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와 나 사이에 (3) - 수정 >
“아이고······.”
기자의 눈에 비친 대기실 풍경.
좁다는 말로도 부족한 그곳에 지난달 데뷔한 걸그룹 큐티즈 멤버들이 맨바닥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앉아 있었다.
코디와 헤어 담당은 아예 앉을 생각 없이 벽에 기대 서 있고.
“그나마 다른 팀이랑 안 섞인 것만으로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에요.”
큐티즈 실장이 속없이 허허 웃으면서 애들을 깨웠다.
“얘들아, 기자님 오셨다!”
모이 찾는 병아리마냥 일어난 아이들이 눈 한번 깜빡이더니 금세 밝은 얼굴로 변했다.
저 얼굴에 가면이 몇 개나 덮여 있을까를 떠올리며, 기자는 그녀들의 인사를 받았다.
“세러데이 서울 이우정 기자님이야 인사드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세상에 오직 다섯 개뿐인 예쁜 인형, 큐티즙니다!”
분명, 얘네도 지금 부끄러울 거야.
그런 생각이 드는 오글거리는 멘트지만 이우정은 애써 침착한 미소를 띠고 그녀들을 바라봤다.
간단한 인터뷰와 사진 몇 방 찍고, 대기실을 나오는 이우정에게 큐티즈 실장이 따라붙었다.
“기자님, 이거 팸플릿 놓고 가셨는데.”
대기실 복도에 자갈처럼 깔린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그녀는 두툼한 팸플릿을 서둘러 가방에 밀어 넣었다.
“기사,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요.”
“아휴, 걱정 않죠. 기자님이 누구예요? 그 이시현도 키우신 분인데.”
능글능글 입꼬리를 흔드는 실장의 모습에 이우정 역시 웃어 보이는데, 저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무리 여자들이 눈앞을 스쳐 뛰어갔다.
“팬들 들어왔나?”
이우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가끔 대기실까지 팬들이 몰래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런가 보네. 우리 큐티즈도 지난번에 당했잖아요. 변태 같은 놈들이 애들 간식에다가 침을 바르고 있더라니까.”
큐티즈 실장이 혀를 내두르는데, 마침 큐티즈 막내 멤버와 코디가 대기실에서 나왔다.
“화장실 가려고?”
“예.”
바람에 쓸려갈 듯 여리여리한 몸에 눈은 또 어찌나 큰지.
‘확실히··· 인간미가 없어.’
이우정이 스스로에게 넘치는 인간미를 선사하는 동안, 큐티즈 막내가 화장실에 갈 생각은 안 하고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숨을 헉, 입을 쩍!
“응?”
“안녕하세요.”
눈을 돌린 이우정 앞에 이시현이 인사를 꾸벅하며 스쳐 간다.
“우와.”
큐티즈 실장과 코디가 일제히 넋을 놓고 이시현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
“욱아, 문 앞에서 좀 서 있어라. 사람들 못 들어오게.”
최재환의 말에 슬기 매니저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여기 스태프들은 뭘 그렇게 점검할 게 많은지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고, 여자 가수들은 슬기에게 인사한다고 찾아오고, 다른 회사 매니저들은 최재환에게 농담 따먹기나 하겠다고 찾아오고, 그러면서 다들 나가기 전에 나하고 악수는 왜 하는 거야.
지금 나는, 만지면 아들 낳는 돌이된 기분이다.
“와, 인사 한번을 안 오던 애들이 오빠 왔다니까 보러 오네.”
혀를 내두르는 슬기와 달리 최재환이나 서아린은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요즘 들어서 쟤들이 너무 한가해진 느낌이랄까.
생각해보니 아주 나를 방임하고 있다.
아무튼 오는 동안 차 안에서 입을 풀었기 때문에 리허설에 앞서 슬기와 편곡 버전을 한번 맞춰보고, 리허설 순서를 기다렸다.
“오빠, 우리 세 번째지?”
슬기가 최재환을 향해 리허설 순서를 물었다.
“어.”
세 번째면 그나마 빠른 거다.
카메라 감독, 무대 감독이 리허설 때 눈에 불을 켜는 리허설 무대.
지미집, 스탠드 카메라, 조명, 음향··· 한팀한팀 그걸 다 맞추다 보면 대기 시간이 정처 없이 흘러간다. 그뿐인가. 준비 중에 무대 사고라도 나면 무한정 대기다.
“형.”
“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최재환이 고개를 든다.
“욱이 그냥 들어오라고 해.”
“그래.”
싱거운 대답.
최재환이 일어서는데,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중고차 딜러 같은 회색 정장을 입은 사내놈을 필두로, 하늘하늘한 레이스 치마에 총천연색 머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사내놈이야 감흥 없고, 여자들을 딱 보자마자 저거 관리하기 더럽게 힘들겠구나 싶다.
조금만 자라도 뿌리 염색해야지, 모발 손상 막으려 트리트먼트 해야지, 스케줄 많으면 밤늦게라도 샵을 찾아야 한다.
한마디로 병든 닭 신세로 만드는 게 여자들 머리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세상에 오직 다섯 개뿐인 예쁜 인형, 큐티즈입니다!”
내 손과 발이 어디에 있는 건가.
“얘들이 다 시현 씨 팬이라서요.”
중고차 딜러가 서글서글한 눈웃음과 함께 말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명한명 악수를 나눴다.
그러자 보라색 머리에 앳된 얼굴이 잔뜩 들떠서, 나를 삼킬 듯이 입을 벌리고 함박 미소를 보인다.
“오빠, 저 완전 오빠 팬이에요.”
그 말을 시작으로 내 히스토리가 줄줄 흘러나온다.
드라마에서 어떤 장면이 좋았고, 어떤 대사가 좋았고, 내 노래를 매일 밤 자기 전에 꼭 듣는다는 얘기···
근데 대체 내 집 주소는 왜 알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설마, 너도 그 또라이 과는 아니겠지?
어찌 됐든 내 광팬인건 알겠는데, 큐티즈가 내 팬이라니.
이거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얘들 곧 신문 1면에 실릴 테니까. 그것도 열애설로.
“저도 유란 씨 팬이에요.”
내가 빙긋 미소 짓고 말했는데, 그녀가, 애들이 다 굳어버렸다. 옆에 있던 중고차 딜러가 놀라서 입술을 벙긋거린다.
“우, 우리 애 이름을 어떻게 아셨어요?”
“유란 씨 팬이라니까요?”
대충 얼버무리자, 큐티즈 애들이 좋아서 발을 동동 구른다. 그렇게 좋은가.
아무튼 애들이 슬기에게 꾸벅 인사하고 대기실을 나가자, 폭풍이 지나간 듯한 기분인데, 욱이가 열린 문을 닫으며 들어왔다. 그런데 그 사이로 발이 쏙.
“기자님은 안된다니까.”
카메라 리허설을 마쳤더니 밖에 해가 떴다.
일단 배부터 챙기고 싶은데. 이렇게 진 빠진 날은 순댓국에 소주 한잔하면 딱이건만.
“배고프지?”
“바나나 우유 두 개 사줘.”
시체가 돼 중얼거리는 내 모습에 최재환이 피식 웃는다.
뭐, 먹는 것 줄이는 거야 이제 이골이 나서 아무렇지 않다. 그저 술만 여전히 땡긴다는 것.
“아 한잔 땡긴다.”
“이게 아침부터 술타령이야.”
“그동안 못 마셨잖아. 다이어트 때문에.”
내 투덜거림에 최재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어디서 앙탈이냐고, 징그럽다고 난리인데, 슬기가 허공에 검지를 톡 내밀면서 말했다.
“눈 오는 날은 오뎅에 소주.”
“더운 날은 맥주만 있어도 좋고.”
욱이 저 자식은 한술 더 뜨네.
“아 이 악마들.”
킥킥 웃는 악마들.
“어차피 사녹 들어가기 전에 샵에 또 들려야 하는데, 잠깐 차에서 쉴래?”
최재환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집에 가면, 나 슈퍼로 뛰어갈지 모른다.
“녹음실 가자.”
장난은 여기까지.
방송에 얼굴 자주 비치는 것도 아닌데, 팬들에게 최대한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다. 대본도 봐야 하고.
“훗. 그래.”
최재환은 이미 답을 예상했다는 얼굴이다.
그러다가 멈칫하더니 묻는다.
“너 아까 큐티즈 애들 어떻게 알아? 솔직히 나도 몰랐던 애들인데.”
“그냥 어디서 들었어.”
내 말에 최재환이 능글능글한 눈웃음을 띠고 나를 본다.
또 무슨 생각인지.
“그 애가 니 취향이야?”
“누구?”
“유란인가 뭔가 하는 애.”
대꾸할 가치도 없다. 걔들 고등학생이거든 자식들아.
아청··· 여긴 그런 거 없지만. 아무튼 내 취향 아니다.
“말해. 내가 번호 따줄게.”
“맘에도 없는 소리 하시네.”
최재환 이 자식 오늘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리고 옆에 있던 슬기도 지금 반쯤은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모양새고.
“오빠, 진짜 걔한테 관심 있어요? 다리 놔줄까?”
“너까지 왜 그러니?”
정작 저렇게 말하는 슬기를 눈독 들이는 남자들도 많다.
지금 슬기 인기도 만만치 않아서, 최근에는 광고도 늘었고 행사 페이도 많이 올랐다.
그래서 우리 둘이 함께하는 광고 요청도 많은데, 내가 끼면 페이가 너무 올라서 성사되지 못한 건이 꽤 있다고 들었다.
내가, 이제 그 정도 급이란 얘기다.
“아, 오빠 그거 봤어요?”
“뭐가?”
“카페에 오빠 주인공으로 한 소설 되게 많던데.”
아, 인터넷 소설.
지금이 인터넷 소설 붐 일 때라서 카페에 그런 소설이 많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되게 재밌어.”
슬기가 빈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 웃는다. 그러더니 최재환을 보며 눈을 반짝인다.
“나 엊그제 본 거는, 오빠하고 시현이 오빠가 여주인공을 가지고 싸우는 거야.”
“뭐어?”
최재환이 얼굴을 찌푸린다. 나도 헛웃음.
“근데 여주인공이 결국에는 재환이 오빠 택한다.”
“뭐?”
“그치 말도 안 되지?”
슬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그러자 최재환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야, 말 안될 건 또 뭐야?”
“팀장님, 말은 안 되지 말입니다.”
“욱이 너 요즘 살맛 나나 보다? 그리고 말입니다?”
“농담입니다. 팀장님도 시현 씨 못지않죠. 그렇지 않습니까, 아린 씨?”
가까스로 웃음을 참은 욱이가 서아린을 돌아봤다.
아린이 콧바람이 저리 셌던가.
“이것들이 아주 나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지.”
최재환이 피식거리며 일어난다. 실컷 놀린 사람이 누군데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가자.”
**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모자를 푹 눌러쓴 작가의 질문.
트라이포드에 고정된 ENG 카메라에 붙은 ‘VJ 스페셜’ 스티커를 본 단발머리 여자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시현 수포 카페 부회장 조별아라고 합니다!”
“별아 씨··· 왜 이시현이 좋아요?”
“음, 시현이 오빠는 거리감이 크게 안 느껴지거든요.”
“왜? 이시현 지금 엄청 스타잖아?”
“그러니까, 음··· 그런 거예요. 단순히 멀리서 볼 때는 와 대단하다 하는 그런 스타인데, 가까이서 보잖아요? 막 뿌듯하고, 막 오빠 같고. 막 그래요.”
“맞아맞아.”
카메라가 너도나도 아우성인 팬들을 잡는다.
줌아웃을 해야 겨우 뷰파인더에 들어올 정도로 많은 팬.
신관 입구에 모인 이시현의 팬들은 다른 팬들을 압도하는 규모였다.
그 앞에서 확성기를 든 조별아는 인터뷰를 마치고 들뜬 얼굴로 아침 공기를 들이켜고 있다.
“우리 다들 질서 정연하게, 오늘을 즐깁시다!”
시현 수포에게 오늘은 잔칫날이며, 이시현 사진 잔뜩 찍을 수 있는 날이다.
조잘조잘 대화가,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새벽부터 마치 자석에 붙은 쇳가루처럼, 이 많은 사람이 바글바글 모였다. 그래서 조별아는 너무 즐거워서 입 주위가 아플 정도였다.
“우리 막내들, 학교에 아직 전화 못한 사람?”
중고딩 팬들은 학교도 빼먹고 왔다. 그래서 언니 팬들이 대신 학교에 전화도 해주고 있었다. 아프다고, 집에 일 있다고.
이시현 팬들은 X세대 N세대 구분이 없으니까.
심지어 지방에서 새벽에 올라온 친구도 있고, 전날 도착해 근처 여관에서 자고 온 친구들도 있었다.
드라마 촬영장과 달리 방송국은 꽤 가까이서 이시현을 볼 수 있기에, 오늘은 놓칠 수 없는 스페셜데이.
“언니, 지금 오빠 리허설 끝났대요!”
음악뱅크 FD가 친구라는, 운영진 ‘내사랑시현’이 전화를 끊고 바로 조별아에게 보고 했다.
오늘 이시현은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여길 떠나서 샵에 들리고, 삼성동 C&C에 들렸다가, 다시 여기 와서 최종 리허설 및 사전녹화.
그러니 그거 끝날 때까지 오늘 반나절은 여기서 눌어붙어 있을 팬들이다.
“자, 다들 모인 김에 얘기할게.”
조별아가 확성기를 탁탁 두드리더니.
“조만간에, 지에스에서 이벤트 한답니다!”
회장에게 전해 들은 따끈따끈한 소식.
“무슨 이벤트요?”
“정확한 건 곧 공지가 올라올 건데, 우리 시현 오빠가 팬들하고 좀 더 가까워지려고 직접 아이디어 냈대요.”
조별아는 흡족한 미소와 함께 기쁜 소식을 전했다.
회장은 아주 놀랄만한 스페셜한 이벤트라고 했다. 그것도 무려 1탄. 앞으로 2탄도 있고 3탄도 있다는 귀띔까지.
대체 무슨 이벤트일지, 벌써부터 다들 기대감으로 눈을 빛내는데.
“언니, 지금 오빠 나온대요!”
이시현이 나온다는 소리에 다들 매의 시선으로 신관 입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뒤.
“오빠아!”
그 외침을 시작으로 이시현이 나타났다.
곰 매니저가 선두에서 걸음을 서두르고, 슬기 일행도 뒤따라 나온다.
“오빠! 오빠!”
VJ 스페셜의 카메라도 이시현에게 향하고, 껑충껑충 뛰는 팬들. 그 모습을 본 이시현이 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갑자기 매니저와 실랑이다.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VJ 스페셜 작가가 물었다. 그러자 조별아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저럴 때면 뻔해요.”
팬들한테 와서 밥은 먹었냐. 집에 가라. 학교 안 가고 여기서 뭐 하냐. 니들 혼난다···
잔소리 이시현 엄마가 될 게 뻔한데, 오늘따라 곰 매니저가 너무 이시현을 가로막는다. 뭔 얘기하나 가만히 들어보니··· 이시현은 잠깐 얼굴 보고 올게, 매니저는 이따가 봐라.
“뭐야? 왜 저래?”
“야 곰 매니저!”
“우리 오빠 내놔!”
“내 쓸개 가져가고 시현이 내놔라!”
이제 팬들은 일제히 제 입에 두 손을 모았다.
“우우우!”
결국 최재환이 고개를 내저으며 이시현을 풀어줬다.
그러자 이시현이 환히 미소 짓고 또 뭔가를 얘기하더니, 팬들을 돌아보고 손을 막 흔든다.
자지러지는 비명에 놀란 VJ 스페셜 작가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말했다.
“어째 스타가 팬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그런 사이예요. 후후.”
“아, 지금 미소 좋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조별아의 미소가 아침 햇살과 함께 들어왔다.
< 스타와 나 사이에 (3) - 수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