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 히어로 (1) >
-보스 어떻게 할 거예요? 위에서 자꾸 쪼는데.
“내가 그놈을 어떻게 찾아.”
-찾으려고 간 거 아녜요? 그 밴드 지금 뉴욕에 있다잖아요?
“아 몰라.”
-에이, ACN 총괄 프로듀서 맥어보이가 못 찾을 사람이 어디 있다고. 실은 벌써 찾은 거죠? 그래놓고 능청 떠시는 거죠?
“나 휴가 중이니까 이제 전화하지 마! 끊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도 아니고, 이 넓은 뉴욕 땅덩이에서 어떻게 찾으라고.
“그나저나 진짜 어디에 있는 거야?”
남자는 다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 정체불명의 요정.
그 요정 때문에! 해마다 별 볼 일 없이 지나갔던 공연이 올해는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이럴지 알았으면 그날 바로 붙잡을걸.”
감은 딱 왔었는데.
나중에 찾으면 되겠지 같은 안일한 생각을 했다.
“정말 어디로 간 거야? 하늘로 날아갔나?”
머리를 헤집은 남자는 찌푸린 눈으로 클럽 안을 휘휘 둘러봤다. 물은 좋은데, 무대는 왜 저렇게 엉망인지. 별 시답잖은 가수가 노래하고 있다. 생목으로 부르는지 비린내가 날 정도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즐거운 모양이다. 춤추고 환호하고, 열광하고 있다.
“미치겠네.”
그날 이후다.
모든 노래가 다 엉망으로 들리기 시작한 게.
분명히 말해서, 그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 귀가 엉망이 됐을 거다.
그런 목소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요정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순간 최고시청률이 나왔고, 재방송 요청이 쇄도했다. 그리고 재방송이 본방송보다 시청률이 두 배가 더 나온 진귀한 일이 벌어졌다.
“하.”
한숨을 흘리는데, 노래를 마친 가수가 무대를 내려간다. 그리고 웬 뚱뚱이와 멀대, 성깔 있어 보이는 여자가 빈 무대에 올라온다. 그 뒤를 따라서···
“저놈은 또 뭐야? 무대에 무슨 모자를 쓰고 올라가?”
하여튼 엉망이다. 차라리 호텔에서 뒹구는 게 낫지.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와, 바글바글하네.”
“선생님, 여기가 뉴욕 3대 클럽 중 하나래요!”
“그래?”
“예! 빌보드 차트에 오른 유명 밴드들은 다 한번은 여기서 공연했다더라고요!”
건장한 가드를 앞에 두고 작가들은 목소리를 꽥꽥 질렀다. 주변 소음과 클럽 안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나 문전박대당하는 거 아니야? 30분이나 기다렸는데.”
최미숙은 뒤를 힐끗 보며 웃었다. 불나방처럼 줄지어 선 사람들을 보니 뉴욕의 청춘들은 죄다 모인 모양이다.
“에이 왜요?”
“이 나이에 클럽이라니, 누가 볼까 창피하다 얘.”
“우리 놀러 온 거 아니잖아요. 시현 씨 보러 온 거지! 그리고 내 인생 즐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작가는 최미숙 팔에 달라붙어 살갑게 웃었다.
“근데 왜 하필 클럽에서 만나재? 시끄럽게.”
“저희도 잘은 몰라요, 지에스에서 제대로 얘길 안 해줘서!”
지에스에서는 그냥 가서 보면 알 거라는 말만 했다.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은 건지. 아무튼 그래서 장비 하나 없이 맨몸으로 온 작가들과 최미숙.
“팬들 사이에선 다음 앨범 뮤직비디오 촬영 중이라는 소문도 있어요!”
“자기들 시현이 본다고 너무 들떴다.”
“저희가 좀 티를 내죠?”
주책맞게 웃고, 수다를 멈추지 않고 입장할 차례를 기다린다.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클럽 입구에서도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니까.
“우와 이거 좋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지잉, 지잉!
세상을 때려 부술 듯한 드럼과 귀를 찌릿하게 만드는 기타 간주에 막내작가가 팔뚝을 쓸어내린다.
“꽤 신나네?”
최미숙 역시 나이에 맞지 않게 어깨를 들썩였다. 줄지어 선 사람들도 하나같이 몸을 흔들고 있다. 술만 없을 뿐이지 분위기는 이미 파티였다.
그리고 이어진 노래···
가드가 어깨를 두드렸지만 작가들과 최미숙은 클럽 안으로 발을 내딛지 못했다. 정체불명의 목소리에 발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코니아일랜드]
해가 지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아
우리가 뛰어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야
옷을 주워 입을 생각은 집어치워 비키니가 아직 소금에 덜 절여졌잖아
신기한 일이다.
좀 전까지 미쳐서 방방 뛰던 사람들이 일순 동작을 멈췄다. 찌푸려진 얼굴, 움츠러든 어깨, 귀를 쫑긋 세우고, 무대를 향한 시선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상어가 있어도 겁을 먹지 마
그깟 녀석은 코를 한방 갈기면 되니까
땀방울을 흩뿌리며 정신없이 드럼을 두드리는 뚱뚱보,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기타를 괴롭히는 멀대, 입술을 잘끈 씹고 시크하게 연주하는 여자를 지나서 시선이 툭 멈춘다.
자 나랑 시합해볼까
네 서핑 실력 좀 보여줘 파도를 뚫고 날아가 봐
바다에 좀 빠지면 어때 내가 있는걸
스탠드 마이크를 두 손으로 감싸 쥔 남자.
푹 눌러쓴 모자 때문에 그림자 속에 숨은 남자.
해가 졌다면 서핑이 싫다면
그럼 근사한 보트를 타고 가는 거야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한판 붙자
아침이 오면 창피할 게 분명하지만 일단은 지금만 생각해
다른 생각은 머리만 아프잖아
그림자 아래 벌어진 입술만 보이는데, 그 입술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끝도 없이 치솟는다.
상어가 있어도 겁을 먹지 마
그깟 녀석은 코를 한방 갈기면 되니까
“오우.마이.갓!”
머리를 조여오는 전율과 소름, 흥분으로 쓰러질 것 같다.
“대체 저 남자 누구야!”
“저 밴드 아는 사람? 난 처음 보는 밴드야!”
“보컬이 누구지? 완전 소름 돋아!”
기타 간주가 이어지는 잠깐 사이에 사람들은 막힌 숨을 토하며 서로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곳엔 그 어떤 정보도 없다. 그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자 나랑 시합해볼까
네 서핑 실력 좀 보여줘 파도를 뚫고 날아가 봐
바다에 좀 빠지면 어때 내가 있는걸
보컬은 마이크에 입술을 바싹 붙이고 얘기하고 있었다.
날 따라오라고. 그리고 즐겨라. 신나게 즐기면 된다. 두 팔을 높이 치켜들고, 노래에 맞춰 팔을 흔들면 된다고!
해가 졌다면 서핑이 싫다면
그럼 근사한 보트를 타고 가는 거야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한판 붙자
아침이 오면 창피할 게 분명하지만 일단은 지금만 생각해
다른 생각은 머리만 아프잖아
무대 앞에 물결이 넘실거린다.
파도처럼 철썩이고, 파도처럼 거친 물결··· 그리고 누군가 휘파람 소리와 함께 외쳤다.
“콜로라도에서 요정이 왔다!”
**
“택시!”
차에 오른 여기자는 휴대폰을 귀에 붙이고 목적지를 얘기했다.
“테입 확인했어?”
택시가 출발하자 한숨을 고르고 얘길 계속했다.
-아, 확인했고 스탠바이 중.
“좋아, 나도 지금 만나러 가고 있어.”
-그 사람 뉴욕에 있는 거 맞아?
“출발할 때 일정 확인했어. 지금쯤이면 뉴욕에서 공연하고 있을 거야. 오케이, 취재 끝나면 다시 연락할게.”
전화를 끊고 노트북을 펼쳤다.
“후.”
심호흡 한번 하고 손을 까딱 움직이는데, 운전석에서 선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님이신가 봐요?”
통화를 엿들은 모양이다.
“아. 미안합니다.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뉴욕의 밤이 너무 조용해서 말이죠.”
택시기사의 웃음소리에 여기자는 안심하고 말했다.
“뉴욕데일리 기잡니다.”
“아 그렇군요. 근데 기자가 좋은 직업은 아닌가 보네요.”
“왜요?”
노트북에 시선을 두고 물었다.
“이 밤에도 취재를 가니 말이에요.”
“그러게요.”
“근데 뉴욕데일리면, 얼마 전에 성폭행 감독에 관한 기사를 낸 곳 아닌가요?”
“잘 아시네요.”
“하하. 연예계 쪽에 관심이 있어서요. 제 딸이 배우 에이전트거든요.”
“아, 그래요?”
택시기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말했다.
“그 감독 프랑스에서 잘살고 있다던데··· 쯧쯧,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은 자유를 누리고 있고, 피해자는 세상을 피해 숨어 살고. 참 불합리한 세상이네요.”
“그렇죠. 세상은 불합리하죠. 다만, 완벽한 자유는 없을 거예요. 기사님이나 저 같은 사람이 마이클 본을 계속 지켜볼 거니까요.”
“후속 보도가 있나 보죠?”
눈치 좋은 택시기사가 넌지시 물었다.
“예. 지금 취재 중이거든요.”
“혹시,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이······.”
여기자는 미소만 살짝 비쳤다.
“그럼 오늘 택시비는 공짭니다.”
“예?”
“제가 올리비아 팬이거든요.”
택시기사의 미소를 잠시 바라본 여기자는 이내 차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올리비아는 그래도 팬이라도 있지. 하지만 그 소년은······.’
뉴욕의 화려한 불빛이 오늘따라 거슬린다.
왠지 좋지 않은 날이다. 또 다른 피해자를 만나기에는.
**
‘아주 조금만 마시고, 아주 조금만 피우면 된단다.’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나무 바닥의 삐걱거림도, 좁은 창에서 들어온 옅은 햇볕도, 눅눅한 곰팡이 냄새도 견딜 수 있었다.
어깨를 매만져준 그의 따뜻한 손길이 더해지니 충분히 괜찮은 장소였다.
‘잘할 수 있어. 넌 아주 잘할 거야.’
그는 이따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때마다 나른한 목소리, 간지러운 숨결이 더해졌다.
‘이걸 진짜로 펴요?’
손에 든 것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친구들이 피우는 것을 봤으니까. 풀어진 눈동자로 횡설수설하던 친구들. 기분이 끝내준다며 같이 피우자던 친구들.
‘콜록, 콜록!’
기침을 계속하자 그가 상냥히 미소 짓고 말했다.
‘준비되면 말하렴.’
그러더니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지켜봤다.
‘됐어요.’
준비가 끝났다고 말하자 그가 일어났다. 무척 긴 그림자를 만들며 다가왔다. 그 뒤로 아주 오랜 시간 어두웠다.
New York Times [한국에서 알려진 마이클 본 성폭행 사건의 전말]
USA Today [에이전트의 양심 고백. 그날의 일은···]
Los Angeles Times [FBI 마이클 본 감독 수사 한다!]
New York daily [Close your eyes 재조명. 올리비아는 지금 어디에? 피해자는 그녀 혼자뿐?]
[마이클 본 감독, 프랑스 도주!]
“헉!”
눈을 뜨기 무섭게 데럴은 연거푸 목울대를 흔들었다.
말라붙은 입술은 따가웠고, 경직된 목, 팔다리가 정신없이 흔들린다. 등과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하. 하.”
주머니를 뒤적여 약을 꺼내 입에 물었다.
안 넘어가는 걸 억지로 삼키고서야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자주 있는 일이다.
그날 이후 잠은 곧 악몽이고, 깨면 더 악몽이니까.
그런데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음악과 친구들 때문이었다. 그게 삶의 이유 전부였다.
“여기가 어디야.”
아무래도 대기실인 모양이다. 음악 소리도 들려온다.
“젠장!”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공연을 앞두고 퍼질러 잤으니까.
데럴은 대기실을 박차고 나와 홀을 향해 달려갔다. 숨이 가빠오고, 가까이 갈수록 음악 소리는 커졌다. 그렇게 홀에 도착했을 때, 더는 뛰지 않았다.
뛸 수가 없었다.
천천히··· 발을 내디딜 뿐이었다.
‘시현.’
무대에 있는 사람은 녀석이 분명했다.
왜라고 묻기에는 너무 당연히 이해가 된다.
실은 알고 있었다. 마이클 본 감독을 프랑스로 내쫓게 한 배우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한시도 마이클 본의 움직임을 놓친 적이 없으니까. 그 괴물이 어디서 뭘 하는지, 어떻게 사는지, 그 뻔뻔한 낯짝으로 저지르는 일들을 지켜봐 왔으니까.
그래서 궁금했었다.
그 배우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았고, 왜 폭로한 건지.
그랬는데, 그 배우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겠다고 밴드를 찾아왔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하지만 놀라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비밀이 폭로될까 봐. 세상이 알게 될까 봐.
다다다다, 다다다다, 다다다다!
로돌포가 마지막을 향해 질주한다. 하여간 저 날다람쥐는 스틱만 쥐면 괴물이 된다니까. 클린턴? 저 녀석은 기타만 쥐면 입 대신 손으로 수다를 떤다. 팻시는 두말할 필요 없고. 그녀는 늘 최고니까.
상어가 있어도 겁을 먹지 마
그깟 녀석은 코를 한방 갈기면 되니까
그럼 언젠가 바다에서 깊이 잠들겠지···
분명, 이 노래는 지금까지 Four Warriors가 추구해온 그 어떤 노래보다 높이 올라설 게 분명하다.
‘그저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투어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계속 그 생각을 했는데, 지금 분명히 알 것 같았다. 이시현을 만난 이유를.
그는 나의 영웅.
He's my hero.
**
“하··· 하······.”
머리가 새하얗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앞에 관객들이 있는 건지, 내가 서 있는 곳이 무대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현기증이 날 만큼 즐거울 뿐이다. 신나서, 미친 듯이 가슴이 두근거릴 뿐이다.
“하··· 하······.”
온몸이 방전돼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나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누가 좀 알려줘라.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지 말이야.
뒤를 돌아보니 팻시와, 클린턴, 로돌포가 웃고 있다.
이런 거구나. 밴드라는 거.
어라? 데럴이잖아? 저 자식 이제 정신이 들었나 보다.
근데 왜 울고 난리야? 어린아이도 아니고.
자식, 이렇게 좋은 동료들을 두고서 울기는.
“하··· 하······.”
아무래도 내가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헛것이 보인다.
저거 최재환인데.
여기 있을 리가 없는 녀석이, 왜 저기서 엄지를 척 내밀고 있는 걸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하······.”
목이 멘다. 가슴이 울컥해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들리니까.
환호가··· 너무 잘 들리니까.
< 마이 히어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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