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를 품은 달 (6) >
“이따 통화하자.”
-책임지라고 임마!
김 팀장은 서둘러 끊은 전화를 조수석에 던져두고 운전대를 붙잡았다. 그렇지만 윤 감독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계속 앵앵거린다.
“무슨 전화예요?”
뒷좌석에 앉은 권혜선이 물었다. 그녀의 재활훈련을 위해서 병원에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김 팀장은 애써 여유로운 웃음을 보였지만, 실상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회사에서 블랙보이 팬 카페 게시글 작성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처음 윤 감독 촬영장에서 최재환이 송이경을 끌고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뭔가가 머리를 스쳤다. 매부가 연제협 회장이란 사실은 윤 감독이 틈만 나면 떠들어대는 얘기였으니까.
그러니 계획대로라면 최재환은 연제협 때문에 매장당해야 하고, 폭력 매니저로 대중에게 인식이 돼야 했다.
‘그런데 왜!’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아니면, 차라리 직접 할 것을 왜 남수혁에게 맡겼을까. 그 정도로 최재환을 향한 질투에 눈이 멀었던 걸까.
딱히 나올 리 없는 답을 끄집어내려 김 팀장은 머리를 쥐어짰다.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뿐.
남수혁이 총대 메는 거다.
그런 다음 윤 감독 쪽이야 적당히 설득해서 타협할 일이다.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그쪽도 할 말은 없을 거다. 그래도 동창인데 설마 같이 물에 빠지자고 할까.
이렇게 된 마당에 짤리는 건 두렵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의 시선, 두고두고 회자들 이야기의 중심에 자신이 서는 게 두려울 뿐이다.
‘젠장!’
김 팀장은 권혜선을 강남의 오피스텔에 데려다주고 회사로 돌아왔다. 살짝 열린 차창으로 건물 입구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시현이 그렇게 잘났어?”
“뭐?”
블랙엔젤스와 시현 수포 회원들이 대치중이다.
“키만 멀대같이 커서. 얼굴도 비리비리하게 생겨서 꼴에 배우라고.”
“이 어린놈의 자식들이 주둥이를 어디서 나불거려?”
이시현 팬들은 연령대가 다양하다. 그나마 이십 대 비율이 높지만, 십 대가 태반인 블랙보이 팬들보다는 연령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한번 붙자! 오늘 아주 날씨도 좋겠다, 노친네들 요양원 좀 보내드릴게!”
두 팬클럽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해서, 김 팀장은 지하 주차장으로 피신하듯 내려왔다. 지친 걸음을 끌어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으려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묘하다.
마치 타인을 보는 듯, 혹은 경멸의 시선.
그 시선을 분명히 느꼈을 때, 김 팀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김 팀장님.”
조 부장이다. 승진 문제로 서로가 불편한 게 많아서 회사 내에서는 딱히 말을 섞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왜?”
“올라오래요.”
“···왜?”
불안해하는 그를 조 부장이 싸늘하게 바라보더니, 툭 말했다.
“왜 그러셨어요?”
김 팀장이 대표실에 올라갔을 때, 남수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금발 머리카락 사이에 삐뚤빼뚤한 시선이 숨어 있다.
‘저 얍삽한 자식.’
한눈에 봐도 지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지 혼자 살자고 다 불었겠지. 물론 하기 싫었는데, 팀장이 시키니 어쩔 수 없이 했다고 선수 쳤겠지.
“왜 그랬냐?”
다리를 꼰 차 대표의 시선을 차마 마주 볼 수 없어서, 김 팀장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할까. 변명꺼리도 없는 일을 저질러버렸다.
“죄송합니다.”
“허.”
차 대표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 그쳤을 때는 차갑게 식은 눈이 김 팀장을 향했다.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철컥.
문이 닫히자 남수혁은 눈치를 살피며 고개를 들었다. 차 대표가 그를 지그시 응시하고, 향수 냄새와 담배 냄새가 뒤섞여서 주위를 맴돌았다.
“어떻게 해줄까?”
“예? 아, 김 팀장님이 저를 강압적으로 대하긴 했지만, 순간 실수하신 거니까··· 그냥 퇴사 정도로.”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 어떻게 해줄까하고 묻는 거야.”
“저요? 저는 딱히 뭐 바라는 게 없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아픈데 뭘 무리해? 쉬어야지.”
“예?”
“너 아프잖아.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작년에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하루가 멀다고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쉬고 싶었으니까.
“그거야 물리 치료하면서······.”
“됐어. 쉬어. 리더 자리는 우빈이한테 넘기고.”
“대표님!”
남수혁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 덕분에 소름끼치도록 싸늘하게 변한 차 대표의 시선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건방진 자식. 이렇게 와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으면 너는 무사할지 알았어?”
“저, 저는 진짜 시켜서 한 것밖에.”
그가 입술을 바들바들 떨자, 차 대표가 테이블에 놓인 전화기 버튼을 꾹 눌렀다. 스피커를 통해 비서의 목소리가 들리자.
“들어오라고 해.”
문이 열리고 블랙보이 멤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차 대표는 뜸들일 것 없이 바로 물었다.
“강압적으로 한 거 맞아?”
“아니요. 형이 2팀장님하고 이시현 좆되 보라고······.”
남수혁의 얼굴이 바들바들 떨리는데, 차 대표는 더 이상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앞만 보며 속삭일 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계약 종료 때까지는 데리고 있을 테니까.”
**
“하······.”
작가란 직업은 자유롭다.
배가 고플지언정 시간이 고프진 않다.
남들이 출근 시작할 즘에 일어나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침대에서 벗어나 거실 커튼을 젖히고, 강아지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TV 리모컨을 꾹.
주 작가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흐음흐음.”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화장실을 나와, 양치질을 계속하며 밤사이 고쳐 쓴 대본을 들여다본다.
스텝은 몇 가지 설정을 보완면서 한층 완성되고 있었다.
미완성의 작품을 완성한다는 것.
이는 주 작가에게 있어서는 책임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러니 요즘 그녀의 기분은 최고조였다. 단지, 송이경이 그녀의 호의를 뻥 차버린 게 상당히 짜증나지만.
‘송이경 너··· 이제는 빌어도 소용없어.’
어떻게 해야 그 바보를 후회하게 만들어줄까.
그 같은 고민 속에서 TV를 본 주 작가는 입에 문 칫솔을 뺐다.
아침부터 눈앞에서 떠들어대는 아나운서의 목소리.
-보이그룹 A, 가수 C양 등, 국내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와 다수의 광고를 제작한 장 미디어의 작품 상당수에 표절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특히 가수 C양의 뮤직비디오는 미국의 컨트리 가수 B의 뮤직비디오 콘셉트와 소품까지 상당수 일치한 것이 밝혀져 관련 업계에 큰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이며······.
TV에는 해당 뮤직비디오를 비교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미친 새끼······.”
주 작가는 저도 모르게 속삭이고 말았다. 저 작품들 죄다 윤 감독 작품이다. 그러니 그 자식이랑 함께 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다시금 양치질을 계속하면서 화장실에 들어간 그녀는 입안을 헹구고 머리를 질끈 동여맸다.
잠시 화장실 밖으로 고개를 빼곡 내민 그녀의 눈에 모자이크 처리된 TV 화면 속 윤 감독의 모습이 비쳤다. 장 미디어 장승태 대표 역시도 모자이크 속에서 인터뷰하고 있었다.
-감독 개인의 일탈이었으며, 이 일에 장 미디어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세면대의 물을 틀고, 주 작가는 손등에 따뜻한 물을 적셨다. 온종일 글과 씨름해야 하는 작가이니 손 관리는 필수. 손을 뻗어 비누를 챙기는데.
-단막극 공모전 출신의 D작가가 SBC 공모전 출품작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세러데이 서울의 취재에 따르면 D작가는 이번 SBC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는데, F작가의 ‘스텝’이라는 작품을 제목까지 똑같이 베껴 이를 외주제작사 장 미디어와 함께 제작하려 한 정황이 포착 됐다고 합니다. 한편 이번 SBC 공모전에서 F작가의 스텝은 수상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거로 알려졌으며······.
화장실에서 뛰어나온 주 작가는 연신 눈을 깜빡였다.
심장은 제멋대로 두근거리고 다리는 후들후들.
“마, 말도 안 돼.”
저게 어떻게 뉴스에.
그리고 뉴스에 나가려면 최소한 확인 전화 한번은 들어오는데···
-마지막으로 블랙보이 리더 남수혁이 건강상의 이유로 활동을 잠시······.
띠리리 띠리리.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TV 소리도 전화기 소리에 묻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지에스엔터테인먼트 법무대리인, 법무법인 유성입니다.
**
「MNC 예능국 국장실」
TV 화면 속 장연화 교수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손길은 부드럽고, 유아하며, 아름답다.
-들이쉬고!
그녀의 반주와 리드에 맞춰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남자가 노래를 부른다.
-내쉬고!
때로는 힘 있는, 때로는 섬세한 목소리가 레슨실을 가득 채웠다. 심지어 두 번째 곡에서는 리드도 없다. 그저 반주와 노래가 함께 흐를 뿐이었다.
피아노 건반이 가는 떨림과 함께 소리를 멈췄을 때, 남자의 목소리는 잦아든 반면, 장연화 교수는 만족스러운 듯 큼지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정말··· 저 목소리가 이시현이란 말이야?”
민 국장은 지에스 조 부장을 향해 재차 물었다. 아니, 다시 답을 들어도 여전히 믿기지 않을 것 같은데, 지에스에서 그렇다고 하니 믿을 수밖에.
“이시현··· 이 친구 천재야?”
황당해하는 민 국장의 모습에 조 부장이 미소를 가로저었다.
“시현일 맡고 있는 선생님 얘기로는 음악적인 센스는 있지만, 그건 재능과는 차이가 있죠. 그저 목소리를 타고 난 겁니다.”
이시현의 나이 스물일곱.
천재적 재능이 있다고 해도 이를 성장시키기에는 턱없이 늦은 나이다. 하지만 타고난 목소리는 그 자체만으로 완성품이기에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다. 물론, 지금의 이시현이라서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근데 이시현은 어디 갔어? 데려오지 않고.”
“매니저 데리러 갔습니다.”
조 부장은 미소를 보이고 말했다. 민 국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매니저를 데리러 가?”
“예.”
**
탁.
차에서 내리자, 선선한 바람이 저수지를 타고 불어왔다.
최재환이 낚시를 갔다는 얘기에 내가 올 곳은 이곳밖에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을 하나 뽑자면, 정말 뽑기 힘든데, 그래도 뽑자면 한번은 나를 데리고 낚시터에 온 기억이다.
밤바람을 맞으면서 먹었던···
아버지가 끓여주었던 라면은 그나마 내가 아버지 당신을 잊지 않게 하는 기억으로 남아서 종종 나를 낚시터로 이끌고는 했다.
정 엔터테인먼트의 수장이 되고부터는 더 자주 왔고.
밤사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홀로 생각에 잠겼던 시간들.
‘후······.’
하늘하늘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 아래 최재환이 앉아 있다.
어디서 맞지도 않는 모자를 사서, 아니면 주운 것인지, 빨간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하염없이 낚싯대만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번에, 최재환이 홍역을 제대로 앓았다.
그저 그런 매니저급이었다면 이 정도로 일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최재환은 지에스의 2팀장이며,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할 시기가 찾아온 거다.
아마 녀석도 이번 일로 제대로 깨달았겠지.
“뭐 좀 잡혀?”
붕어나 잉어나 향어나. 매운탕 끓여 먹을 만한 게 있나 모르겠다. 낚시터를 자주 찾긴 했지만, 낚시를 잘하지는 못했으니까.
“스케줄 없어?”
무심하게 묻는 녀석의 목소리가, 왠지 나를 위로하는 기분이 든다.
“그러게 말이야. 아휴, 매니저 모시러 오는 배우가 어디 있어? 안 그래?”
“자식. 어련히 갈 것을.”
피식 웃는 녀석에게, 나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자.”
그런데.
“어? 물었다!”
벌떡 일어선 최재환이 냉큼 낚싯대를 거둬들였다.
**
어둑어둑한 밤.
서울에 오니 하늘에 해는 사라지고 달이 떠 있었다.
이시현은 곧장 보컬 레슨을 받으러 갔고, 최재환은 집으로 가는 대신 강남의 오피스텔에서 차를 멈췄다.
차에서 내린 그는 주위를 살피며 움직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지나, 오피스텔 앞에 멈췄다.
벨을 누르고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최재환은 포근한 미소를 띠고 있는 권혜선 때문에 잠시나마 부릅뜬 눈을 숙여야했다.
뚝 떨어진 눈물······.
한걸음 안으로 들어가 문이 닫히자, 그녀가 고개 숙인 그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수고하셨습니다.”
< 해를 품은 달 (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