을 흔들었다.

“언제는 매니저들이 그 말 안 하냐? 다시 전화해봐!”

허구한 날 하는 말이 벌써 출발했다, 거의 다 왔다, 방송국 문턱이다, 입에 침하나 안 바르고 거짓말하는 족속이 바로 매니저다.

“이시현은 다를지 알았는데, 좀 떴다고 벌써 스타질이야? 이러니까 분바른 것들이 욕먹는 거야.”

“금방 온대요. 그리고 어차피 여기로 올 수밖에 없고.”

눈치 살피며 배시시 웃는 작가에게 부릅뜬 시선이 날아들었다.

“그러기에 내가 스케줄 한 번 더 확인하라고 했냐 안 했냐? 어제 확인했으면 엇갈릴 일 없잖아?”

스타 다큐팀은 당연히 두 시간 전에 이곳에서 이시현과 조인할지 알았다. 그런데 이시현 측은 청담동에서 조인하는지 알고 있었다는 거다.

“진짜 왜 저래? 현장 처음 뛰나?”

일단 VJ 곁으로 피신한 작가는 입술을 빼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이시현 촬영한다니까, 어제 한숨도 못 잤나 보지.”

“솔직히 그건 나도 마찬가지.”

“나도.”

쿡쿡.

“근데 나 오늘 화장 잘 먹은 것 같아? 뜨지 않았지?”

“요 앙큼한 것아, 그런다고 이시현이 너한테 관심이나 두겠냐?”

VJ의 새침한 시선에 작가는 급히 목을 가다듬었다.

“큼! 누가 뭐래? 그냥 죄송해서 그렇지. 이 얼굴 보고 깜짝 놀랄까 봐.”

피디 눈치 보며 깔깔 웃는 맛이 제법 괜찮다.

찔끔 흐른 눈물을 닦고, VJ는 다시금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훈련소 앞이 팬들로 인산인해다. 실로 엄청난 인파인데, 여기저기서 현수막이 펄럭였다.

[보고 싶어 어쩌나! 육군은 성지훈을 안전히 모셔라!]

[성지훈 없는 세상 벌써 지루하다]

화려한 문구들.

그런데 어째 성지훈보다 이시현 이름이 더 많다.

[의리남 시현 오빠! 우리한테도 의리 나눠줘요!]

[성지훈 군 생활 화이팅! 이제 시현 오빠는 우리가 챙길게요!!]

[이렇게라도 보고 싶어 왔다. 시현 오빠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라]

[오빠, 자꾸 이러면 전세기 기름 빼버립니다?]

“성지훈은 좀 그렇겠다. 차라리 혼자 입대하는 게 낫지.”

“그렇기는 무슨. 이시현이랑 같이 있으면 일단 급이 올라가는데.”

함께 사진만 찍혀도 탈아시아 스타다.

“하긴 성지훈 지에스 가서 잘됐지.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예전만큼 되찾았고.”

하지만 그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하나다.

이시현. 이시현이 와야 하는데.

스타 다큐팀만 기다리는 게 아니다. 많은 매체의 카메라들이 대기 하고 있었다. 언제든 셔터 누를 준비를 마치고, 사다리와 중계차에 올라탄 기자도 있었다.

그때였다.

“밴 두 대 지금 막 진입로 통과했답니다!”

**

“지금 기분이 어때요?”

성 팀장이 안쓰러운 얼굴로 성지훈을 바라봤다.

우린 지금 녀석의 군입대 배웅을 위해 훈련소로 향하는 중이다.

“모르겠어요, 싱숭생숭하네.”

짧게 자른 머리에 올린 손.

까슬까슬함이 손에 배는지 성지훈이 콧잔등을 찌푸린다.

“시간 금방 가요. 눈 깜짝하면 전역일걸요?”

“그럴까요?”

“아니요.”

성 팀장이 정색하고 말하자, 운전 중인 강 팀장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함께 온 매니저들이라고 다를까. 일부러 더 크게 웃고, 과장된 몸짓으로 흥을 돋운다.

“팀장님 그러는 거 아니에요.”

“에이 장난이죠. 면회 갈게요.”

“진짜요?”

“생각해봐서.”

“팀장님!”

이러다 성지훈 진짜 삐지겠다.

“선배,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당당하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임마.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될 거다.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대요. 맛있는 것도 많이 나오고. 맛스타? 그게 그렇게 맛있다던대. 바이바이 음료수만큼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지금은 그 어떤 말도 귀에 들리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오는 내내 눈이 좀 풀린 것 같았는데, 슬슬 훈련소에 가까워지니 성지훈 눈에 생기가 돈다. 스타는 스타네. 기다리고 있을 기자들과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멋있는 모습을 보이려고 다짐하는 얼굴이다.

“시현이하고 지훈이는 차에서 내리지 말고 기다려.”

매니저들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밖에서 포토라인을 맞추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성지훈이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시현아.”

“예?”

“나··· 떨고 있냐.”

아 자식. 유난이네.

그래도 안쓰러워서 나도 녀석의 손을 잡아줬다.

“아니. 선배 지금 멋있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지훈아 나와!”

드르륵 문이 열렸다.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진다. 팬들의 목소리까지 더해져서 아수라장이었다.

“오빠, 가지 마요!”

팬의 간절한 외침에 성지훈이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까지 그렁그렁인데···

“가지 마요, 미국 가지 마요!‘

아, 나한테 한 얘기구나.

“지훈 씨, 이쪽에 서주세요!”

성지훈이 코를 훌쩍이고 포토라인에 섰다. 한데 모은 기자들 마이크가 앞에 놓이고, 녀석은 그래도 차분히 인터뷰를 진행했다.

“열심히 군 생활하고 오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고··· 크흑.”

골칫덩이 막냇동생 군대 가는 걸 보는 기분이 이럴까.

훗.

우리의 인연도 참 얄궂지.

어쩌면 성지훈 대신 ‘우리 오빠’를 촬영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계란 세례가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나쁘진 않았네.

“시현 씨도 한 말씀 해주세요!”

리포터의 제안에 나는 마이크를 손에 쥐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지훈, 파이팅!”

야야, 울지마.

“충성! 이병 성지훈 잘 다녀오겠습니다!”

이병은 무슨. 들어가면 넌 그냥 훈련병일 뿐이야. 그 엄청난 차이점을 곧 알게 될 거다.

“자,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군부대 측에서 안전을 고려해 훈련소 교정까지 차량 이동을 제안했다.

“이시현 씨는 조수석에 타세요!”

“잠깐만요, 카메라도 타야 해요!”

차에 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포토라인이 무너졌지만, 군인들의 통제 속에서 겨우 교정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거 영광입니다. 제 와이프가 이시현 씨 팬입니다.”

운전을 맡은 군인이 속도를 높이며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저 뭐 하나 여쭤봐도 됩니까?”

“뭔데요?”

“그 매니저 여동생 축의금을 얼마나 내셨는지, 그게 사실 궁금합니다.”

싱거운 얘기에 웃는 사이 차가 멈췄다. 내가 먼저 차에서 내리고, VJ가 뒤따라 내렸다. 그런데 어라? 성지훈은?

“선배, 안 탔어요?”

“아. 그러네요.”

VJ가 놀란 얼굴로 뒤돌아봤다.

저 멀리서, 성지훈이 뛰어들어오고 있었다.

**

“아침에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스케줄 표를 내려놓고 피디에게 사과부터 했다. 장소가 어긋나는 바람에 우리 쪽에서 스타 다큐팀의 시간을 빼앗은 꼴이 됐다. 아휴, 지에스 요즘 일 안 하나?

“아니야, 혼선이 있었던 걸 뭐.”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 그러네.”

재차 사과하고 나서 스케줄 표를 들었다.

어쨌든 오늘부터 사흘 동안 ‘스타 다큐’ 팀과 함께한다.

광고 촬영을 포함한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할 건데, 목적은 두 가지다.

첫째는 나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지에스 소속 아티스트들을 홍보하기 위해서.

끼워파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철저히 이용당해줄 생각이다.

이럴 때 월드스타 타이틀 써먹는 거지 뭐.

이참에 최재환 쪽도 도움을 주면 좋고.

이수정이 영화 촬영 중이라니 거기도 잠시 들릴 생각이다.

“그럼 시현 씨, 이동하시면서 저희가 아침에 한 것처럼 계속 질문할 거예요. 편하게 대답하시면 돼요. 대답하기 곤란하면 말씀하시고요.”

작가가 생긋 웃고 다시 말했다.

“그래도 가능한 한 많이 얘기해주셔야 돼요? 후후.”

“예!”

“오랜만에 한국에 오셨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듯 바로 질문이 이어졌다.

“글쎄요. 겨우 몇 달인걸요.”

물론 확연한 온도 차는 있다. 미국에서의 인기를 굳이 열기로 따지자면 한국에서처럼 엄청난 열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부분도 분명 있다.

“미국에서 시현 씨의 인기 비결이 뭘까요?”

인기라.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걸 생각하지 않게 됐다.

“제 인기의 비결이 아니라 밴드의 인기죠. 저는 그냥 편승하고 있을 뿐입니다.”

“밴드의 인기요?”

“굳이 말하자면 스토리라고 할까. 더 얘기하긴 좀 그러네요.”

밴드가 가진 아픔에 많은 미국인이 공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으니까.

“시현 씨한테 가장 중요한 건 뭐예요?”

“사람이요.”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서 나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의 인기가 언제까지 갈까.

무심코 든 생각에 구름이 유독 파랗게 느껴진다.

결국에 끝은 오겠지만··· 그때 가서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방송국에 갑니다. 근데, KIS인데 괜찮으시겠어요?”

**

「KIS 신관 공개홀」

“안녕하십니까, TLON입니다!”

다섯 명의 소년이 허리 숙여 외친 구호에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다. 음악뱅크 스태프들, 매니저들, 가수들, 기자가 뒤엉켜 정신없이 오가는 중에 일순 적막이 감돌 정도였다.

“안녕하십니까, TLON입니다!”

반복된 외침에도 목소리에 힘이 줄지 않는다. 허리는 스프링이라도 달았는지 튕기듯 올라오고, 입가의 미소는 마치 핀셋으로 고정한 것처럼 흐트러지지 않았다.

“쟤들은 리허설 때부터 계속 인사네. 노래도 부르기 전에 인사하다가 목쉬겠다.”

인사도 그렇지만 지에스가 내놓은 신인이라는 점에서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물론 풋풋함도 한몫한다. 선배 가수들은 어제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한 시선으로 보고, 매니저들은 안쓰러움과 측은지심으로 지켜본다.

“원래 지에스가 예절 하나는 빡세게 가르치잖아.”

“스탭들은 또 오지게 많네. 몬스터인가, 걔도 오늘 무대 나오나?”

“걔는 MNC 출격이라는데?”

“아 나는 걔 보고 싶던데. 9년을 준비했다며? 더구나 이시현이 프로듀싱까지 맡고.”

“맡았겠어? 흉내만 낸 거겠지. 지금은 이시현 이름만 끼면 일단 먹고 들어가잖아.”

“하긴. 지금 이시현 장난 아니지. 지에스가 돈을 갈퀴로 담고 있다며?”

“그러니까 이렇게 두 팀을 동시에 내지.”

“이러다 지에스가 SN 누르겠는데?”

“거의 눌렀다고 봐야지. 이번 데뷔 팀이 밀리면 한동안은 앞서기 힘들 거야.”

오늘, SN의 5인조 그룹도 음악뱅크를 통해 데뷔한다.

“SN 애들 사녹 때 보니까 장난 아니더라. 칼군무 끝내주고, 첫 방인데도 라이브로 하겠다는 거 보면 제대로 칼 갈고 나온 것 같더만.”

“뭐 결과야 방송 끝나면 알겠지. 누가 대중의 기억에 남는지 말이야.”

대중은 냉정하니까.

이때, 매니저들 뒤에서 단발머리가 불쑥 들어왔다.

“오빠들 여기서 뭐 해요?”

“어 정현아.”

“우와, 오늘 무슨 날이에요? 기자분들 되게 많이 왔네?”

시원한 가창력과 굴곡진 보이스로 인기몰이 중인 여가수는 작은 키 때문에 까치발을 들고 복도를 구경했다.

“어? 연예가소식팀까지 왔네?”

KIS 로고가 박힌 카메라가 이들 앞을 스쳐 갔다.

“정현이 너 1위 하는 거 보러 왔나 보지.”

농담처럼 얘길 했지만, 뭔가 심상치가 않다. 예능국장이라도 내려오나 싶은 분위긴데, 휴대폰을 붙든 SN 실장이 신경질적으로 읊조리며 총총걸음으로 스쳐 간다.

“아이씨, 망했습니다! 오늘 이시현이 응원하러 온대요!”

뭐라? 이시현?

“이시현이 온다고?”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다.

“아니 왜?”

“진짜로?”

“신인 응원하러 왔대요!”

“와, 걔들 치트키 제대로 쓰네.”

웅성거림이 커졌다.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이 복도로 하나둘 나온다. 가수뿐 아니라 그들의 스태프들도 호기심과 설렘으로 고개를 빼죽 내민 그때, 갑자기 고요가 찾아왔다.

“보여요? 오빠, 이시현 보여요?”

여가수는 안간힘을 다해 까치발을 들었다. 여전히 아무것도 안 보이는 가운데 앞에서 숨 들이켜는 소리만 연거푸 들린다.

“우와.”

“와.”

“허.”

“대박.”

마치 파도가 치듯 소리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한다.

여가수는 지금 자신의 노랫말처럼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오빠, 나 안 보여요!”

간절함에 껑충껑충 뛰자, 뒤돌아선 매니저가 그녀의 허리를 잡고 힘껏 들어 올렸다.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와··· 연예인이다.”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 스타 다큐 (1) > 끝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