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n in Tokyo (4) >
투둑투둑.
일본에서 맞은 아침은 비의 세상이었다.
어젯밤 박한영과의 통화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했다.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의 연인 정희수가 요리 실력이 제법 늘었다는 소식, 다툼이 잦지만 서로의 사랑은 더 굳건해졌다는 얘기, 프랑스 생활은 제법 괜찮다는 얘기, 그리고 웃음.
그도 내게 안부를 물었고, 나는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있고, 반추의 캐스팅이 확정됐다는 소식, 이제 계약만 남았다는 얘기를 했다.
서로가 축하한다는 그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반추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오소리에 대한 것을 물을 수도 없었고, 가경 작가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부탁할 수도 없었다. 그저, 나는 전화를 끊어야 했다.
투둑투둑.
우산을 두드리는 소리.
오늘은 강 실장에게 말도 없이 호텔을 나왔다. 돌아가면 한소리 듣겠지만···
토리이라 불리는 신사 문을 지나 울창한 숲길에 들어섰다. 비 냄새와 숲의 정취가 가득한 길을 걸어 편백나무가 빼곡한 장소에서 멈췄다.
이곳은 아내가 좋아했던 곳이다. 그냥 이 장소를 좋아했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이면 꼭 한번은 들리던 장소. 그녀가 좋아하는 하라주쿠 거리를 걷고, 이곳에 고인 비 냄새에 취하곤 했다.
일본에서 아내를 만난 건 차 대표의 지시 때문이었다.
관광차 일본에 머무는 자신의 딸에게 제대로 구경을 시켜주라는 지시였다.
물론 그 나름 생각이 있었겠지만.
사실 처음에는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조이치 기획사의 착한 경리 아가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니까. 그런 마음도, 타국에서 동향 사람을 만나서인지 조금씩 움직여졌다.
투둑투둑.
쏟아지는 비가 내 우산을 두드리고 구두에 닿는다.
침묵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나는 말없이 빗길을 걸었다. 신사의 목조 건물과 나무들을 지나니 비구름 아래서 탁 트인 안마당이 펼쳐진다. 커다란 나무 아래서 고개를 들어 우러러봤다.
이곳에서 아내와 미래를 얘기한 적이 있다. 사귀기 전이었고, 그저 서로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얘기했다.
결혼을 하면 세 살 터울의 남매를 키우고 싶고, 주말이면 남편과 데이트를 하고 싶고, 아이들이 크면 가족이 외식도 하고 여행도 가고 싶다는··· 그 소박한 꿈을 그녀는 내게 이 나무 아래서 얘기했다.
“하······.”
오늘은 제법 좋은 날씨다. 한숨도 빗소리에 감춰지니까.
그녀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마지막을 떠올리면 그나마 남은 좋은 추억도 들어내 버리고 싶을 정도니까.
반추에 오소리가 캐스팅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더는 생각지 않을 거다. 지금은 그저 내 위치가 여기까지다.
어젯밤 박한영과의 통화에서 나는 새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 한번 만나기 위해 긴 시간을 기다리고, 캐스팅 통보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입장, 제작비가 얼마인지, 감독은 누가 될지, 앞으로 진행은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것조차도 페이 프로덕션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처지니까.
나도, 회사도 지금은 그 정도뿐이 안 되니까.
할리우드가 뭐라고. 잘되면 좋겠지만 못되면 빛 좋은 개살구밖에 안 되는 것을.
이제 답은 하나다.
‘1부의 성공이 모든 걸 바꾼다.’
총 3부작 기획인 반추.
그러니 1부의 성공 여부에 따라서 내 위치도, 권한도, 제작환경도 달라진다.
1부의 성공이··· 모든 걸 바꾸는 거다.
나는 머릿속 생각을 어금니에 욱여넣듯 입을 악물었다. 그렇게 걸어온 길을 돌아가려다, 문득 뒤돌아 다시금 나무를 바라봤다.
서로의 미래를 얘기하던 그 날, 수줍게 고백하고 수줍게 받아주던··· 우산 쓴 커플을 떠올리며.
**
[서울. 2000년 9월 5일 화요일]
“예, 피디님.”
최재환은 차에 시동을 끄자마자 휴대폰부터 귀에 붙였다.
“대본리딩 문제없죠. 일본 간 거 잠깐 간 거예요. 우리가 뭐라고 대본리딩을 빠져요? 촬영장에서 시현이 보셨잖아요. 허파에 바람들 놈 아닙니다. 제시간에, 늦지 않게 갈 겁니다.”
이시현이 일본에 있다고 ‘우리 오빠’ 팀 조연출이 연락해온 거다. 목요일 대본리딩에 불참하는 거 아니냐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미치지 않고서야 감독, 작가, 선후배 배우들 다 모이는 대본리딩에 빠질 일이 있나.
“예, 그럼 끊을게요.”
전화를 끊은 최재환은 숨부터 토했다. 하루가 정신없이 흐른다. 별 쓸데없는 전화까지 오고.
차에서 내리는 대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며칠 전부터 핸들 커버에 실밥이 풀어져 손끝에 계속 걸렸는데, 이제야 불로 태워버린다. 아니면 게으른 건가. 이대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잠시만 시간이 흐르면 좋으련만··· 머리가 도통 가만히 있질 않는다.
‘후!’
크게 호흡을 뱉고, 차에서 내린 최재환은 곧바로 식당으로 들어갔다. 차 대표가 밖에서 얼굴 보자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온 길이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방안에 들어간 그는 잠시 멈칫했다. 문 앞에 여자 구두가 있는 건 봤지만, 젊은 여자가 차 대표와 함께 있었다.
“앉아.”
“예.”
최재환은 얼떨결에 자리에 앉으며 여자를 힐끗 눈에 담았다. 혹, 차 대표의 그건가 생각했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젊고.
“누군지 궁금해?”
차 대표가 묻는다. 긴 머리의 여자는 차분한 미소를 띠고 최재환을 보고 있었다.
“내 딸이야.”
“아.”
엉덩이를 방석에 붙이기 무섭게, 최재환은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재환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차현아라고 해요.”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맞잡은 손. 투박한 그의 손에 보드라운 손이 닿는다. 싱그러운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건 덤이고.
“그럼 전 가볼게요.”
그녀는 용무를 마쳤다는 듯 차 대표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자식, 무슨 급한 일이 있다고··· 가.”
차 대표가 투덜대는 모습,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인데.
“고개 아프다. 앉아.”
여자가 나가고도 얼떨결에 계속 서 있던 최재환은 냉큼 차 대표와 마주 앉았다. 상사 비위는 원체 못 맞추지만, 차 대표 앞에서는 이유 없이 눈치가 보인다.
“뭐해? 술 안 마셔? 최 팀장 이제 나 앉혀 놓고 장기 두자고 하겠네?”
“아, 아닙니다.”
최재환은 냉큼 정신을 차리고 술을 따랐다.
“오늘 부른 건, 2팀 외부로 나가는 것 때문에 그래.”
차 대표의 속삭임에 최재환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사실 인력이 꼬이는 것보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게 그 일이다.
2팀 외부 이동 소문 때문에 매니저들이 손에 일이 잡히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 지난번 회사의 성장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매니저들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인데, 이번에도 화살을 피해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신경 쓰는 친구들 많습니다.”
마음이 정리돼야 일에 집중을 하는 거다. 그래서 최재환은 뒤숭숭해 보이는 놈들은 일부러 중요한 스케줄에서 빼고 있었다.
“정해진 것부터 알려줄게.”
차 대표는 최재환에게 술을 권했다. 술이 잔을 채우고, 한잔 부딪치고, 담배를 입에 물더니.
“2팀 밖으로 나간다. 사명은 지에스 C&C.”
“예.”
최재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터 말이 나온 거니 놀랄 것도 없다. 이제 지에스엔터테인먼트는 가수, 지에스 C&C는 연기자로 나뉠 거다. 그럼 문제는 지에스 C&C의 수장이 누구냐는 건데.
“아까 내 딸 봤지?”
“예.”
“후훗, 어때?”
갑자기 뜬금없이.
“예쁘지?”
“예.”
차 대표의 딸인데 어떻게 안 예쁘다고 하나.
“걔가 지에스 C&C를 책임질 거야.”
“알겠습니다.”
차 대표의 결정이다. 이렇게 얘기한다는 건, 임원진도 설득이 됐다는 얘기다. 프로세서는 개뿔. 차 대표가 하자면 하자는 거지.
“근데, 내 딸이 솔직히 뭘 알겠어?”
“배우면 되죠.”
최재환이 허리를 틀어 한 잔을 들이켜고 대답했다.
“그래서, 니가 가르쳐줘라.”
“예, 알겠습니다.”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차 대표가 지그시 쳐다보고 다시 말했다.
“곁에서 일 도와주라고. 너 팀장직에서 내려와.”
“예?”
느닷없이 폭탄을 던져놓고, 차 대표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저 젓가락으로 회 한 점을 집어서 입에 물고, 술을 한잔 마시고, 담배를 마저 태우고.
“강 실장 팀장 올릴 거고, 조 부장 C&C에 끌고 올 거고, 당분간 우리 쪽에서 C&C 지원해 줄 거고. 그리고 넌.”
최재환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경영지원부서로 와라.”
불쑥 달려든 말에 최재환의 목울대가 흔들린다. 차 대표는 계속 얘기했다.
“부서만 옮길 뿐이지, 다리는 걸친다고 생각해. 너 또 엘리베이터 태우면 말이 나올 것 같아서 일단 옮겨두려는 거니까, C&C 자리 잡으면 그때 부장급 달아줄게.”
부장이라니······.
최재환은 생각에 빠졌다. 부서를 옮긴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다. 또 그곳에 가면 처음부터 배워야 하고. 아니 그보다, 왜 이런 제안을.
어찌 됐든 믿기 힘들지만··· 좋은 기회.
최재환이 생각 속에서 방석의 바스락거림을 느끼는 사이, 차 대표가 얘기를 다시 꺼냈다.
“그래, 오소리는 캐스팅이 안 됐다고?”
“예.”
“뭐 별수 없지.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있겠지.”
차 대표는 아쉬움을 달래듯 술 한 모금을 마셨다. 그다지 아쉽지는 않은 표정이지만.
“이시현 건은 잘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네.”
최재환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시현 오늘 귀국이지?”
“예. 푹 쉬고 오라고 했으니까, 오면 또 열심히 해야죠.”
“그래, 릴렉스 해주고, 달릴 때는 달리고. 근데 할 얘기가 있다며?”
전부터 기회를 봐서 하려던 얘기. 최재환은 입술을 한번 축이고 입을 열었다.
“저 다른 게 아니고··· 몬스터 프로젝트 때문에 그렇습니다.”
“몬스터 프로젝트? 시현이 노래하는 것 때문에?”
“시현이 말고, 신재인 얘깁니다.”
그 말에 차 대표가 멈칫한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그를 본다.
“무슨 말이야?”
“조이치 기획사하고 통화하다가 우연히 소식 들었는데, 애가 우울증 증세가 심해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차 대표가 찌푸린 이마로 묻는다.
“신경이 쓰여서요. 그래도 프로젝트 때문에 저도 일본에서 잠깐 있었잖습니까.”
“얼굴 한번 못 봤으면서 뭘 그렇게 신경 써?”
현재 그 아이에게는 일본인만 만나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일본 진출이 최우선이기에 적응을 시키기 위한 거고, 회사에서는 그 기간을 6개월 정도로 생각한다. 그래서 최재환도 일본에서 그 아이를 마주하지 못했고.
“실은, 시현이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그 애··· 한국에 데려와서 제가 한번 맡아보고 싶습니다.”
사실 이미 정 이사에게 상의를 해봤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좋은 말로 거절당했다. 회사가 사활을 건 프로젝트인데, 다시 한국에 오는 건 프로젝트 포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대표님, 그 아이 한국에 데려왔으면 합니다.”
최재환은 어떻게든 설득을 하고 싶었다. 이시현의 흘러가버린 5년을 기억하기에, 회사의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도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 얘기는 그만해.”
“대표님.”
“최 팀장.”
차 대표의 주름진 눈가가 찌푸려진다. 그래서 더는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시현이 귀국 전까지 뭐 하는 거 있어?”
차 대표가 대화 주제를 바꾼다. 하지만 최재환은 입술만 머뭇거렸다. 오늘, 시현이가 그 아이를 보러 간다고 했으니까. 누군지 보고 싶다고.
“아마, 관광 조금 하고 귀국할 겁니다.”
**
[일본 도쿄]
“재인은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혼잣말 뒤에, 기숙사 사감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에서 온 문제아. 처음에는 그 유명한 조이치 연예기획사에서 데리고 온 아이라서 기대가 컸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부르셨어요?”
단발머리 여학생이 교복 치마를 펄럭이며 사감 앞에 섰다.
“칸나, 미안한데 가서 재인이 좀 찾아올래?”
“예.”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교무실을 나온 칸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바로 이마를 찌푸렸다.
‘귀머거리 때문에 짜증나네. 옥상에 있나?’
칸나는 교복치마를 펄럭이며 옥상으로 향했다. 이틀째 비가 와서 아직도 축축한 공기가 느껴지는 복도를 걷는다.
‘귀머거리.’
한국에서 온 신재인을 부르는 이들만의 별칭.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아이는 말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일이 많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이제는 그것이 일상이 되고 있었다.
“흠··· 흠··· 흠.”
콧노래를 부르며 계단을 성큼성큼 밟는데.
“응?”
옥상에는 아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를 가야 하나. 소각장 옆 숲에 숨어 있으려나. 어제도 오늘도 비가 왔는데? 하긴 그 애가 그런 걸 따질까. 전에는 비 오는 날 운동장에서 비를 흠뻑 맞고 있던데.
‘숲은 좀 귀찮은데.’
짜증을 억누르며 칸나는 걸음을 돌렸다.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오던 그녀가 1층을 빠져나온 순간.
“아!”
칸나는 걸음을 멈칫했다. 마치 푹신한 전봇대에 부딪힌 기분인데, 고개를 든 그녀는 너무 놀라서 입을 크게 벌려야 했다.
‘우와······.’
엄청나다.
그녀가 좋아하는 배우 기무라보다 잘생긴 남자가 세상에 존재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학생, 말 좀 물어볼게.”
누구지? 연예인인가?
키도 너무 크고,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다.
“혹시 신재인이라고 아니?”
“아··· 예.”
“그래? 어디에 있어?”
“누구세요?”
“난, 그 아이 매니저야.”
칸나는 얼떨결에 그를 데리고 소각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몇 번이고 힐끗힐끗 그의 옆모습을 보며, 그때마다 감탄한다. 아···
“여기 있을 거예요.”
소각장 옆에는 숲이 있는데, 치마를 입고 들어가기는 불편한 곳이다. 그리고 비까지 왔고. 그래도 이 남자와 함께라면. 그래서 조금 들어가니 역시 귀머거리가 누워 있는 게 보였다. 숲 한가운데서 벌렁 드러누워 있다. 뭐라더라. 저러고 있으면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린다
나?
사그락, 사그락.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토도도, 토도도.
다람쥐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소리.
포포포, 포포포.
썩은 나무에서 자란 버섯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
‘하······.’
신재인은 눈을 감고 그 소리들에 집중했다. 숲의 온갖 소리들이 그녀에게 붙잡힌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그냥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지만 여길 나가면 또 소리의 지옥에 빠져야 한다.
교실에서는 의자 밀리는 소리, 수군거리는 소리,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 심지어 창가의 커튼이 펄럭이는 소리까지.
한국에서도 소리는 그녀를 괴롭혔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일본에 와서 더욱 크고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왜일까. 어린 소녀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음 음 음음 음음음”
신재인은 허밍을 불렀다. 여전히 누운 자세로, 눈을 감은 채로, 비 냄새는 코를 시원하게 해주고, 바닥의 풀들은 살결을 간지럽히기도 하고, 스쳐가는 바람은 머리카락을 흔들기도 했다.
이번에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 손가락을 흔들며 허밍을 했다.
물기어린 바람을 타고 숲 여기저기 퍼지는 소리.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 숨은 귓바퀴로 타고 들어가는 소리.
눈을 떴을 때, 신재인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미 발소리로 그가 온지 알고 있었다. 그 발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허밍을 따라했는데, 그 소리가 그녀의 허밍에 묘하게 일치했다.
신재인은 촉촉하게 젖은 눈을 깜빡였다. 남자의 얼굴이 거꾸로 보이지만 충분히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빤히 보고 있으니까, 남자가 미소와 함께 말했다.
“안녕.”
< Mission in Tokyo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