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후의 빛깔 (2) >
「KIS 드라마국. 2001년 5월 9일 수요일」
탁!
컵을 내려놓은 거친 손길에 유리테이블이 흔들렸다.
황 국장은 심기 불편한 얼굴로 ‘미스터 미스터리’를 탄생시킨 두 사람을 쏘아붙였다.
유가희 작가, 강지환 피디.
언론에서는 유가희의 마법이네, 강지환 피디의 예술이네 어쩌는 모양이지만, 황 국장은 지금 좀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왜냐. 이시현이 안 한다니까.
“이유가 뭐야? 뭐라도 들은 게 있고 본 게 있을 거 아니야?”
“그게······.”
죄지은 얼굴로 입술만 핥는 강 피디.
보다 못한 유 작가가 깍지낀 손을 무릎에 걸치고 대신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팬 서비스 위주의 활동만 한다고 하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 계획은 딱히 없고. 뭐 할리우드 그것도 엎어졌고.”
지난주 종방연 자리에서 전해 들은 얘기였다.
자세히는 몰라도 일단 정해진 일정은 없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먼젓번은 억지스럽게 합류시킨 거라서 말도 못 꺼내겠더라고요.”
이때다 싶어 강 피디도 슬쩍 핑계를 내밀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황 국장의 콧구멍에서 뿜어지는 성난 바람이다.
“지금 그게 말이냐? 답답, 하다.”
황 국장이 다시 유 작가를 바라본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그녀가 지푸라기니까.
“그러지 말고, 유 작가가 책임지고 이시현 합류시켜.”
“제가요?”
“뭘 그렇게 놀라? 지난번에도 유 작가 고집으로 합류한 거 아니야? 지금 정규 편성하는데 이시현이 빠져봐? 그럼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왜 갑자기 저한테 불똥을··· 전 처음부터 얘기했잖아요? 정규 가면 주연 배우 둘 다 바꿔야 한다고, 시현 씨하고 소리 안 할 거라고. 장사 하루이틀 하시나.”
유 작가는 끙끙 앓는 소리와 함께 황 국장 눈치를 살폈다. 지금 이시현하고 오소리가 어떤 상황인데. 그 둘은 지금 일할 때가 아니다. 쉬어야 할 때지.
“내 목이 간당간당해서 이런다! 작년에 7UP··· 그것 때문에 내가 아직도 부사장님 눈치 보고 있잖아. 어휴 최미희만 생각하면 내가······.”
“왜 또 그 얘기를.”
자신의 보조 작가였던 최 작가의 입봉작이 언급되자, 유 작가는 준비해온 초고를 슬며시 덮었다. 시청률 8프로의 망작 7UP.
“아 그래서 제가 4부작 단막극 한 거 아녜요? 그놈의 양심 때문에.”
“가만. 혹시, 최재환 때문 아니야?”
“예?”
황 국장이 툭 던져 물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매니저가 독립한다는 건, 대게는 그런 경우니까.
“같이 나가려는 것 같은데? 그지?”
자글자글한 눈주름이 동의를 구하자, 강 피디는 등을 뒤로 빼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그건 아니죠.”
**
“팀장님.”
우경식은 동기와 함께 2팀장 사무실에 발을 들였다.
“어, 앉아.”
묵직한 손이 소파를 가리킨다.
엉거주춤 엉덩이를 붙이고. 우경식은 최재환을 바라봤다. 신입의 눈에는 마치 거대한 산이 앞에 있는 것 같다.
소문에는 3W 권혜선이 좋아했었던 팀장이라는데.
그러고 보니 지난겨울에 기사도 한번 났었고.
‘권혜선이 잠시 호감을 느꼈다고 했었지 아마?’
더구나 이시현은, 그 이시현이, 작년에 최재환이 폭력 매니저 어쩌고 했을 때 그게 사실이라면 은퇴하겠다고 인터넷에 손편지를 올린 적이 있다.
‘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까지 신뢰를 받지?’
소속 연기자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는 매니저.
심지어 다른 매니저들도 최 팀장 만큼은 무조건 엄지 척이었다.
무엇보다 으르렁대는 강 실장과 달리 최 팀장은 카리스마가 있었다. 시끌벅적한 일도 그를 지나치면 고즈넉한 산골에 들어간 듯 조용해진다.
그런 전설의 매니저.
‘10억인가, 20억인가 투자받고 나간다던데······.’
소문이야 무성하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최재환이 책상에서 일어났다.
“미안.”
최재환이 소파에 마주 앉았다. 그러더니 잠시 둘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훗.”
문득 피식 웃더니, 다시 미안하다며 웃는다.
“옛날 생각이 나서 말이야.”
그가 턱 끝을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그때, 내 맞은편에는 누가 있었더라.”
기억을 거스르듯 허공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에, 우경식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동기는 그래도 눈을 부리부리 뜨고 있는 걸 보니 깡다구가 있는 모양인데··· 아래를 슥 쳐다보니 다리를 덜덜 떨고 있다.
“니들 지에스가 어떤 곳인지 알아?”
“예!”
온 힘을 다해 대답하자, 최재환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조용히 얘기해. 무슨 대답은 없고 목청만 높여? 하여간 강 실장, 아니 강 팀장이 이상한 거만 가르쳐서······.”
피식 웃더니.
“그래서 지에스가 뭔데?”
“이시현 배우가 있는 곳입니다.”
“국내 최대 엔터테인트먼틉니다.”
서로 다른 대답. 강 실장이 그랬다. 일단 모든 대답하라고. 틀리면 틀린 대로 혼나고, 맞으면 맞은 대로 운이 좋았구나 생각하라고. 물론 백프로 틀릴 거라면서.
“이놈들··· 대답 한번 허접하네.”
최재환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움직여 커피를 탄다. 두 사람에게 한 잔씩 건네고 한 잔은 제 입에 머금는다.
“먼저 첫 번째.”
입에서 잔을 떼고.
“여기는 시현이만 있는 곳이 아니야. 블랙보이······.”
퀸, 보이스레이드, M, 3W, 성지훈, 현재 데뷔조 2팀, 그리고 배우들.
기콘부, ATTM, 홍보부서가 그들을 위해 항상 머리를 맞대고 더 나은 방향과 신선한 기획을 위해서 노력한다.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눈만 말똥말똥 뜬 둘의 모습에 최재환이 피식 웃는다.
“솔직히 국내 최대는 SN이지. 하하. 아무튼 내 생각에 여기는 국내 최대는 아니야.”
최재환은 시원하게 웃고 말했다.
“근데, 최고의 매니저들이 있는 곳은 맞아. 그래서 나는 우리 지에스가 국내 ‘최고’ 매니지먼트 회사라고 생각한다. 하하.”
우경식은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말장난 같지만, 최대와 최고는 엄연히 다르니까. 물론 손이 오글거리는 얘기다.
“그러니까··· 좋은 매니저가 되라. 최고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좋은 매니저가 돼.”
커피잔을 내려놓은 최재환이 한숨을 길게 내쉰다.
동기도 안도의 숨을 고르고 있었다.
우경식은 커피잔을 매만지면서 입술을 머뭇거렸다. 아까부터 들리는 저 소리.
“왜?”
최재환이 슥 쳐다보자 우경식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처음 봤을 때는 저 얼굴이 무척 무서웠는데, 이제는 왠지 잘생긴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얼른 대답했다.
“아, 지금 이 방송, 수포 카페에서 하는 라디오 방송 아닙니까?”
수포 카페 회원이 매일 이 시간이면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한다. 하지만 가볍게 볼 게 아닌 게, 꽤 전문적이며 이시현에게 특화된 방송이다.
“너지? 시현이 로드로 붙을 매니저가.”
최재환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물었다.
“예 맞습니다!”
이름 우경식.
덩치는 옛날부터 좋고, 얼굴도 단단하단 말을 자주 들었다. 최근에야 그 말이 못생겼다는 말을 우회해서 하는 얘기라는 걸··· 어떤 스타일리스트에게 직설적으로 들었지만.
“오늘 시현이 게릴라 이벤트 있거든.”
“그럼, 혹시 저 라디오 게스트?”
최재환이 픽 입바람을 흘린다.
“자식, 눈치도 있네.”
**
“여러분 안녕하세요, 세이세이 라디오의 시현 바라기 황지연DJ입니다. 아시죠? 제 방송은 시현 오빠가 게스트로 나오실 때까지 계속한다는 거.”
밝은 목소리와 함께 한 줌 침이 마이크에 쏟아졌다.
“오늘은 현재 우리 오빠를 둘러싼 루머에 대해서 얘기해볼 생각이에요.”
황지연은 채팅창과 원고를 번갈아 확인했다.
채팅창은 늘 그렇듯 빠르게 글이 올라오고, 원고는 늘 최선을 다해서 작성한다. 오늘도 흰 구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하게 채워진 것은 물론, 그동안 스크랩한 신문기사들도 한 가득이다.
“그래서 오늘은 다음의 세 가지를 두고 얘기하려고 해요.”
원고를 한번 펄럭이고.
“첫째, 반추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오늘 기사 보니까, 마이클 본 감독이 아니라고 입장을 발표했더라고요?”
콧바람을 뿜고 원고를 계속 읽어내려갔다.
“일단, 페이 프로덕션에서는 제작을 중단한다고 공지한 상황인데, 그럼 시현 오빠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아니 이런 건 지에스에서 공지를 해줘야지! 가만 보면 가수팀하고 되게 차별한다니까? 다 오빠가 알아서 하는 거야. 그죠?”
채팅창에 올라오는 의견들.
-지에스 원래 가수 중심이잖아요.
-C&C로 빠져나올 때 좀 챙겨주나 싶더니만. 곰 매니저도 그냥 나가버리고···
-다 그만둡시다! 우리 오빠 찾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오빠, 제발 노래 노래!
-아니 할 거 천지인데 왜 망설이는 거예요?
“일단, 제 생각은 그래요. 당연히 안 하겠죠.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글 보니까, 오빠가 새벽에 호텔까지 찾아가서 오디션도 보고 그랬다면서요? 아니, 오빠가 뭐가 아쉬워서 그랬지? 물론, 할리우드 타이틀 어쩌고 하는 거 좋아요. 근데, 오빠는 이시현이잖아요? 우리 이시현. 우리 이시현이 누구예요? 최고잖아요?”
한 템포 쉬고.
“아무튼 두 번째는··· 우리 곰 매니저. 곰 매니저가 떠나는 거 이게 말이 되나? 아니, 대체 차 대표님은 뭐하시는 거야? 직원 관리 못 하고. 월급을 올려서라도 붙잡아야 하는 거 아녜요?”
-그러게 말이야. 차 대표 배불렀어!
-작년에 시현 오빠가 백억 벌었다던데?
-투자만 수백억이래···
-곰 매니저 없으면 엄청 심심한데. 맨날 부르면 모른척하면서 싱글벙글 웃던 그 모습, 아 벌써 그리워.
-내가 확 차 대표 ‘차’ 빵꾸 내버릴까?
-곰 매니저는 무조건 있어야 돼! 우리 오빠 5년 동안 뒷바라지해줬는데··· 둘이서 얼마나 서로를 챙기는데.
-오빠, 오빠가 곰 매니저 붙잡으면 안 돼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 오빠는 지금 혼자일까?”
-당연히 혼자지! 여자친구? 확 그냥!
-황지연DJ님, 오늘 조금 마음에 안 드네?
“에이, 이거는 그냥 주제고. 괜히 나한테 그래. 아무튼, 오늘 심층적으로 접근해보자고요. 노래 듣고 갑니다!”
박수 한번 치고 노래를 틀었다.
노래는 당연히, 이시현과 슬기의 ‘너라서’
듣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노랫말을 귓가에 새기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아휴.”
마이크를 끄고.
황지연은 문을 활짝 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엄마, 나 방송 중이라니······.”
깜빡이던 눈꺼풀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오, 오빠?”
이시현이, 그 이시현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남자 이시현이···
넋 나간 그녀를 스쳐 그가 방에 들어왔다. 뒷짐을 쥐고, 이불이 발랑 뒤집힌 침대와 너저분한 책상, 휴지가 가득 찬 쓰레기통을 눈에 담는다.
“여, 여긴 어떻게.”
“알면서.”
이시현이 싱긋 웃고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목이 왜 저렇게 긴지. 옆모습은 또 어찌나 저렇게 예쁜지.
“오늘 주제가 이거야?”
“아, 예!”
-뭐야? 방송사고?
-지연 DJ님? 화장실 가셨어?
-설마, 오빠 온 거 아닐까요?
안절부절못하던 황지연은 노래가 끝나도 입을 열지 못했다. 꿀꺽. 침을 삼키고.
“저··· 지금 제 옆에 누가 있냐 하면요······.”
“안녕하세요.”
-으아!
-오빠다!
-진짜? 이거 장난하는 거 아니죠? 헐!!
-대박! 진짜 오빠 목소리야!!
들썩이는 채팅창을 보며 황지연은 마른 입술을 핥았다.
크게 심호흡부터. 이시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하던 대로 해.”
“후. 여러분! 제가 그랬죠? 시현 오빠 게스트로 참석할 때까지 방송 계속할 거라고. 그래서, 오늘이 어쩜 막방!”
**
“안녕하세요, 배우 이시현입니다.”
빠르게 채워지는 채팅창을 보니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래서, 오늘은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하는 팬을 찾아왔다. 이때만 해도 인터넷 라디오가 한창 유행이었다.
“지연 씨, 질문 맘껏 하세요.”
“아, 예!”
노랑머리 DJ가 제 앞머리를 마구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 중이다. 예쁜 얼굴 다 망가지게.
“편하게 해요, 편하게.”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살 털어주고 말했다.
“예!”
편하게 하랬더니 이등병처럼 군기가 바싹 들었다.
-지금 지연DJ님 완전 얼었나 봐.
-나라도 시현 오빠 앞에 있으면 오줌 찔끔하겠다.
-쿡쿡쿡!
-아마 지연DJ님 지금 도망치고 싶을걸??
“저 도망 안 칩니다! 자, 그래서 바로 질문 들어갈게요. 오빠, ‘반추’ 하는 거예요?”
처음부터 꽤 세네.
하지만 어차피 한번은 이 얘기를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 친구를 찾아왔으니까.
“안 합니다.”
결정은 났다. 차 대표도 긴말 하지 않았다. 하지 말라고 선을 그었고, 최재환 역시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쓴 미소를 보였다. 물로 나 역시도 결정을 내렸다.
“그럼, 미스터 미스터리 하는 거예요?”
“아니요. 그건 다른 배우분께서.”
내 생각에, 미미는 4부작이 적당했다. 아무리 유 작가라도 애초 단막으로 기획된 걸 16부작으로 늘리는 건 무리지 않을까.
“자, 두 번째 질문 주세요.”
“아 그럼, 곰 매니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참, 마음이 복잡한 질문이다.
하지만 내가 어쩔 수 있을까. 내가, 내 멋대로 하겠다는데.
녀석의 인생이다.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 것 같은 인생이 아닌, 진짜 인생.
“매니저가 그만두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쉬운 것도 사실이고.”
나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얘길 꺼냈다.
“언제까지고 같이 있으면 좋겠지만 헤어져야 하는 순간도 있거든요. 하지만 분명한 건··· 잠깐 떨어져 있을 뿐 우리는 늘 함께라는 겁니다.”
때로 다투고, 때로 섭섭하고, 때로는 그냥 기뻤던 시간들.
근데 뭐. 유별날 정도는 아니고. 아닌가. 약간 유별날지도.
“그럼 세 번째는······.”
**
“저는 지금 혼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함께 있는 걸요? 염병할. 지에스는 애들한테 뭘 가르치는 거야? 더럽게 오글거리네.”
“근데 선배님, 저 명함 신청한 거 언제 나와요?”
[스카이데일리 마영환 기자]
후배 기자가 네모반듯한 그의 명함을 흔들며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선배가 만만하지? 이게 마와리 한 번 더 돌아야 정신 차릴 건가.”
신문에서 눈을 뗀 그는 혀를 차며 후배를 쏘아붙였다.
아주 잠깐, 어깨가 움츠러든 녀석을 보고 길 건너 녹음실 입구로 눈을 돌린다.
이영태 작곡가의 녹음실.
정보원에 따르면 이시현의 다음 행보가 음반 활동이며, 지금 새로운 곡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있다. 근데 이시현에게 붙은 작곡가가 상상도 못 할 인물이라고 한다.
“대체 누구길래··· 설마 차 대표?”
그 양반도 왕년에 가수였으니까.
기자는 피식 웃으며 손에든 신문을 넘겼다.
[모두 날조된 사실!]
갈색 머리 외국인 사진 위에 선명한 고딕체가, 지금 떠도는 모든 소문이 날조된 헛소문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누군들 자신이 성폭행범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할까.
“근데 왜 지에스는 아무런 코멘트가 없는 거야. 이거 아무리 봐도 지에스 작품 같은데.”
갑자기 이렇게 들썩이는 것도 그렇고.
“이우정 얘가 뭔가 했는데······.”
그도 그런 것이, 이시현 관련한 기사는 제일 먼저 내는 이우정이 이번에는 침묵하고 있단 말이지.
아무튼 모든 것이 이상하다.
한국에서 박한영을 봤다는 소문도 있고, 이시현이 지난주 페이 프로덕션을 찾아가 무슨 이상한 오디션을 봤다는 소문도 있고.
추측 끝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지하에 위치한 녹음실은 이따금 두더지같이 생긴 놈들이 담배 한대 태우러 입구를 들락거리는 것 말고는 조용했다. 흔한 밴 한 대도 멈춰 서지 않는다.
“오늘은 아무도 안 오는··· 선배!”
후배가 입을 열기도 전에, 기자는 신문을 집어 던지고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곧이어 밴에서 스타일리스트, 최재환, 그리고 이시현이 내린다.
“저 둘 진짜 다정해 보이네.”
최재환이 이시현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뭔가를 속삭이는데, 길게 늘어진 오후의 햇볕이 두 사람에게 드리워졌다. 아주 좋은 앵글이다. 찰칵, 찰칵, 찰칵.
“어, 한 사람 더 내리는데요?”
“누구야?”
“블랙보이··· 남수혁이요!”
건강문제로 활동 중단 상태인 남수혁.
물론 그 실체를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그 문제아.
스카이데일리에서도 저 녀석 약점을 쥐고 있다.
“뭐야, 저 조합은?”
< 오후의 빛깔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