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136화 (136/227)

< 스타와 나 사이에 (1) - 수정 >

「삼성동 지에스 C&C, 2001년 1월 29일 월요일」

“병원에서는 확실히 이상 없대?”

“예.”

차 대표가 이시현의 상태에 꽤 신경 쓰는 모습이다.

하지만 MRI 촬영 결과도 이상 없었고, 연휴 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내가 일일 피디다!’ 촬영 때도 잘만 뛰어다녔고.

“스턴트맨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촬영 중 일어난 실수라고, 시현이가 크게 문제 삼지 말자고 얘기해서 그냥 넘기기로 했습니다.”

최재환은 슬쩍 차 대표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다행히 그 일을 더 꺼낼 것 같지 않자, 지난 한주 2팀에서 있었던 일들을 빼곡히 보고 했다.

연휴라서 큰일은 없었는데, 그 기간 일본에 있었던 차 대표는 얘기를 꽤 신중히 귀담아들었다.

‘식은땀이 나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인데, 이제는 차 대표와의 독대가 잦아진 최재환이다. 그리고 마주할 때마다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고.

“그리고 말이야.”

뿌드득 소리와 함께 소파에서 일어난 차 대표가 풀어진 손목 단추를 채우며 다시 말했다.

“한희영이 난리야. 왜 활동 안 하냐고.”

최재환은 레코드사 대표 한희영을 떠올리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현재 이시현의 음반이 70만 장을 넘겼다.

굉장한 숫자이긴 한데, 또 굉장한 것도 아니다. 이미 발매 전 선주문이 15만 장을 넘겼으니까.

“왜 이렇게 판매량 증가가 더디냐고 난리야.”

거기다 이제는 하락새.

“아무래도 길거리 행상 때문에.”

“나가봤어?”

“예, 금요일에 명동하고 종로 쪽 돌아봤습니다.”

가봤는데, 길보드 차트 2위로 내려갔다.

1위는 얼마 전에 발매한 이미현의 ‘연가’가 차지했다.

“어떻게든 이시현 설득해서 음악 방송 나가.”

차 대표의 말에 최재환은 입안 바람을 속삭이듯 집어넣고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날숨을 뱉었다.

‘설득하라고?’

그 말에 왠지 콧바람이 나온다.

물론 이시현의 계약서에 최대한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달라고 명시돼있지만, 그래도 저 차 대표가 남한테 설득이라는 말을 하다니.

‘그나저나 어떻게 설득하나.’

지금 역할에 제대로 몰입해 있는 놈인데.

그러니 배우 이시현이 아니라, 복싱선수 장태원에게 음악방송 나가라는 것과 똑같다.

“오늘부터 경호팀 붙던가?”

“예.”

이제는 팬들 감당하기도 힘들고, 지난번 최미숙의 장난질이나 이번 사고 같은 경우를 생각하면, 진즉부터 붙을 일이었다.

“당분간은 기자들과도 거리 둬.”

“예.”

“나가 봐.”

얘기를 끝나고 나온 최재환은 대표실 문이 닫히자마자 세상을 다 얻은 듯 긴 한숨을 쉬었다.

대표실 비서가 그를 흘깃 본다. 그래서 손에 든 수첩으로 제 목을 툭툭 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휴대폰이 부르르.

‘응?’

이우정 기자였다.

하지만 방금 기자들과 거리를 두라는 말을 들은 터.

**

「세러데이 서울」

담배 냄새, 스킨 냄새, 가글 냄새, 퀴퀴한 체취까지.

뒤늦게 회의실에 들어온 이우정 기자는 뒤죽박죽 섞인 냄새 속으로 곤두박질친 기분이었다.

“일찍일찍 다니자.”

부장이 혀를 차며 쏘아본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의자를 빼 앉아 수첩이며 서류며 이것저것 펼쳐 들자, 부장이 작은 눈의 남자를 돌아보며 고갯짓했다.

“방송 쪽부터 얘기해봐.”

“내가 일일 피디다, 그거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은데요?”

“뭘 어느 정도인데?”

그 일이야 이미 기사가 한번 도배를 했고, 아직까지 후폭풍이 이어지는 중인데, 또 뭘?

“시청자들 문의가 계속 있나 봐요. 걔들 누구냐고. 그 때문인지 KIS 쪽에서는 그거 정규로 끌고 갈 것 같더라고요.”

“그래?”

부장이 숱 많은 눈썹을 흔들며 고개를 갸웃한다.

결국 요점은 지에스에서 얘들을 어떻게 할까인데, 이때 가요팀 여기자가 끼어들었다.

“지에스 3팀장 찔러봤는데.”

3팀장이면 연습생 관리팀장.

“봤는데?”

“데뷔는 시기상조고, 일단 CF 제의를 두고 어떻게 할지 고민인가 봐요.”

“연습생들한테 CF 들어왔어?”

부장이 눈을 살짝 치켜뜨자,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든다.

애들 마스크가 좋았네, 감동이 어쩌고, 지에스에서 노렸다느니 등등.

“좋아. 그거는 좀 더 보충해서 내일 털고, 그리고 SN 쪽은 어떻게 되는 거야? 하이파이브 애들 재계약할 때 됐지 않아?”

“뭐 재계약하지 않겠어요? 가요계 톱인데.”

“제대로 조사해. 은밀하게 말이야. 괜히 기사 풀해서 지난번처럼 물먹지 말고.”

“스카이데일리 새끼들 쓰레기라니까요. 지들은 기삿거리 있으면 꽁꽁 싸매면서 우리한테 풀하자고 헤헤거리고.”

지난번 기사를 뺏긴 걸 떠올리며 구시렁대는 여기자 모습에, 부장이 볼을 찌푸리고 오히려 나무란다.

“선수 뺏긴 니가 등신이지. 쯧쯧. 그럼··· 이제 우리 이시현 팀.”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 변했다. 기대감이 철철 넘치는 부장의 시선이 닿자, 이우정 기자가 덥석 수첩을 손에 쥐었다.

“뭐 새로운 거 없나?”

미원 잔뜩 친 미소까지.

“슬슬 캐봐야죠. 제가 또 그쪽은 꽉 잡고 있잖아요.”

“이햐, 확실히 직통 라인은 틀려.”

“아휴 또 뭘.”

회의가 끝나고 각자들 업무를 보러 회의실을 빠져나가는데, 부장이 이우정 기자를 불러세웠다.

“왜요?”

텅 빈 회의실, 그녀가 뻘쭘한 얼굴로 다가오자, 부장이 그녀를 슥 올려다봤다.

“지난번 연제협 사건처럼 좀 강한 거 없어? 괜히 지에스 봐준다고 빼지 말고.”

지에스 최재환이 폭력 매니저로 낙인이 찍히면서 연제협과 갈등이 있었던 그 사건, 이시현이 은퇴까지 불사르며 최재환을 지켰던 그때 그 특종.

“부장, 저 이우정이에요.”

“알지 너 이우정인 거. 근데 너 연휴 전날 지에스 들렸지? 거기서 얼마 낑 했어?”

부장이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랗게 만들고 그녀를 눈에 담는다. 가자미 눈을 보니 이미 어느 정도 금액은 유추한 듯한데.

“아니 뭘··· 그런 걸 물어봐.”

기자들 박봉에 그거라도 없으면 굶어 죽으라는 소리다.

“임마 적당히 받아먹으라고. 그런 거 많이 받아먹으면 체하는 거야. 낼 거 못 내고, 내지 말아야 할 거 내고. 안 그래?”

“조심하겠습니다.”

“그만 가 임마, 가서 뻗치기나 해.”

“옙, 부장!”

**

인산인해라는 말을 곳곳에 써 붙여 놓은 것 같은 현장.

촬영 현장 입구는 팬들과, 연예매체 기자들과, 방송국 연예정보 프로그램까지 아주 시장바닥이 따로 없다.

“여러분 뒤로 물러나세요.”

깔끔한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현장 주변을 철통같이 지키며 가이드라인을 경계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우정은 팬들 틈새 속을 가로질러 기자들 라인에 겨우겨우 자리를 텄다. 그마저도 카메라들이 먼저 꽈리를 틀고 있어 작은 몸 하나 구겨 넣는 수준이었다.

“언제 나오는 거야?”

기자들이 초조한 얼굴이다.

찬바람에 얼굴이 트고, 피부는 다 망가진 인간들.

“아니 이시현 얼굴 한번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

“그거 차 대표 특기 아니야. 잘 나갈 때 숨겨놓아서 한창 달아오르면 그때 또 깔짝 풀고. 박한영 때도 그러더니만 이번에는 더하네.”

“그래도 연예가소식하고, 한밤 팀은 어제 얼굴 한번 담아갔다는데··· 색션 쪽만 지금 못 건져서 난리잖아.”

“지금 방송 애들이 문제야? 내 코가 석 자야. 걔들은 어떻게든 잡겠지.”

“야 이우정.”

실컷 떠들던, 까치 머리에 살이 뒤룩뒤룩 찐 기자 하나가 이우정에게 손을 흔들었다. 스카이데일리 연예부 기자다.

“넌 뭐 없어?”

“뭐가 있어?”

“그러지 말고 같이 좀 풀하자.”

이우정은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남방셔츠 사이로 뱃살이 툭 튀어나와서 그녀를 찌를 모양새였다.

“나한테 빨대 꽂을 생각하지 말고, 네가 찾아드세요.”

이우정은 듣는 시늉도 안 하고 경호원들 틈새를 요리조리 기웃거렸다.

크레인 보이고, 조명 장비 보이고, 제 몸만 한 반사판 든 스태프 보이고, 장비 차량 보이고, 배우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갑자기 팬들 쪽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카메라와 캠코더를 쥔 소녀들의 시선이 향한 곳.

“강 실장이다!”

스카이데일리 기자가 눈을 들썩이자, 이우정 기자도 작은 키를 껑충 뛰며 손을 흔들었다.

“실장님!”

이상하다. 잠깐 시선이 마주친 것 같은데, 강 실장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한밤 팀에게 향했다. 뭔가를 숙덕거리더니, 가이드라인 너머로 한밤 팀이 쑥 들어간다.

“씨x 뭐야!”

“와, 공중파라 이거지?”

“KM하고 엔넷 애들 얼굴 봐라.”

케이블 방송 연예정보 프로그램 팀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마냥 허리춤에 손을 얹고, 방금 막 지어서 따끈한 화를 쏟고 있었다.

‘아 씨.’

안 되겠다 싶어서, 이우정 기자는 휴대폰을 들어 최 팀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잠시 뒤.

[미안한데, 당분간은 좀 힘들겠어요.]

“어?”

최 팀장이 이럴 사람이 아닌데.

힘들면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찌푸린 그녀의 얼굴에 찬바람이 휭휭 스치기를 30분.

촬영이 끝났는지 스태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비해, 준비!”

담배만 줄기차게 피우던 기자들이 서두른다.

이시현은 가끔 촬영 끝나면 팬들에게 얼굴을 비추기 때문인데, 특이하게 유독 팬들하고 가까운 스타다.

“이런······.”

오라는 이시현은 올 생각 안 하고 경호원들이 차량이 빠져나갈 공간을 만들자, 기자들이 성질나서 단내를 쏟아붓는다.

“송이경 나간다!”

제일 먼저 여배우 송이경의 밴이 빠져나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니발이었는데 밴으로 바뀌었다.

해가 떨어지려는 오후,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잠시 사방을 환하게 만들고, 다시금 어둠 속에서 조명에 의지하면서 팬들과 기자들은 눈이 빠져라 기다렸다.

차만 나오면 일단 플래시 들썩이고, 팬들 들썩이고.

미니버스, 장비 차량, 배우들 차량이 빠져나가는데, 이시현의 차는 대체 언제 나오는 건지.

“진짜 나오나 보다.”

경호원들 움직임이 예사치 않다.

톱스타의 경우 가이드라인 무너져서 사고가 날 것을 대비하느라 빠져나가기까지 준비과정이 배로 든다.

그리고 마침내.

검은 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저 앞코만 드러냈을 뿐인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환호성이 터졌다.

“오빠!”

갈라진 목소리를 시작으로 팬들이 난리다.

심지어 울먹이는 팬도 있다. 차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열렸다!”

차 문이 열리고, 마침내 이시현이 내렸다.

연휴 전보다 한층 더 말라 보이는 미소와 함께 팬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데, 카메라 플래시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빠 몸 괜찮아요?”

“시현 씨! 여기 좀!”

“다친 데 어디예요? 쉬어가면서 일해요!”

“시현 씨 포즈 좀 취해줘요!”

“우리 오빠 그렇게 만든 사람 누구야!”

기자들과 팬들이 정신없이 외치는, 이 개판 오 분 전 상황에서, 이우정도 운 좋게 이시현과 눈이 마주쳤다.

“설날 방송에 출연한 연습생들한테 좋은 소식 있다고 하던데, 시현 씨 뿌듯하시겠어요?”

이우정이 그나마 제대로 된 첫 질문을 했다. 그러자 이시현의 시선이 온전히 그녀에게 닿았다.

“기자님들, 애들 기사 잘 부탁드려요.”

미소를 생긋 보이고 그는 다시 차에 올랐다. 곧장 빠져나간 차량에 허탈함도 잠시.

“아이고 겨우 하나 건졌네.”

기자들이 한숨을 휴 내쉰다.

“야 이우정 넌 뭐했냐?”

그녀는 사진 하나 안 찍고 질문만 하고 끝이었다. 그러면서 입술 한번 훔치고 뒤로 물러난다.

‘에이.’

지금, 괜히 이시현에게 서운한 그녀다.

‘기자님들이라고?’

마치 다른 기자들과 하나로 싸잡아버린 것 같은 뉘앙스였으니까. 그래서 왠지 너무 멀어진 것 같은.

‘왜 이러지.’

가슴이 뭔가 얹힌듯한 기분이다.

“이 기자, 안 가?”

스카이데일리 기자가 넌지시 묻는다.

생긴 건 꼭 춘향전에 나오는 사또 같이 생겨서, 눈동자에 저질 변태라고 씌어있는 놈인데, 전부터 계속 깔딱거리고 있다.

“차 안 가져왔으면 태워줄까?”

“내 다리 튼튼하거든! 이게 넘볼 걸 넘봐야지! 내가 만만해? 확 그냥!”

< 스타와 나 사이에 (1) - 수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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