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115화 (115/227)

< 고고, 강한놈들 (1) >

언덕 위로 쏟아지는 빗줄기.

그 속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섀도복싱을 하고 있다. 비틀어진 오른발을 시작으로 허리, 등, 그리고 주먹까지 뻗어 나가는 힘.

후드득···

주먹에 부딪힌 빗방울들이 사방으로 튄 순간, 모자 아래 남자의 눈이 번뜩!

이시현의 공식홈페이지에 공개된 티저 영상에는 한 남자의 현란한 섀도복싱이 담겨 있었다. 15초의 짧은 시간 쉼 없이 이어진 숨소리와 빗소리.

“장난 아니다.”

영상이 끝나자, 작가들은 들뜬 가슴을 수다로 달래기 시작했다. 좁은 회의실을 채웠던 그녀들의 머리 냄새가 먼지처럼 들썩인다.

“이거 뭐야? 뮤직비디오야? 드라마야?”

정신없이 마우스를 클릭해도, 홈페이지에는 티저 영상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없었다.

하지만 같은 날 공개된 ‘너라서’ 풀 버전 뮤직비디오는 영상 뒤에 날짜가 나왔다.

“17일이면··· 이시현 팬 미팅 일주일 전이네?”

크리스마스이브에 예정된 이시현의 팬 미팅. 그럼, 그전에 음반이 나오는 건가?

“그만들 좀 봐. 지금 그게 눈에 들어오니? 벌써 100번도 넘게 본 것 같다.”

“이거라도 봐야죠. 할 게 없는데.”

메인 작가는 퉁명한 목소리를 뱉고 다시금 노트북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러자 금정애 피디는 괜스레 머리끈을 매만지며 그녀를 달랬다.

“아직 폐지 결정 난 거 아니야. 시청률 올리면 되지. 이번에 게스트도 괜찮잖아?”

“성지훈이요? 이수정이요?”

막내 작가가 툭 던져 묻더니 어림없다는 듯 한숨이다. 그러자 금 피디는 손바닥으로 책상을 퉁! 내려쳤다.

“성지훈이 어때서? 스타 다큐 못 봤어? 이시현이랑도 친하더만! 미용실에서 얘기하고 그러던데?”

“그만 하세요. 어차피 언제든 이런 날 올 줄 각오하고 있었으니까.”

SBC 화요일 예능프로그램 ‘고고, 강한놈들’은 9월 첫 방 이후 단 한 번도 시청률 5프로를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에 시청률 10프로를 넘기지 못하면 폐지라고, 국장이 진즉부터 으름장을 놓은 상황이다.

“그래도 3개월이면 꽤 버텼네요. 하하하.”

막내 작가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축 늘어트린 머리카락을 타고 온갖 어둠의 감정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내년에는 어떻게든 SBC 정직원 되겠다고···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뛰어들었던 그녀였는데, 추운 겨울에 프로그램 만료로 굶게 생겼으니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저기······.”

그 침울함을 달래보려고, 금 피디가 입술만 달싹이고 있자 메인 작가가 분위기를 전환해보려 다시금 이시현 얘기를 꺼냈다.

“피디님 오늘 아침 신문 보셨어요?”

“어? 어, 봤지! 죄다 이시현으로 도배했더만.”

“아침 방송도 다 이시현이더라고요. 라디오도 그렇고.”

지금 대한민국의 시선의 이시현에게 쏠려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어제 노래 듣고 깜짝 놀랐잖아요.”

“난 밥 먹다가 숟가락 떨어트렸어.”

“등줄기에 소름 돋았다니까.”

서브 작가들도 한마디씩 어제 방송의 소감을 얘기하는데, 막내 작가가 문득 한마디를 속삭였다.

“이시현 섭외하면 좋을 텐데······.”

“이··· 이시현을?”

너무 놀라서 금 피디가 입을 쩍 벌렸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생각했지만, 차마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던 그 얘기.

“그래! 못할 거 뭐 있어?”

갑자기 서브 작가들까지 난리다. 이것들이 다들 미친 건가 싶은데···.

“피디님 우리 이시현 잡죠.”

“무슨 수로? 연줄도 없구만! 연락처도 없고.”

금 피디가 고개를 내젓자, 메인 작가가 눈을 깜빡인다.

“생방송한밤 피디님한테 연락처 물어보면 안 돼요? 왜, 저번에 생밤송한밤에 이시현 출연했잖아요?”

“송 피디? 나 작년에 그 개새끼한테 차였거든?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아 그랬지··· 아! 피디님 3W 매니저 아시지 않아요?”

이번에는 서브 작가의 질문에 금 피디가 눈썹을 들썩인다. 그러자 메인 작가가 손뼉을 치며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 왜에, 작년에 피디님 즐거운토요일 조연출로 있을 때, 그때 3W 매니저가 찾아와서 출연부탁 했었잖아요? 곰 같이 생겨서 덩치 좋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

“아······.”

“기억나시죠? 그 매니저 지금도 지에스 있으려나?”

**

「지에스엔터테인먼트(ATTM A&R 파트)」

의상실 입구에 일렬로 놓인 구두와 쇼핑백에 붙은 라벨에 ‘이시현’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다.

G 브랜드, P 브랜드, R 브랜드할 것 없이 최신 명품 라인이 죄다 모였다. 오직 한 사람, 내 선택을 받기 위해서.

“일단은 음악방송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제가 나중에 전화 드릴게요.”

내가 피팅 하는 사이, 최재환은 여기저기서 오는 섭외전화를 받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전화해 준다고 해놓고 안 할거잖아. 그냥 우리 쪽으로 와라. 그래도 이시현하면 KIS 아니야? 인기차트, 뮤직캠프 걔들 별거 없어.

“알죠. 우리도 음악뱅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전화 드릴게요.”

-전화 안 줄 거잖아.

“준다니까요.”

KIS 음악뱅크 피디를 겨우 설득해서 전화를 끊는다.

“아이고······.”

최재환이 휴대폰을 화장대에 올려놓고 한숨을 내쉬는데, ATTM 한지웅 프로듀서가 피식 웃으며 의상실에 들어왔다.

“난리네.”

“예상한 건데요, 뭐.”

최재환도, 나도, 회사도··· 내 실패를 계산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그날 생방송이 끝나고 지에스에 전화가 빗발쳤다.

기자들 전화에, 광고주들 전화, 방송국 피디들까지···

“광고주들 입 찢어지겠네.”

“찢어져야죠. 다들 우리 믿고 온 건데.”

박한영의 광고를 내가 끌어오기까지 광고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위약금을 요구한 광고주도 있었다는 것 같고.

“선주문이 벌써 10만 장이야. 시현이 너, 이러다 진짜 100만 장 넘는 거 아닌지 몰라.”

한지웅이 웃음기 가신,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설마.

아무리 지금이 100만 장은 심심찮게 나오는 시대라고 해도···

하지만 곡 자체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관심도 폭발하고 있고.

새로 믹싱한 ‘너라서’ 뮤직비디오는 어젯밤 공식홈페이지에서 ‘스텝’ 티저 영상과 함께 공개했는데, 서버가 다운됐다.

“괜히 애 헛바람 넣지 마세요.”

최재환이 나를 빤히 보며 피식 웃는다.

그런데 진짜 100만 장이 넘는다면? 설마.

“난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최 팀장은 어떻게 시현이의 재능을 알아본 거야? 좀 알려줘. 그래야 우리 캐스팅 파트도 제대로 물건을 잡아오지.”

“글쎄요.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죠.”

최재환이 실없이 피식 웃는다. 그사이 나는 피팅을 끝내고 편한 청바지와 티셔츠로 갈아입었는데, 최재환이 자신보다 한 뺨은 큰 나를 말없이 바라본다.

“뭘 그렇게 봐?”

“그냥. 더럽게 잘생겼다 싶어서.”

“이제 알았수?”

실없는 소리가 이어지려는데, 한지웅이 모두를 불렀다.

“최 팀장 잠깐 나와봐. 스타일리스트도.”

그 목소리에 다들 나를 두고 의상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화장대에 올려져 있던 최재환의 휴대폰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 최재환 매니저님?

“누구시죠?”

-나 기억할지 모르겠네요. 작년에 즐거운토요일에서 봤는데, 그때 조연출로 있던 금정애 피딥니다.

금 피디? 누구더라······.

“예, 기억나죠.”

-아, 다행이다. 난 또 잊었을지 알고.

작년 즐거운토요일은 무슨 얘기하는지 모르겠고, 어디서 들은 목소리인 건 분명하다.

-혹시, 지금도 3W 매니저 맡고 있어요?

“아니요.”

-그럼 아직 지에스에는 계시는 거죠?

“예.”

-딴 게 아니고, 제가 지금 ‘고고, 강한놈들’이란 프로그램을 하고 있거든요. 이게 스타들이 시청자의 영웅이 돼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콘셉이예요.

고고 강한놈들?

아··· 그래, 이제야 기억이 난다.

사고 터트려서 3사 뉴스에 한동안 오르내린 그 프로그램.

-그래서 이시현 씨 섭외 요청 때문에 전화했는데··· 재환 씨가, 이시현 씨 매니저 하고 연결 좀 해주실 수 있나 해서요.

그 말에 나는 의상실에 다시 들어온 최재환을 보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제가 이시현 매니전데요.”

녹음실로 가기 위해 곧바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안전띠를 매는 나를 최재환이 돌아본다.

“그래서, 금 피디가 뭐라는데?”

“고고, 강한놈들 거기 출연해달라는 거지.”

내가 말하자, 뒤에서 한송이가 냉큼 끼어들었다.

“SBC ‘고고, 강한놈들’이요? 그거 진짜 재미없는데. 완전 최악.”

“후··· 내가 나중에 전화해서 잘 말해야겠다. 자식이 그러게 전화를 왜 받아 임마. 지금은 전화 가려서 받아야 할 때인데.”

최재환이 투덜댄다. 그러더니 시동을 걸면서 다시 묻는다.

“근데 QQ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잠깐만 들렀다 가자.”

“임마, 거기가 어딘지 알고? 잠깐만 들렸다 나올 수가 있는 곳이 아니야.”

“아휴, 잔소리 좀 그만. 이럴 시간에 벌써 갔다 왔겠다.”

**

“지훈 씨 지금 좋아요!”

성지훈의 화보촬영이 한창인 스튜디오.

조명이 뿜는 열기와 쉴 틈 없이 터지는 플래시 속에서 성지훈은 여유롭게 포즈를 취했다. 조명 때문인지 그의 구릿빛 얼굴도 지금만은 하얀 보름달.

“썩어도 준치라더니, 그래도 잘 찍네.”

“그러게.”

운동화를 신은 스태프들과 달리, 구두에 더블 원피스와 롱 원피스 차림의 여자들이 성지훈을 지켜보며 한껏 수다 중이다.

“성지훈 오늘 혼자 왔지?”

털어내듯 머리카락을 흔든 여자가 붉은 입술을 속삭였다.

“매니저가 TV 보다가 쓰러졌다잖아. 심장이 멈췄다나 뭐라나. 지금 입원해 있다는데?”

“그래서 성지훈 혼자 샵에 들리고, 혼자서 여기까지 차 끌고 온 거야? 심지어 스타일리스트도 없고? 우와, 완전히 한물갔네.”

가수 성지훈이, 한때는 전국의 여학생들을 울고 웃게 만들던 그 성지훈이, 지금은 홀로 다녀도 무방할 정도로 인기가 급추락했다.

“솔직히 화보 촬영해서 뭐해. 한물갔는데. 소속사도 없고······.”

“어떻게든 재기하려는 거지. 그마저도 이번에 안되면 진짜 끝일걸?”

“그래도 나한테 사귀자고 하면, 난 사귈래”

“뭐어? 풉!”

수다는 멈추지 않을 것 같은데, 그녀들의 곁에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의 서민지가 성지훈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사진작가의 말이 떨어지자, 성지훈이 제 허리에 손을 얹고 한숨을 푹 내쉰다.

이마에 묻은 땀방울을 손수 닦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서민지가 서둘러 그의 곁에 가 부채질을 했다.

“고생은 무슨.”

“좀 쉬었다가 인터뷰하시겠어요?”

“아니요. 바로 하죠. 차 막히는데.”

그 말을 꺼내고, 성지훈은 눈썹을 구기고 서민지를 내려다봤다.

“민지 씨라고 했죠?”

“예.”

“가죠. 인터뷰하러.”

서민지는 앞장서 편집부로 안내했다. 빈 회의실에 그를 앉히고, 과자와 음료수까지 준비해서 마주 앉으며, 그녀는 마치 고백을 하듯 말했다.

“저 실은 지훈 씨 팬이거든요.”

“그래요?”

하지만 성지훈은 큰 반응 없이 쓴 미소를 보였다. 으레 있는 인사치레겠거니 싶은데.

“저 집에 지훈 씨 앨범 다 소장하고 있어요. 콘서트도 매번 빠지지 않았고요.”

“진짜요?”

서민지의 얼굴은 정말 들뜬 표정이었다. 좋아하는 스타를 앞에 둔 모습이다.

그 모습에 성지훈은 문득 팬클럽 회장, 이제는 과거형이 된 그 나쁜··· 여자를 떠올렸다.

“지훈 씨, 이따가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돼요?”

“물론이죠.”

성지훈의 쓴 표정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빈말이어도 서민지의 미소가 좋아서 입꼬리를 들썩이는데,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그녀의 미소가 사라졌다.

“야 수습!”

“예, 편집장님!”

서민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너 뭐하는 거야? 내가 특집기사 시안 딴 거 가져오라고 했잖아?”

“그거, 원영 씨가 챙기기로 했는데요. 저는 성지훈 씨 인터뷰해야 돼서 아까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요.”

“무슨 소리야? 원영이는 니가 하기로 했다는데. 그리고 니가 걔를 왜 시켜? 나도 안 시키는 일을.”

“아닌데······.”

“잔말 말고 가서 챙겨서 내 사무실로 가져와. 지훈 씨, 미안한데 10분만 기다려줘요.”

무턱대고 들어와서 기다리라는 소리를 하다니.

예전에는 이런 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깡패 기획사가 무서워서라도 성지훈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사람들인데.

“알겠어요.”

성지훈은 떨떠름한 표정을 뒤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서민지가 옅은 살구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편집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 편집장님.”

“왜?”

“성지훈 씨 인터뷰 끝나고 가져다 드리면 안 될까요? 그거 어차피 검토만 하시는 거잖아요? 성지훈 씨는 빨리 인터뷰한 다음에 다음 스케줄 가셔야 하거든요.”

“뭐?”

편집장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눈에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볼살이 후드드 떨린다.

“허··· 그래,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서민지가 다시 의자를 끌고 앉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된 편집장이 문을 쾅 닫았다.

“괜찮겠어요?”

성지훈이 헛웃음과 함께 묻자, 그녀가 싱긋 웃는다.

“급한 거 아니에요. 설마 이런 거로 자르겠어요?”

“그냥 가서 하고 와요. 괜히 나 때문에 곤란해질라.”

“에이, 그래도 영웅을 앞에 뒀는데··· 그래선 안 되죠.”

“영웅?”

왠지 들뜬 그녀의 모습에, 성지훈은 넌지시 물었다.

“저 얼마 전에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때 지훈 씨 노래 들으면서 기운 냈어요. 그러니까 제 영웅이죠.”

“훗.”

성지훈은 피식 웃었다.

오늘 하루 중 처음으로 짓는 입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짜증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눈길 미끄러우니까, 조심해서 가세요.”

인터뷰를 마치고, 서민지는 주차장까지 성지훈을 배웅했다.

“그럼, 또 봐요.”

“예.”

차에 오른 성지훈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인터뷰 내내 마주 봤던 수수한 미소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나도 참.”

들뜬 기분을 지우고 시동을 걸려던 그가 멈칫했다.

“아, 휴대폰을 놓고 왔네. 에이······.”

회의실 의자에 놓고 온 모양이다.

성지훈은 짜증을 뱉는 대신에 피식 웃음을 뱉었다.

“내가 영웅이라고?”

그런 소리 평생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차에서 내린 그는 터벅터벅 편집부로 향했다.

그런데 편집부 사무실 문을 열던 그가, 순간 멈칫했다.

“내가 가져오라면 가져오는 거지! 뭐? 성지훈이 어째?”

“죄송합니다.”

“됐으니까, 너 내일부터 나오지 마.”

“예?”

“나오지 말라고.”

“편집장님······.”

서민지가 당황하는 모습에 성지훈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좀 전보다 문을 조금 더 열고 들어가는데.

“넌 내 말보다 한물간 성지훈 인터뷰가 더 중요하다며? 그러니까 이제 출근하지 마. 우리 잡지사에 너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거기까지만 했으면 성지훈도 참았을 거다.

“나가!”

편집장은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며 검지를 내밀었다. 그의 검지는 편집부 사무실 입구에 닿았고, 그곳에는 성지훈이 서 있었다.

“지훈 씨?”

편집장이 놀라서 손을 주저하는데, 성지훈이 사무실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와서 그대로 서민지 앞에 섰다.

눈시울이 촉촉이 젖은 그녀의 모습에, 성지훈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민지 씨, 짐 챙겨요. 내가 그쪽 일자리 알아봐 줄게. 여기보다 더 나은 곳으로.”

지금 순간 사무실의 모든 소리가 일순 사라진 듯했다.

“그리고 편집장님.”

“지훈 씨. 지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인데, 나 지훈 씨한테는 아무런 감정도······.”

당황하는 주태곤 편집장의 모습에 성지훈은 싸늘한 시선으로 입을 열었다.

“내 팬입니다.”

“뭐?”

“내 팬한테 소리치는 거··· 나 못 참습니다.”

꼭꼭 씹은 그 말을 집어 던지고.

“민지 씨 책상 어디에요? 나하고 짐 챙겨요.”

지금 순간 성지훈은 가슴에서 꿈틀거리는 뜨거움을 느꼈다. 아니면 화가 나서 정신이 나가버린 모양이다.

당장 오늘 찍은 화보는 어떻게 하지?

편집장 이 개 같은 놈이 나중에 해코지하면 어쩌지?

그런 생각들이 들어야 하는데··· 더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민지 씨?”

성지훈은 넋 나간 서민지를 불렀다. 그녀의 시선이 사무실 입구에 멈춰 있는데, 그 시선을 따라가던 그도 멈칫.

편집부 사무실 입구에 서 있는 두 남자의 모습.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머 이시현이잖아?”

“이시현이 여길 왜?”

이시현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매니저의 시선이 흉흉하다.

찬바람이 쌩쌩 불 것 같은 시선···

매니저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서민지. 너 거기서 뭐 해?”

< 고고, 강한놈들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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