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71화 (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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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반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1초 (3)

‘고우희 너!’

분명 그녀다.

내 노래를 들은 사람이 그녀밖에 없으니까.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 박 상무는 ATTM 팀장 한지웅 프로듀서를 부른 자리에서 내게 노래에 대한 얘기를 했다.

듣기로는 기콘부 성 팀장이 내 캐스팅 영상을 차 대표에게 직접 보였다는데··· 그럼 차 대표가 나를 ‘우리 오빠’에 꽂은 건, 그 영상을 보고 나서 내린 결정일까?

물론 지금에 와서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분명한 건, 차 대표가 무척 놀랐을 거란 사실이다. 내가 놀랐듯이 말이다.

-시현 씨?

“아··· 말씀하세요.”

-노래, 들려주실 수 있죠?

있나요도 아니고 있죠라니.

이렇게 확정을 해버리면 곤란한데.

[노래하면 안 된다]

최재환이 수첩을 펼쳐서 내 앞에 내민다.

“그 제보 잘못된 거예요. 저 노래 못해요.”

-에이, 확실한 제보인데요?

“후후. 설마요.”

아무튼 그날 박 상무는 그 자리에서 긴 얘기를 했는데, 결론은 내게 몬스터팀을 붙이겠다는 얘기였다. 그동안은 연기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부터는 보이스를 다듬자는 거다.

몬스터팀.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진으로 구성된 몬스터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들. 그들을 움직이는데 드는 비용을 고려한다면, 차 대표와 임원진이 내게 얼마나 큰 기대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아 거짓말!

어디서 앙탈은. 디제이가 자꾸 나를 보챈다. 어떻게든 노래를 들어야 끝낼 작정인 모양이다.

“에이··· 진짜예요.”

-아닌데, 이거 제보 확실한데. 우희가······.

“예? 우희요?”

그럼 그렇지.

그날 촬영장에서도 얼마나 귀찮게 하던지.

우는 애 달래주랴, 변명하랴, 전화번호 달라는 거 뿌리치느라. 뭐, 그래서 한송이 번호를 알려줬지만.

-내가 그런 말을 했나요? 그러지 말고 시현 씨, 아무 노래라도 좋으니까 조금만 들려줘요.

회사에서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절대 외부에서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내게 신신당부했다. 관련된 이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렸고. 하지만 디제이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계속 빼기도 곤란하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만 부를게요.”

-진짜요? 우와!!

디제이가 박수를 치는 동안, 일단 심호흡을 하고.

“시작합니다!”

달려달려 젖소야, 바이바이 음료!

달려달려 젖소야, 바이바이 음료!

초원 위를 달려달려!

구름 위를 달려달려!

달려달려 젖소야, 바이바이 음료!

달려달려 젖소야, 바이바이 음료!

옆에서 최재환이 터진 웃음을 참느라 광대를 들썩인다.

-에이, 뭐야!

“아무 노래나 괜찮다고 하셔서.”

-아 여러분, 우리가 당했어! 이거 생방송인데 우리 피디님 죽으려고 그래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님들, 이거 절대 고의가 아닙니다. 저희는 간접광고 금지규정을 준수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했어, 당했어!!

디제이가 앓는 소리를 하는 중에 피식피식 웃는다. 뭐 큰일이야 있을까. 이 정도는 방통위에서도 문제 삼아봤자 ‘주의’ 정도로 그칠 거다.

-자, 그럼 시현 씨. 오늘 너무 감사하고요. 조만간에 우리 라디오에 출연해주실 거죠?

“불러만 주시면요.”

-약속한 거예요? 청취자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 오빠에서 박춘삼 역을 맡은 배우 이시현이었습니다.

디제이의 마무리 멘트를 끝으로 최재환이 손을 뻗어 라디오 볼륨을 줄인다. 그제야 나는 귀에 붙인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지친다.”

“이거 어디서 샌 거야?”

최재환이 바로 묻는다. 회사에서도 임원진과 ATTM, 그리고 우리밖에 모르는 사실인데.

“고우희.”

우리 오빠에서 박춘삼의 여동생 역을 맡은 어린 친구.

“뭐? SN 사장님 조카?”

“내가 실수로 그 애한테 들켰어.”

“허.”

최재환이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더니 나를 쳐다본다. 차 실내등이 녀석의 검은 눈동자에 비치는데, 입을 열 듯 말 듯 하더니 차창을 닫고 묻는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물어보려다가 못 물었는데.”

“뭘?”

“너 나한테 노래에 대한 얘기 왜 안 했어?”

최재환도 내 캐스팅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뭐 대단한 것도 아닌데.”

“대단하지 않다니?”

“캐스팅 매니저님도 그때 나 같은 애는 회사에 널렸다고 그랬어.”

“아후!”

최재환이 한탄한다. 그 인간 때문에 5년을 허비했다고.

“임마 그거야, 그냥 거만 떨지 말라고 하는 얘기지.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잘하는 거.”

잘생긴 놈은 자기가 잘생긴 걸 알고.

똑똑한 놈은 자기가 똑똑한 걸 안다.

물론 재능이란 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거라서, 그렇게 잘 아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은 실상 많지가 않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있지만, 실은 그동안 내내 생각했다.

이시현은 왜 자신의 재능을 내세우지 못했을까.

나는 그것이 녀석의 성격과 연관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성적인 친구들은 타인의 말에, 타인의 시선에 쉽게 반응한다. 그래서 캐스팅 매니저의 말이 녀석에게 일종의 자물쇠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최재환이 차에 시동을 걸며 혼잣말을 뱉었다.

“뭐가?”

“그냥, 여러 가지로 다.”

“별소리를 다 한다. 사람 일 어떻게 알아. 내가 가수로 성공했을지, 아니면 성대결절로 진즉 포기했을지······.”

사람 인생이란 모르는 거다. 뭐든 단정 지을 수가 없다. 그래, 사실 나는 이렇게라도 지난날을 위로하고 있는 거다. 이래야 이시현에게 조금은 덜 미안하니까.

“형, 집에 가자··· 졸리다.”

“그래.”

내일은 또 새로운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좀 자야겠다.

“응?”

최재환이 핸들을 돌리려다가 전화를 보고 눈을 찌푸린다.

“상무님 전화네. 잠깐만.”

최재환이 전화를 받는다며 차에서 내렸다.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저러는 걸까.

살짝 궁금증이 들지만 홀로 남은 나는 차창에 기대고 밖을 바라봤다. 흐린 가로등 빛 아래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밤바람이 넘어와 나를 어루만져준다.

‘후······.’

나는 손을 들어 목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이 목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올까. 어쩌면 고우희의 눈물이 답일지도··· 이것 때문에 과거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래, 많은 생각 필요 없잖아.

그저 평소처럼 숨 쉬듯이 하는 거야.

“음음음······.”

**

[강남 Y 예식장. 2000년 8월 20일 일요일]

“갔다 와라.”

차에서 내린 우리와 달리 최재환은 내리지 않았다.

“알았어.”

차 문을 닫는데, 최재환의 바지주머니에서 한동안 보이지 않던 담뱃갑이 삐져나온 게 보인다. 자식. 그렇게 힘들면 오지를 말지.

“시현 씨.”

매니지먼트 사업부 1팀 매니저 박용현이 앞장선다. 오늘 그는 최재환의 개인적인 부탁을 받아서 나를 데리고 서혜연 기자의 결혼식에 얼굴을 비칠 거다.

서혜연.

그녀의 결혼식.

과거로 돌아와서 솔직히 다 좋은데, 안 좋은 점이 딱 하나 있다.

예전의 아픈 기억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것.

어떤 건 대수롭지 않은데, 어떤 건 가슴이 아픈 기억.

서혜연은··· 아픈 기억에 속한다.

과거 이맘때쯤 나는 일본에 있었다.

그녀의 결혼식이 있던 그 날 도쿄 거리 어디쯤에 오바이트를 제대로 했었는데··· 지금은 또 이렇게 여기에 있다는 게, 조금은 얼떨떨할 뿐이다.

“시현 씨 뭐해?”

“예, 가요.”

우리는 빠르게 주차장을 벗어났다. 여름의 화창한 햇살이 주차장 입구의 하수구 덮개에 반쯤 걸려 있다. 그곳으로 들어오는 차들.

덜컹덜컹.

엘리베이터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우리는 주차장 외곽 출입구로 빠져나왔다.

눈부심 속에 초록의 나무들이 가득한 화단을 지난다.

정장 차림의 하객들 사이를 지나쳐 로비에 들어섰는데, 마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 것처럼 하객들의 시선이 내게 닿는다.

“휴······.”

박용현이 긴장으로 얼굴이 굳은 것과 달리 나는 미소를 잃지 않고 식장으로 향했다.

“가만 보자, 3층인가?”

박용현이 주위를 눈에 담는 동안 나도 주위를 살폈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친 여자 하객과 짧은 인사를 나눴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확실히 기자의 결혼식이라서 그런지 눈에 익은 얼굴들이 많은데.

“여기 이시현이 왜 온 거야?”

“야, 누가 차에서 카메라 가져와!”

더 있다가는 소란이 일어날 것 같아서 우리는 엘리베이터 대신에 비상계단으로 이동했다. 계단 위에서 내려오던 여자들이 흘깃 나를 스쳐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고 내려가는 중에.

“어?”

재차 고개를 돌려 나를 보는 그녀들.

“누구지? 되게 잘생겼다.”

“그러게.”

내가 누군지는 모르는 모양인데··· 어떤 이는 나를 알고, 어떤 이는 나를 모르는, 서로 다른 그 반응들이 하나로 합쳐지기까지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문득 스친 생각에 피식 웃으며 비상계단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많은 화환이 눈에 들어왔다. 출판사며 신문사며, 연예기획사까지. 여기저기서 보내온 것 같다.

[최두식 장길화의 장남 주호]

[서병권 오복자의 장녀 혜연]

웨딩홀 입구에서는 신랑 신부 혼주가 하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다가가 인사를 하자 서혜연의 어머님이 눈썹을 들고 나를 본다. 한복을 입으셨고 화장도 곱게 하셨다. 시간으로는 십수 년만의 만남인데도 한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나한테 참 잘해주셨는데.

내가 창난젓 좋아한다고 따로 챙겨주시기도 했는데.

“누구시지?”

“이시현이라고 합니다.”

“우리 혜연이 친구인가 봐요?”

그녀의 시선에 호감이 가득하다.

“예.”

기억의 향수 때문일까. 그녀의 미소가 참 보기 좋다.

“이따가 식사하고 가요.”

“예.”

잠시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도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다.

연예인이 결혼식장을 찾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큰일이네. 더구나 여기는 기자들 천국인 곳.

“시현 씨 안 되겠다. 가야겠다.”

“부조해야죠.”

재촉하는 박용현을 뒤로하고 신부 측 부조테이블로 가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입을 쩍 벌린다.

“안녕하세요. 서혜연 기자님 부조 여기다 내면 되죠?”

“예, 예!”

바로 지갑을 꺼내서, 백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비치된 하얀 봉투 안에 넣었다. 그녀가 내게 해준 것에 비하면 이 돈 아깝지 않다.

“죄송해요. 미리 준비했어야 했는데.”

변명 아닌 변명을 나직이 속삭이며 봉투에 이름을 적는다.

[최재환]

“어?”

“그럼, 수고하세요.”

인사를 하고 뒤돌자 박용현이 바로 내게 붙는다. 벌써 사진을 찍는 기자들도 있고. 저런 상도덕도 없는 자식들.

“결혼식, 잠깐 보고 가면 안 될까요?”

“그냥 가지. 얼굴만 비치라고 그랬는데.”

박용현이 곤란한 얼굴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신랑 신부 얼굴은 한번 봐야죠.”

“굳이 뭐 그렇게.”

“그렇게 해요.”

내 고집에 박용현이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대놓고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나마 자리가 자리인지라 무턱대고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식이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왔기에 오래지 않아 신랑 신부를 볼 수 있었다.

“신부 입장.”

결혼식 사회자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웨딩홀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서혜연이 보인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서혜연.

지금 순간은 배우 이시현보다 더 반짝이는 그녀.

이 크고 넓은 웨딩홀 안에 그녀만이 새하얀 별처럼 반짝인다.

‘훗······.’

예쁘네.

한때 너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내가 유일하게 1초 만에 반했던 사람이 너였으니까.

하지만 매니저란 삶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래서 그 말을 꺼낼 자신이 없었다.

실은 말이야. 너희 아버지가 날 찾아왔었어.

나이 찬 딸이 비전 없는 남자를 만나고 있으니 당연한 거지.

그래서 너한테 헤어지자고 했던 거야.

‘혜연아. 잘 살아라.’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하게.

“가요.”

나는 뒤돌았다. 엘리베이터에 탔고, 뒤쫓아 탄 박용현이 나를 본다.

“시현 씨?”

“예? 아······.”

이런. 나도 모르게.

“그냥··· 보고 있으니까 행복해져서.”

“훗, 연기자는 연기자다.”

박용현이 미소를 흔드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다.

“박춘삼이다!”

로비에 내리자마자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달라붙는 시선들. 나는 박용현의 팔을 붙잡았다.

“뛰어요!”

정 엔터테인먼트 대표 최재환은 연기자에게 어떤 순간에도 뛰지 말라는 말을 했다.

걸어라, 천천히, 모두가 널 분명히 볼 수 있게끔.

그런데 지금은 뛰어야겠다.

화창한 햇살 아래까지만. 눈물이 마를 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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