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스타 (2) >
-여러분 소식 들으셨죠? 배우 이시현 씨가 전 매니저의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사실!
달궈진 팬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양념이 밴 쇠고기 등심을 올린다. 치익!
-그래서 오늘 현장에 계셨던 3W 슬기 씨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슬기 씨!
-뭐예요. 오늘 저 시현 오빠 대변인이에요?
-어쩜 눈치도 빨라.
지글지글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한 치의 오차 없이 고기를 뒤집고. 향과 풍미를 배가하기 위해 으깬 마늘을 올린다.
-그래서 슬기 씨, 어땠나요?
-다들 넋 나갔죠.
-그 자리에 연예인분들 많이 오셨다면서요? 아무리 월드스타라지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놀랄 일이죠. 시현 오빠는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잖아요.
-하하하! 근데, 아무도 몰랐어요? 이시현 씨가 찾아올지?
-몰랐죠. 회사에서도 모르는 일이었어요. 전용기 타고 급하게 왔다고 하더라고요.
-전용기요?
“야 임마! 베이스팅 안 해?”
불 앞에 있는 직원의 손이 느려지자 주방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것들이 일은 안 하고 라디오만 듣고 있어.”
“라디오 끌까요?”
“끄긴 왜 꺼? 우리 시현이 얘기 나오는데!”
주방장이 호통을 버럭 지르고 직원을 대신해 팬을 붙잡았다.
“에이, 주방장님 진짜 이시현 알아요?”
각자의 일을 하던 직원들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 본다.
“자식들아, 그 뭐야? 내가 시현이랑 절친이야!”
“또 그 얘기 하신다.”
“도무지 믿지 못할 얘기.”
“정말이었으면 이시현이 여기 한 번쯤 와야 하는 거 아녜요? 결혼식도 찾아갔다는데.”
“바쁜 사람이 어디를 와?”
-7856님이 축의금으로 아파트 한 채 값을 냈다는 얘기가 있어요. 사실인가요? 라고 물으셨어요.
-그거야 저도 모르죠. 다만, 각별한 사이니까 좀 더 신경 쓰지 않았을까요?
-6235님, 그럼 시현 씨는 언제부터 국내 활동을 하는 건가요?
-와, 진짜 내 얘기는 하나도 없네! 이거 날 부를 게 아니라 지에스 직원을 부르지 그러셨어요? 나 삐지려고 그러네?
-어머 모르셨구나? 슬기 씨가 지에스엔터테인먼트의 실질적인 2인자라는 얘기가 있어서 부른 건데.
-헐.
-그래서, 언제 활동해요? 말해봐요, 궁금해! 어서 말해줘요!
-흥! 안 가르쳐줄 거예요!
-에이 그러지 말고, 조금만 힌트 좀 줘요. 어서요!
-쩝,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아 쫌!
-아 좋아요 좋아! 시현 오빠가 직접 프로듀싱한 가수가 곧 데뷔합니다!
-허! 직접 프로듀싱? 누군데··· 아, 광고 들을 시간이네. 여러분은 지금 고우희의 ‘사랑을 할 겁니다’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광고 듣고 와서 다시 슬기 씨를 조르겠습니다!
달려달려 젖소야, 바이바이 음료!
달려달려 젖소야, 바이바이 음료!
초원 위를 달려달려!
구름 위를 달려달려!
**
[···이시현의 방문은 소속사인 지에스엔터에서도 몰랐던 일이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월드스타의 등장에 한때 소란이 일어났지만, 별다른 사고 없이 예식이 진행됐다. 이시현은 신랑 측의 부탁으로 감동적인 축하 인사를 건넨 것으로 알려졌으며··· 물론 예식이 끝나고 일대가 마비되는······.]
“하!”
기사 작성을 마친 여기자는 노트북을 내려놓고 깍지낀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룸미러에 비친 얼굴이 엉망이다. 턱밑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왔고, 떡진 머리카락에는 유분기가 가득하다.
“아이고. 내 신세야.”
한쪽 어깨를 꾹꾹 누르며 반쯤 남은 우유병 모양의 음료수를 손에 쥘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뭐하냐?
“음료수 마십니다.”
-또 바이바이? 넌 그게 뭐가 맛있냐? 난 그거 도통 적응이 안 되더라.
선배 기자는 웃고 나서 다시 말했다.
-너도 참. 거기까지 갔으면서 카메라를 안 가져가냐? 어떻게 낚시 잡지 기자가 베스트컷을 잡게 내버려 둬?
결혼식장에 이시현이 오자마자 그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들이 난리가 났다. 카메라 꺼내고, 수첩 꺼내고, 회사에 전화하고. 길에 돈다발이 쏟아져도 그보다는 조용했을 것 같다.
“그만 얘기하세요. 속 쓰려서 어제 한숨도 못 잤으니까.”
심지어 여기자는 이시현과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기까지 했었다.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세상에 있었구나 싶었는데, 그게 이시현이었다니.
“부장이 뭐래요? 우라까이 붙으래요?”
-이시현이 예식장 기습 방문했다는 거 돌아가신 자기 할아버지도 아는 사실인데 뒷북쳐서 뭐하냐고 난리다 난리. 저래놓고 안 쓰면 안 쓴다고 지랄할 거면서.
선배 기자는 투덜거리고 다시 말했다.
-오늘 이시현 TF팀 짜래. 과거부터 쫙 훑어서 뭐든 잡아내란다.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괜히 잘못 건들면 벌집 쑤시는 꼴인데.”
팬들이야 물론이고, 자칫하면 정부에서 태클이 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일월드컵 때 그 바쁜 시간 쪼개 이시현이 한국에 잠깐 왔었는데, 그게 정부에서 간곡히 부탁해서 이뤄진 일이라는 얘기가 돌았었다.
-근데 뭐, 캐보면 구린 구석 하나 없겠어? 예전에 호빠 주방에서 일했다는 사실도 흐지부지 넘어갔고.
“그거는 지에스에서 공구리치고 미장까지 끝낸 얘기죠. 정확히, 주방에서만 일했다잖아요.”
-그 얼굴에? 룸 한번 뛰면 한 달 월급 그냥 벌 텐데?
“종로에서 ‘우리 오빠’ 첫 방 기념 팬 미팅했을 때, 그때 주방 직원들 초청한 거 보면 떳떳하다는 거겠죠.”
-그래도 뭔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주방 직원들이랑 아직도 연락하려나?
“설마 그러겠어요? 다 옛날 얘긴데.”
-아무튼 지금부터 이시현이 국내에서 뭘 하는지, 스케줄이 뭔지, 하다못해 아침에 똥은 쌌는지, 저녁밥은 뭘 먹었는지 죄다 알아내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예.”
-넌 당분간 안 들어와도 되니까, 지에스 앞 떠나지 말고 동태 잘 파악해, 이시현이 프로듀싱 했다는 애, 누군지 꼭 알아내야 한다?
“예!”
전화가 끊기자마자 여기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한 컷만. 베스트 컷 한 컷만.’
검지로 턱을 두드리며 고민하는데, 전화벨이 다시 울린다.
“왜?”
여동생이었다.
-언니언니!
“왜 이년아. 학교 선생이 왜 이렇게 야단법석이야.”
-지금 우리 학교에··· 우리 학교에···
“니네 학교 뭐?”
-카메라 들고 당장 튀어와!
**
「한국 K 외국인학교」
“의리 개쩐다.”
학교 체육실에 모인 학생들은 이시현 얘기에 열을 올렸다.
“매니저 여동생 결혼식도 챙기고, 오늘은 지인이 하는 레스토랑도 찾아갔대. 좀 전에 카페에 목격담 떴는데, 그 레스토랑 벽에 이시현 사진 대문짝만하게 걸렸다는 거야.”
“잘생겼지, 착하지, 자기 사람 잘 챙기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완벽하냐?”
“돈도 엄청 벌었겠지? 심지어 전용기로 왔다잖아.”
“그거 우리 언니 말로는 이시현 공항 입국하는 거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었고, 완전 극비리에 입국했대.”
“그걸 니네 언니가 어떻게 알아?”
“얘네 언니 스튜어디스잖아.”
“진짜진짜? 어떻대? 실제로 봤대?”
“실물보고 깜짝 놀랐대.”
“왜에? 별로여서?”
“아니, TV에서 보던 것보다 백배는 잘생기고 키도 커서.”
“우와 정말?”
“그렇다니까! 언니 말로는, 현존하는 디스플레이 기술이 담을 수 없는 얼굴이래.”
친구의 과장 섞인 너스레에 깔깔 웃음이 터졌다. 실컷 웃은 한 친구가 체육관을 둘러봤다. 왁자지껄한 게 시장통이 따라 없다.
“오늘 뭔데 체육관에 모이라는 거야?”
“그러게. 공사한다고 어제부터 저렇게 천막 쳐놓고서.”
체육관 단상에 하얀 커튼 막이 내려와 있다.
“교육청에서 왔대.”
“아, 어쩐지 아침부터 귀가 지겹더라니.”
마침 귀따가운 마이크 소음이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아아, 학생 여러분들, 오늘은 교육청에서 학교실태 파악을 촬영하기 위해서 방문하셨습니다. 그러니 카메라가 보여도 동요하지 마세요.
“카메라?”
“교장 목소리 왜 저렇게 떨리냐? 꼭 대본 읽는 것처럼.”
의구심이 잠깐 스쳤지만, 체육관은 다시 학생들의 수다로 들썩였다.
“야, 신재인은 어떻게 되는 거야?”
지에스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걔 뭐 작년에 데뷔한다고 그러지 않았냐?”
“맞아맞아, 그때 학교에 매니저 찾아오고 그랬었잖아. 안 됐나?”
“지에스가 되게 빡세대. 월말평가 기준 통과 못 하면 데뷔 절대 안 된대.”
“신재인 노래 엄청 잘하잖아?”
지난번 수학여행 때 다들 신재인의 노래를 듣고 충격을 받았었다. 오죽하면 선생님들이 미리 싸인을 받아뒀을 정도니까.
“근데 쟤들 무슨 얘기하는 거야?”
체육관 뒤쪽에 앉은 학생들이 웅성거린다. 소리는 점점 앞으로 전해져왔다.
“오늘 교육청에서 온 게 아니라 방송국에서 온 거래.”
“방송국에서?”
“아까 누가 학교 뒤에 방송국 차 있는 것 봤대.”
“공사 중인 게 아니라 단상 뒤에 무대 세워놨대. 스크린도 설치하고.”
“봐봐, 방송반 애들 한 명도 안 보이잖아? 저 아저씨들 다 방송국 사람들이라니까!”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학생들, 커지는 웅성거림.
그런데 이때 단상의 천막 뒤에서 기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학생들이 모두 일어났다. 뭔가 이상하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정체를 찾으려 헤매는 순간 커튼 막이 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볼 수 있었다.
무대, 스크린, 몬스터.
[‘몬스터’ 오늘 전격 데뷔!]
스크린에 자막이 뜨기 무섭게 환호성이 터졌다.
친구가, 나와 같은 나이의 학교 친구가 데뷔한다. 그 시작을 이곳에서 한다는 사실에 체육관이 일순 아수라장이 됐다.
**
나는 강 팀장과 학교 방송실에서 무대를 지켜봤다.
날개를 다쳐 땅에 떨어졌던 새가 상처를 치유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귀머거리라고 말했어요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고 흉을 봐요
하지만 나는 다 듣고 있었죠
나 역시 예전에 저 아이가 한 말을 듣지 못했었다. 그래서 늘 후회로 남았었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다람쥐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소리도
썩은 나무에서 자란 버섯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도 듣죠
하지만 이번에는 귀 기울였고, 먼저 다가갔다.
그날도 그랬어요 나는 숲에 누워있었죠
당신의 발소리와 그림자가 그런 나를 찾았죠
눈부셨어요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 눈물이 났죠
그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줬어요
귀머거리가 아닌 내 이름을···
그래 재인아.
이제 마음껏 날갯짓하렴.
때로 힘들면 잠시 쉬기도 하고.
그럼 언제든 내가 보금자리가 돼줄 테니까.
찰칵!
찰칵!
“야, 저 여자 뭐야! 막아!”
볼에 흐른 눈물을 닦았을 때는, 방송실 창 너머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 뒤였다.
**
“그 신문 겨우 구했다.”
강 팀장이 혀를 내두른다. 신문 메인에 어제의 내가 눈물 흘리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단독] 월드스타의 눈물!
-···지에스가 9년을 키운 ‘몬스터’는 진짜 괴물이었다. 이시현은 이번 데뷔 앨범에 상당 부분 관여했으며, 학교에서 데뷔 무대를 갖자는 아이디어를 직접 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몬스터의 무대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 그가 얼마나 몬스터 신재인을 아끼는지를···
되게 추하게 울었네. 훗.
“팀장님, 다큐 팀 내일부터죠?”
“응, 내일부터 3일 동안 너 출국할 때까지 밀착 촬영.”
팬들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결정한 사항이다.
이번에 미국에 가면 당분간은 한국에 돌아오기 힘들 것 같다. 다음 앨범도 준비해야 하고, 투어 준비도 해야 한다.
“근데, 빌보드 꼭대기가 가파르긴 가파르네.”
“그러게요.”
2위였는데, 오르기는커녕 4위로 떨어졌다.
케이시 말로는 원래 숨 고르려 잠깐 내려온다는데, 내 보기에는 끝물인 것 같다.
“1위 할 것 같았는데.”
나도 솔직히 기대했다. 재상이가 7주 연속 빌보드 2위 했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근데 너, 소리랑은 잘되고 있는 거야?”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차창만 바라봤다.
강 팀장도 그 얘기는 더 하지 않고 부지런히 밟았다.
강남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마침 최재환도 우릴 기다렸다는 듯이 도착했다.
“왔어?”
강 팀장이 손을 흔들자, 최재환이 스튜디오 입구를 힐끗 쳐다보고 나를 향해 눈을 찌푸린다.
“뭔데 여기서 보자는 거야?”
“일단 들어가자.”
일부러 퉁명하게 말했다. 안 그랬다가는 의심할 것 같아서.
“뭐지.”
최재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들어간다. 스튜디오에 들어가자 다들 우릴 반겼다. 그중 눈에 익은 얼굴.
“시현 씨!”
팔짝 뛰면서 손을 흔드는 바이바이 민 팀장의 모습에 최재환의 눈이 가늘어진다. 설마, 눈치챈 건가.
“이 자식들이!”
뒤돌아 도망치려는 최재환을 강 팀장이 얼른 붙잡았다. 나는 크게 외쳤다.
“어서 가져오세요! 젖소 탈!”
우리는 오늘 바이바이 CF 3탄을 촬영한다.
물론 계약서에 명시된 젖소는 두 마리다.
[비하인드 스토리]
“오케이.”
플레이팅은 직원에게 맡기고 주방장은 한발 물러났다. 그때 주방에 들어온 홀 직원이 말했다.
“사장님, 뵙고 싶다는 분이 계신데요.”
“클레임이야? 뭐 주문하신 분인데?”
“문제 있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아직 음식 나오지도 않았는걸요.”
“스테이크 주문하신 손님인가?”
“예.”
“뭐지.”
고개를 갸웃한 주방장은 마른행주로 깨끗이 손을 닦았다.
그리고 플레이팅이 끝난 스테이크를 챙겨 홀로 나갔다.
장사가 안되니 홀이 썰렁하다.
‘신이시여, 제발 진상이 아니길.’
그를 찾은 손님은 창가 구석진 곳에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썼고,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었다.
“손님,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테이블에 조심히 올려놓고, 두 손을 모은 바른 자세를 하고 물었다.
“저한테 하실 얘기가 있으시다고······.”
뭔데 바쁜 사람 이리저리 부르나 싶지만 입꼬릴 끝까지 올리고 손님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정체불명의 남성은 마스크를 천천히 벗더니, 모자를 벗고, 앞머리를 쓸어올리고 그를 바라봤다.
“주방장님 노랑머리는 여전하네요.”
세상에.
“잘 지내셨죠?”
월드스타가 안부를 묻다니.
< 월드스타 (2)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