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70화 (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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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반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1초 (2)

“이시현.”

“응?”

한송이를 집에 바래다주고 오피스텔로 향하는 길인데, 최재환이 손을 뻗더니 내 이마를 툭 친다.

“아휴, 뺀질이 자식······.”

하긴 오늘 내가 조금 과하게 행동하긴 했지.

무대에 오른 최재환은 흡사 지압발판 위에 서 있는 듯 안절부절못했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나는 그 자리를 너하고 함께 하고 싶었을 뿐이다.

“넌 떨리지도 않디? 전에는 카메라······. 아니다.”

최재환은 내 앞에서 카메라 울렁증 얘기는 절대 안 하려고 한다. 아무튼 나야 뭐, 수만 명의 아이돌 팬 앞에도 서 봤으니까.

도쿄돔이라고 들어는 봤니?

그 자리에서 정 엔터테인먼트 공화국의 탄생을 선포했었단 말이지.

“뭐어? 우리 팀이 해냈네요? 자식이 말은 청산유수야.”

최재환이 나를 보며 콧방귀를 픽 뿜는다. 그렇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비록 촬영 내내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늘 팀이었고, 결국 해냈으니까. 그 말이 안 되는 것을 말이다.

“근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최재환이 고개를 내젓는다. 그 옆모습이 언뜻 심각해 보이지만 실상은 들떠있음을 잘 알고 있다.

사회자 질문을 몇 개 받지도 않았는데, 부리나케 무대를 내려와야 했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그래서 지금 최재환의 몰골이 장난 아니다. 달려온 팬들을 막느라 만신창이가 됐다.

그래도 옷만 찢어져서 다행이지. 얼굴에 상처라도 났으면··· 저 얼굴, 더 큰 일 날 뻔했다.

“어땠냐? 그 환호성?”

참 빨리도 물어본다.

“글쎄.”

“끝내주지?”

그래, 관객들의 웃음을 보고 있으니까 참 좋더라. 사람들의 시선이 나한테 쏠린다는 게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왜 그동안은 몰랐을까.

‘후······.’

차창을 여니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오고.

문득 그런 궁금증이 든다.

달라진 삶.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든 걸까. 노력의 차이일까. 아니지. 정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삶도 노력의 연속이었으니까 그건 아니고.

그럼 걸어간 길의 차이일까.

하지만 배우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매니저의 길로 접어든 것은 내가 선택한 길.

그럼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것?

뭐, 기획사 대표의 삶도 하고 싶은 것 맘껏 했는걸. 그럼 뭐가 다른 거야?

“형.”

“왜?”

“나하고 대표님하고 뭐가 다른 걸까?”

최재환이 운전 중에 나를 힐끗 쳐다본다. 뭔 뜬금없냐는 소리냐는 시선이다.

“무슨 소리야?”

“형하고 나는 뭐가 다른 걸까? 그냥, 내가 궁금한 건······.”

설명을 붙여보려고 하는데, 최재환이 입을 연다.

“얼굴.”

“뭐?”

“그냥 넌 잘생긴 거야.”

빨간불에 차가 멈춰 서고. 최재환이 나를 제대로 본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비린 미소를 짓더니.

“그 말이 듣고 싶었지? 그래 임마, 너 잘났다! 그니까 더 열심히 해. 누구는 배우가 되고 싶어도 못 하니까.”

분통이 터진다고 가슴을 두드리는 최재환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데, 크크··· 두 번 웃다가 웃음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이놈도 연기할 수 있잖아?’

내가 그랬듯, 눈앞의 최재환도 배우를 꿈꿨던 놈.

비록 지금은 매니저로 있어도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잠시 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최재환이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꺼내 든다.

“예, 최재환입니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저 현승아의 ‘사랑을 할 겁니다’ 작가예요.

“아, 작가님? 웬일이세요?”

최재환이 통화하는 사이 나는 차창 너머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작가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도 들려온다.

-밤늦게 죄송해요. 다름 아니고, 저 부탁 좀 하려고요.

“부탁?”

-깊어지는 밤 아시죠? 거기 작가가 제 학교 후배인데, 오늘 게스트 펑크 나서 잠깐 초대 손님으로 나오실 수 없나 해서요··· 시현 씨요.

“지금이요?”

자동차 오디오의 시간이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전화로요. 한 5분 정도만. 나머진 디제이 지인들로 메꿀 건데··· 어려울까요?

“흠······.”

최재환이 이마를 긁적인다.

문화의 밤 행사야 바이바이와의 관계도 있고 대학 축제이니 잠깐 얼굴을 비쳤지만, 전파로 전국에 퍼지는 방송은 얘기가 다르다. 통화 중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깊어지는 밤, 아직 시작 안 했죠?”

-20분 남았어요.

“그럼, 10분만 시간 줘요.”

-예. 꼭 전화주세요.

최재환이 전화를 끊는 것에 맞춰 나도 눈을 떴다. 잠시 도롯가에 차를 세우고, 녀석이 휴대폰을 여전히 손에 쥔 채로 이마를 찌푸리고 말한다.

“시현이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나는 상관없어.”

“후··· 그럼 회사에다 얘기를 하고······.”

“형.”

나는 고민하는 최재환을 불렀다. 녀석이 다시 나를 본다.

“왜?”

“형 이제 팀장이야. 이 정도는 형 선에서 결정하면 돼.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형이 하자고 하면 할게.”

최재환이 나를 본다. 생각이 많아진 얼굴인데, 그 마음 잘 안다. 이제 팀장도 되고, 날아오를 준비가 됐다 한들, 처음부터 날개를 펴고 뛰어내리는 건 쉽지가 않을 테니까.

“시현아. 넌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또 뭐가?”

왠지 너무 진지해지는데.

“너 이제 무척 바빠질 텐데, 이런 때일수록 맘 단단히 먹고 움직여야 해. 그냥 무작정 움직이다가는 너 금방 지친다.”

고마운 말이긴 한데, 그래 고마운 말인데.

무려 5년을 놀고 있었던 놈에게 할 말은 아니지.

물론 최재환도 지금이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아직은 머리보다는 마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젊음을 가졌으니까.

“형, 우리 이렇게 하자.”

“뭐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연기할게. 어떤 작품이든, 어떤 상황이든··· 그러니까 형은, 나를 한번 제대로 키워봐. 형 맘대로.”

최재환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더니 끄덕임 뒤에 다시 휴대폰을 손에 쥔다.

“작가님 저 최재환입니다. 이시현 배우, 전화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

거울에 비친 모습은 더는 걸그룹 3W 멤버가 아니었다. 그저 환자복을 입은 여자에 불과했다. 짙은 무대화장이 사라진 맨얼굴의 환자 권혜선.

요 며칠 박 상무와 매니저가 병원을 오간 끝에 결론이 났다.

결국에는 수술.

현재 권혜선의 정확한 병명은 대퇴부 골절.

조각난 뼈로 인해 신경 손상이 올 수도 있는 상태인데, 어떻게든 수술은 피해보려고 했지만 답은 이미 처음부터 나와 있었다.

욱이 매니저는 권혜선에게 재수가 없었다는 말로 위로를 할 뿐이었고, 박 상무는 딱히 위로의 말은 하지 않았지만 괜찮아질 거야, 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물론 그 말대로 수술을 하면 괜찮아질 거다.

수술을 받고, 회복하고, 재활 훈련을 하면 깨끗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어느 세월에?

그녀 나이 스물둘. 지금은 3W의 맏언니이자 리더지만, 그녀도 한때는 막연히 꿈을 꾸던 소녀이자 연습생이었다.

회사를 잘못 들어가 밤낮 연습만 하다가 지치고, 소송에 휘말리고, 한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했던 그녀.

그런 그녀가 지에스에 왔고, 최재환을 만났고, 슬기와 레니를 만났다. 그리고 3W 리더 권혜선이 됐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1집 활동.

그리고 단단히 준비해 들어간 2집까지.

3W는 이제야 비로소 달리는데··· 권혜선은 달릴 수가 없게 됐다.

언제. 어느 세월에.

그녀의 머리에 각인된 생각.

언제. 어느 세월에.

[언니,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어.]

[슬기 오늘 맥주 나발 불었어. 혼내줘.]

[레니가 문자 보낸 거 헛소리야. 절대 아니야. 얘 미쳤나 봐.]

어둠 속에서 휴대폰 화면만이 은은히 빛을 발한다.

병실 창가에 기댄 채로 권혜선은 멤버들의 문자를 눈에 담았다. 슬기의 문자는 평소 그녀처럼 수다스럽고, 레니의 문자는 역시 삐딱하다.

하지만 그녀들이 일부러 밝은 문자를 보내고 있음을 잘 알기에, 문자를 보는 권혜선의 얼굴에는 좀처럼 미소가 떠오르질 않았다.

‘후······.’

너무 많이 울었더니 더는 울 힘도 없다. 그저 고개를 들어 병실을 채운 어둠을 바라볼 뿐이다. 그나마 병실 문 바닥 틈새로 복도의 빛이 살짝 들어온다.

허전함과 외로움, 무료함 속에 권혜선은 쩔뚝거려서 창가 끝에 있는 라디오에 손을 뻗었다.

“아.”

고통에 잠시 찌푸려진 이마.

라디오를 틱, 켜자 바로 맑은소리가 들려온다.

-예, 여러분 지금 제가 누구랑 통화할지 아세요? 바로바로··· 여러분, 우리 오빠의 주인공 박춘삼 씨와 전화 연결하겠습니다.

침대에 걸터앉던 권혜선의 이마가 찌푸려진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손바닥 크기의 라디오를 다시금 바라보는데.

-안녕하세요, 시현 씨!

-안녕하십니까. 배우 이시현입니다.

-와우!

디제이의 요란한 박수와 들뜬 목소리가 들린다.

-시현 씨, 저 고백할 거 있어요.

-예?

-저 시현 씨 팬클럽 가입했습니다.

-하하하.

조심스럽지만 자신감이 차 있는 웃음소리. 반면 권혜선은 그 웃음소리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볼은 찌푸려지고 눈가가 바르르 떨린다.

-어쩌면 연기를 그렇게 잘하세요? 저 드라마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아세요?

-잘하긴요. 현장에서 여러 선배님이 지도해주셔서 겨우 턱걸이한걸요.

-어이구 말씀도 잘하셔!

-정말입니다!

-알았습니다. 알았고요. 하하!!

흥이 난 디제이와 이시현의 차분한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병실 안을 떠돈다. 결국 더 듣지 못하고, 권혜선은 라디오를 꺼버렸다.

“대체 이 자식 뭐야?”

화가 나서 입술을 아득 깨문다. 작년에 권혜선은 이시현에게 연기수업을 받았었다. 그때, 사실을 말했다.

‘재환이 오빠를 좋아한다고.’

그랬더니 그 뒤로 연기수업을 일방적으로 관두더니, 아예 그녀의 얼굴을 봐도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올봄에 마주쳤더니, 갑자기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런 말을 했다.

[재환이 형 좋아하지 마.]

눈을 부릅뜨고 그런 말을 하더니.

[내가 너 좋아할 거니까.]

그런 말을 했다.

그때부터일 거다. 그녀가 이시현을 피했던 게.

‘하······.’

권혜선은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배게 옆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백왕 매니저]

혹 멤버들이 볼까 봐 백마 탄 왕자를 줄여서 저장한 이름인데.

띠리리··· 띠리리······.

하염없이 신호만 갈 뿐이다.

권혜선은 한참을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끝내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자,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툭 떨어져 침상에 떨어진 휴대폰.

켜져 있는 화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다시 쥐었다. 그리고는 이름을 수정했다.

[백마탄왕자 최재환]

**

-시현 씨, 우리 오늘 ‘그에게 반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1초’라는 주제를 가지고 청취자분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아, 그래요? 주제가 멋있네요.”

디제이의 질문은 크게 탈이 날 만한 건 없었다. 물론 최재환이 곁에서 듣다가 문제가 될 만한 건 재빨리 캐치해서 수첩에 적어 나한테 내밀고 있고.

-그럼, 시현 씨는 그런 상대가 있었나요? 1초 만에 상대에게 반했던 적.

“글쎄요······. 아직은 없었습니다.”

-그럼 상대가 시현 씨에게 1초 만에 반한 적은요? 많을 것 같은데?

“에이 없어요. 그게 쉬운가요. 서로의 마음을 아는데도 긴 시간이 걸리는데.”

-그럼 시현 씨는 ‘그에게 반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1초’가 있을 수 없다?

“없다기보다, 있다면 되게 행복할 것 같아요. 1초 만에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거니까.”

-시현 씨.

“예?”

-회사에서 가르쳐줘요?

“뭐가요?”

-멘트 말이에요. 아으, 되게 낭만적이다.

“아··· 하하.”

여유 있게 대답하고 여유 있게 웃는다. 왠지 긴장도 되질 않는다.

-아, 시현 씨, 유이 씨하고 개인적으로 연락해요?

디제이의 질문에 최재환이 수첩에 뭔가를 적는다.

[유이에 관한 건 길게 가지마]

최재환이 보여준 수첩을 눈에 담고 고개를 끄덕인다.

“곧 우리 오빠 촬영 팀이랑 연기자들 뒤풀이할 거거든요. 그때 한번 볼걸요?”

이미 기사에도 나온 얘기.

-근데 둘이 호흡이 장난 아니던데?

“유이 씨 덕이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부로 목소리를 높여 끝마무리를 했다. 그러자.

-아, 제보가 들어왔어요.

“제보요?”

-한 애청자님이 직접 저희에게 전화를 해오셨는데······.

말꼬리가 길어지는 게 조금 수상한데. 최재환의 이마도 상당히 찌푸려진다.

-시현 씨가 노래를, 그렇게 잘한다는 얘기?

“예?”

-우리 오빠에서 유이 씨가 부른 노래, 그 노래를 불러주면 안 되냐고, 저희 애청자님이······.

그 뒷말은 들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왠지 딱 한사람이 떠오른다.

‘고우희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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