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78화 (78/227)

<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찬스를 얻는다는 뜻 (3) >

“안녕하십니까, 배우 이시현입니다!”

인사를 하기 무섭게 스태프들이 쳐놓은 가이드라인이 출렁거린다. 환호와 웅성거림, 몰려든 사람들, 카메라까지··· 나를 향한 수많은 시선에 내 가슴이 조금 이상해졌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해마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스타는 어김없이 존재했다.

특히 남자 연예인의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의 속도로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올해는 내 차례다.

KIS의 우리 오빠 편성과 영화 진출 소식까지 더해진 마당에 박한영의 CF까지 모두 끌어안았다.

TV에서는 연일 내 얼굴이 나오고, 심지어 어제는 저녁 뉴스에서도 내 이름이 언급됐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지금 대한민국은 ‘이시현’ 열풍.

“시현 씨! 오늘 3W를 도와주려고 오셨는데, 평소에 친해요?”

“물론이죠.”

“사석에서도 만날 정도로?”

“솔직히 말해도 돼요?”

“다 말하세요! 뭐든지!”

“저 3W 팬이거든요. 그래서 회사에서 만나면 제가 막 쫓아다녀요.”

“하하, 정말이에요?”

“예. 그러면 슬기 씨는 막 도망가고, 레니 씨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마디를 하거든요.”

“뭐라고요?”

“비켜요.”

“푸하하!”

웃자고 한 얘기에 MC 김진석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런데 그 웃음이 커질수록, 나를 보는 성지훈의 얼굴이 바스락 소리가 날 것처럼 구겨진다.

하긴, 지금 서로가 불편한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MC도 굳이 드라마 얘기는 묻지 않는 것 같고.

근데 성지훈 옆에 있는 현승아가 날 너무 너무 뚫어지게 보는데··· 아, 그러고 보니까 지난번에 현승아 쪽에서 저녁이나 한번 하자고 했었다.

“최종적으로 저녁 8시, 잠실운동장 입구에 들어오는 팬들의 응원 팀을 체크해서 가장 많은 팬을 모은 팀이 콘서트를 진행합니다. 패한 팀은 그대로 집으로 가면 됩니다!”

다들 긴장됐는지 목을 끌어올린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홍보에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시고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MC의 외침을 시작으로 번개콘서트 촬영이 시작됐다.

이제부터는 각자 홍보를 하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 그곳에서 게임을 해서 이기면 방송국 홍보 찬스가 주어진다.

두 팀으로 나눠진 촬영 스태프들이 성지훈과 현승아를 쫓아간다.

우리도 슬슬 뛰어야 하는데.

“오빠, 우리 구호해요!”

“그럴 시간이 어딨어 바보야! 오빠, 빨리 가요!”

슬기는 내 오른팔을 붙잡고 안 놔주는데, 레니는 내 왼팔을 잡고 빨리 이동해야 한다고 성화다. 왠지 오늘 하루가 험난할 것 같다.

“오빠!”

“꺅!”

팬들이 가이드라인을 밀치고 손을 내민다. 나이 먹으면서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었는데. 이제는, 좋구나.

“으쌰으쌰!”

팔을 휘두르며 스트레칭하는 슬기와 육상선수처럼 몸을 푸는 레니. 그녀들이 뒤돌아서 나를 본다.

“오빠! 이제 뛸까요?”

“예!”

우리가 뛰기 시작하자 카메라와 사람들이 뒤쫓아 온다.

“여러분! 오늘밤 8시! 잠실운동장에서 공연 있습니다! 꼭 저희 3W 응원 오셔야 해요!”

슬기가 아주 펄펄 뛰어다닌다. 노랑머리를 흔들며, 앙증맞은 두 주먹을 휘두르면서 종횡무진이다. 운동화, 티셔츠, 청바지 차림으로 단단히 준비해온 그녀들 앞에서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는 노릇.

”여러분, 오늘 저녁 8시, 잠실종합운동장에서 3W 공연이 있습니다. 꼭 참석하셔서 응원 부탁드립니다.”

번개콘서트는 2000년대 초반에 스타들을 울고 웃게 만든 예능프로그램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출연자가 거리에서 직접 홍보를 해야 하며, 중간중간 게임을 통해 방송국 찬스를 얻을 기회를 준다.

방송 자막 찬스, 라디오 홍보 찬스, 플랜카드 찬스 등등.

첫 번째 게임 장소는 동대문.

근데 이렇게 뛰어다니니까 무슨 선거 유세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선거도 한번 나가볼까 했었는데···

“우오오오! 박춘삼이다!”

고등학생들 무리가 나를 보고 손가락을 내밀더니 먹이에 몰린 고기들처럼 달려든다. 그래 들어와, 들어들 와!

“오빠 사인해주세요!”

사인을 휘갈기면서.

“오늘 잠실종합운동장에서 3W 번개콘서트 해요. 무료콘서트니까 꼭 와야 해요? 친구들한테 얘기해줘요.”

“예!”

고개를 젖혀 대답하는 아이들. 이제 그만 가도 좋은데, 자꾸 내 뒤를 쫓아온다. 이제는 쟤들 떨어트리는 게 하나의 미션이 됐다.

근데, 레니하고 슬기는 어디로 간 거야?

“후··· 시현 씨 잠깐만요.”

VJ가 숨을 헐떡여서 잠깐 쉬었다가 이동하는데, 횡단보도 너머에서 슬기하고 레니가 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걸 찾았다. 내가 곁에 가자 슬기가 빵빵한 볼에서 바람을 씩씩 뿜는다.

“오빠! 미아 되면 어쩌려고 그래요?”

동그란 눈, 찌푸린 콧잔등으로 나를 질책하는 슬기의 얼굴에 햇빛이 내려쬔다.

“잠깐 한눈팔았네요.”

나는 미소와 함께 그녀의 이마 맡에 손을 올려 햇빛을 가렸다. 옆에서는 레니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더위에 지친 숨을 식힌다.

“하···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힘드네.”

“덥죠?”

주머니에서 한송이가 준 부채를 꺼내 그녀에게 부채질을 해주는데, 이런 내 모습을 VJ가 카메라에 담는다.

“그럼 다시 뛸까요?”

쇼핑객들까지 더해진 인파를 뚫고 우리는 다시 뛰었다. 시간에 늦으면 게임을 할 기회도 없이 찬스를 빼앗기니까 이를 악물고 뛴다.

슬기가 아다다! 외치며 달려가고.

레니는 뛰는 폼이 육상선수 저리가라인데.

“앗!”

이런, 슬기가 넘어졌다. 그러게 촐랑대더라니.

“나한테 업혀요!”

울상인 그녀에게 등을 내주고, 나는 괴성과 함께 그녀를 업고 달렸다. 사람들의 환호성을 뚫고 달려서 겨우 게임 장소에 도착.

“후······.”

슬기를 내려주고 긴 한숨을 내쉬는데. 먼저 도착한 성지훈과 잠깐 눈이 마주쳤다. 자식, 되게 째려보네.

“첫 번째 게임, 서로의 단점 말하기!”

출연자들이 웅성거리는 동안 MC 설명이 계속됐다.

“게스트와 출연자가 서로의 단점을 말하는 게임입니다. 가장 많이 말한 팀이 승리입니다. 획득 찬스는 스피커 찬스! 15분 동안 등촌동에서 대기 중인 방송국 차량에서 승리한 팀의 번개콘서트를 홍보합니다.”

성지훈과 현승아가 마주 보고 마이크를 잡자, MC가 스톱워치를 힘껏 누른다.

“현승아 씨는 잘 때 눈을 반쯤 뜨고 자요.”

헐, 그걸 쟤가 어떻게 알아?

우리처럼 현승아도 깜짝 놀란 얼굴이다.

“그, 그걸 지훈 씨가 어떻게 알아요?”

“스타일리스트한테 들었어요.”

저거 상황파악 못하네. 이제 팬들 백프로 오해할 텐데.

“에이 모르겠다, 성지훈 씨는 땀이 많이 나요! 저는 지훈 씨 매니저한테 들었어요. 여름 되면 흰옷은 입지도 못한다고!”

“현승아 씨는 메이크업 벗기면 아무도 못 알아봅니다. 직접 목격!”

그 말에 현승아의 이마에서 빠직!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저게 뭐하자는 건지. 저러다가 싸우겠다.

저런 게임은 칭찬을 돌려서 말해야지.

아무튼 두 사람이 단점을 수십 개는 꺼냈을 거다. 나중에는 MC가 말려야 했을 정도다.

이제 우리 차례.

슬기가 마이크를 붙잡았다. 눈썹을 쫑긋 올리더니.

“시현 오빠는··· 너무 잘 생겨서 단점이에요.”

이번에는 내가 마이크를 잡고.

“3W는··· 왜 이렇게 멋있어요? 그래서 단점.”

구경하는 3W 팬들이 소리를 꺅 지른다. 현승아와 성지훈은 똥 씹은 얼굴이고. 봤냐? 게임은 이렇게 하는 거야.

“둘이 뭐하는 겁니까?”

“저희는 기권!”

레니가 깔끔하게 정리한다.

저쪽 팀은 얼굴이 붉어져 있는데, 우리 팀은 화기애애.

우리는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제 어느 정도 요령이 붙어서 셋이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여유 있게 움직이고는 있는데··· 쇼핑객들까지 더해져서 인파가 장난 아니다. 무슨 공포영화 찍는 것 같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 떼들이 창궐한 서울.

“어, 무대다.”

갑자기 슬기가 상가 앞 빈 공간을 가리켰다. 차 몇 대 주차할 만한 공간인데, 가수에게는 춤추고 노래할 공간이 있으면 그곳이 무대. 하여간 지에스가 이런 건 잘 가르쳐.

“감독님, 저기서 공연하면 반칙이에요?”

슬기가 해맑은 미소를 띠고 카메라맨을 쳐다봤다.

“아니에요. 그것도 홍보니까 괜찮아요.”

허락이 떨어지자 꺄! 외치며 슬기가 무대로 달려간다. 레니가, “저 천방지축!” 이러면서 마지못해 달려간 그 사이, 나는 팔을 걷어붙이고 차로 뒤따라오는 최재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3W 2집 시디!”

그런 뒤 근처 상가로 달려갔다. 들어간 곳은 오디오 매장. 주르륵 살피면서.

“오디오··· 카세트······.”

오케이.

상가에서 오디오카세트를 사서 가지고 나왔다.

내 행동력에 스태프들이 혀를 내두르는 동안 얼른 달려가 무반주에 춤을 추고 있는 3W 앞에 딱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최재환이 시디를 딱 밀어 넣자.

둥둥둥!

3W의 2집 타이틀곡 ‘브로큰’의 강한 비트가 쏟아진다.

‘후······.’

나는 숨을 고르며 그녀들의 무대를 지켜봤다. 그래, 이제야 슬기와 레니의 춤에 색이 붙는다. 열심히 뛰고 열심히 노래하는 그녀들의 미소가, 참 아름답다.

**

“뭐? 땀이 뭐 어째?”

성지훈이 읊조리며 매니저를 노려본다.

“그걸 또 어떻게 들었지.”

매니저가 대충 변명하며 시선을 회피하는데, 근처 상가의 스피커에서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러분 오늘 3W 번개콘서트 있는 거 아시나요? 여름의 남은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줄 3W의 무대, 오늘 밤 8시 잠실운동장에서 있습니다. 무료니까 여러분 꼭 와주세요. 듣자니, 배우 이시현 씨가 게스트로 참여했다나 뭐라나.

“뭐야?”

놀라서 눈을 번쩍 뜬 성지훈의 모습. 그러자 VJ가 옆에서 알려준다.

“3W 팀의 이시현 배우 매니저님이 홍보한 거래요.”

“그거 반칙 아니에요?”

매니저가 발끈해서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럼 매니저님도 하세요.”

“아니 뭐······.”

할 수 있어야 하지.

“승아 씨, 승아 씨 라디오에서······.”

제안을 하려 입을 열었던 성지훈이 입을 다문다. 현승아도 이번에 라디오에서 하차했지 않은가. 그 백진철과 노병기 때문에.

갑자기 침울해진 분위기.

그러다가 성지훈이 뭔가 생각난 듯 묻는다.

“형, 팬클럽에 공지 올렸지?”

“당연하지. 지금 여기저기 퍼 나르고 있어.”

“조별아한테 전화 좀 해봐! 팬클럽 회장이 이럴 때 나서야지!”

아직 승산은 있다. 이시현이 저렇게 백날 뛰어다녀봐야 인터넷의 힘을 이길 순 없는 법. 그동안 차곡차곡 쌓인 팬이 어디 한둘인가.

하지만 성지훈이 용쓰는 이 순간에도 스태프들은 어느 정도 프로그램의 행방을 점치고 있었다.

“야, 이시현이 잘 찍고 있지?”

메인 작가가 이시현 팀에 전화해서 상황을 확인한다. 맘 같아서는 그쪽에 있어야 하는데, 등촌동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이시현이 3W에 합류할 줄은 몰랐다. 요 깜찍한 지에스 놈들.

“이시현 집중해서 찍어!”

-예!

이미 답은 뻔하다. 성지훈에게는 미안하지만 대세를 어떻게 이긴담.

“야, 선 피디님 바꿔봐.”

-왜요?

바로 담당 피디가 전화를 받았다.

“피디님, 이시현이 무대 올릴 거예요?”

-글쎄, 그건 이따 가서 봐야지. 두 팀 중에 누가 될지 모르는데.

‘감 떨어졌냐?’

속마음을 삼키고 일단 전화를 끊는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VJ에게 부탁하는 메인 작가.

“경훈 씨, 성지훈 겨드랑이 잘 찍어요.”

땀 많은 게 성지훈의 단점이라니까 아예 폭포수처럼 쏟아지길 기대해본다.

30분 뒤 두 번째 게임 장소에 모였다.

이번에는 먼저 도착한 3W와 이시현이 MC 김진석과 함께 있었다. 팬들이 사진을 찍고 있고, 이시현은 그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현승아가 지친 얼굴로 숨을 몰아쉬는데, 이시현 매니저가 다가오더니 그녀에게 얼음팩을 건넸다.

“덥죠?”

“아, 고마워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성지훈이 눈을 찌푸리는데.

“선배니임!”

슬기가 쪼르르 달려와 성지훈에게 두 손으로 얼음팩을 건넸다. 그 귀여운 모습에 입꼬리가 올라가지만, 일단은 오늘의 적.

“고마워요. 근데 이거 어디서 난 거예요? 소품인가?”

“시현 씨 팬클럽에서 가져왔어요.”

“예에?”

“어떻게 알았는지 시현 씨 팬들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성지훈의 얼굴이 와장창 깨진다. 마침 그때.

“이시현!”

너무 큰 한목소리에 스태프들도 일순 시선을 돌릴 정도였다. 그곳에 있는 인원들만 백여 명은 돼 보인다. 그들이 다시 외친다.

“이시현!”

“어! 갈게, 잠깐만!”

이시현이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대답한다. 그 순간 성지훈은 깨달았다.

‘끝났다.’

저건 이길 수가 없다.

불어온 태풍에 버텨봤자 만신창이가 될 거 뻔하니 그냥 뿌리 뽑혀서 날아가는 게 속 편한 상황이었다.

이건 뭐 번개콘서트를 하는 건지 이시현의 팬 미팅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잖아. 반칙이야, 반칙!

“자, 이번 게임은 팬을 안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기!”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시현이 몸을 푼다.

녀석이 단추 하나를 풀고 소매를 걷어 올리는 모습에도 난리가 나는데, MC가 외친다.

“자 여러분! 두 분 모십니다!”

그러자 가이드라인 너머 여기저기서 동시에 손을 든 여성들. MC가 서둘러 다가가 호명하고 묻는다.

“누구 팬이세요?”

“이시현이요!”

“누구 팬이세요?”

“이시현!”

“누구 팬이세요?”

“이시혀언!”

이런 지랄. 성지훈의 얼굴이 완전히 썩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완전히 기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등장한 여자의 모습에 성지훈의 얼굴이 활짝 핀다.

사람들 사이에서 껑충껑충 뛰며 손을 흔드는 그녀.

바로 성지훈 팬클럽 회장인 조별아 아닌가! 저 얼굴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거긴 누구 팬이세요.”

MC 김진석의 질문.

출연진 모두가 웬만하면 이제 성지훈이라고 외쳐라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여성을 보는 사이, 성지훈은 미소가 만연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제 그녀가 이름을 부르면 시크한 미소를 보이고, 윙크와 함께 팬을 끌어안는 장면을 연출하면······.

“이시현이요!”

<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찬스를 얻는다는 뜻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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