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우리가 만날 시간 (5) >
“안타냐?”
“먼저 내려가세요. 담배 한 대 피고 가게.”
비상구 계단을 가리키며 말하자, 김 팀장은 하얀 남방셔츠를 흔들며 홀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붉게 변한 얼굴이 사라진다.
옥상에 올라온 최재환은 담배 대신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하······.’
아무래도 김 팀장과는 다시금 사이가 틀어질 듯 보였다.
최재환은 탁 트인 전경, 마주한 가을바람 속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이마를 긁적였다. 이번 일, SN에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스카이데일리의 꼼수를 알아채지 못했을 거다. 아니다. 이시현의 말이 아니었다면.
“어, 나다.”
한때는 지에스의 동료였고, 현재는 SN 매니지먼트에서 광고팀 실장으로 있는, 그러나 어차피 같은 바닥에서 헤엄치고 있는.
-잘 해결됐어요?
“그래. 니 덕분에 잘 해결됐다.”
-다행이네요. 블랙보이, 한 2년 남았나?
“어. 2년 남았다.”
-2년이면 데일리 애들도 뽕 뽑아 먹겠네.
옥상 난간에 엉덩이를 기대고, 최재환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때 담배를 끊었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깊이 빨아들인다.
“후······. 이 신세 어떻게 갚냐?”
-형님이 나 도와준 게 어디 한두 가진가. 이시현이 우리 애 잘 챙겨주는 것도 고맙고.
SN의 고우희가 언급되자, 최재환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부탁할 거 있으면 말해.”
-흠······. 그럼 하나 부탁해볼까?
“자식, 하여간 거절을 안 해. 뭔데?”
-이시현 오늘 스케줄 어떻게 됩니까?
“오늘은 저녁 스케줄 없어. 이제부터는 슬슬 스케줄 조정할 거거든.”
-잘됐네. 그럼 나 오늘 부탁 하나만 해요.
**
“우희 씨, 긴장하지 말고.”
“예.”
현승아의 하차 이후 ‘사랑을 할 겁니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객원 디제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짧게는 하루, 많게는 일주일씩 디제이를 맡는데, 오늘의 객원 디제이는 고우희.
현재 수목극 드라마 ‘우리 오빠’의 주연 배우이며, 고등학생 신분인 그녀는 사실상 청소년들의 우상이다.
“흠······.”
고우희가 작가의 설명을 귀담아들으며 오렌지 주스의 빨대를 쪽쪽 빤다. 큰 눈을 깜빡이며 집중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작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요. 대본대로만 하면 돼.”
연기, 노래, 개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
하지만 그들도 라디오는 쉽지 않은 무대다. 사람은 눈앞의 반응에 익숙한데, 라디오는 혼잣말하듯 보이지 않는 청취자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별거 없어요. 처음에만 어렵지 일주일이면 적응해요.”
오늘부터 고우희는 일주일 동안 객원 디제이를 맡는다. 드라마 홍보와 함께 개인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시기적절한 타이밍.
“에휴.”
고우희가 입술을 푸르르 떤다. 땋은 머리를 매만지며 투정이다.
“적응할 때쯤이면 끝나잖아요.”
“그러니까 말이야. 하하!”
“그래, 우희야. 너 잘할 거야.”
긴장을 풀어주려 농담을 한 작가와 매니저의 응원에 고우희는 겨우 미소를 보이고 대본을 넘겼다.
“10분 남았어요. 부스 들어갈 준비 해야 해요.”
“예.”
시간이 가까워지자, 작가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고우희도 눈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KIS 라디오 프로그램 ‘사랑을 할 겁니다’는 전국 송출 방송에 평일 고정시간대 방송이다. 그리고 요일마다 코너가 다른데, 오늘은 질문과 답변 시간, 청취자 사연 시간이 진행된다.
고우희는 무난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현승아의 발랄했던 진행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지만, 오히려 과해서 실수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진행이다.
“촬영장 분위기요?”
그녀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청취자들이 문자로 보내온 질문들 중에서 작가가 쓸만한 몇 개를 뽑아 라디오 부스의 모니터에 띄웠다.
“저희 분위기 진짜 좋아요. 매일 웃고, 서로 응원하고, 파이팅 하고.”
실상은 이시현 촬영 때만 화기애애하다. 다른 배우들이 촬영 때는 정체된 고속도로.
“시현 씨가 잘 해주냐고요?”
잘해주긴 개뿔. 그 인간도 가식 쩐다.
“그럼요. 얼마나 잘해주는데요. 시현이 오빠··· 아 죄송합니다. 크크! 시현 씨 정말 최고예요.”
착한 척, 귀여운 척, 좋은 사람인 척.
그런 연기는 자판기처럼 뽑아낼 수 있는 고우희였기에, 적절한 웃음과 비음을 섞어 가며 질문에 답을 한다.
“시현 씨가 얼마나 잘생겼냐 하면······.”
고우희는 내키지 않는 미소를 보이며 이시현을 떠올렸다.
잘생긴 건 인정하는데, 여자 스태프들이 완전 사람 차별한다.
이시현이 더울까봐 얼음주머니 챙겨주질 않나, 반사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난리를 치질 않나. 나쁜 차별꾼들.
“여러분이 직접 보시면 아실 거예요. 하하!”
작은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터트렸지만, 고우희는 모니터를 보고 이마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질문들이 죄다 이시현이야?’
드라마나 그녀에 대한 질문은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작가가 자기 입맛에 맛는 질문만 모니터에 띄우고 있지만.
“그럼, 광고 듣고 다시 뵙겠습니다!”
“우희 씨 잘한다.”
“그러게, 처음치고는 훌륭한데?”
처음 걱정과 달리 고우희가 잘하고 있자 작가들과 피디의 칭찬이 이어졌다. 그 덕에 매니저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자신의 배우가 칭찬을 받는 것만큼 기쁜 게 어디 있을까.
하지만 라디오 부스 안의 고우희는 지쳤는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데, SN에서 좀 나와 줘야 되는 거 아니야?”
피디가 아쉬운 투로 말한다.
이정도면 게스트 지원 좀 해줘야지, 하고 덧붙이자 매니저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그 모습에 눈치를 챈 작가가 갈색 눈썹을 쫑긋 올리고 묻는다.
“누구 와요? 누군데요? 누군지 알아야 우리도 준비하지.”
물론 평소에도 ‘사랑을 할 겁니다’ 프로그램은 객원 디제이의 지인들이 수시로 찾아드는 곳이라서 누가 와도 바로 투입될 수 있었다.
“그게······.”
매니저가 시계를 살피며 입을 열려는데, 조정실 문이 먼저 열렸다. 그 순간 작가의 입이 뜨악!
**
“아······.”
라디오 부스에 들어가자, 나를 본 고우희의 입이 벌어졌다. 못된 짓 하다가 들킨 마냥 깜짝 놀란 얼굴이다.
“우희 씨, 광고 끝나 갑니다. 5, 4, 3······.”
작가의 카운트에 우리는 서둘러 자세를 잡았다.
“여러분, 지금 게스트 한 분이··· 오셨거든요.”
실수 없이 이어지는 고우희의 멘트.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배우 이시현입니다.”
조용한 라디오 부스 안에서의 자기소개.
환호성 대신 적막과 고우희의 시선만이 닿는 색다른 느낌인데, 조정실에서 문자 폭발이라는 글자를 스케치북에 써서 내밀었다.
“시현 씨, 오늘 어떻게 찾아오신 거예요?”
“제 동생이 오늘 객원 디제이를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요. 당연히 오빠가 와야죠!”
내 말에 고우희가 깔깔 웃는다. 완전 가짜 리액션.
“시현 씨··· 아, 나 그냥 시현 오빠라고 할래. 청취자 여러분 한번만 봐주세요! 헤헤. 시현 오빠, 라디오 처음 출연이시죠?”
“아니요. 저 여기 한번 출연했어요. 7월에 3W 멤버들하고 함께.”
“아 진짜요? 청취자 여러분 아셨어요?”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문자.
지금 첨 알았다는 문자. 왜 그때 몰라봤을까 하는 문자.
“자자, 여러분. 우리 지금 사연 소개하는 시간이잖아요? 첫 번째 사연은 시현 오빠가 읽어주시겠어요?”
“예.”
고우희가 대본과 함께 사연을 내민다. 동그란 눈을 하고 어서 읽으라고 고갯짓을 툭툭. 알았거든?
“서울에 사시는 홍은미 학생의 사연이네요.”
첫 번째 사연은 자신을 수험생이라고 소개한 여학생의 사연이다. 그런데, 사연을 본 고우희가 눈을 끔뻑이더니.
“어? 여기 제가 다니는 학굔데.”
“아 진짜? 그럼 우희 씨, 학교 친구일 수도 있겠다.”
나는 고우희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피부가 뽀얀 앳된 얼굴은 마치 아기고양이 같은데, 내가 알기로는 그녀의 학교생활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부터 방송활동을 하다 보니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했을 거다.
“그러게요.”
예상대로 쓴 미소가 나온다.
“그럼 홍은미 학생 사연, 읽어 볼까요?”
**
시현 수포 카페에 난리가 났다. 게시판에는 1분 사이에도 글이 수십 개가 올라왔다. 이시현이 예고도 없이 라디오에 등장했으니까.
-우리 시현이 때문에 행복해!
-고우희 완전 부럽다. 난 다시 태어나면 시현이 여동생!
-아 상상이 된다. 우리 시현이가 마이크에 입술 가져가서 ‘좋은 밤 되세요’ 하면··· 꺄!
전화 속 친구의 목소리는 잔뜩 흥분해 있었다. 게시글을 하나하나 읽어주면서 오두방정이다.
-은미야, 아니 시현love님! 나 지금······.
“어?”
홍은미는 끊어진 전화를 바라봤다. 고장 난 휴대폰은 틈만 나면 툭툭 꺼진다. 사생대회 수상 상품으로 받은 거지만, 요금이 아까워서 해지할까를 심각히 고민 중이다.
‘아, 카페 들어가 봐야 하는데.’
운영 스태프로서 이런 날은 카페에서 상주해야 하는데, 들어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집에는 인터넷은커녕 컴퓨터도 없으니까.
홍은미는 손바닥 크기의 휴대용 라디오의 볼륨을 조금 더 높였다.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주말의 팬클럽 활동과 이따금 듣는 라디오. 팬클럽 활동은 외로움을 잊을 수 있고, 라디오가 좋은 점은, 보이지 않는 대신에 소리를 듣고 상상할 수가 있다.
-서울에 사시는 홍은미 학생의 사연이네요.
“어?”
생각지도 않게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홍은미는 눈을 번쩍 떴다. 이어폰이 흘러내릴까봐 깊숙이 꽂는다. 매번 사연을 보내도 여태 한 번 걸린 적이 없었는데.
-어? 여기 제가 다니는 학굔데.
-아 진짜? 그럼 우희 씨, 학교 친구일 수도 있겠다.
고우희와 이시현이 대화 중이다. 홍은미는 학교에서 본 고우희를 떠올렸다. 예쁘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
-그럼 홍은미 학생 사연, 읽어 볼까요?
이시현이 숨을 고른다. 홍은미는 아랫입술을 빨아들이며 귀를 기울였다.
-저는 부모님이 없습니다. 두 분 다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거든요. 아, 그래도 저는 고아가 아닙니다. 할머니가 있으니까요. 할머니는 저를 위해서 많이, 너무 많이 고생을 하십니다. 매일 새벽이면 종이나 박스를 주우러 가시는 게 할머니의 일상입니다. 그런데 할머니에게는 주말이 없습니다. 그 일은 퇴근이 없으니까요.
이시현의 담담한 목소리에 홍은미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의 요즘 제일 큰 걱정은 제 대학등록금입니다. 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거든요. 솔직히 그거론 대학등록금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 공부 좀 하거든요. 히히. 그러니까··· 할머니가 제 걱정 그만하시고 가끔은 편히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할머니 고집이 보통이 아니세요. 오늘 ‘사랑을 할 겁니다’ 객원 디제이로 누가 와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하고 할머니 행복하라고 응원해주세요. 사랑해요 할머니!
홍은미는 뜨거워진 눈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이렇게 라디오를 듣는 시간에도 할머니는 또 박스를 주우러 갔으니까. 공부한다고 앉아서 라디오를 듣는 게 미안하지만, 이 시간도 그렇게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아르바이트해야지, 야자해야지. 개교기념일이나 시험 기간이 아니면 좋아하는 라디오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런데 마침, 오늘 그녀의 사연이 뽑혔다. 기뻐서 당장 친구한테 전화하고 싶은데··· 고장 난 휴대폰을 보며 눈물을 닦은 그녀는 다음 순간 멈칫했다.
-은미야··· 아빠야. 잘 지내지?
이게 무슨.
-우리 딸. 아빠 엄마는 잘 지내고 있단다. 이젠 가을이라서 쌀쌀하지? 하지만 여기는 좀 더워. 너도 알겠지만 태양이 아주 가깝잖아. 하하! 은미야··· 우리 착한 은미. 아빠 엄마 보고 싶지? 근데 아빠 엄마는 안 그래. 왜냐하면 매일 보니까. 우리 은미, 아빠 엄마가 운동회 몰래 간 거 모르지? 너 졸업식 때도 빠짐없이 갔어. 근데 몰라도 돼. 그래도 아빠 엄마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니까. 대학교 입학할 때도, 또 졸업할 때도, 직장에 들어갔을 때도, 가끔 힘들어서 혼자 눈물 삼킬 때도······. 그리고 어떤 놈이 널 데려갈지 모르겠지만, 그놈 내가 항상 지켜볼 거야! 하하··· 은미야. 우리 딸 잘하고 있어. 아무 걱정 하지 마렴. 넌 꼭 좋은 대학 갈 거야. 왜냐하면, 내 딸이니까. 똑똑하고 착하고··· 예쁜 내 딸이니까. 은미야, 우리 은미야. 사랑한다.
어느새 홍은미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끅끅, 흐느낌을 삼키는 그녀에게 이시현의 목이 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미 씨. 제가 주제넘게 행동했는데,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은미 씨 부모님은 꼭 이렇게 얘기해주실 것 같았어요. 은미 씨, 힘내세요!
**
“아이고 말도 마라. 한송이 입 찢어지고 방방 뛰고.”
강 실장은 이시현이 한송이하고 서아린에게 선물을 해준 사실을 알리며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룸 안에 둘 뿐이 없으니 어색해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라디오 들었냐?”
“응. 들었다.”
“작가들 눈물 펑펑 쏟았다. 청취자 반응도 좋고··· 하여간 이시현 이 자식, 사람 깜짝 놀라게 하는 데는 뭐가 있어.”
이시현이 청취자의 사연을 읽었는데, 거기서 그런 멘트를 할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한동안 또 이슈가 될 것 같은데.
“야, 근데 우리 둘이 마시는 거야?”
“승진 턱 내라며?”
“하하. 나 그럼 양주 마신다?”
강 실장은 피식 웃으며 기본 세팅으로 나온 과일 하나를 입에 물었다.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에 퍼지는데, 우물거리며 물었다.
“그럼, 시현이 일은 잘 마무리된 거야?”
“응.”
최재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무거운 얼굴이다.
“뭐 자세한 건 마시면서 천천히 듣자. 근데, 김 팀장은 시현이 뭘 가지고 딜을 하려고 했대?”
“캐스팅 영상하고, 시현이가 고아라는 사실.”
“뭐?”
강 실장이 눈을 찌푸린다.
지금 매니저들 사이에서 이시현의 캐스팅 비디오를 가지고 말들이 분분하다. 매니저들은 보지 못했으니까. 일단 기콘부 성 팀장과 ATTM 직원들은 봤다는데, 대체 뭐가 있기에.
그뿐 아니라 알지도 궁금해하지도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이시현의 보컬 트레이닝 스케줄 역시도 최재환을 제외하고는 매니저 중 박용현과 강 실장밖에 모른다.
“대체 비디오에 뭐가 담긴 거야.”
“시현이가 노래하는 거.”
“그러니까 그게 어느 정도냐고?”
최재환은 미소만 보인다.
“곧 알게 돼.”
“아이고. 뭐 어련하시겠습니까. 근데 고아인 사실은 알려도 상관없지 않나? 동정여론도 생길 테고.”
“응.”
최재환의 말에 강 실장이 멈칫하고 고개를 든다.
“어?”
“그건 기사 낼 거야.”
“대표님이 그렇게 하래?”
“아니, 내 독단이야.”
“야······.”
강 실장은 놀라서 아예 허리를 틀고 최재환을 바라봤다.
여태 최재환은 자기가 맡은 연기자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갈 일은 하지 않는 놈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김 팀장이 딜을 하네 어쩌네 해서 한달음에 회사에 달려갔던 거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적당히 포장해서 터트리는 게 낫겠다 싶어.”
“너 진심이냐?”
최재환이 고개를 끄덕인다.
“···너 좀 변한 거 알고 있냐?”
이번에 최재환은 콧바람만 내쉬었다. 그래서 강 실장은 다시 물었다.
“만약 대표님이 알면··· 아니, 너 이거 왜 나한테 얘기하냐?”
둘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말을 터 넣은 지도 오래되지 않았다. 이시현이 아니었다면 질투와 오해로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최재환과 거리를 뒀을 강 실장이다. 그런데.
“팀이 된 것 같아서.”
“뭐?”
“니가, 이제는 우리 팀이 된 것 같다고.”
또 한 번 콧바람을 내쉬는 최재환의 모습에 강 실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드디어 우리가 만날 시간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