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114화 (114/227)

< 다만빠 (6) >

찌푸려진 눈썹과 잔주름들이 모여 차 대표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드러났다.

툭.

책상에 휴대폰을 내려놓은 그는 잠시 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떨림인지 끄덕임이지 모를 고갯짓을 보이고 입을 열었다.

“이시현.”

“예.”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불길한 예감은 항상 빗겨나간 적이 없었다는 걸 문득 떠올렸다.

“여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그 목소리는 마치 잔잔한 해수면을 방해하는 큰 너울 같았다. 아무 말도 못하는 나를 두고, 차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챙기며 말했다.

“바뀌는 거 없어. 넌 딴 생각하지 말고 계속 준비해. 박 상무!”

넥타이를 풀어헤친 그는 옷걸이에서 재킷을 챙겼다.

“지금 바로 여의도로 가자. 그리고 장례식장에 근조화한 하나 보내고.”

“예.”

두 사람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대표실에 홀로 남았다.

숨 막힐 듯 고요한 방···

차 대표가 즐겨 쓰는 향수 냄새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나는 유리벽 너머의 흐린 하늘을 보며 좀 전에 그가 한 말을 속삭인다.

‘바뀌는 건 없어······.’

**

「2000년 12월 6일 수요일, 여의도 MNC 교양국」

-지난 12월 2일. 우리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여원기 할아버지가 영면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편집실 모니터에 영상과 이시현의 내레이션이 흐르는 중에, 홍 피디는 턱 끝을 쓸어내리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하······.”

그 사이 화면은 여원기 할아버지의 마지막 여행길로 이어졌다.

장지로 향하는 눈 덮인 길 위에 마른 곡소리가 퍼지고, 한 쌍의 새가 청명한 하늘을 가로지른다.

“왔냐?”

홍 피디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고 조연출을 바라봤다.

덩치 좋은 녀석이 한가득 테이프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그거 할아버지 댁 촬영한 테이프야?”

“예. 오전에 카메라 철수하면서 수거한 테입입니다.”

“거기 놓고 가.”

“직접 하시게요?”

“그래.”

홍 피디의 건조한 대답에 조연출은 눈치를 살피다가 말했다.

“좀 쉬고 오세요. 제가 한번 훑어보고 있을게요.”

“···그러자. 커피 한잔 마시고 올게.”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홍 피디는 편집실을 나와 로비로 향했다. 주머니를 뒤적여 찾은 동전 몇 개 덕에 커피 한잔을 입에 물 수 있었다.

“후······.”

방송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유가족도 방송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저 마무리를 잘해달라는 당부의 말을 건네왔을 뿐이다.

하지만 홍 피디를 비롯한 다만빠 팀은 의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MNC 내부적으로 다시금 말이 나온 건 물론이고, 기획의도가 달라졌으니 편집을 마친 분량도 상당 부분 재편집을 거쳐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밋밋하네.’

상황이 안 좋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안타까운 일인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홍 피디는 방송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재회의 감동은 물 건너갔지만, 현실적인 측면에서 보면 아직 다큐멘터리의 장점이 남아 있다.

분단이 만든 상처, 남매에게 일어난 비극을, 영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하지만 그 메시지를 만들기 위해서 편집을 하고 또 해도, 어딘지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생각 속에서 종이컵은 금세 비워졌다.

“뭐 있냐?”

편집실로 돌아온 홍 피디는 기대감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조연출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는데, 조금은 상기된 얼굴이다.

“피디님, 이거 보세요.”

조연출이 모니터를 가리키면서 조그셔틀을 조작하자, 화면이 빠르게 움직이다가 멈췄다.

“뭐가?”

다시금 정상 속도로 이어지는 화면에는 특별하게 잡힌 게 없었다.

그저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등진 채 창가를 보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잘 들어보세요.”

조연출의 얘기에 홍 피디는 미간을 찌푸리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차마 말을 이을 수가 없어 먹먹한 가슴만 달래야 했다.

**

「여의도 MNC D공개홀, 2000년 12월 11일 월요일」

“송이야.”

손을 내밀자, 한송이는 메이크업 브러쉬를 얇은 거로 바꿔서 건넸다.

서아린은 건네받은 브러쉬를 쥐고 이시현의 눈썹 끝을 새로 잡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그녀의 허리는 자연스럽게 굽혀졌고, 단발머리는 커튼처럼 흔들렸다.

“거의 다 끝났어요.”

스타일리스트는 늘 굽은 자세다.

왜냐하면 늘 한 사람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오케이. 끝났습니다.”

서아린은 브러쉬를 한송이에게 다시 건네고 이시현에게서 한발 물러났다.

항상 그렇듯 이시현은 과하지 않게 가는 것이 포인트라서, 오늘은 단색의 라운드 티에 말끔한 정장 차림이다. 메이크업도 그저 깔끔하게 라인만 정리해주는 수준이고.

“왜요? 이상해요?”

거울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길래 물었더니, 이시현은 말없이 옅은 미소만 가로저었다.

그래서 서아린은 거울과 그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오빠처럼 바탕이 되는 사람은 손이 많이 타면 오히려 더 안 좋아지니까, 스타일리스트 입장에선 일하기 편한 배우예요. 아무렇게나 입혀도 태가 나니 까다롭지도 않고. 훗.”

그녀가 긴장을 풀어주려 평소답지 않은 농담과 미소를 섞었지만, 이시현은 가끔 보이던 장난기 가득한 미소 대신 차분한 시선만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강 실장이 곁에 붙자 겨우 미소 한번을 드러낸다.

“준비됐지?”

“예.”

무대에서는 아직 가수들의 리허설이 한창인데.

이시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기실 한쪽에서 목을 풀기 시작했다. ATTM 한지웅 팀장이 곁에서 도움을 준다.

그래서 다들 방해하지 않으려고 입을 꾹 다물었다.

항상 ‘나 여기 있어요!’를 실천하는 한송이도 오늘만큼은 입에 자크를 단단히 잠그고 있는데, 이시현을 가르친 장연화 교수는 의외로 편안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늘··· 잘해야 할 텐데.’

서아린은 잠시 소파에 기대면서 이시현의 옆 모습을 바라봤다.

그동안 곁에서 쭉 지켜봤기에 누구보다 그의 변화를 잘 아는 그녀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시현이는 잘 할 거니까.”

장연화 교수가 서아린에게 속삭인다. 아니면 혼잣말을 했는지도 모르고.

“예. 오빠는 잘할 거예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할아버지가 갑작스레 그렇게 되신 이후 이시현은 오늘 무대를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래, 이시현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 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연기자며, 드라마 속에서는 박춘삼이었다.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다.

“콜록!”

이시현이 기침 뒤에 목을 가다듬자, 서아린은 냉큼 일어나 소파 옆에 놓인 물병을 손에 쥐었다.

“오빠.”

“고마워. 너밖에 없다.”

스타가 빛이라면, 그 스태프들은 그림자다.

스타가 팬들의 환호에 미소 짓는다면, 스태프들은 스타의 말 한마디에 미소 짓는다. 그런데 이시현은 항상 그 소중한 말을 해준다.

그래서 서아린은 이시현이 더 걱정이었다. 그의 얼굴을 매일 보니까, 그의 건강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으니까.

‘제대로 잔 적이 있는 걸까.’

지난 한주 이시현은 잠 한숨 제대로 못 자고 연습실에 붙어살았다.

‘차라리 연습실에만 있었으면 몰라.’

팬 미팅 콘서트 준비해야 했지, 차기작 드라마를 위한 스태프 미팅과 스틸 촬영까지··· 어떻게 사람이 한숨도 안 잘 수가 있는지.

“시현 씨, 무대 리허설입니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온 조연출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그제야 서아린은 깊은 호흡을 가다듬는 이시현처럼 짧은 숨을 들이켰다.

“가자.”

강 실장과 이시현이 바로 무대로 이동한다. 그 뒤를 쫓으려 발을 내민 한송이가 멈칫했다.

“언니?”

“난 여기 있을게.”

도저히 이시현의 리허설 무대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럼 쉬세요.”

한송이는 서둘러 이시현을 쫓았다. 공개홀로 향하는 복도에 스태프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장비들은 오죽 많나. 리허설이 끝난 가수 팀들도 곳곳에 보이고.

“와, 진아 아저씨네?”

오늘 한송이는 대한민국 트로트 가수는 다 보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특정 연령층를 고려할 수 밖에 없는 방송이었다.

물론, 지에스 소속의 가수 팀도 지원을 나왔다.

“오빠 파이팅!”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파이팅을 외친다.

3W 슬기와 레니였다.

“시현 씨 잘하세요!”

응원의 박수를 쳐주는 가수 팀도 있고, 목소리 높여 아자아자! 외치는 스태프도 있었다.

무대로 향하는 길이 이렇듯 소란스러운데도 이시현은 흔들림 없이 나아갔다. 얼굴은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곁에서 멍하니 쫓던 한송이는 정신을 차리고 이시현에게 붙었다.

“오빠 잠시만!”

이동하는 잠깐 사이에 흩어진 이시현의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리허설이니 대충?

이시현 앞에서 그런 소리 하는 놈들 싹 다 밀어내겠다는 듯이 한송이는 눈에 불을 켜고 이시현을 바라봤다. 그런데 그가 피식 웃는다.

“훗.”

오늘 하루 중 제일 맑은 웃음을 짓고 말한다.

“송이야. 너 진지한 거 안 어울리거든?”

“오빠도··· 무거운 거 안 어울려요.”

한송이는 손을 멈추지 않으면서 입술을 빼죽 내밀었다. 이내 책임을 다했다는 듯, 뒤로 물러나는 그녀를 이시현이 잠시 바라보더니.

“고맙다.”

“치.”

한송이가 괜히 부끄럼을 타는 그때, 이마에 땀방울을 달고 뛰어다니던 스태프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시현 팀 올라갑니다!”

「저녁 8시」

리허설이 모두 끝내고, 마침내 생방송 무대가 시작됐다.

진행자는 연기자 이성연과 MNC 간판 아나운서.

무대가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대기실 TV 화면을 통해 무대를 지켜봤다.

“어제 시청률 24프로 나왔다더라.”

강 실장이 곁에서 소곤댄다.

주말 황금시간대에 방영하긴 했지만, 다큐멘터리가 시청률 24프로가 나왔다는 건 충분히 대박을 쳤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오늘 생방송 시청률 역시도 그 이상 기대할 수 있었다.

“너 내레이션 좋았다고 호평이야.”

강 실장은 아까부터 내게 좋은 소리만 하고 있다.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자꾸 말을 붙이는 모습인데, 녀석의 파마머리 덕에 동네 아줌마 수다 듣는 기분이다.

“최재환 어디냐고 전화해볼까? 지금쯤이면 서울 왔을 텐데.”

“아니요.”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TV 화면에 집중했다.

지금 내 머릿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도 상관없고, 최재환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도 상관없다.

-분단 50년의 아픔··· 지난 8월 15일의 짧은 만남은 그 아픔을 아물게 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성연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시작으로, 카메라는 객석을 가득 채운 청중을 비췄다.

-지난 3일, 여원기 할아버지는 그토록 기다렸던 여동생을 눈앞에 두고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생방송 무대는 차분하게 진행됐다.

어제의 다큐멘터리 영상과, 지난 8.15이산가족상봉에서 있었던 화제의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중간중간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영상을 보고 흐느낀 사람들은 다시 공연에 기뻐하면서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감정은 당연했고, 강요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었다.

“떨리냐?”

“예.”

나는 이제 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하고, 또 노력했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쏟아부어. 그게 네 역할이야.”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할아버지의 죽음도, 오늘 무대도, 내 스스로 이끌어 온 것은 없다.

그저 나는 여기에 서 있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붓기 위해서 긴 시간 준비했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간이 왔다는 것도.

“이시현 팀. 준비해주세요.”

후······.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

스타일리스트의 손길을 느끼고··· 대기실을 벗어나 2시간 전 왕복한 길을 다시금 걷는다.

무대에서부터 이성연의 목소리가 윙윙거리듯 들려온다.

마치 모든 게 느릿느릿한 세상 안에 갇혀 버린 기분이다.

나보다 앞서 무대를 마친 슬기와 레니가 땀만 겨우 훔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들이 내게 작은 손바닥을 내밀었고, 나는 천천히 손뼉을 맞추며 그녀들과 멀어졌다.

이제 이성연의 목소리는 한층 뚜렷하게 들렸다.

-여러분, 마지막 무대입니다. 이 노래는 영면하신 여원기 할아버지가 직접 지어 여점례 할머니에게 들려주셨던 노래라고 합니다.

그녀가 나를 소개하는 사이, 무대 뒤로 올라갈 준비를 끝낸 내게 강 실장이 다부진 미소를 보인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주먹을 내밀었다.

한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고 서로의 주먹을 부딪치는 우리의 모습에 한송이는 괜스레 눈시울을 붉히더니 고개를 돌린다.

-이 밤, 그대를 꿈에 뵈리까··· 여러분, 배우 이시현 씨가 부릅니다.

**

「부조정실」

예능국장, 시사교양국장까지 지켜보는 가운데, 홍 피디는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에 집중했다.

준비하고 또 준비한 시간.

오늘을 위해 뮤직캠프 팀까지 지원 나왔다.

“첫 커트, 카메라 쓰리부터 갑니다. 이시현 첫 호흡에서 뺄게요. 자··· 하이, 큐.”

천천히 암전되는 무대.

무대 스크린에 드라마 ‘우리 오빠’의 한 장면이 흐른다.

다리를 삔 여동생을 등에 업고 논길을 걷는 장면이 흐르고, 핀 조명이 피아노 연주자와 이시현을 잡는다.

피아노 연주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음을 집었다. 마치 너무 아름다운 봄 정원을 눈앞에 두고 걸음을 망설이듯··· 그리고 뒤이은 목소리.

홍 피디는 순간 자신의 위치도 잊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부릅떴다.

처음엔 다들 걱정했다.

이시현이 가요도 아닌 가곡을 부른다니.

물론 편곡을 거친다지만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그래서 미팅 때도 그저 음 이탈만 없게끔, 최소한의 박자 감각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포 컷!”

넋 나간 청중들의 모습이 비친다. 일부는 벌써 눈시울을 붉힌다.

“쓰리 컷!”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두 손을 끌어모으고 있는 이시현.

소곤거리듯 그리움을 표현하는 가사···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목소리··· 심지어 들이쉬는 짧은 호흡마저도 관객을 숨죽이게 한다.

무대 매너는 또 어떤지. 제스처는 과하지 않고 부드럽다.

얼굴의 찌푸려짐은 이 무대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대체 지에스는 무슨 깡으로 이런 괴물을 만들어 낸 걸까.

“원 컷. 속도 늦추고··· 클로즈업.”

눈시울이 붉게 탄 이시현이 비친다.

그 모습을 보며 홍 피디는 입술을 지그시 다물었다.

이제 모두 끝났다. 그리고 이시현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노래가 끝난 무대는 고요했다.

청중들의 흐느낌만이 여기저기서 들릴 뿐이었다.

박수가 쏟아지던 이전의 무대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성연 씨.”

홍 피디가 언질을 주고서야 진행을 잇지 못하던 이성연이 정신을 차리고 큐카드를 손에 쥐었다. 하지만 실컷 울먹인 뒤라서 목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 그 정도의 무대였다.

이제 카메라는 상기된 얼굴을 숙이고 숨을 들썩이는 이시현을 잡았다.

홍 피디는 잠시 그를 내버려뒀다.

방송 사고에 가까운 상황이지만 오히려 저 모습이 더 진정성 있어 보이니까.

그리고 이제, 이 무대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영상이 이어진다.

[보고 싶구나. 보고 싶어. 네가··· 너무도 그립구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졌다. 그가 기억이 돌아왔던 건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저 카메라에 그 짧은 순간이 담겨있었을 뿐이다.

이제 진짜 방송 사고가 나기 전에 이시현을 무대에서 내려야 하는데, 막내 작가가 부조정실에 뛰어 들어왔다.

“피디님!”

“임마, 지금 생방송이야!”

홍 피디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읊조렸다. 그러자 막내 작가가 그의 곁에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뭐?”

놀란 홍 피디는 바로 이성연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아, 지금 막 들어온 소식입니다. 병상에 계시던 여점례 할머니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성연은 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상황을 얘기했다.

그 순간 이시현의 얼굴에서 눈물이 터졌다. 내내 참았던 건지,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이 볼을 타고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 조용한 흐느낌에 휩싸여 있던 청중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낮은 파도처럼 시작된 박수는 이내 마른하늘에 벼락처럼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편, 그 시각 이시현 팬 카페도 난리가 났다.

-소름! 소름!

-우리 집 지금 완전 울음바다. 엄마 아빠 대성통곡! 이시현은 노래 못 부를 거라고 한년 누구니?

-나 어떻게 해? 시집 다 갔어! 시현이 오빠 아니면 이제 남자들은 죄다 오징어!!

-우리 오빠는 영원하리······.

-속보! 여점례 할머니 병상에서 일어났다고 함!

아르바이트 타임이 끝났음에도, 홍은미는 앞치마도 벗지 않고 카운터에 달라붙었다.

팬 카페 게시판에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글이 올라온다.

“세상에······.”

휴대폰을 귀에 붙인 그녀는 마우스를 클릭하며 커피숍 안의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 이 밤, 커피숍 안이 울음바다다.

“나 어떡하니. 오늘 잠 다 잤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수능이 끝났다는 거?

지난번 이시현은 그녀의 사연을 알고 학교까지 찾아와서 대학 등록금이라는 큰 선물을 해줬다. 그뿐인가. 고장 난 휴대폰도 바꿔줬는데.

-기집애 잠은 나도 못 자! 그리고 카페 말고 시현 오빠 홈페이지 가보라고!

마우스를 클릭하랴, 눈물 닦으랴.

홍은미의 가슴에는 여전히 무대의 감동이 남아 있었다.

따닥.

홈페이지를 클릭했는데.

“어? 이거······.”

-그래, ‘너라서’ 풀 버전!

지난번 우리 오빠 첫 방 기념 팬 미팅에서 잠깐 공개했다는 ‘너라서’ 풀 버전.

“이게 왜······.”

-왜겠어? 보이스레이드 백종현 잠적했잖아! 시현 오빠가 그 노래 부르는 거지!

“뭐어?”

놀라서 눈을 크게 뜨는데.

-그것뿐이야? 뮤직비디오 끝나고 또 영상 하나 나와! 그거 완전 대박!

친구의 들뜬 목소리에 홍은미는 입술을 빨아들이고 모니터를 지켜봤다.

< 다만빠 (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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