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112화 (112/227)

< 다만빠 (4) >

“뭔 예고편?”

“뭐겠어요. 이시현이라는 스타의 화려한 비상이지.”

“지랄한다.”

“이 양반이 속고만 사셨나.”

싱거운 소리를 주고받는 사이, 계단 밟는 소리와 함께 이시현 일행이 도착했다. ATTM 프로듀서 한지웅 팀장, 기콘부 백유진도 함께였다.

“안녕하세요.”

훤칠한 키의 이시현이 다가와 인사한다. 그 모습에 이영태는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남자가, 이토록 예쁘게 생길 수 있는 걸까.

“시현 씨, 반가워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이고 나 지금 되게 편해요. 하하!”

배우 이시현이 누군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20대 남자 배우.

이시현과 한 자리,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영태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것이다. 그런데 저분은···

“장연화 교수님?”

이영태는 눈을 크게 떴다. 그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장연화가 아닌가.

“교수님, 저 교수님 팬입니다. 존경합니다!”

“하하, 고마워요.”

“근데 교수님이 여긴 어떻게?”

“제 제자가 오늘 첫 녹음을 한다고 해서요.”

“제자요?”

이영태의 시선이 다시 이시현에게 향했다. 이어서 장연화 교수, 그리고 ATTM 프로듀서 한지웅 팀장까지··· 그가 아는 한 지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인물들이다.

심상치 않은 이 분위기에 이영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야, 너 오늘 일 좀 해야겠다.”

최고의 사람들이 녹음실에 왔다면, 최고의 음향 담당,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불러야 하는 거니까. 물론, 최고의 프로듀서는 이영태 자신이다.

**

‘미치겠네.’

이시현 일행을 보내고 녹음실 소파에 앉은 이영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온몸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리는 일이었다.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은 녹음된 노래를 듣는 것뿐이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부스럭.

녹음실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그였지만 지금은 서둘러 담배 한 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후······.’

깊이 빨아들인 몇 모금에 담배는 빠르게 줄어들고, 이영태는 다시금 녹음실 장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야, 너 노래 안 하고 싶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아침부터 최재환이 오피스텔을 찾아와 잔소리다.

“형··· 나 어제 새벽 3시에 들어왔거든?”

“임마, 나는 어제 한숨도 못 잤어.”

“오빠, 저도 졸려요.”

결국 이불을 뺏겨 침대에서 ㄴ자가 되자, 한송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커튼을 걷는다.

눈부신 햇살이 열 평도 안 되는 오피스텔을 채우는 사이에 나는 보일러를 틀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 나를 두 사람이 뒤쫓아온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거 겁나서 그래?”

“오빠 그런 거예요?”

“시현아, 까짓것 별거 아니야.”

“맞아맞아. 그냥 확 눈 질끈 감고 막 질러요!”

쫑알쫑알. 쫑알쫑알.

“아 진짜!”

뒤돌아봤더니 두툼한 야구잠바를 입은 한송이, 분홍 셔츠를 입은 최재환이 보인다.

“에휴.”

화장실 문을 닫고 샤워기 물을 틀었는데, 최재한의 목소리가 문을 넘어온다.

-할머니, 할아버지 편찮으신 것 때문에 그래?

쏴아아.

따뜻한 물줄기가 내 이마를 두드리고 온몸을 적신다.

“이것저것.”

사실, 이 기획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물론 놓쳐선 안 되는 좋은 기회인 건 분명하다. 이번 무대를 통해 나는 새로운 모습을 보일 테고, 배우라는 한계를 넘는 존재로 대중에게 인식될 테니까.

-너 사춘기냐? 할 일도 많은데 빨리 털어버려! 팬 미팅 콘서트, 차기작 드라마, 음반 활동, 또 영화까지. 너 할 일 되게 많다!

최재환의 잔소리처럼 이 몸은 지금 사춘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겨울이라서 감정 기복이 왔는지도 모르고.

에이, 모르겠다.

샤워기 물을 잠그고 수건을 손에 들었다. 화장실을 나오자 최재환이 물 한잔을 건넨다.

“마셔.”

꿀꺽 마셨더니, 이번에는 한송이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옷을 챙겨준다. 이게 지금 어딜 보는 거야.

아무튼 긴 다리, 긴 팔 쭉쭉 벋어서 대충 걸치고 소파에 엉덩이를 털썩.

“어제 할머니 손녀분 만났다며? 무슨 얘기 했는데?”

“그냥 이것저것.”

그 말에 최재환이 한숨을 쏟으며 내 곁에 앉는다. 그러더니 내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걸더니.

“복잡하지?”

“뭐가?”

“너 머릿속.”

머리야 늘 복잡했다. 이번에는 최대한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에 단순한 게 없더라. 모든 게 잘되고, 매일 행복해도, 고민거리는 생긴다.

“어차피 너 아니어도 누군가는 그 무대에서 노래 불러야 해. 좋은 쪽으로 생각해··· 이 얘긴 여기서 끝내자.”

최재환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선을 긋는다. 녀석이 나를 어르고 달래는 실력이 제법 늘었다는 게 느껴진다.

“오빠, 저 이거 먹어도 돼요?”

한송이가 냉장고에서 동그란 팥 빵을 꺼내 흔든다. 저걸 그냥.

“어 먹어.”

유통기한 지났거든.

빵 비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동안 나는 소파에 기대 ‘5분만 더’를 외치고 있고, 최재환은 옆에서 사무실과 통화 중이고. 아 시끄러워. 이 인간들을 그냥!

“슬슬 일어나자. 차에서 자면 되잖아.”

최재환이 나를 또 어르고 달래 일으킨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오피스텔을 나가기에 앞서, 한송이가 현관문을 빠끔 열고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밖에서 비명이.

“오빠아!!”

“시현이 오빠 나왔다!”

팬들에게 오피스텔에 찾아오지 말라고, 홈페이지에 공지를 남겼음에도 말을 듣지 않는다. 물론 말을 듣겠냐 만은··· 나는 팬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첫째. 질서정연할 것.

둘째. 주변에 피해 주지 말 것.

“얘들아 여기 주택가야. 소리 지르면 안 된다.”

밖으로 나와 타이르자 애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나, 둘, 셋··· 스물. 여기까지 세고 포기.

여기는 복도식 오피스텔인데, 복도에 애들 천지다.

“너희들 오피스텔까지 올라오면 어떻게 하니? 그리고 춥지도 않아?”

“보고 싶은 걸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친구가 입술을 빼죽 내밀고 최재환 눈치를 살핀다. 훗, 그 모습이 귀여워서 볼을 꾹 눌렀더니 포동포동 찐 살이 잡힌다.

“나도 너희 보고 싶은데, 그래도 밖에서 보자잉?”

“히잉!”

일단 엘리베이터에 타는 건··· 포기.

계단을 내려가는 우리를 팬들이 쫓아온다. 그렇다고 뛰어가지도 못한다. 어제는 쫓아오던 팬들이 우르르 넘어져 사고가 날뻔했다.

“얘들아, 시현이 가야 한다.”

“곰 매니저님만 가세요!”

“이 자식들이. 얘 내 밥줄이거든?”

팬들이 혀를 내밀고 메롱을 하는 사이, 최재환이 나를 차에 밀어 넣었다.

간신히 주택가를 벗어나자마자 최재환이 히터를 틀며 혀를 내두른다.

“또 민원 들어오겠네. 블랙보이 팬들이 난리 치는 건 난리도 아니다.”

“왜, 애들 귀여운데.”

“안 되겠다. 내일이라도 이사 가야지.”

“어디로?”

“알아서 뭐하게? 넌 그냥 몸만 옮기면 돼.”

오피스텔을 옮기는 거야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다. 하지만 정이 들어서, 유일하게 녀석의 흔적이 남은 오피스텔이라서, 그래서 좀 더 살고 싶었는데.

“오빠 이사 가는 거예요?”

한송이가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묻는다. 고소하고 달콤한 팥 냄새가 물씬 풍기는데.

“그럼, 우리 넓은 데로 가요.”

무슨 소린가 싶어 흘깃 돌아봤더니, 한송이가 눈을 반짝인다.

“그리고 나도 방 하나 줘요. 맨날 늦게 퇴근하니까 집에 가기 힘들어요!”

“하······.”

한숨과 함께 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초겨울 칼바람에 내 입김이 유리에 달라붙는다. 뽀얗게.

“얘들아!”

최재환이 김밥이 담긴 검은 봉지를 내려놓았다. 솜솜 직원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다만 전과 달라진 것은 김밥 대신 나를 향해 달려든다는 것뿐.

“시현 씨 머리는 내.가.할.거.야!”

한달음에 달려온 원장이 내 팔을 붙잡고 안긴다. 전에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더니 이제는 직접 한다고 난리다.

뭐, 누가 하든 무슨 상관인가. 빗질만 해도 충분한데.

“근데, 시현 씨가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한다며?”

어제자 신문 1면에 이어서 MNC에서는 다만빠 홍보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KIS에서 이래저래 불만을 쏟는 중이라는데··· 자리에 앉자, 직원들이 내가 추울까 봐 전기스토브도 곁에 가져다주고, 커피까지 내준다.

“오늘은 한 명이 비네?”

원장이 고개를 돌리며 서아린을 찾자, 최재환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펼치며 말했다.

“오늘은 스케줄이 레슨하고, 녹음밖에 없어서···.”

“녹음?”

원장이 두툼한 눈구덩이를 껑충 올린다.

“내레이션.”

최재환이 대충 대답하고 커피를 손에 쥐더니.

“앗 뜨거.”

“어이구, 칠칠하지 못하기는. 그래서 어디 장가가겠어?”

원장이 혀를 차더니, 한송이를 보며 물었다.

“송이 너 한승연 언니라며? 둘이 안 닮았던데?”

“그죠? 제가 좀 더 예쁘죠?”

한송이가 미친 소리를 하고 있다. 원장도 어이가 없는 얼굴인데.

“오늘 승연이 머리하고 갔어요?”

신문을 한 장 넘기며, 최재환이 무심하게 물었다. 그러자 원장이 곁에 앉으며 입꼬리를 올린다.

“응. 어제 체험 현장 투데이 찍었다던데? QQ에서.”

“그래요? 근데 12월에는 시현이 스케줄 꽉 찼어요.”

최재환이 목소리를 늘어트리며 선을 긋자 원장이 펄쩍 뛴다.

“아니 누가 뭐래?”

“거기 주태곤 편집장이랑 원장님이랑 아는 사이인 거 나도 알거든?”

“허! 어떻게 알았어? 귀신이다, 귀신··· 시현 씨, 최 팀장하고 너무 붙어 다니지 마, 귀신들린다.”

원장이 혀를 내두르는데, 샵 유리문이 열리고 눈에 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

‘윽!’

성지훈은 샵에 발을 들이자마자 고개를 피했다. 저 안에서 하얀빛이 쏟아지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조각 같은 외모, 하얀 피부, 숨 막히는 아우라···

‘젠장!’

하필 여기서 이시현을 마주칠 줄이야. 어쩐지 솜솜에 들어오는 입구부터 여학생들로 붐비더니만.

성지훈은 당장에라도 여길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애초에 솜솜을 다니기로 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지만, 그 날이 하필 오늘일 줄이야.

“지훈 씨.”

피디의 낮은 목소리에 성지훈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하고 서둘러 미소를 보였다.

소속사와의 계약 해지, 그리고 화려한 비상을 위해, 그는 지금 MNC 프로그램 ‘스타 다큐’를 찍는 중이다.

지난번 번개콘서트에서 개망신을 당한 것 때문에··· 지금 생각해도 자다가 벌떡 깨는 그 일 때문에, 예능 국장에게 하소연해서 겨우 얻은 기회다.

“지훈 씨, 왔어요?”

원장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다가왔다. 아이보리색 드레스 차림에 오백 원 동전 만한 진주 귀걸이를 치렁치렁 흔들면서.

“시현 씨도 왔는데, 두 사람 서로 본 적 있나?”

원장의 말에 카메라 옆에서 피디의 눈이 반짝인다. 그 시선은, 성지훈에게 알아서 그림을 만들라는 주문이 담겨 있었다.

“그래요? 하하, 여기서 시현 씨를 만나네.”

내키지 않지만, 성지훈은 억지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마 방송분량에서는 여기서 내레이션이 붙을 거다.

-우연히 배우 이시현을 만난 성지훈.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배우 이시현이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성지훈은 갈등했다. 가슴은 놈이 죽기보다 싫다고 외치지만, 프로그램을 위해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이것은 기회란 말인가.

결국 그는 방송 내레이션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이시현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시현 씨.”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메이크업 중이던 이시현이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인다.

“앉아있어요, 앉아.”

일단은 곁에 붙어서.

“요즘 많이 바쁘죠?”

“아니에요. 선배님보다 바쁘겠어요?”

이게 누굴 물맥이나.

성지훈은 순간 욱할 뻔할 걸 참고 미소를 유지했다.

근데 말이야. 이시현이 미소 한번 보였을 뿐인데, 카메라가 아예 대놓고 놈을 찍기 시작했다.

“근데 선배님, 무슨 촬영이에요?”

이시현이 카메라를 보며 묻는다.

“아, 스타 다큐. 하하.”

잘나가는 연예인들만 찍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두 사람의 대화가 너무 자연스럽다. 같은 미용실을 이용하는 두 사람은, 이렇듯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팬 미팅한다는 소리 들었는데, 준비는 잘하고 있어요?”

오늘 아침 신문으로 그 소식을 봤을 때, 성지훈은 신문을 북북 찢었다. 자신이 왜 이딴 놈의 팬 미팅 소식까지 신문으로 봐야 하는지, 아침부터 두통약을 입에 물었을 정도인데.

“내가 도울 건 없나?”

성지훈은 은은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 매니저가 뒤에서 그를 보는데, 못 볼 걸 본마냥 찌푸린 얼굴이다. 그래도 어쩐단 말인가. 먹고는 살아야지!

-성지훈은 평소에도 후배들을 잘 챙기는 편이다. 그래서 이시현도 맘 놓고 그에게 기대는······.

이런 식의 내레이션을 떠올리던 성지훈이지만, 이시현은 미소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이시현은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 왜일까. 그의 호의가 부담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둘은 친하지 않았던 걸까?

‘헉!’

원치 않는 내레이션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성지훈은 화들짝 놀라서 미소를 더 크게 그렸다.

“하하. 어려운 거 있으면 뭐든 얘기해요.”

이 정도에서 끝내고 물러나려는데, 피디가 버티고 서서 눈짓이다. 계속하라고.

‘이 자식들이!’

8월, 9월, 10월, 11월.

불과 4개월이다. 그것밖에 안 지났단 말이다. 4개월 전만 해도 이시현이라는 찌꺼기는 그 앞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했는데.

“선배님.”

“어? 어?”

성지훈이 급히 미소 짓고 이시현을 바라본다.

이제야 카메라가 두 사람을 투샷으로 잡는데··· 이시현이 디자이너에게 손짓하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정중히 다가와 성지훈의 손을 꼭 잡는다.

“전, 항상 선배님 팬이에요.”

“어?”

예상치 못한 말투와 행동, 그리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이번 앨범 정말 기대돼요. 파이팅!”

카메라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는 응원의 모습까지.

그러더니 다시금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 앉는다.

성지훈은 얼떨결에 자리를 옮기면서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거··· 좋은 놈이었잖아?’

< 다만빠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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