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89화 (89/227)

< 상큼하게, 신선하게 (4) >

치맛자락을 나풀거리며 뛰어가던 박희재가 찌푸린 얼굴로 멈춰 섰다. 그녀의 투명한 눈동자에 오빠 박춘삼이 비친다.

“오빠 니 어디 가는데?”

“장에 가려고.”

여동생과 마주친 박춘삼도 얼굴을 찌푸리긴 매한가지. 흡사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마주친 것 같은 표정이다.

“또 그 한약방 딸내미 보려고?”

“어머니 약 사러 간다.”

게슴츠레한 여동생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가는 박춘삼.

“니가 참도 그렇겠다.”

“오빠한테 니가 뭐냐?”

빈주먹을 든 박춘삼의 모습에 박희재는 맛있는 거 사오라고 소리를 치고 도망친다.

“컷! 바로 또 이어 갑니다.”

박태 감독은 미소와 함께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바로 다음 컷 촬영을 이어갔다. 그리고 또 한 번 오케이 사인을 내리고는 두 배우에게 엄지를 척 내밀었다.

“둘이 진짜 남매다 남매. 오늘 가서 부모님한테 여쭤봐, 잃어버린 오빠 없냐고.”

“헤, 진짜요?”

고우희가 곱게 땋은 머리를 매만지며 배시시 미소를 보인다. 열아홉, 한창 예쁘게 자랄 나이. 그래서 촬영장의 스태프들도 그녀를 조금 더 챙겨주는 편이었다. 반사판도 하나 더 붙여주고.

“자, 그럼 또 이동합시다.”

촬영 현장에서 이동은 가장 큰 일이다. 장비를 어깨에 메고 다음 촬영 장소로 움직이는 스태프들.

박태 감독은 배우들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우희는 언니나 동생 있어?”

“오빠가 둘 있어요.”

“좋겠네? 오빠들 보호받으며 자랐겠어.”

“좋기는요. 어렸을 때는 맨날 싸웠어요. 지금은 그냥 무시.”

고우희가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볼멘소리를 뱉자, 주위의 스태프들이 깔깔 웃는다.

“하하. 그래?”

“예. 완전 저질들이에요. 방에서 몰래 이상한 거만 보고. 으으!”

몸서리치는 그녀의 모습에 박태 감독까지 박장대소하고 이시현을 돌아봤다.

“하하하! 그럼 시현 씨는? 여동생 있어?”

“저요?”

이시현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전 고아예요.”

“어?”

예상치도 못한 말에 다들 놀랐는데, 정작 이시현은 담담해 보였다.

“부모님이 어렸을 적에 돌아가셔서 늘 혼자였어요.”

“아··· 그래?”

“다 지난 일인 걸요. 지금은 이렇게 희재 같이 예쁜 여동생도 얻었고.”

“하하. 그러네.”

이시현은 미소를 한번 보이고 걸음을 서둘렀다. 늘 밝은 모습만 보았기에, 전혀 몰랐던 박태 감독은 걸음을 늦춰서 뒤따라오는 이시현의 매니저 곁에 붙었다.

“저 말 진짜예요? 아 내 말은 거짓말이냐고 묻는 게 아니라······.”

“힘들게 살아온 놈이에요.”

“어···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박태 감독은 착잡해진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얘기를 꺼냈다.

“그래도 회사에서 시현 씨 많이 챙기네. 지에스 팀장급이 매니저를 맡고.”

“챙기는 게 뭐 있나요. 자기가 열심히 하는 거지.”

“강 실장은요?”

“지금 송이경 맡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지난 특집드라마 촬영 때는 지에스의 강현 실장이 이시현을 따라다녔었다. 사람이 싹싹해서 제법 마음에 들었는데.

“송이경이면··· 여고시절 나왔던 그 친구?”

“예.”

“아, 그 친구가 지에스였어요?”

“5월에 계약했습니다.”

“그렇구나.”

박태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박한영을 맡았던 강 실장이 이시현에 이어서 송이경이라.

“그럼, 송이경 씨 지금 뭐 들어갔나요?”

“예. 이번에 MNC 단막극 들어갔습니다. 그거 끝나고 영화도 하나 들어갈 것 같고요.”

“와, 지에스 푸시 좋네.”

박태 감독의 칭찬에 최재환은 미소만 들고 이시현의 뒤를 바라봤다. 녀석이 고우희와 얘기를 나누면서 가고 있는데, 보기 좋은 남매로 보인다. 스태프들 입가에도 기분 좋은 웃음들이 걸려 있고. 아무래도 이번 드라마, 잘 될 것 같다.

“근데 왜 이시현은 5년을 내버려 뒀데?”

박태 감독의 혼잣말 같은 질문에 최재환은 이번에도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금이야 그가 2팀을 맡고 있고, 조 부장이 매니지먼트 사업부의 실권을 잡으면서 연기자들에게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제는 기콘부에서도 협조를 잘해주고 있고.

그러니 예전과는 움직임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 VVW 쪽 하고는 이제 뭐, 일 없는 거죠?”

질질 얘기를 끌던 박태 감독은 진짜 묻고 싶은 걸 물었다. 지난번에는 이시현의 낙하산 이유도 모르고 있다가 오소리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일의 전말을 알았으니까. 물론 이시현의 연기력이 논란을 잠재웠지만··· 또 뭐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쪽하고는 이제 얼굴 볼일도 없습니다.”

“그래요?”

“예.”

확답을 듣고서야 박태 감독은 나직한 한숨과 함께 뒷짐을 졌다.

“근데, VVW 소속 가수들이 지금 계약 해지한다고 난리라던데··· 지에스에서 데려가는 친구 있어요?”

“그런 계획은 없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들 속에, 최재환과 박태 감독은 다음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스태프들이 카메라를 다시 세팅하고, 배우들도 준비에 들어가자 박태 감독도 다시 스태프들 사이로 들어갔다.

최재환은 감독의 디렉션에 집중하는 이시현을 지켜봤다.

‘자식.’

촬영 현장에서는 카메라가 있는 쪽과 없는 쪽은 다른 세상이다.

한쪽은 현실 세계, 한쪽은 만들어진 세계다.

그러니 지금 그와 이시현은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 묘한 이질감에 빠져 있는 사이 조연출의 외침이 들렸다.

“촬영 들어갑니다!”

7# 시장 / 낮

어머니의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가던 박춘삼은 일본 순사에게 불시의 검문을 당한다.

순사 : 잠깐.

박춘삼 : 왜 그러십니까?

순사 : (박춘삼의 손에 든 걸 가리키고) 그거 뭐야?

박춘삼 : 어머니 약입니다. 지금 약방에서 지어왔습니다.

순사 : (강제로 약을 빼앗는다)

박춘삼 : 아, 아니 왜 그러세요?

순사 : (약을 풀어헤치고 냄새를 맡더니) 이거 노루 뼈 아니야?

박춘삼 : (영문을 몰라 머뭇거리고)

순사 : 산짐승 뼈와 가죽은 본토에 계신 천왕폐하께 바칠 귀중한 자산인 거 모르나?

박춘삼 : (머뭇거리는 사이 순사가 나머지 약들도 풀어헤치자) 아, 안됩니다!

순사 : (자신을 막는 박춘삼을 구타하면서) 이 조센징 새끼! 주재소에 끌려가 봐야 정신 차리지! 이야!

이번 씬은 박춘삼이 일본 순사한테 얻어맞는 장면이라서 수차례 리허설을 했을 만큼 조심스럽고 위험한 장면이다.

더구나 촬영 중간 메이크업으로 구타 상처를 만들어야 했기에 컷과 컷 사이에 텀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시현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순사의 다리를 잡고 바닥을 구르면서도 힘든 내색 없이 매번 웃으며 일어났다. 반면 순사 역의 엑스트라는 컷이 반복되니까 조금 지친 모습이다.

“액션!”

박춘삼이 순사의 다리를 잡자, 순사의 몽둥이가 가차 없이 그를 두들겨 팬다.

“아, 안됩니다!”

“이 조센징 새끼! 주재소에 끌려가 봐야 정신 차리지! 이야!”

순사가 이시현을 발로 걷어찼다. 그런데 이때, 이시현이 세트장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말이 세트지 야외 세트는 실제로 지어진 건물이기에 바로 NG컷이 떨어졌다.

“컷!”

스태프들이 이시현에게 달려가고, 최재환도 뛰어들어갔다. 일단은 이시현을 일으켜 앉히고, 뒤이어 온 박태 감독이 머리부터 매만졌다.

“괜찮아?”

손바닥에 피가 묻는 지를 확인하고서야 조연출 황동태한테 소리친다.

“가서 얼음주머니 가져와!”

살벌한 분위기에 순사 역의 엑스트라는 고개만 숙이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이시현이 끙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재환의 눈을 한번 보더니 미소로 안심을 시켜주고, 엑스트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저 괜찮아요. 제가 실수한 거예요.”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요.”

엑스트라를 안심시키는 이시현의 모습에 박태 감독도 스태프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는 이때.

짝짝짝!

느닷없이 촬영장에 박수 소리가 울렸다. 뭔가 싶어 사람들이 돌아봤는데. 아니 이게 누구야.

“국장님?”

박태 감독의 시선이 닿은 그곳에는 황 국장이 밝은 얼굴로 임원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근데 그 임원중에, KIS 부사장이 있었다.

“부사장님!”

놀란 박태 감독이 뛰어가자 부사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껄껄 웃는다.

“허허, 잘 하고 있나 보러 왔어요.”

그 웃음에 박태 감독의 입술이 바싹 타는데, 황 국장이 박태 감독에게 다가와 굳이 친근하게 악수를 하고 와락 껴안으면서 귓가에 읊조린다.

“야 부사장님 오셨으니까, 쎈 걸로 찍어. 쎈 걸로!”

**

“지훈아, 다 왔다.”

매니저의 목소리에 뒷좌석의 성지훈이 눈을 떴다. 그 상태로 자연스레 고개를 반쯤 돌렸는데, 이내 찌푸린 얼굴로 한숨만 내쉰다. 예전이었으면 스타일리스트가 옆으로 자리를 옮겨서 그의 메이크업을 확인할 텐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 스타일리스트가 관뒀으니까.

“형, 어떻게 됐어?”

성지훈이 재차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나마 기대에 찬 시선으로 운전석을 바라보는데, 매니저가 돌아보지는 않고 뒤통수만 보이고 웅얼거린다.

“알아봤는데, 딱히 널 끌어안을 데가······.”

“아 그럼 언제까지 여기 있으라고!”

노병기 백진철 사태 이후 방송 쪽에서는 VVW 소속 연예인이라고 하면 눈에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그래서 지금 VVW 소속 가수들의 탈출 러시가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다들 어떻게 빠져나가는 건지 계약서를 북북 찢고 가는 반면, 성지훈은 회사에서 놔주지를 않고 있었다.

“현승아는 어떻게 빠져나간 거야?”

걔는 계약 기간이 무던히도 남았었건만.

“글쎄. 회사 약점 쥐고 흔든 것 같은데······.”

“형은 그런 거 몰라?”

“혹시 너는 아냐?”

“어휴··· 그럼 걔는 어디로 간데?”

“글쎄다.”

“글쎄, 글쎄다, 그 말밖에 못 해? 왜 이렇게 시원한 답이 없어? 형 예전에는 17대 1로 싸우고 다녔다며? 그 기세로 밀어붙일 생각을 해야지! 이번만이 아니야, 형은 그러더라? 회사에서 유독 형만 소심해!”

성지훈의 짜증이 다시 달려들자, 매니저도 콧잔등을 찌푸리고 말했다.

“지에스에 간다는 얘기는 있어.”

“지에스?”

그곳이라면 이시현의 소속사 아닌가.

“지에스가 받아준대?”

“그거야 모르지. 계약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승아 괜찮잖아. 애가 사생활이 좀 그래서 그렇지, 끼가 있으니까.”

“미치겠네.”

성지훈이 뒷머리를 북북 긁는다. 그러다가 찌푸린 얼굴로 다시금 얘길 꺼냈다.

“형, 조건 좀 낮춰서 SN에 연락해봐. 나하고 형, 계약하자고.”

그 말에 매니저가 입맛을 다신다. 연락을 안 해봤겠는가. 안 받아준다잖아?

“지훈아··· 우리가 계약 조건 운운할 때가 아니야.”

“뭐?”

“우리 지금 난민이야.”

“뭐어?”

“난민은 말이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쪽에서 받아주는 거지, 뭘 내놓으라고 할 처지가······.”

“형!”

결국 또 한 차례 들들 볶고, 들들 볶이고 나서야 차에서 내린 두 사람.

그들은 지금 팬클럽 회장 조별아가 아르바이트 하고 있다는 곳을 찾았다. 어떻게든 조별아를 다시금 끌어오기 위해서.

지난 번개콘서트 이후 팬클럽 숫자는 오히려 더 줄어서 현재는 4천명도 남질 않았다. 1만을 넘어 2만에 육박하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반면 이시현은 1만 회원 수를 넘긴 팬클럽이 벌써 두 곳이나 된다.

그중 하나인 ‘시현포에버’ 회장이 바로 조별아였으니, 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든 조별아를 잡아야 한다. 도망친 회장을 다시금 잡아와야지 떠난 팬들도 돌아오지.

딸랑딸랑

카페 유리문에 달린 작은 종에서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매니저는 거물을 대하듯 성지훈을 대동하고 카페에 들어섰는데, 그래도 아직 죽지 않았기에 선글라스를 쓴 성지훈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다. 반면, 조별아는 그 모습을 봤음에도 카운터에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서 있기만 했다.

“오랜만이네.”

다가간 성지훈이 미소와 함께 선글라스를 벗었다.

“뭐 드시겠습니까, 손님.”

태연자약하게 모른 척하는 조별아. 그 모습에 매니저가 발끈하고 나섰다.

“야, 너 너무 한다. 그래도 우리가 몇 년을 같이 했는데.”

그러자 성지훈이 매니저를 말리고 선글라스를 다시 쓰며, 손가락 3개를 내밀었다.

“아이스커피 3잔.”

주문을 하고 카페의 빈자리에 앉았다. 5분쯤 지났을까, 다른 여직원이 커피 3잔을 들고 왔다.

“조별아 씨하고 얘기 좀 나눴으면 좋겠는데요.”

“별이··· 퇴근했는데요?”

“예?”

“무슨 소리예요? 나간 사람이 없는데?”

매니저가 재빨리 묻자, 직원이 주방을 가리킨다.

“가게 뒷문으로······.”

벌떡 일어난 성지훈은 서둘러 카페를 뛰쳐나갔다. 겨우, 주차장에서 조별아를 볼 수 있었다. 그녀가 흠칫! 놀라더니 주차장 옆의 담으로 달려간다.

“조별아!”

성지훈이 선글라스까지 팽개치고 뛰어가서 담을 넘으려는 그녀의 다리를 간신히 붙잡았다.

“놔요! 볼 일 없어요!”

“너 그러는 거 아니야. 잠깐만 얘기하자. 잠깐만!”

끈질기게 붙는 바람에 결국은 그녀가 담에서 내려왔고, 나무 그늘 아래서 매니저가 가져온 아이스커피를 서로 입에 물었다. 이제, 무거운 침묵 속에서 진지한 얘기를 나눠야 할 때.

“난 다 이해한다.”

성지훈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조별아는 커피 빨대만 쪽쪽 빨았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원래 이 바닥이 다 그래. 새로운 스타가 나타나고, 팬들의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잠시 조별아를 한번 보는데 빨대만 쪽쪽. 이걸 그냥.

“근데 말이야. 우리의 우정과 지난 세월은 이런 식으로 끊어질 게 아니잖니?”

“죄송해요.”

“죄송하라는 게 아니라. 네가 다시 와줬으면 좋겠어.”

성지훈으로서는 자존심을 모두 접고 하는 얘기였다. 여태 팬이란 자연스레 따라붙는 거, 챙겨줄 대상이 아니라 그냥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했었는데.

“죄송해요.”

조별아의 반복된 죄송 소리에 성지훈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참을 인을 몇 번이나 새기고 일부러 환히 웃었다.

“하하. 그래, 내가 정말 잘할게. 가끔 전화도 하고, 또 가끔은 같이··· 그래, 같이 밥도 먹자. 너 뭐 필요한 거 있니?”

“죄송해요.”

3연타.

“야! 너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 이시현이 뭐가 좋아? 어디가 좋은데?”

그 말에 빨대만 쪽쪽 빨던 조별아가 눈을 부릅뜨고 성지훈을 본다. 저 눈.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는 저 눈. 한때는 그 눈이 자신을 향했었는데, 지금은 눈앞에 있어도 성지훈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가 한 말이.

“신선해요.”

“뭐?”

“이시현은 신선하다고요.”

성지훈은 기가 막혀서 마른침을 삼키고 떨림이 물든 입을 열었다.

“야, 야! 이시현 스물일곱이야. 나도 스물일곱이고. 뭐가 틀린데?”

이성을 잃은 성지훈의 모습. 이번에는 조별아가 빨대에서 아예 입을 떼고, 미간을 좁히고 말했다.

“시현 오빠는 이제 막 데뷔한 신선식품이고, 오빠는······.”

“나는?”

그 질문에 조별아는 한마디를 하고 떠났는데, 순간 성지훈이 털썩 주저앉았다.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던 매니저가 놀라서 뛰어왔다.

“왜 그래?”

“내가··· 지났대.”

성지훈의 얼굴이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아 보인다. 매니저가 다시 물었다.

“뭐, 뭐가 지나?”

“유통기한.”

< 상큼하게, 신선하게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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