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144화 (144/227)

< 거칠거나, 아니면 부드럽거나 (3) >

“삐삐야!”

외근 나갔던 성 팀장이 급한 얼굴로 들어오자 백유진이 마우스에서 손을 떼고 일어났다.

“다녀오셨어요?”

“홍보부 전화해서 회의 1시간 뒤에 하자고 그래. 아, 그리고 너.”

성 팀장의 가늘어진 눈이 백유진을 향했다.

“왜··· 그렇게 보세요?”

“너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예? 정말요?”

“빈말이야.”

역시나. 허구한 날 직원들 놀리는 맛으로 사는 팀장이다. 그리고 같은 수에 매번 당하는 백유진의 삐딱해진 시선에 성 팀장이 다시 그녀를 눈에 담으며 말했다.

“시현 씨가 그러더라고. 너 고생한다고 좀 챙겨주래.”

“진짜요?”

“농담이야.”

“아 정말.”

통통한 입술을 빼죽 내밀자 성 팀장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거 기대하지 말고, 맡은바 본분에 최선을 다합시다!”

툴툴대며 자리에 돌아온 백유진은 홍보부서에 연락해 성 팀장이 외근에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눈치껏 마우스를 클릭해 카페에 들어갔다.

‘어디 보자.’

게릴라 이벤트 2탄은 카페에 올라오는 인터넷 소설과 관련이 있다.

다들 어찌나 이렇게 참신한지.

이시현이 교생으로 등장하는 스토리도 있고, 팬이 이시현의 매니저가 되는 스토리도 있고, 방송국 작가와 이시현의 로맨스도 있다.

어찌 됐든 주인공은 이시현이고, 여주는 독자들.

그중에서 현재 탑 3 작품.

[이시현은 내 남자친구]

[그대라서 행복합니다]

[말랑말랑한 유혹]

가장 화제작은 단연 ‘이시현은 내 남자친구’.

올라올 때마다 난리가 난다. 문체나 스토리는 약하지만 세 작품 중에서 유일하게 이시현이 거침없이 나온다.

무엇보다 흡입력이 있어서 그걸 보려고 카페에 가입하는 네티즌도 있을 정도.

“내 남자친구 쓴 작가 누군지 알았어?”

성 팀장이 불현듯 묻는다. 딴짓하다 놀란 마냥, 백유진이 눈을 치켜뜨는데, 바로 이어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화 여고 학생이래요.”

“여고?”

성 팀장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려다가 다시 일어났다.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피식 웃는다.

“이거··· 괜찮겠는데?”

“뭐가요?”

“이슈 만들기 좋겠다고.”

비릿한 미소.

뭔가 일을 저지를 때마다 저 미소가 나오는 것을 잘 알기에, 또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일이 배로 늘어나는 것을 알기에, 직원들은 벌써부터 망했다는 표정들이다.

“지금 몇 화까지 올라왔어?”

“14화요.”

“14화? 흠··· 너무 짧은데. 내용이 어떻게 돼?”

성 팀장이 책상 옆 파티션에 기대고 물었다.

“여주가 이시현한테 반해서 상사병 걸리잖아요? 이번 화에서는 이시현하고 같이 술자리에 합류하거든요. 근데 싸가지 스타가······.”

얘기가 이어지는데, 유리문이 열리고 홍보부가 내려왔다.

“뭐예요? 1시간 뒤라니까.”

타박하는 투로 말하자 홍보부 권 팀장이 태연히 회의실로 향하며 말했다.

“오늘 토요일이야. 빨리 끝내고 퇴근하자.”

“아, 그랬지.”

성 팀장은 시계를 멍하니 바라봤다. 늘 제자리만 맴도는 것 같더니 토요일이라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무척 빠르게 가는 것 같다.

“흠······.”

왠지 나른해져서, 파티션에 다시 기대고 속삭인다.

“계속해봐.”

“예?”

“근데 싸가지 스타가 뭐?”

**

여의도의 한 주점에 ‘스텝’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모였다.

촬영 중에도 짬짬이 술자리를 갖는 편이지만 단체로 모이는 건 오랜만이었다.

최 감독과 임 작가가 둘이 앉아 대본 얘기에 한창인 사이,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최미숙 선배님은 안 오신다는데요.”

“그 누님 요즘 왜 그러냐. 쓸데없이 아웃사이더야.”

관장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금 매니저를 재촉했다.

“이시현은?”

“차가 막혀서 좀 늦을 것 같대요.”

“하여간 이것들이 그냥. 어떻게 된 게 항상 노인네가 먼저 와야 해. 버르장머리들이 없어.”

그 말에 조연출이 술을 따라며 깐죽거린다.

“관장님은 스케줄이 없으니까 일찍 오신 거고, 시현 씨는 스케줄이 넘치니까 어쩔 수 없이 늦는 거고.”

“이 자식 요즘 나랑 맞먹네?”

“술이나 한 잔 주시고 그런 얘기 하세요.”

“에이 X세끼. 처먹어 임마.”

술 한잔에 목소리는 거칠어지고 잔 부딪치는 소리에는 웃음이 넘쳤다.

“야, 장준우.”

무술 감독과 얘기 중이던 스턴트맨이 고개를 돌렸다. 이시현과 스파링 씬을 촬영한 친구다.

“예, 선생님.”

“관. 장. 님!”

으르렁거리듯 말하자 바로 호칭이 바뀐다.

“예, 관장님.”

“자식아. 회식도 촬영의 연장이야 임마.”

술잔을 두 손에 공손히 받치고 내미는 그에게 관장이 술을 콸콸 따른다.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넙죽 숙이는 모습에 관장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주 너 마음에 들어, 이시현 아구창 날린 놈은 지금 대한민국에 너밖에 없잖아. 팬들이 너 갈아 마신다고 벼르고 있다며?”

“쿨럭!”

한 모금 삼키던 장준우가 사레가 들려 캑캑거리자 관장이 대차게 웃었다. 그러자 무술 감독이 볼을 찌푸리고 말했다.

“아이고. 준우 좀 그만 놀려.”

“놀리긴. 예뻐서 그렇지. 근데, 우리 마스코트는 왜 안 오냐?”

관장이 송이경을 찾았다. 마침 술집 문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열리고 풍성한 머릿결을 흔들며 송이경이 들어왔다. 그녀가 오자 칙칙한 술집이 화사해진다.

“이경아, 왜 이렇게 늦어!”

“죄송합니다. 제가 소개해줄 친구가 있어서 데리고 오느라고요.”

“응?”

그제야 관장은 송이경 옆을 쳐다봤다. 아담한 키에 광대며 턱이며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매끄러운 얼굴. 피부도 곱고 눈도 큼직해서 술집 안 전경이 눈동자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이 여자는 대체.

“누구냐?”

“이지은이라고, 걸그룹이예요. 제가 아끼는 동생.”

송이경이 소개하자 이지은이 서둘러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이지은이라고 합니다.”

“오. 너 몇 살이야?”

“열아홉 살입니다.”

이지은이 눈을 살짝 치켜세워 말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많이 어려운 모습이다.

“어리다 어려. 얘 술 마셔도 되는 거야?”

“술 먹이려고 데려온 거 아녜요.”

송이경이 미간에 가볍게 주름을 잡고 눈을 흘겼다.

“그럼 뭐하러 데려왔어? 아 너 싫다는 게 아니라. 에이, 앉아!”

관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이지은을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질문 시작.

“그래, 큐티즈라고?”

“예. 선생님.”

이지은이 서둘러 대답하자 관장이 고개를 삐딱하게 흔든다.

“쓰읍. 얘 안 되겠다.”

“예?”

영문을 몰라서, 혹 실수했나 싶어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끌어올리자 옆에서 조연출이 아주 친절한 미소와 함께 설명했다.

“지은 씨, 선생님이라고 하면 안 돼.”

“암 그렇지.”

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조연출이 픽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라고 해야지.”

“암 그러··· 이 미친 X끼가.”

둘의 티격태격에 술자리에 웃음이 들썩인다.

걸그룹이 왔으니 스태프들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술 대신 음료수를 홀짝거리면서, 정치와 세상살이, 일에 관해서 얘기하던 아저씨들이 요즘 열아홉 소녀들은 뭘 하고 노는지 들으며 세월의 때를 벗긴다.

“그런데 지은이를 왜 술자리에 데려왔어. 차라리 촬영장에 데려오지.”

관장이 타박하자, 송이경이 머리를 질끈 묶으며 미소만 보인다. 그 모습에 이지은에게 시선이 팔렸던 남자들이 순간 정신을 놓쳤다.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싶다고 해서.”

“야, 너 이씨. 거짓말할래?”

말투와 달리 관장은 술기운에 붉어진 볼을 들썩거렸다.

“으이구 왜겠어요? 이유야 뻔하지.”

그리고 그 이유가 막 도착했다.

술집 문이 열리고 이시현의 스타일리스트가 먼저 올라왔다. 그녀를 제법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 스태프들도 있어서 반장선거 하듯 여기저기서 손을 흔드는데, 뒤로 최재환이, 그리고 다음으로는.

**

“시현아!”

관장이 번쩍 손을 흔들자 모두의 시선이 나한테 쏠렸다.

술집 종업원까지도 일손을 멈추고 부동자세로 나를 바라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람들을 향해 허리를 몇 번이나 숙인다. 광고주 미팅이 길어졌는데, 사실 쓸데없는 얘기들이 많았다.

그쪽에서는 컨셉 잡으려면 내 소소한 얘기가 필요하다는데, 내가 봤을 때는 주로 신변잡기 얘기였다. 뭐, 돈은 많이 준다니까.

아무튼 술이야 천천히 나누면 되는 거고, 일단 인사부터.

“감독님, 죄송합니다.”

“아휴 됐어.”

촬영감독이 손사래를 친다.

나는 조명팀, 연출팀, 미술팀, 조명팀을 거치며 얼굴도장을 찍었다.

최 감독은 임 작가와 단둘이서 대본 얘기 중이라서 살짝 인사만 하고 바로 관장이 있는 술집 한가운데 가장 긴 테이블로 왔다. 끝자리에 앉으려는데.

“야 꺼져!”

관장에게 엉덩이 걷어차이고 쫓겨난 조연출.

나는 얼떨결에 그 자리에 앉아서 술병을 손에 쥐었다.

“임마, 형이 너 기다려야 해?”

“죄송합니다.”

웃음을 가리며 술부터 한잔 따르려고 했는데··· 송이경 옆에 지난번 대기실에서 봤던 큐티즈 멤버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어? 지은 씨?”

“제 이름 아세요?”

“그럼요.”

유란이라는 애 이름밖에 몰랐는데, 신경이 쓰여서 프로필 한번 찾아봤지. 근데 고등학생이 술집에 왜 있는 거야.

“오빠, 제가 말했잖아요. 오빠 광팬이라고.”

아.

“하. 이거 영광인데.”

내가 자리에 앉자 이지은이 힐끗힐끗 보다가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에 다들 어린양을 놀리지 못해 안달이다.

“지은아, 시현이가 왜 좋아?”

관장이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물었다.

“내가 좀 이번에 알아야겠다. 요즘 시현이 좋다고 난린데, 나 그거 인정 못 해. 야 생긴 거로 따지면 내가 더 낫지.”

“관장님.”

“왜 임마?”

관장이 턱을 쭉 내밀고 나를 본다.

“이젠 받아들이세요.”

“뭘?”

“저 잘생긴 거.”

“어후 재수 없어. 내가 너 이래서 싫어 임마.”

술과 음료수를 채운 잔들이 한번 부딪치고.

“야 그래서. 너 얘 마음 받아줄 거야?”

아이고 이 아저씨 오늘 술 좀 받으시나 보네.

“지은이 고등학생이거든요?”

내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관장이 성을 내는데, 이지은이 불쑥 말을 꺼냈다.

“저 내년에 스무 살인데요.”

수줍어하면서 말하는 건 당돌하다.

다들 환호와 야유를 섞는데, 이지은이 음료수를··· 어?

“야, 그거 술이야!”

관장이 놀라서 손을 뻗기도 전에 이지은이 맥주가 담긴 잔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더니 잠시 눈을 질끔 감았다가 뜨더니, 입술을 훔치고 말했다.

“오빠, 전화번호 주세요.”

그 말 하려고 술기운이 필요했던 건가.

훗. 귀엽구나. 귀여워.

나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기대고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이지은이 꿈틀거리며 눈을 피했다가 다시금 나를 본다.

“미안.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예?”

당황하더니. 실망한다.

“진짜요?”

물론 놀란 건 다들 마찬가지고. 나를 보는 사람들.

“응. 그리고 여기 있어.”

“뭐야?”

“시현 씨 누구야?”

“누구예요. 시현 씨?”

삽시간에 술집이 인터뷰 장소가 됐다.

아무튼 나는 주위를 한번 슥 둘러봤는데, 이미 최재환과 서아린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눈치챈 듯 한숨이다.

“우리 여름이.”

나는 송이경을 보고 말했다. 그러자 관장이 입에 물고 있던 오징어를 집어 던진다.

“에이씨.”

재수 없다는 말을 실컷 들어야 했다.

**

결혼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관장의 얘기도 듣고, 장가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는 조연출의 하소연도 듣고, 죽을죄를 지었다는 장준우의 술주정도 들어야 했다.

나도 약간 알딸딸하게 술기운이 올라와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지은이 여전히 미련을 가지고 묻는다.

“오빠, 저 그럼 아직 기회 있는 거죠?”

밝은 얼굴이 보기는 좋다.

다만 아까 한잔 마신 탓에 하얀 얼굴이 분홍빛이 감돈다.

송이경은 무슨 생각으로 얘를 데리고 온 거야.

“아, 잠시만요.”

이지은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벌써 몇 번째인지.

휴대폰이 쉼 없이 울린 탓이다.

“요즘 걸그룹은 휴대폰도 들고 다니네.”

“회사에서 줬나 봐요. 감시용.”

송이경이 그 말을 속삭이며 나를 비스듬히 바라본다.

그런데, 아직 내가 키스 씬의 여운이 남아 있단 말이지. 그러니 내 얼굴 좀 그만 들여다봤으면 좋겠는데.

“왜?”

“그냥요. 잘생겨서.”

“그만해.”

“왜요? 진짜예요.”

“오늘은 너무 많이 들었어. 지겨워. 12시 지나면 얘기해.”

너스레 한번 떨었더니 송이경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그사이 이지은이 왔는데··· 어라? 혼자가 아니다.

“선배님?”

배우 하승진의 등장에 송이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웅성이는 스태프들. 취기가 제법 오른 관장도 눈을 비비적거린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야 승진아. 너 여기 웬일이야?”

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지은이 저희 소속사잖아요. 근처에 온 김에 데리고 가려고요.”

“이야, 여기도 재수 없는 놈이 있었네.”

관장의 걸걸한 웃음에 하승진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만 깜빡이다가 미소를 드러낸다. 관장이 손을 흔들어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리와. 온 김에 한잔하자.”

“지금 가봐야 해서.”

하승진의 난처한 미소가 이지은에게 향했다. 머뭇거리는 지금, 나도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 이시현입니다.”

“아휴. 만나서 반가워요. 우리 오빠 진짜 재밌게 봤는데. 이번 드라마도 벌써부터 재밌을 거라던데요?”

하승진이 유난스러울 정도로 나를 반긴다. 그런데 기분 나쁠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뭘요.”

떠오르는 스타와 이미 떠오른 스타.

우리 둘의 만남에 스태프들은 즐거운 모습인데, 나는 지금 기분이 더럽다.

“괜찮으시면 합석하시죠.”

나는 일부러 녀석의 팔을 붙잡고 제안했다.

미묘하게 꿈틀거리는 눈썹과 서늘한 시선이 내 얼굴에 닿아도 가뿐히 무시하고, 나는 미소만 빙글빙글 지어 보였다.

“아휴 미안해요. 내가 스케줄이 있어서.”

“그러시구나.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아. 그럼 지은이 제가 데려다줄게요.”

“어?”

“바쁘신데 굳이 지은이 숙소까지 가실 필요 없으시잖아요? 걱정하시는 건 알지만, 저희가 책임지고 데려다주겠습니다. 그치 형?”

나는 최재환을 바라봤다.

녀석이 잠시 하승진을 쳐다본다. 그 시선에 많은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걸 최재환도 떠올리고 있을 거란 말이지.

“그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이지은을 보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우리가 데려다줄게.”

“저야 좋죠.”

이지은이 환한 미소를 끄덕이자, 방금 막 하승진의 볼이 파르르 떨렸다.

“그럼, 에이 그냥 나도 한잔하고 갈까?”

하승진이 제 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매니저에게 가서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오더니 굳이 이지은의 옆자리에 앉는다.

“자 한잔.”

관장한테 한잔 시원하게 받더니 나를 흘겨보고 꿀꺽.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고민도 할 겸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 물을 틀고, 세수 한번 하고, 거울에 하얀 김을 새기는데 문이 열리고 하승진이 들어왔다.

‘쫓아온 거야?’

하승진이 바지춤을 매만지며 말했다.

“굳이 뭘 데려다주려고 그래?”

이 자식. 바로 반말이네.

“선배님 힘드실 것 같아서요.”

“아니 언제 봤다고 날 걱정이야.”

갑자기 비틀어진 말투에 나는 하승진을 자세히 바라봤다.

뭐야. 너 겨우 이정도에 본 모습 드러낼 놈은 아니잖아?

“선배님이니까요.”

“후배님이, 너무 과하게 엉겨 붙는다.”

이 자식이 진짜 약 먹었나.

“훗.”

“웃어?”

하승진의 검은 눈썹이 구겨진다. 그래서일까. 나는 왠지 긴 밤이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서 말했다.

“선배··· 저 싫죠?”

< 거칠거나, 아니면 부드럽거나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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