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를 구하는 방법이 필요할 때 (5) >
“야! 안에 준비 다 됐대?”
“10분 뒤에 나온답니다.”
최재환이 작가 하나와 스타일리스트를 대동하고 연습생 숙소에 들어간 지 30분이 지났다.
연습생들이 카메라 앞에 설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올 동안, 제작진도 분주했다. 찬바람에 얼굴이 얼어붙든, 머리카락이 춤을 추든 신경 쓸 겨를없이 바삐 움직여도 부족한 게 현장 준비다.
“임마 생방송을 하려면 스튜디오에서 하지, 왜 현장에서 생고생이야! 중계차 한번 나오면 다들 개고생하는 거 몰라? 그리고 저 포장마차는 또 뭐야?”
생중계 때문에 현장에 지원 나온 예능국 씨피가 스태프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으르렁거린다.
“그래도 이시현이 출연하잖아요. 이시현 출연이 어디 보통 일이에요?”
설 특집을 기획한 강 피디가 눈치를 살피며 입을 오물거리자, 빈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 자식 뚫린 입만 아니면··· 넌 임마, 이시현 아니었으면 내가 벌써 갈아 마셨어! 하여간 방송사고 나기만 해봐.”
60분 방송에서 40분은 슬기가 삼척에 있는 정다영 부모님을 서울에 모셔오기까지 과정, 이후 20분은 현장에서 바로 이원 생중계된다.
“아니 문제 있으면 바로 스튜디오로 넘기면 되는데 뭘.”
“확 그냥! 그러다 누가 끼어들어서 옷이라도 벗어젖히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무시하고, 강 피디는 서둘러 슬기를 찾았다. 그녀도 나름 일일 피디라고 차에 있지 않고 밖에 나와 스태프들 사이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슬기는 안에 있지그래?”
“에이, 그래도 피디가 현장에 있어야죠.”
짧은 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그녀가 옅은 미소를 보이자, 조연출이 옆에서 속삭였다.
“그러지 않아도 돼요. 우리 피디님은 맨날 차에 있는데.”
“이 자식이.”
조연출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강 피디는 작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도 슬기 덕에 살았어. 이시현이 도와준다니까 한시름 놓이네.”
오늘 연습생들은 ‘타향에서의 한 끼 저녁’이라는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줄로만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검합니다!”
중계차, 현장 조명, 마이크, 카메라 스탠바이.
연습생들이 나오기 전에 슬기는 미니버스에 잠시 들렸다.
그곳에 정다영 부모님이 구부정하게 붙어 앉아 있었다. 불편해 보이고, 실내등이 닿아 만든 그림자는 마치 시간이 겹겹이 쌓여 굳은 돌 같았다.
“아버님, 이제 곧 다영이 보실 텐데 기분이 어떠세요?”
곁에 간 슬기는 투박한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물었다.
바닷바람이 새겨진 검붉은 피부는 단단하고 거칠었다.
“떨리네요.”
말 그대로 꾹 다문 입술이 흔들렸다.
“아버님, 다영이하고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언제세요?”
“애가 서울 가고서는··· 통 해본 적이 없어서.”
그 말을 하고 그는 입술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몸에 밴 바닷냄새를 토해내는 것 같았다.
“내가 많이 반대했습니다.”
“왜요?”
“그런 거 아무나 하냐고. 니 주제에 가수가 가당키나 하냐고··· 내가 그 아이에게 상처를 많이 줬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주름이 새겨진 눈가가 젖어든다.
그래서 슬기는 붙잡은 아버지의 손을 더욱 꼭 잡고 말했다.
“다영이도 다 이해할 거예요.”
한 번 더 아버지의 손등을 쓸어내리는데, 조연출이 버스에 올라와 슬기를 찾았다.
“아이들 지금 내려왔습니다.”
설 연휴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세 명의 연습생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숙소 불시점검으로 인해 난리가 났다. 그런데 다짜고짜 방송 준비를 시키더니, 결국에는 카메라 앞에 섰으니 정신이 있을 리가 있나.
카메라에, 사람들에, 조명에, 그 모두가 자신들을 향하자 연습생들은 혼이 나간 모습이다.
“왜들 그렇게 얼어붙었어?”
살짝 눈썹이 찌푸려 있는 최재환이 세 사람을 눈에 담았다. 쓴 말을 잘도 던진다.
“카메라 앞에 처음 서봐? 정신 똑바로 차려. 니들 연습생 생활 한 5년 더 할래?”
그제야 연습생들이 눈치를 살피며 입을 풀기 시작하자, 안경 쓴 작가가 분위기를 좀 풀어주려 말을 붙였다.
“다들 긴장 풀어요. 세 사람 이름이··· 정다영, 윤선미, 그리고 투덜이 맞죠?”
“전수애거든요!”
작가가 깔깔 웃으며 큐시트를 살피는데,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 올린 갸름한 얼굴의 정다영이 손을 들어 물었다.
“저 피디님.”
“왜요?”
“진행자 선배님은 어디 계세요?”
“없는데?”
작가가 일 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다들 사색이 됐다.
숨 들이켜는 소리가 작가의 귀에 들릴 정도였다.
“걱정하지 마요. 일일 피디님이 도와줄 거니까. 피디님이랑 대화하면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니까, 모르는 거 바로바로 물어봐도 돼요.”
“예?”
그런 방송은 듣도 보도 못한 세 사람이다.
더 묻고 싶은데, 작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물러났다. 그리고 이제 정말 촬영이 임박했다는 듯, 소란스러움은 잦아들고, 분위기는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후······.”
심호흡을 하는 세 명의 연습생들.
그때 미니버스에서 문이 열리고 코트를 펄럭이며 슬기가 내렸다.
큐시트를 손에 쥔 그녀가 카메라 앞으로 성큼 다가와 피디 옆에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미소 하나 없는 얼굴로 외쳤다.
“정신 안 차릴래? 카메라 앞에 섰으면, 카메라를 봐야지!”
아는 얼굴이라고 잠시 방심했던 연습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자, 작은 눈에 힘을 준 피디가 손을 치켜들었다.
“8시 39분 30초··· 50초··· 큐!”
**
-홈페이지에 우리 시현이 스케줄 추가됐는데, 지금 어디에 있음?
-‘내가 일일 피디다!’ 여기에 나온다고 했는데 아직 나오지 않았음!
-연휴 스케줄 모두 취소된 거 아니었어요?
-울 시현이 지금 아픈데···
-마음 약해서 거절하지 못했나 봐. 어떻게 해!!
-곰 매니저를 족쳐야 해요!
-님들, 우리 시현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데 진짜 나오는 거 맞아요??
시현 수포 카페가 출렁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연휴 전날 촬영 중 사고로 입원했다는 공지가 올라온 터라, 걱정과 반가움의 글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는데, 정작 TV에는 이시현이 나오지 않고 앳된 얼굴의 소녀들만 있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저희는 정다영, 윤선미, 전수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 명의 연습생은 포장마차 안에서 오프닝을 했다.
포장마차에는 스태프들이 준비해준 식재료가 올라와 있었는데, 그러니까 그녀들은 지금 저녁을 만들면서 토크를 이어가는, 마치 무인도에 뚝 떨어진 것 같은 상황이다.
“피디님, 저희 정말 아무거나 만들면 돼요?”
셋 중 연장자인 윤선미가 흘깃흘깃 눈치를 살핀다.
“예! 아무거나!”
카메라 밖에서 슬기가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어차피 요리의 완성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그럼··· 뭐 만들지?”
셋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잠시 보던 슬기가 질문을 시작했다.
“선미 씨는 어떤 요리 잘해요?”
“김치볶음밥 잘합니다!”
윤선미가 질끈 묶은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럼, 수애 씨는?”
“전 라면.”
이제 카메라 포커스는 정다영에게 쏠렸다. 떨떠름한 얼굴로 식재료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해산물이네요?”
문어, 우럭, 해삼, 소라.
“싱싱하네. 오늘 잡은 건가··· 아, 숙회하고 매운탕 할까요?”
우럭을 매만지던 정다영이 바로 메뉴를 정하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포장마차에 가림막이 있지만, 그래도 추운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리 준비된 뜨거운 물과 찬물을 번갈아 대야에 옮긴다.
칼을 손에 쥔 그녀 모습은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문어를 잡아 칼질 몇 번에 내장을 제거하더니, 밀가루 푼 물에 빡빡 닦기 시작했다. 그 거침없는 손길과 함께 연습생 생활에 관한 얘기가 잠시 이어졌다.
기약할 수 없는 미래,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꿈, 혼자서 이겨내야 할 시간들.
정다영은 하고 싶은 많은 얘기를 짧게 언급하고 우럭을 손에 쥐었다.
“와, 다영 씨 솜씨 좋다.”
다른 두 연습생은 문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인데, 그녀가 손에 쥔 우럭은 칼질 한 번에 머리가 댕강 잘려나갔다.
사실 포장마차는 정다영이 숙소 내에서도 요리를 곧잘 한다는 걸 알고, 제작진이 그녀에게 포커스를 맞추려 준비한 구성이었다.
“그런데, 세 분은 왜 숙소에 남았어요? 부모님 보고 싶지 않으세요?”
하나마나한 질문을 하고, 슬기는 진지하게 다시 질문했다.
“선미 씨는 집에 전화했어요?”
“예.”
“뭐라고 하세요?”
“연휴 잘 보내라고. 연휴 지나면 시간 내서 오라고.”
“수애 씨는요?”
“저도요.”
“부모님이 많이 보고 싶어 하겠다. 우리 딸들 밥은 먹었는지,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슬기는 담담한 어투로 계속 말했다. 그러다가 시계를 살폈다. 20분 안에 보여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으니까.
“세 분, 지금 생방송인 거 아세요?”
이어진 말에 연습생들의 행동이 멈췄다.
“제 말은, 지금 부모님들이 집에서 세 분을 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입을 벌린 세 사람.
그녀들의 손에서 열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면 정지영상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다영 씨.”
“아, 예!”
정다영이 빠르게 식어가는 두 손을 쓸어내리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다영 씨, 아버지는 어떤 분이세요?”
질문. 그리고 침묵.
방송에서 침묵은 방송사고를 뜻한다.
“슬기야 멘트 붙여!”
놀란 강 피디가 슬기를 재촉했다.
“잠깐만요.”
4초, 5초, 6초··· 안 되겠다 싶은 강 피디가 입을 들썩이려는데, 정다영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빠하고 사이가 별로 안 좋아요. 저 연습생 생활하는 거 탐탁지 않아 하시거든요.”
“왜요?”
“글쎄요. 제가··· 못 미더우셨나 봐요.”
정다영은 겨우겨우 얘기하고 있었다. 남 앞에서, 그것도 카메라 앞에서 하기는 어려운 얘기였다.
“아마, 아버지 진심은 다영 씨가 걱정돼서 그런거 아닐까요?”
정다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어머니는요?”
“엄마는··· 듣지를 못하세요.”
슬기는 이번에는 질문을 이어가는 대신 잠시 지켜봤다.
윤선미나 전수애는 처음 듣는 얘기인지 놀란 얼굴이지만, 제작진은 이미 알고 있는 일. 다만 방송에서 언급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그럼 여러분,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 있나요? 생방송이니까, 지금 하면 어떨까요?”
슬기의 제안에 다들 입술만 훔친다.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런 순간은 처음인 그녀들이니까.
“그럼, 다영 씨부터 해볼까요?”
이번에도 침묵이 잠시 이어질 줄 알았는데, 우럭을 만지작거리던 정다영은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빙긋 보였다.
“아빠··· 미안해요. 내 욕심만 내서. 저, 이제 포기할까 봐요.”
정다영은 아랫입술을 빨아들였다. 짓눌려진 그 사이로 눈물 한줄기가 스며들었다.
“아빠 말이 맞았던 것 같아요. 전 재능이 없어요.”
“아니야.”
갑자기 갈라진 목소리가 스태프들 사이에서 들렸다.
정다영이 눈물 고인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돌린 그 순간, 그녀는 새빨개진 두 손으로 제 입술을 덥석 가렸다.
“아빠가 틀렸어. 우리 딸이 최고인데··· 아빠만 그걸 몰랐어.”
주름지고, 검붉은 얼굴이, 바닷바람도 무섭지 않은 그 얼굴이 떨고 있었다.
“아빠가··· 아빠가 미안해.”
“아빠!”
삽시간에 울음바다가 된 현장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서로를 힘껏 끌어안고 있는 정다영 가족의 모습에 스태프들도 먹먹한 가슴을 달래야 했다.
물론 윤선미와 전수애, 두 연습생도 눈물을 훌쩍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엄마?”
“아빠?”
훌쩍이던 그녀들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녀들의 부모님이, 지금 막 이시현과 함께 도착했으니까. 그리고 부모님에게 달려가는 둘의 모습 역시 카메라에 담겼다.
그사이 이시현은, 제시간에 맞춰왔다는 사실에 카메라 밖에서 미소와 함께 숨을 고르고 있었다.
“후······.”
그러자 슬기 피디가 그를 향해 엄지를 척 내밀었다.
“오빠 짱!”
**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정신없이 바빴던 최재환의 설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연습생과 부모님들을 모셔 호텔에 체크인하고, 이시현을 집에 데려다주고, 산에도 갔다 왔다.
남들이 낮에 할 일을 그는 밤에 하고서 이곳에 왔다.
그러고는 차 속에서 오피스텔 입구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 밤에도 이따금 전화가 오고 있지만, 번호만 확인하고 받지 않았다.
기다리는 번호는 하나, 기다리는 사람도 하나.
하지만 30분이 지나도, 한 시간이 지나도 그 기다림에 대한 응답은 없었다.
[혜선아 미안해. 지금 보고 싶은데··· 기다릴게.]
이 문자에 담긴 진심이면 될 줄 알았는데.
순진했던 걸까.
“훗.”
최재환은 피식 웃고 차에 시동을 걸려 차 키를 붙잡았다.
그런데, 오피스텔 입구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가 헐레벌떡 뛰어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최재환은 차에서 내렸다.
뛰어온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뛰어오고 있었다.
와락!
껴안은 그녀에게서 그립고, 또 그리웠던 온기가 느껴졌다. 흐느낌이 들렸다.
“바보! 휴대폰 꺼놨단 말이야! 전화하지 그랬어요!”
권혜선은 그의 품에서 흐느끼고 원망했다.
“미안해. 미안하다.”
최재환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부서질까 봐 제대로 껴안아 보지도 못했었는데, 지금만은 온 힘을 다해 껴안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없이 고민했다. 이건 현실이니까.
그녀는 더 날아올라야 하고, 그는 더 바빠질 테니까.
끝이 보이는 게임이니까.
하지만 이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마음이, 진심이니까.
“사랑해.”
< 용서를 구하는 방법이 필요할 때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