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155화 (155/227)

< 당신이 배우라면 꼭 가져야 하는 (6) >

오소리가 말갛게 뜬 눈에 나를 담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저돌적인 이 모습에 당황스러운 한편, 그녀와의 첫 만남이 떠오른다.

흠.

인연이야 어찌 됐든 지금 삶에서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

바이바이 CF도 그렇고, 815특집드라마 건도 오소리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건데··· 하지만 지금은 고개를 끄덕여줄 수가 없어서 미안.

“형하고 상의해볼게요.”

살짝 다물어져 있던 그녀의 입이 바람 한점에 흔들린 잎새마냥 힘을 잃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볼은 움찔움찔하고 있고.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오소리는 내가 왜 이 역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 작가가 어떤 생각으로 꽃미남 살인자를 만들었으며, 내가 가진 분위기와 무게가 더해졌을 때 이 드라마가 어떻게 변할지. 한참을 열과 성을 다해 얘기한 뒤에 그녀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내가 실수 한 건가요?”

“아니요.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라서요.”

“알았어요. 생각해보고 결정하세요.”

“예.”

체념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나는 일부러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이마에 옅은 주름을 새기고 나를 올려다봤다.

“근데, 나 정말 같이 호흡 맞춰보고 싶어서 그래요.”

한숨, 미안함, 안쓰러운 표정까지.

오소리는 매끄러운 콧잔등에 변화무쌍한 주름을 보인 뒤에 미소를 지었다.

“갈게요. 방해해서 미안해요.”

풀죽은 얼굴로 원피스 자락을 펄럭이며 연습실을 나간 그녀의 잔상을 쫓다가, 나는 한숨을 쉬며 거울에 등을 기댔다.

“유 작가··· 무섭네.”

배우 욕심 있는 건 알았어도 오소리한테까지 SOS를 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렇지만 이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나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의 업무 방향이 달라지니까.

이 극을 하겠다고 하면 성 팀장과 직원들이 머리 싸맨 방향들이 흐지부지될 테고. 이런 흐름은 원치 않았는데··· 내가 너무 커버렸지 뭐.

‘그나저나 오소리가 이렇게 적극적이었나.’

풀죽은 모습은 왠지 연기 같고.

모를 일이다. 여배우들 속마음은.

**

-예, 소리 잘하고 있어요. 팬들한테 웃으면서 사인해주고 사진 촬영하고 있어요. 뭐,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요.

“그래, 끊어.”

백화점 사인 행사 스케줄을 잘 소화하고 있다는, 로드 매니저의 보고를 들은 조 부장은 전화기 스피커 버튼을 누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 시현이는?”

“대본 보고 있어요.”

소파에 앉아 있던 최재환이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반추?”

“아니요. 미스터 미스터리.”

“뭐?”

“오소리 얘기 듣고 나서 무슨 생각인지 연습실에서 죽치고 있어요. 저거 또 밤새 있을 필이에요.”

조 부장의 치솟은 눈썹처럼, 최재환도 못마땅한 얼굴이다.

“진짜 그거 하려는 거야?”

“모르겠어요.”

깍지낀 손에 마른 한숨을 쏟고, 최재환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일단 중요한 건 이시현의 결정이다.

그다음은 스케줄, 또 그다음은 방송국의 관계, 거기다 오소리까지 끼어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 작가의 무리수가 분명하지만 사실 놀랄 만큼 특별한 일은 아니다.

오소리는 제 입으로 말했듯 이시현과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는 게 이유고, 유 작가는 이시현이 이 역에 딱이라는, 그놈의 작가들 욕심이고.

“저 근데.”

담배를 필까 말까, 입맛만 다시고 있던 조 부장은 최재환의 늘어진 목소리에 라이터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왜?”

“남수혁이 어떻게 캐스팅된 거예요? 기콘부가 남수혁한테 대본을 챙겨줬을 리는 없고. 또 유 작가가 까다롭긴 해도 이유 없이 캐스팅을 번복할 사람은 아닌데.”

“피디가 직접 초이스한 것 같아.”

“강 피디님이요? 그럼 둘이 다이렉트로 연결된 거예요?”

“그러니까. 나도 그게 좀 이상하더라고. 남수혁 그놈은 어떻게 강 피디를 안 건지··· 유 팀장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하고.”

조 부장이 1팀장을 거론하면서 이마를 찌푸리더니, 더 생각하기 싫은지 고개를 가로젓는다.

“뭐 그만큼 절박하니까 기회 잡은 거겠지. 너한테 무릎도 꿇었다며?”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강 실장이 얘기하더라.”

어찌 됐든. 조 부장은 일단 상황을 정리했다.

“아무튼 수혁이는 이제부터 C&C에서 관리하는 거니까, 너도 이왕 용서해준 거 신경 좀 써주라. 재계약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우리 식구잖아. 교복 입고 뺀질거릴 때부터 봤는데··· 우리가 이해해주자고.”

“예.”

조 부장이 겉옷을 챙긴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갈 모양인듯한데, 먼지 풀풀 날리며 혼잣말하듯 묻는다.

“넌 시현이 연습실에서 나올 때까지 여기 있을 거야?”

“아니요. 아시잖아요? 저놈 연습실 불 끄고 앉아 있으면 언제 나올지 모르는 거.”

예전에야 기다렸지.

이제 혼자서 잘하는 놈 기다릴 생각이 없는 최재환이다.

**

“맛있게 드세요.”

우동 두 그릇에 맥주 한 병을 내려놓고 점원이 등을 보였다. 강 피디는 유 작가에게 노랗게 물든 유리잔을 챙겨주며 슬쩍 얘기를 꺼냈다.

“작가님이 말한 히든카드가 오소리였어요?”

대꾸 없이 물 한 컵을 원샷하는 유 작가.

그도 그런 게 오소리가 연락을 해왔으니까. SOS는 실패라고.

“왜 그렇게, 이시현을, 원하시는 거예요?”

강 피디가 뜨거운 우동 면발을 입에 물고 웅얼거린다.

후루룩. 후루룩.

하얀 김에 얼굴을 파묻은 그에게 유 작가의 삐딱한 시선이 꽂혔다.

“연기가 독창적이니까. 그리고 혼자 연기하지 않아.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출 줄 알고. 그러니 당연히 이시현이지! 그런데도 굳이 남수혁 같이 경험도 없는 애를. 으이그.”

두 번 말하면 입 아프고, 세 번 말하면 속이 탈 얘기.

“나도 이시현 연기 봤어요. 잘하더만.”

답답해하는 유 작가의 모습에 강 피디는 일단 인정할 건 하고, 다시 얘길 꺼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자고요. 우리 드라마에 걔 안 온다니까. 출연료도 그렇고, 걔가 땜방 드라마를 하겠냐고요. 아니 그걸 다 떠나서, 남수혁도 이 역이랑 잘 어울린다니까?”

“자기 이시현 한 번도 못 봤지?”

유 작가의 흘긴 시선에, 강 피디는 우동 면발을 끊고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지.”

“왜에. 남수혁 잘생겼잖아? 그 정도면 충분하지. 난 살다 살다 그렇게 잘생긴 애는 처음 봤구만.”

“이봐요. 강지환 피디님.”

혀를 끌끌 차더니.

“어디 사람하고 비교를 해.”

“사··· 람? 그럼 이시현은 뭔데?”

그 말에 유 작가 검지를 뾰족 내밀어 가게 천장, 아니 하늘을 가리킨다.

“하··· 그건 아니지.”

기가 막혀서, 체할뻔했다면서 물을 벌컥 마신 강 피디.

“강 피디가 강원도에 박혀 있다가 이제야 다시 서울에 입성해서 모르나 본데······.”

뭔가를 얘기하려던 유 작가가 체념하듯 한숨 푹 쉬더니, 파리를 쫓듯 손을 흔든다.

“그래. 이시현 보지 마. 괜히 보면 눈만 높아지지.”

“하하.”

그리고 잠시 우동에 빠진 두 사람.

얼큰하고 짭조름한 국물 한 모금을 후루룩하고, 강 피디는 괜히 눈치를 보다가 깍두기 하나 물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미안해요. 내 멋대로 캐스팅해서.”

“됐어. 뭐 나도 사실 ‘빨리 빨리만’ 외쳤잖아.”

대본이야 피고름 짜내서 만들지만, 가끔은 작품성에 비해 대중성에서 밀리는 걸 여실히 느낄 때가 있다.

유 작가에게 ‘미스터 미스터리’는 그런 대본이었다.

미니시리즈로 끌기에는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칠 게 뻔하고, 그렇지만 소재는 괜찮아서 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래서 땜빵에 흔쾌히 응했던 거고.

“그럼, 강 피디는 무슨 기준으로 캐스팅하는 거야?”

유 작가의 따가운 시선 속에 강 피디는 맥주를 꿀꺽꿀꺽 마시고 목울대를 부르르 떨었다. 일단 한숨부터 고르고.

“하 시원하네··· 뭐, 남수혁이가 무척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인성도 괜찮아 보이고.”

“인성? 강 피디 남수혁 소문 못 들었구나. 블랙보이 애들 개판이라던데.”

“에이. 나는 직접 본 거 아니면 안 믿어. 하도 입에서 입으로 얘기 퍼지고, 말꼬리 붙고. 여기가 그렇잖아.”

“자기 눈으로 본 것만 믿겠다? 그거 좋은 거 아니다. 꽉 막힌 거지.”

눈을 게슴츠레 뜬 유 작가가 혀를 내두르며 핀잔이다.

그러자 피식 웃은 강 피디는 맥주잔에 남은 거품을 보며 속삭였다.

“사실, 나는 인성도 그렇지만 책임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임감?”

“예.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맘 바뀌는 배우들. 대충하거나, 억지로 하는 배우들 나는 싫어요. 한 배를 타면 책임감이 있어야지. 지금 이시현 봐?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잖아. 이런 애한테 무슨 책임감을 기대해.”

“그래라. 강 피디 원하는 대로 하자.”

툴툴거린 유 작가가 맥주 한 잔을 들이켜더니, 다시 이마를 찌푸리고 묻는다.

“그래서 남수혁은 어떻게 오디션을 보게 된 거야? 안주 한번 썰어봐.”

“그게 친구한테 추천을 받아서······.”

얘기를 꺼내려는데, 돈가스가 이어서 나왔다.

노릇노릇 바삭한 돈가스에서 피어오른 뜨거운 김을 본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대화가 멈췄다.

“아, 수정 대본 괜찮던데?”

육즙을 만끽하고, 단무지 하나 깨작거리며 강 피디가 수정 대본을 언급하자 유 작가가 픽 콧바람을 뿜는다.

피디가 좋다는 얘기는 대중성이 좀 더 들어갔다는 얘기니까.

어쨌거나 강 피디는 입술을 번들거리면서 계속 얘기했다.

“꽃미남 살인자와 변호사의 관계. 실은 변호사가 살해당한 3명에게 어렸을 적 몹쓸 짓을 당했고, 당시 겁에 질려 지켜만 봤던 남자아이는 그 여자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해 훗날 그 3명을 응징해 꽃미남 살인자가 됐다는··· 뒤에는 어떻게 되는 거야? 보다가 나와가지고.”

원래의 스토리는 변호사의 죽은 여동생이 가진 서사지만, 설정을 조금 변경하면서 여동생을 없애고 대신 변호사를 전면에 세웠다.

유 작가가 짧은 한숨 뒤에 얘기를 이어받았다.

“몹쓸 짓 저지른 3명은 여자아이를 강에다 버려. 그걸 지켜만 보고 있던 남자아이는 여자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죽지 않았고, 운 좋게도 어떤 부부에게 발견돼 살았고.”

“절망 끝에서 운이 폈네.”

“그게 운일까. 뭐 아무튼 기억을 모두 잃었고, 그렇게 성장해 변호사가 된 거지.”

“남자아이는 커서 그 셋을 마주치게 된 거고.”

강 피디가 입 아픔을 덜어주자, 유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흔한 스토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살인자의 이미지와 상반되는 꽃미남 살인자의 등장은 그 자체로 다룰만한 가치가 있었다.

“변호사는 꽃미남 살인자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돼요.”

하지만 실은 변호사는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다.

억지로 잊은 척, 자신을 속이며 살아왔을 뿐이다.

거액을 기부한 익명의 기부자는 그녀였고, 팬 카페에 글을 올려 이슈를 만든 것도 그녀. 살인자의 변호사가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말을 꺼내던 유 작가가 문득 강 피디를 바라봤다.

요란하게 울린 휴대폰을 받을 듯 말 듯 망설이다 그냥 끊는 강 피디.

“누군데?”

“친구.”

“친구?”

“예. 아까 말한 남수혁이를 추천해준 친구인데, 지에스에 있다가 얼마 전에 나왔어요.”

**

“열심히 하겠습니다!”

남수혁이 깊이 숙였던 허리를 펴며 긴 머리를 흔든다.

최재환은 그와 악수하고 사무실을 훑으며 넌지시 물었다.

“마음에 들어?”

“예. 사무실 너무 예쁜데요?”

스케줄 보드가 걸린 벽은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유리 벽에는 꽃문양 스티커가 붙어있다. 무엇보다 파티션하나 없이 책상들이 붙어있어 시야가 탁 트인다.

“난 지금 나가야 하는데, 데려다줄까?”

최재환은 가죽 재킷을 손에 들고 차 키를 손에 쥐었다.

“아, 저 차 가지고 왔는데. 구경 좀하고 가면 안 될까요?”

“안될 게 뭐 있어.”

최재환이 널찍한 등을 보이고 떠나자, 남수혁은 몇 없는 사람들을 힐끗 보며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흠. 건물 좋네.’

처음 와본 C&C.

낯설지만 또 마음에 들 것 같은 곳이다.

지하에는 녹음실, 1층에는 로비와 데스크가, 2층에는 카페와 휴게실이, 3층에는 연습실, 4에는 뉴매니지먼트사업부와 신사업부인지 뭔지 하는 새로 신설된 부서가 있다. 6층은 대표실이라는데, 거기에는 차 대표의 딸이 앉아 있을 테고.

‘이게 다 이시현을 위해서 세운 거라 이 말이지?’

겉으로는 연기자를 집중 케어하기 위해서 2팀을 외부로 내보냈다지만, 실상은 이시현을 집중 관리하기 위해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렇지 않고는 연기자만 케어한다면서 지하에 녹음실을 둘 이유가 없으니까.

남수혁은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 구경하는 내내 찌푸린 콧잔등을 펴질 못했다.

‘이시현이가 어쨌다고. 지에스의 미래? 하. 나도 그 정도 할 수 있거든?’

그깟 연기.

눈 부릅뜨고 악 지르고, 온 힘을 다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번 기회에 그걸 보여줄 거다.

이를 악문 각오 속에서 남수혁은 3층에 발을 들였다.

연습실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복도의 유리창 너머에는 어둠이 내려왔는데, 복도는 은은한 불이 켜져 있었다.

왠지 어두컴컴한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뒤돌아서는데···

띠리리.

불쾌감이 섬뜩 치솟는 전화벨 소리.

‘아이 X발.’

남수혁은 번호를 보자마자 짜증을 이마에 드러내며 전화를 받았다.

“예, 팀장님.”

밖에서 대놓고 받기에는 찝찝한 상대라서, 불 꺼진 연습실에 발을 들였다.

“열심히 할 거예요. 저 지금 되게 열심히 하고 있다니까.”

칠흑 속 어둠이 찝찝하다. 뭔가 불쾌하기도 하고. 상대방 목소리는 더 짜증 나고.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내가 이번에 확 보여주고, 팀장님··· 아니 이제 사장님이지. 후훗. 우리 김태호 사장님 회사에 들어갈 테니까, 계약금이나 빵빵하게 준비해두세요.”

-걱정하지 마. 신문 1면에 10억 계약! 딱 찍어둘 테니까.

“10억이 뭐야. 어차피 오가지도 않는 돈 한 20억 찍죠. 뭐.”

회사를 옮길 때는 그만큼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연기로 일단 가능성 확 높이고, 세상 한번 흔들고, 화려한 스크린데뷔까지.

남수혁은 다가올 그 날을 떠올리며 피식 웃다가 휴대폰을 꽉 쥐었다.

“아 그건 어떻게 됐어요? 뭐긴요. 이시현 말이에요. 강 피디님한테 제대로 깠냐고요. 오소리까지 나서서 이시현이랑 하겠다고 난리인데··· 그 미친X. 전부터 마음에 안 들더라니까. 지가 공주인지 알아.”

-걱정 붙들어 매. 이시현이는 실제 모습이 앞뒤가 다른 놈이라고 내가 신신당부했으니까.

“알았어요.”

전화를 끊은 남수혁은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뭔가 체증이 가라앉은 기분이랄까. 이제부터 훤한 꽃길만 걸을 걸 생각하니 들뜬 미소가 입가에 두둥실 떠오르는데.

“후··· 나가볼까.”

손잡이를 잡은 그는 문득 연습실 내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켰는데.

“엄마!”

놀란 남수혁은 뒤로 발랑 주저앉았다.

연습실 한쪽에서 이시현이 앉아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섬뜩한 시선으로. 그러더니 피식 웃는다.

“요 녀석 봐라.”

< 당신이 배우라면 꼭 가져야 하는 (6)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