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204화 (204/227)

< 마이 히어로 (5) >

[단독] 지에스엔터테인먼트 측 ‘우연과 우연이 만들어낸 찰나의 기적이었을 뿐 확대해석 말아주길 부탁······.’

[단독] 팝의 황제와 함께한 이시현의 미국 팬미팅!

[단독] 이시현의 미국 생활 3개월 밀착취재!

[단독]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현장 단독 취재···

[단독] 음반회사들 이시현에게 잇단 러브콜!

[단독] 오는 15일 이시현 뉴욕 팬미팅 실황 MNC에서 최초 공개!

[단독] 한국 활동이냐 미국 활동이냐, 깊어가는 지에스의 고민···

“흐흐.”

신문을 넘기는 예능국장 입이 귀에 걸려 있다.

“옆 동네는 아주 죽을 맛이겠구만.”

SBC, KIS 너나 할 것 없이 헛물 켤 동안 MNC만이 매체 통틀어 유일하게 그날 그 현장에 있었다.

“이시현이 아주 복덩이야 복덩이! 근데 홍 피디는 어디 있어?”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편집실 들어가서 나오질 않고 있습니다.”

“뭘 그렇게까지 해? 대충해도 올 들어 최고 시청률 떼놓은 당상인데. 하하하!”

“아주 눈에 불을 켰어요. 가편집된 거 얼핏 봤는데, 이게 콘서튼지 드라마인지 분간이 안 가더라니까요?”

담당 씨피 너스레에 예능국장이 다시 껄껄 웃는다.

“그래그래, 한번 예술 해보라고 해! 필요한 거 있으면 뭐가 됐든 내가 제대로 밀어줄 테니까, 다 말하고!”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예능국장 모습에 담당 씨피 역시 기분 좋게 웃었다.

“섹션 애들이 큰 건 했죠. 걔들이 그때 마침 지에스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숨은 공신들이지. 바로 회식 잡아, 섹션 팀 누구도 빠지지 말고 저녁에 요 앞 복어 집으로 모이라고 해. 오늘 아주 그냥······.”

“오늘은 좀 많이 바쁘지 않습니까? 내일이나 예약하겠습니다.”

“아 그렇지. 걔들 지금 공항에 있지?”

예능국장이 벽시계를 바라본다.

“걔들만 가 있나요? 지금 대한민국 카메라는 죄다 가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이제 들어올 시간 됐네요?”

씨피가 서둘러 리모컨을 손에 쥐었다.

-지금 인천공항에는 3개월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는 배우 이시현을 보기 위해 모인 수천 명의 팬과 기자들로 공항이 마비 상태입니다.

-배 기자, 배우 이시현 씨의 미국 팬미팅 콘서트에 팝의 황제가 기습방문을 했잖습니까?

-예, 그 때문에 지금 미국의 관심이 배우 이시현 씨에게 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근데 이제는 배우 이시현 씨라는 호칭은 떼야 하지 않을까요? 팬미팅 콘서트에, 팝의 황제와 듀엣 무대를 꾸몄을 정도잖아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시현 씨의 소속사인 지에스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시현은 앞으로도 배우 활동을 계속할 거고, 배우 본인이 이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아무쪼록 앞으로 스타 이시현 씨의 행보, 아니군요, 월드스타 이시현 씨의 행보를 기대해보겠습니다. 그럼 다시 현장 연결해볼까요?

**

“너 기억나니 내 키가 너보다 좀 더 작았을 때를!”

“네가 나한테 네 첫사랑 얘기를 했을 때를!”

“그때도 지금도 난 이렇게 곁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지켜볼 뿐인걸!”

“가슴이 아파서 가끔 눈물이 흘러!”

“너만 생각하면 그러는 것 같아!”

공항을 가득 메운 5천여 명의 팬들은 이시현의 노래를 합창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현장을 촬영하려는 수백 명의 기자, 경찰인력의 실랑이까지 더해져 공항 여기저기서 고성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꺄아!”

입국 게이트가 열리자 팬들의 환호가 일시에 터졌다.

“아 머리 좀 치워요!”

“비키라고!”

“밀지 마! 밀지 말라고!”

“아 제기랄! 안 보이잖아!”

한 컷이라도 더 찍으려는 기자들과 이시현을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뒤엉켜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포토라인 또한 유명무실해졌다.

“이시현!”

“이시현!”

“이시현!”

게이트 안에서 지에스 측 매니저들과 경호원들이 우르르 나온다. 다시 터진 환호 속에서 마침내 이시현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오빠 나온다!”

“오빠아!”

그토록 보고 싶고 그토록 기다렸던.

울먹거리는 팬들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은 정말 이시현이었다. 변함없는 그 모습으로 돌아온 그를 향해 플래시가 쏟아진다.

미소 한 번만, 인터뷰 한 토막만, 컷 하나만.

각기 다른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지금 순간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시현 씨! 여기 좀 요!”

“여기 한 번만 봐주세요!”

“오빠아! 사랑해요!”

사람들의 요구에 맞춰 이시현은 손을 흔들고 미소를 보이고,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긴 시간을 공항에 있을 순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경호원들과 매니저들이 이시현을 감싸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비켜주세요!”

“나오라고!”

“야, 밀지 마라니까!”

“씨팔 니들만 기자냐!”

쫓아오는 기자들, 카메라, 리포터, 붐 마이크, 팬들, 경찰까지 뒤엉켜 말 그대로 전쟁터와 다름없었지만 결국 이시현은 공항을 빠져나갔다.

기자들은 떠나는 차를 바라보는 팬들의 망연자실한 모습마저도 촬영하고 인터뷰까지 땄다. 그래야만 한다. 이시현과 관련된 것은 그 어떤 거라도 주워야 한다.

그는 이제 스타,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

“꿈··· 같았지?”

클린턴은 며칠째 저 말을 하고 있다. 눈은 천장을 향하고 있지만, 시선은 그날을 떠올린다.

“아침부터 어딜 가?”

혀를 차던 팻시가 재킷을 걸친 데럴을 돌아봤다.

“잠깐 나갔다 올게.”

“이따가 계약인데, 리더가 빠지면 어떻게 해?”

재촉하는 그녀 모습에 데럴은 미소를 살짝 보였다.

“그럼 빨리 와야 해? 역사적인 순간이니까.”

데럴은 고개를 끄덕이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발걸음이 가볍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의 사람들을 지나친다.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가득한 이 뉴욕을.

빵!

“퍽유!”

시끄러운 경적에 여자들이 신경질적으로 외치고 지나갔지만 데럴의 귀에는 별로 성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마치 흑백 무성 영화 속 한 장면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데럴은 횡단보도 앞에서 잠시 눈을 감았다.

이 순간 그날의 환호가, 환호성이, 충격이 다시 이어진다.

“세, 세상에··· 마, 마이클··· 재, 재, 잭슨?”

한참을 입을 더듬거리고서야 클린턴이 그 이름을 뱉어냈다. 어쩌면 클린턴이 아니었으면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위대한 팝의 황제와 지금 최고로 핫한 Alta의 프레디, 두 사람이 함께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어라, 클린턴이잖아? 너 여기 있었냐?”

프레디가 눈살을 찌푸리고 쳐다보자, 클린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설마 나 찾아온 거냐?”

“미쳤냐? 내가 널 왜?”

“이 자식이! 으! 너 술 마셨냐?”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눈만 깜빡이던 이시현이 입을 열었다.

“여긴··· 어떻게?”

그래 궁금한 일이다. 팬들도 미치도록 궁금해하고 있었다. 웅성거림은 켜지고 비명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가 무대 앞 곳곳에서 들렸다.

팝의 황제가 여기는 왜?

이시현과 어떻게 아는 사이길래?

궁금증을 풀어줄 사람은 오직 황제 한사람뿐. 그가 하늘의 헬기를 가리켰다.

“호기심 때문에.”

요정의 목소리가 준 호기심이, 날씨 방송에 나온 해변의 모습이, 그 해변에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이, 무대에서 노래하는 동양인의 모습이 황제의 호기심을 건드렸다.

“호기심··· 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이시현이 거쳐온 순간들이 황제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줄이야.

“우리가 방해한 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황제가 찾아왔다. 최고의 무대가 아니면 절대 서지 않는다는 그가 자신의 스태프들을 이끌고, 가장 아끼는 후배이자 청소년들의 워너비를 데리고 왔다. 그게 방해가 될 리가 있나.

“그럼 나도 이 무대에 함께할 수 있을까?”

백번을 물어도 대답은 하나.

“그, 그럼, 무슨 노래부터 부르지?”

클린턴의 걱정에 팝의 황제가 고민한다.

하지만 그 고민이 무색하게도 어느새 정신을 차린 이시현이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고민할 게 있나요. 누구라도 한 번쯤은 꿈꾼 무대를 해야죠··· 당신의 곡.”

먼저 포문을 연 것은 프레디였다. 파워풀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터진 순간 팬들은 환호했다. 이시현이 이에 뒤질세라 따라붙었다. 밴드라고 놀 수 있나. 평생 무대에 서지 못해도 좋으니 단 한 번의 실수도 없기를 바라며 뒤쫓았다.

사실 이정도만 해도 넘치는 무대였다. 하지만 팝의 황제는 여유로웠다. 마치 애송이들을 보듯 미소 짓더니···

한순간에 무대를 휘어잡았다.

머리끝이 곤두서는 바람에 데럴은 하마터면 기타를 놓칠 뻔했다.

무대가 이어질수록 상공에는 헬기가 계속 늘었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카메라들이 달라붙었다. 파파라치야 말할 것 없고, 동양인들이 절대다수였던 해변엔 다양한 머리카락 색들이 뒤섞였다.

하늘에 노을이 짙게 깔릴 때까지 무대는 이어졌다.

지친 가수들은 이제 마지막 무대를 뭐로 할거냐를 두고 다퉜다. 황제는 무대의 주인공이 결정해야 한다고 했고, 프레디는 제 노래를 하겠다고 우기며 클린턴과 빽빽거렸다.

데럴은 이 모든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죽어도 되겠구나 싶었을 뿐이다.

다음 노래? 사실 더 하고 싶지도 않았다. 영원히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팝의 황제를 곁눈질하며 턱에 흐른 땀을 닦았다.

그런데 이때, 팝의 황제가 그를 마주 봤다.

약간은 맛이 간듯한 프레디도 데럴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시현이 미소 짓고 말했다.

“제 친구들의 노래가 제법 끝내주죠.”

[Shining Time]

지금 나는 행복해요.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아요.

왁자지껄한 클럽에서 처음 보는 밴드의 노래를 듣고 있어요.

하긴 여기는 온통 처음 보는 사람들이죠.

항상 쓰던 위스키가 오늘은 너무 달콤하네요.

나는 왜 이제야 이런 즐거움을 안 거죠?

예 알아요.

아침이 오면 이 행복에서 깬다는 것을.

하지만 밤은 또 오잖아요?

그래서 나는 즐길 거예요.

이제 걱정 같은 건 하지 않을래요.

이 순간만은 온전히, 내게 선물할 거예요.

예, 알아요.

당신은 내일 일을 하느라 나처럼 즐길 수 없다는 걸.

그렇지만 당신이 남이 잔 침대나 정리하는 걸 우습게 보는 게 아니에요.

나도 그런 일을 꽤 오래 했어요.

그냥, 나는 그 일이 되게 재미없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에요.

그래요, 내 사랑.

내가 얘기해줄게요.

실컷 이 밤을 즐기고 말해줄게요.

그러면 언젠가 당신 차례가 오겠죠.

당신도 나처럼 재밌게 즐길 수 있겠죠.

그래요, 내 사랑.

그럼 그때 얘기해주세요.

나한테도 당신의 밤을 얘기해주세요. 행복했던 그 시간을 얘기해주세요.

아 근데 어쩌죠?

나는 그때쯤 저 멀리 떠나있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꿈꿨던 거기에 있을지도 몰라요.

이 밤의 별보다 빛나는 거기 말이에요···

“후.”

뉴욕의 상징.

눈앞의 높은 빌딩을 올려다보며 데럴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맨해튼에 오면 꼭 한번 오고 싶었던 곳이다.

터벅터벅 빌딩으로 들어간 그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부스럭···

이시현이 떠나기 전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밴드 멤버들, 매니저 짐, 미스터 박, 뮤직비디오 감독 마빈, 보조 스태프 올리비아, 한국에서 온 스태프들, 그리고 이시현.

모두가 참 기분 좋게 웃고 있다.

**

“올리비아 모자 벗은 건 처음 보네.”

맥주 한 캔 마시며 사진을 쓰다듬었다.

내가 지금 한국에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혼이 빠질 정도로 정신없는 하루였으니까.

뉴욕 팬미팅이 끝나고 팬들의 요청에 한번 더 공연을 했다. 물론 두 번째 공연에도 팝의 황제가 찾아오는 기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지만,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지나갔던 걸까.

모든 게 꿈같다.

미국에서의 시간도, 그곳에서 만난 밴드도, 팬들도, 그날의 기적도 모든 게 꿈같다. 그런데 왠지 일어나도 됐을 법한 꿈이었다고 해야 하나.

후.

사진을 내려놓고 팬레터를 손에 집었다. 미국에서 틈만 나면 보느라 손때가 많이 묻어버렸다. 그래도 이 팬레터 덕에 버틸 수 있었지.

“응?”

뭐지? 처음 보는 거다. 팬레터 사이에 유독 깨끗하게 접힌 종이가 있었다. 그래서 살짝 종이를 펼치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헬로우?”

미국에서 온 전화였다.

-나 데럴이야.

이 자식이 웬일이야. 아, 얘들 오늘 계약하지.

-거긴 지금 밤인가?

“응. 너희는 지금쯤이면 계약했겠네?”

그날의 기적은 밴드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마침내 메이저 유통사가 밴드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렇게도 꿈꿨던.

-아직. 근데 곧 할 거야.

“그래, 분명 잘될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물론이지. 최고의 멤버들과 최고의 보컬이 있으니까.”

언제 또 볼지 모르니 미사여구 좀 뿌려주지 뭐.

-시현.

“응?”

-우린 친구인가?

“아니었어?”

나는 피식 웃고 휴대폰을 귀에 바싹 붙였다.

“데럴, 너는 내가 미국에서 만난 최고의 친구야.”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린 최고의 무대, 최고의 순간을 함께했다.

-시현··· 당신은 나의 영웅이었어.

“뭐?”

-멤버들을 부탁해.

웃으며 듣던 나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툭 끊어진 전화에 고개가 기운다.

“영웅··· 이었다고? 멤버들을 부탁한다는 건 또 뭔 소리야.”

왠지 불길함이 등줄기를 스치고 내려가서, 내 눈은 자연스럽게 달력으로 향했다.

2001년 9월 11일

손에서 놓친 맥주 때문에 카펫이 젖어간다.

< 마이 히어로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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