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107화 (107/227)

< 해를 품은 달 (5) >

“터졌구나!”

사무실을 뒤흔든 기자의 목소리에 다들 웅성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가 다시 외친다.

“다들 이시현 홈페이지 가봐!”

서 있던 기자들까지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우정 기자도 정신없이 마우스를 클릭. 그리고는.

“세상에.”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야 이우정!”

“예 부장!”

이우정은 곧바로 부장 사무실로 뛰어들어갔다.

“이거 지에스 입장인 것 같냐, 이시현 입장인 것 같냐?”

“지에스 이런 식으로 일처리 안 해요. 그쪽은 뭐든지 뒤에서 처리한단 말예요.”

“그지? 이거 이시현 단독행동이지?”

“그런 것 같아요.”

여전히 얼떨떨해서 고개만 끄덕인다.

“와, 아주 그냥 통통 튀는구만! 너 이시현이 단독 딸 수 있겠냐?”

“따야죠. 무조건 따야죠.”

“그래 이 자식아, 자세가 됐어. 당장 인터뷰 따고··· 아니다, 애들 다 들어오라고 그래! 앞으로 이시현 팬클럽 개 난리 칠 텐데, 그것도 취재하고, 연제협 건물 앞에 대기하고··· 이거 냄새 제대로 난다. 특종 냄새!”

흥분한 부장이 난리법석을 떤다.

근래 가장 핫한 배우 이시현이가, 매니저와 연제협의 트러블에 은퇴도 불사하겠다는 초강수를 택했다. 이 말인즉, 연제협하고 한판 뜨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다들 들어와!”

**

상암동 연제협 건물 앞에 1천여 명의 팬이 피켓을 들고 시위 중이다. 방송 3사가 취재를 나올 정도로 대규모 시위였기에 경찰들도 긴장 속에 연제협 건물 주변을 지켰다.

-연제협은 각성하라!

“연제협은 각성하라!”

-압력행사 중지하라!

“압력행사 중지하라!”

마스크를 쓴 여자가 확성기로 외치면, 피켓을 든 팬들이 재창한다. 일사불란하고 정돈된 시위 모습에 지나가는 시민들의 시선이 모이는데···

한편 그 시각 지에스엔터테인먼트 앞에서도 격렬한 시위가 한창이었다. 블랙보이 팬클럽 블랙엔젤스 회원들이 진을 쳤다.

“폭력 매니저 꺼져!”

“우리 오빠들 왜 건드려!”

“니들이 그러고도 사람이냐!”

욕설이 난무하고, 지에스 출입문은 계란범벅이 됐다.

일부 팬들은 주차장의 차들을 훼손하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통제되지 않는 개판 5분 전 상황인데, 그나마 블랙엔젤스 수뇌부는 움직이지 않았기에 이 정도였다. 글의 진위도 확인되지 않은데다, 배우 이시현이 은퇴라는 초강수를 뒀으니 섣불리 움직일 순 없었다.

지에스의 공식 입장은 소속 아티스트에게 절대 폭력 행사는 있을 수 없으며, 심지어 최재환 팀장은 1팀이 아닌 매니지먼트 사업부 2팀이라는 해명, 허위 사실을 유포한 네티즌의 고소까지, 앞으로의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물론 블랙보이 멤버 전원은 그런 일이 없다고 발 빠르게 글을 올렸다.

“팀장님, 어떻게 하죠?”

건물 입구에 모인 팬들을 본 남수혁은 창가에서 물러나 김 팀장을 돌아봤다. 자신만 믿으라고 떵떵거리던 김 팀장은 찌푸린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이시현 이 새끼가 미쳐가지고.”

아까부터 계속 저 소리만 중얼거린다.

“팀장님, 지금 이시현 팬들이 카페 글 작성자 찾아낸다고 난리잖아요!”

“좀 닥쳐봐 임마!”

늘 실실 웃던 그가 험악한 시선으로 쏘아붙이자 남수혁이 입술을 머뭇거린다.

“넌 그냥 가만히 있어. 니가 글쓴지 아무도 모르잖아?”

김 팀장은 한숨 뒤에 다시 말했다. 그런데, 남수혁이 눈을 피한다.

“뭐야?”

“멤버들은 알아요.”

“이 미친 새끼야! 내가 아이디 새로 파서 몰래 쓰라고 했어 안 했어?”

“같은 숙소잖아요? 제가 숙소 아니면 어디 가서 글을 써요?”

“하······.”

“괜찮아요. 그래도 멤번데.”

“이 등신아. 걔들이 언제까지 너하고 한 멤버야? 수틀리면 남이지. 아직도 그걸 모르냐?”

“팀장님, 저 무시하지 마세요. 걔들이나 저나 어차피 비즈니스 관곈데, 제가 잘못되면 걔들도 잘못돼요.”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김 팀장의 모습에 남수혁이 발끈했다. 그러자 김 팀장은 체념한 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알았으니까, 나가.”

회의실에 혼자 남은 김 팀장은 심호흡 뒤에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띠리리··· 띠리리······.

“나야.”

-그쪽 분위기 어때?

“지에스는 최재환 내보내지 않을 것 같아.”

-어떻게 된 거야? 말이 틀리잖아? 니 말 듣고 연제협 움직였는데, 이시현이 은퇴 어쩌고 하고, 권혜선에, 오소리에, 송이경에, 심지어 최미숙까지! 죄다 최재환을 위해 은퇴 불사한다고 난리잖아!

이시현이 공식 홈페이지에 손편지를 올리고, 바로 3W 멤버 전원이 팬 카페에 글을 올렸다. 이어서 오소리, 그다음은 송이경, 심지어 타 회사 소속인 최미숙과 이수정까지.

“애들이 이렇게 나올지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리고, 니 매부는 뭐 하는 건데? 기사만 뜨고 후속 조치가 없잖아?”

-됐으니까, 다신 전화하지 마.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묻히니까.

윤 감독의 목소리가 끊어지자, 김 팀장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젠장······.”

그저, 최재환을 곤란하게 만들 셈이었는데··· 배우들이, 가수들이, 그 자식을 이렇게까지 지지할 줄이야.

**

“자, 한잔하시죠.”

서로가 잔을 주고받았다. 연제협 회장 진세준도, 지에스엔터테인먼트 차현성 대표도 앉아 있는 속내와는 달리 얼굴에 유한 미소를 띠고 잔을 나눠 받았다.

“최재환이라는 친구, 차 대표님이 후계자로 점찍었다는 소리가 있던데.”

쓸데없는 얘기.

“하하. 누가 그럽니까? 내가 아직은 후계자를 둘 나이는 아닌데.

“그런가요? 듣기로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서 다른 일을 고려중이시라고······.”

탁.

차 대표가 잔을 내려놓는다.

“회장님.”

“예.”

진세준이 뒤룩뒤룩 살이 붙은 볼을 찌푸리는데.

“나, 연제협 회장 자리 관심 없습니다. 우리 정 이사도 연제협 이사 자리만 차지하고 있지, 딱히 하는 거 없잖습니까?”

“그래요?”

“지에스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인데, 내가 거기 앉아서 뭐하겠습니까?”

쪼르르··· 다시 잔을 나누고.

“오해는 그만 푸시고, 우리 애들은 내가 도닥일 테니까, 이쯤에서 상황 끝내죠.”

톡톡톡.

진세준의 검지 손톱이 테이블을 두드린다. 술 한 모금을 마시고,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해프닝 치고는 일이 많이 커졌어요. 내가 지에스한테 괜히 미안해졌네.”

“뭐, 이런 일 예사 아닙니까. 덕분에 최재환이도 휴가 챙기고, 우리 애들도 사이 돈독해졌고.”

“최재환이라······. 그 이름 기억에 오래 남겠네요.”

차 대표는 술 주전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진세준의 빈 잔을 채우기 전, 지금 막 생각났다는 듯 다시 얘기를 이었다.

“아, 회장님 처남인 윤 감독은 책임을 좀 졌으면 좋겠는데요. 우리가 이번에 손해가 좀 있었는데··· 그래야 모양새가 깔끔하겠어요.”

진세준의 이마가 꿈틀거린다. 하지만 표정은 신중.

“역시 차 대표님, 그냥은 안 넘어가시네. 좋습니다. 사과하라고 하죠. 오해와 유감. 그 정도 선에서 정리합시다.”

“그럼, 한잔하실까요.”

**

[스텝] 16부 대본 (초고)

꼭 재기해야 한다. 그것이 빚을 갚는 일이다.

눈앞에서 교차하는 주먹, 상대의 주먹이 내 복부를 때린다. 강한 통증에 순간 신물이 올라왔다.

“욱!”

그러나 이를 악물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겨우 서 있는데, 트레이너는 수건을 던지려고 망설인다. 그리고 그녀.

-아! 장태원 선수! 로체 선수의 한방에 무너집니다!

강렬한 한방에 턱이 무너져 내렸다. 쿵! 소리와 함께 내 몸은 링 바닥에 엎어졌다. 모든 것이 흐릿해 보이고, 거친 숨소리와 피인지 침인지 모를 것이 목을 틀어막았다.

“커, 컥!”

원! 투! 쓰리···

심판의 카운트가 시작된다. 이대로 쉬고 싶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걸까. 무엇 때문에.

재기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시간들, 강도 높은 훈련으로 숨이 끊어질 것 같았던 고통,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나를 이겨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걸까.

나는 사람을 죽였다. 실수가 아니다. 그건 살인이다.

종이 울렸을 때 바로 멈췄어야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뻗은 주먹이······. 그를 죽게 했다.

포! 파이브···

이제 카운트 세 개만, 세 개만 더, 이대로 있으면 다 끝나는데.

“일어나!”

흐린 시야가 초점을 찾아가면서 그녀가 보인다. 권여름.

“일어나라고! 도망치지 말라고!”

식스! 세븐···

“으아아아!”

-아, 장태원 선수! 일어납니다! 일어납니다!

일어선 나를 심판이 살핀다. 왼쪽 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다. 그나마도 잘 안 보인다. 아마 퉁퉁 부었겠지. 그래도 오른쪽 눈에는 심판의 모습이,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 할 수 있어, 계속할 수 있다고 시팔!

-말씀드린 순간 종이 울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12라운드에 앞서 1분의 휴식이 주어집니다.

“헉······. 헉······.”

“태원아 잠깐만 참아라!”

잠깐의 통증, 이제야 왼쪽 눈이 다시금 보인다.

“태원아 괜찮냐? 내 손 보여?”

“하··· 하······.”

고개를 끄덕일 힘도 아껴야 한다. 면도칼을 손에 든 트레이너를 노려볼 뿐이다. 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다고 무성의 외침을 보낸다.

“하······. 하······.”

그녀가 링 아래서 나를 본다. 왜 우는 거지? 나는 당신의 남자를 죽인 쓰레긴데. 욕을 하라고. 지금까지처럼.

“태원아 마지막 라운드다. 세계챔피언이 되는 거야.”

“하······. 하······.”

-12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습니다. 이제 마지막 라운드. 로체 선수 시작부터 거침없이 밀고 들어옵니다. 잽! 장태원 선수 무빙해야 해요, 다리 풀어야 됩니다!

휙, 휙!

세상의 소리가 멎는다.

눈앞에는 들개 한 마리가 으르렁거릴 뿐이다.

근데 말이다. 나는 너보다 무서운 들개를 본 적이 있어. 내 가장 소중한 친구였고, 나와 함께 세계챔피언을 꿈꿨던 친구···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웠던 들개를 말이야.

-장태원 선수! 무빙이 살아나고 있어요. 아웃복싱해야죠. 전략대로 가야 합니다. 물러나면 안 됩니다. 스트레이트! 좋아요! 지금이에요! 훅!

퍽! 퍽! 퍽!

이길게.

친구야. 꼭 이겨서, 꼭 이겨서, 너에게 챔피언 벨트를.

-장태원 선수! 질러야죠, 질러야죠, 멈추면 안 됩니다! 한방, 한방이 중요해요! 로체! 로체! 코너에 몰립니다. 자세 좋아요.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합니다! 지금이에요!

퍽!

-장태원 라이트 훅! 그렇죠! 로체 쓰러집니다! 쓰러졌습니다! 철옹성 로체가 쓰러졌습니다!! 심판 카운트 시작합니다! 장태원 선수, 혼신의 힘을 다한 한방!

-장태원 선수도 쓰러지기 직전이에요. 로체가 일어나면 안 됩니다. 판정까지 가면 집니다. 로체 이대로 잠들어야 해요.

-원! 투! 쓰리! 포!

파이프··· 식스··· 세븐······.

-심판! 경기 종료 선언합니다! 대한민국의 장태원! 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미국의 로체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세계챔프에 등극합니다!

“하······. 하······.”

이긴 건가. 끝난 건가.

“태원아! 태원아! 네가 세계챔프다! 네가 세계챔프야!”

“관장님··· 관장님······.”

“어, 말해! 말해!”

“여름이······. 여름이 어디 있어요.”

“어? 여름이?”

제발 내 앞에 나타나 줘. 나를 용서해준다고 얘기해줘. 아니, 그냥······. 네가 보고 싶어.

“권여름··· 권여름··· 권여름!!”

눈앞의 풍경이 걷힌다.

세계타이틀전이 펼쳐지던 경기장도, 로체 선수도 사라졌다.

숨을 크게 몰아쉬고 고개를 든 나를, 장 미디어 장승태가 눈만 깜빡이며 바라본다. 그러더니 손에 쥔 A4 뭉치를 확인하고, 다시 나를 눈에 담았다.

여전히 입을 열지 못하는 그를 보다 못해, 내가 먼저 물었다.

“대표님이 보시기에,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 것 같습니까?”

“이, 이십··· 아니, 삼십?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장 대표는 표정 관리를 못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임 작가를 돌아봤다.

“계약, 당장 합시다. 얼마면 됩니까?”

“저는 모든 걸 이시현 배우에게 일임했습니다.”

장 대표가 다시 나를 본다.

훌륭한 대본, 거기에 지금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젊은 배우가 주연으로 나온다. 대기업 협찬은 따 놓은 당상이고, 방송국 편성도 따 놓은 당상이다.

장 대표의 머리에서 돈 굴러가는 소리가 정신없이 들리는 것 같다. 벌써 백억은 손에 쥔 자의 얼굴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와서 오디션 연기를 보였다면··· 그래요, 시현 씨. 뭘 원합니까?”

그 말에 나는 옆을 돌아봤다. 철제 의자에 앉아 있던 박 상무가 덩치를 들썩거린다.

“우리 지에스는 장 미디어와 이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선행할 게 있습니다.”

박 상무의 가늘어진 시선에 장 대표가 눈을 기울인다.

“수고했다.”

박 상무와 함께 장 미디어 사무실을 나왔다. 임 작가는 상기된 얼굴이다. 자신의 작품이 드라마화된다는 것. 더구나 스타와 함께.

반면 박 상무는 많이 궁금한 얼굴이다.

내가 어떻게 임 작가를 알게 됐는지, 대본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이런 식의 일처리를 제안했다는 사실까지.

그 어느 하나 납득되지 않는 얼굴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박 상무가 일에 끼어듦으로써 아주 빠르고 간결하게 마무리가 됐다는 거다.

띵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그러자 안에 타고 있던 남자가 허둥지둥 내리다가 박 상무와 부딪쳤다.

“에이씨······.”

인상을 썼지만, 박 상무를 보고는 입을 다문다. 그러더니 눈을 떼구루루 굴려서 나를 본다. 이제야 우리가 누군지 안 얼굴이다. 그래서 나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실업급여는 챙겨준다니까.”

< 해를 품은 달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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