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67화 (67/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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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시현입니다 (3)

[KIS 특집드라마, 8월 15일을 감동으로 마무리하다]

[시청률 23.4% 시청률 조사업체인······.]

[오늘도 본다! KIS 이례적 결정!]

[네티즌 ‘우리 오빠’ 찬사! 근데 박춘삼이 누구야?]

[박춘삼 역의 배우 이시현에게 관심 집중]

[신인 배우 이시현! 왜 이제야 왔나?]

기다렸다는 듯이 호평 일색의 기사가 쏟아졌다.

KIS 방송국은 이례적으로 평일 재방송을 편성했으며, 지에스엔터테인먼트는 아침부터 빗발치는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자들이야 어젯밤 전화에 이미 뜯어갈 것 뜯어갔고, 아침이 되자 방송 관계자들에 어중이떠중이들까지 전화를 해오는데, 그중에서도 이시현이 누구냐고 묻는 일반인 여성들의 전화가 꽤 많았다는 소식.

여기까지가 오늘 아침에 성 팀장에게 전해들은 내용인데, 나로서도 현 상황이 고무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어젯밤 최재환과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었다. 될 거라는 거. 촬영장에서의 분위기도 그랬지만 완성된 드라마를 보면서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눈 좀 붙여.”

최재환의 부은 얼굴이 나를 돌아본다. 어제 지 혼자서 맥주를 얼마나 마시던지. 아무튼 지난 열흘 강 실장이 앉아 있던 자리에 지금은 최재환이 앉아 있다. 아니지, 우리는 지금 카니발이 아닌 밴을 타고 있으니 같은 자리는 아니다.

“괜찮아. 어제 실컷 잤어.”

“잠이 왔어?”

“못 잘 것 뭐 있어.”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사실 밤새 뒤척였다.

나이 먹고 열 받아서 잠 못 드는 일은 있어도 설레서 잠 못 든 적은 없었는데··· 그만큼 메마른 삶이었건만, 확실히 나도 많이 변했다.

“훗.”

뜬금없이 최재환이 콧바람을 들썩이더니 실실 웃으면서 혼잣말을 한다.

“VVW 이 자식들 배 좀 아프겠네.”

“형, 근데 그쪽에서 왜 순순히 빠진 거야?”

내심 최재환이 차 대표의 카드를 알고 있을까 싶어 물었다.

그러지 않아도 계속 궁금했는데, 성지훈이 하차하고 내가 드라마에 들어갔다는 것은 어찌됐든 차 대표의 카드가 먹혔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는 모르는 카드란 말이지. 그럼 대체 그 카드가 뭐야?

“니가 알 필요 없는 얘기야.”

최재환이 선을 긋는다. 그러니까 더 궁금하다. 저렇게까지 말하는 거면 이유가 있어도 있는 건데.

“저리 가라.”

최재환의 볼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더니, 녀석이 내 얼굴을 밀어낸다. 그래서 포기하고 차창을 열어 바람이나 먹으려 입을 한껏 벌렸다. 우바바바. 미세먼지 없는 서울의 아침 공기가 내 얼굴을 씻어주는 동안 최재환이 속도를 높이며 목소리에 힘을 준다.

“사실 까놓고 말해서, 성지훈이 무슨 연기야? 차라리 혜선이가 더 낫겠다.”

그 말처럼 내가 기억하는 8.15특집드라마는 주연 배우의 엉망인 연기와 평범한 편집, 그리고 낮은 시청률로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드라마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연 배우 교체라는 이슈를 시작으로 KIS도 방영 전까지 꾸준한 홍보로 드라마에 힘을 실었다.

그 와중에 나에 대한 악의성 기사들까지.

차 대표도 기자들이 아무렇게 써 재끼는 기사들을 지켜만 본 모양이고. 말 그대로 바람 잘 날이 없었는데, 그래서 결과는?

달라졌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완전히 달라졌다.

“아, 혜선 씨는 어떻게 된 거야?”

“활동 중단.”

“진짜?”

너무 놀라서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그러자 뒤에서 자고 있던 한송이가 음음··· 소리를 내며 뒤척이는데, 최재환이 룸미러를 보며 헛웃음을 토한다.

“어이구, 누가 보면 쟤가 연기잔줄 알겠다.”

“자게 내버려둬. 송이는 자는 게 우리 돕는 거야.”

“뭐··· 인정.”

최재환이 가볍게 웃어넘긴다.

우리는 지금 샵 ‘솜솜’에 가고 있다. 생각해보니 이달 들어 처음 가는 건데, 그동안은 촬영장의 미술팀 스태프와 이시하라 유이의 스태프가 도움을 많이 줬다. 한송이는··· 부채질은 참 열심히 하더만.

“잠깐만.”

최재환이 도롯가에 차를 세운다. 얼른 차에서 내린 그가 들어간 곳은 김밥집.

미리 전화를 해뒀는지 바로 계산을 하고 묵직한 검은 봉지를 양손에 들고 차에 돌아왔다. 뒷좌석에 슥 놓더니, 다시 운전대를 잡으며 감탄사를 뱉는다.

“역시, 큰 차가 좋구만.”

박한영의 밴은 뽑은 지도 반년밖에 되지 않아서 새 차나 다름없었다.

팀장 승진도 그렇고, 박한영의 밴까지.

차 대표가 화끈할 때는 화끈한 타입이기는 한데, 최근에는 유달리 우리에게 잘해주고 있다. 그래서 불안하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양반이니까.

“으음, 뭔 냄새?”

한송이가 게슴츠레 눈을 떴다.

“너 정신 안 차려? 이게 빠져가지고.”

최재환의 타박에 그녀가 눈을 비비고 자세를 바로 한다. 물론 입술을 빼죽 내민 모습이다. 그래 이래야지. 이래야 우리 팀이지. 이 둘의 티격태격을 그동안 보지 못해서 얼마나 심심했는데.

“송이야, 더 자.”

내가 권하자 그녀가 눈을 흘기고 최재환을 본다. 그러더니 혼잣말을 나직이 꺼냈다.

“오빠, 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라는 거니?

“문?”

“예. 문.”

나도 그렇지만 최재환이 황당해서 고개를 내젓는다.

“아후, 아침부터 뒷골 당기네. 야, 더 자 그냥.”

“문.”

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있나. 하여간 독특하다니까.

샵 주차장에 도착하자 한송이가 뒷문을 열고 내리면서 또 소리친다.

“문!”

“너 진짜!”

최재환이 잡아먹을 듯이 보자 한송이가 또 입술을 빼죽 내밀고 눈치를 살피며 제 짐을 챙긴다. 그러더니 혼자 쌩 샵으로 올라가는데, 그 뒷모습을 보면서 최재환이 고개를 내젓는다.

“아후, 저거 안 보는 새에 왜 저렇게 뺀질이가 됐어? 문은 또 뭐야? 천국 가는 꿈이라도 꿨나.”

“그냥 봐줘. 형 보니까 좋아서 저러는 거야.”

“두 번 좋아했다가는 내가 피가 마르겠다.”

최재환이 전화 한 통 해야 한다고 해서 나 먼저 샵에 들어갔다. 무심히 유리문을 열었는데, 순간 내가 오면 안 되는 곳에 온 건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소하던 친구는 빗자루를 툭 떨어트리고, 손님과 대화 중이던 헤어디자이너는 가위질을 슥 멈추고, 카운터의 직원은 입을 헉! 벌리고 나를 본다.

“안녕하세요.”

“아, 아, 안녕하세요.”

카운터 직원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수줍어한다. 뭐 수줍어하는 거야 이해하지. 그거야 자주 있는 일이니까. 근데 한두 번 본 얼굴들도 아닌데 뭘 새삼스럽게.

그때, 뒤늦게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온 최재환이 우렁차게 외쳤다.

“김밥 먹어라!”

**

[KIS 드라마국]

“어 들어와.”

박태 피디와 윤찬 씨피가 들어오자 황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움직인다. 오랜만에 셋이 마주 앉았다.

“야, 너 고생했더라?”

황 국장의 말인즉, 어제 방송이 괜찮았다는 뜻이다. 박태 피디가 씩 웃으며 대꾸한다.

“고생했죠. 거 중간에 배우를 바꿔서······.”

“그래서? 싫었어?”

“아니 좋았다고요.”

“하여간 이 자식은, 어른의 깊은 뜻을 너무 늦게 알아.”

황 국장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윤찬 씨피도 맞장구를 쳐준다.

“그러니까요, 난 국장님이 갑자기 주연 바꾸라고 하는데··· 캬!”

느닷없이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내젓더니.

“신의 한 수다 싶었다니까.”

누가 봐도 소 뒷걸음친 격이지 탁월한 결정은 무슨.

“어이구, 두 분 그만하시고요. 저 왜 오라고 한 거예요?”

박태가 속마음을 삼키고 빨리 용건을 물었다. 그러자 황 국장이 손을 들어 그를 때리는 시늉을 한다.

“형이 오라면 오는 거지. 확 그냥.”

“아 진짜 왜 부르셨어요? 오늘 할 거 많아요. 기자들 난리야 지금.”

“네가 뭘 해? 할 게 있어도 없는 게 피디야. 조연출은 폼이냐?”

“걔도 할 거 많아요. 영수증 올릴게 몇 개인데. 오늘 아침에 풀을 세 통을 책상에 쾅쾅 놓더라니까? 나 보란 듯이.”

“으하하!”

황 국장이 크게 웃어넘기고, 윤찬 씨피가 박태를 타박한다.

“그러니까 자식아. 적당히 부려먹어야지.”

“형이 나 부렸던 건 기억 안 나셔?”

박태가 윤찬 씨피를 날카롭게 본다. 윤찬 씨피가 슥 시선을 피하자 황 국장도 한마디를 거드는데.

“하긴 우리 박태 고생 많았지. 윤찬이 니가 그때는 해도 너무했어.”

“국장님. 저 국장님 밑에 있었습니다.”

“흠, 그래서 왜 불렀냐면 말이야.”

황 국장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괜스레 분위기를 잡더니.

“박태야.”

“예.”

“너, 우리 오빠 해볼래?

“우리 오빠를··· 해요? 그게 무슨 괴상망측한··· 혹시, 편성하시려고요?”

“뭐, 김 작가하고도 얘기해봐야겠지만··· 반응 좋잖아?”

황 국장의 입에서 느릿느릿 피어나는 담배 연기를 보며, 박태는 찌푸린 이마를 모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런 생각 안 한 바는 아니었다. 김 작가하고도 한번 얘기를 나눈 적이 있고. 잘돼서 연속극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전례가 없던 일이어서 그저 웃어넘긴 이야기인데.

“10월에 나갈 수 있게 한번 해봐.”

“10월이요?”

그 일정에 맞추려면 당장 팀 꾸리고 9월부터 촬영에 들어가야 한다.

“7UP 지금 엉망이야. 박한영이 빠져서 그런가? 에이, 지에스 이 개놈의 자식들··· 무슨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박한영 대신 이시현을 줬네.”

“그나저나, 그 친구 연기 진짜 잘하데.”

윤찬 씨피가 곁에서 이시현에 대해서 얘기를 이어간다.

“촬영장에서는 어땠어?”

“괜찮았죠. 뭣보다 인성이 좋더라고요. 예의도 바르고, 스탭들한테도 깍듯하고. 지도 피곤할 텐데 가끔 스탭들 일을 도와주고 하더라고요.”

“그거 다 쑈야.”

“에이. 사람은 힘들면 본성 나와요. 걔 열흘 동안 죽어났는데요?”

“뭐, 인성이 어떻건 시청률만 잘 뽑으면 되지.”

황 국장이 담배를 비벼 끄며 말한다. 시청률 만능주의 국장. 하지만 그 덕에 시청률만 잘 뽑으면 그 앞에서 조금은 싹수없게 굴어도 된다.

“아.”

허리를 펴고 일어서던 황 국장이 뭔가 생각난 듯 멈칫하고 박태를 다시 본다.

“예능국의 장 피디가 이시현이 한번 보고 싶다고 하네. 자리 좀 해봐.”

“그걸 왜 저한테.”

“그거야 니가 이시현하고 살 부대낀 놈이니까 너한테 얘기하는 거 아니야?”

“하······.”

박태는 찌푸린 얼굴을 끄덕였다. 배우들이 예능 기피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장 피디 입장에서는 얘기를 성사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두고 굳이 돌아갈 이유가 없을 테고.

“아무튼, 이시현이하고 매니저 들어오라고 해.”

“그것도 제가 말해요?”

“이제 니가 이시현 전용 창구야.”

“아니, 국장님은 차 대표하고 다이렉트잖아요?”

“임마, 내가 그 껄끄러운 놈한테 부탁할 짬밥이냐?”

“하······.”

오늘도 박태는 한숨을 쉰다.

**

커트하고 드라이 한번 했을 뿐이데, 얼굴에서 빛이 난다.

“시현 씨, 나 드라마 완전 감동했어. 어젯밤에 눈물 콧물 줄줄 이었다니까?”

디자이너가 드라이기를 내려놓으며 호들갑이다. 그녀는 이시현의 머리를 만지는 내내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앞으로 엄청 바빠지겠네?”

“누나가 제 담당이시니까, 잘 부탁드려요.”

“누, 누나?”

“예.”

이시현이 미소를 짓자 그녀의 심장이 쿵!

정신을 가다듬고, 거울에 비친 이시현의 머리를 이리저리 보던 그녀가 문득 손을 멈춘다. 아까부터 견습 직원들의 시선이 거울에 비치고 있었다.

“니들 일 안 할래?”

결국 그녀들이 아쉬움을 삼키고 향한 곳은 최재환이다.

“매니저님, 시현 씨 사인 꼭 챙겨주셔야 해요?”

“니가 그냥 받아.”

“에이, 어떻게요. 부끄럽잖아요.”

“야, 쟤 여기 한두 번 오냐? 지난달에 많이 왔잖아?”

“에이 그래도.”

“이것들이 내 얼굴 보는 건 안 부끄러워?”

직원들이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이 쳐다본다. 최재환이 한숨을 훅 내쉬고.

“매니저님은 식사하셨어요?”

“아직.”

“그럼 저희랑 김밥 먹어요.”

“됐어. 니들이나 먹어.”

“에이, 그러지 마시고.”

그녀들이 팔까지 걸어서 끌고 가다시피 간 곳은 직원들의 휴식처인 탕비실이었다. 마침 그곳에서 김밥을 먹고 있던 여자애가 최재환을 보고 놀랐는지 딸꾹!

“쟤는 누구야?”

“신입이요. 세희야,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곰, 아니 매니저님.”

“곰?”

최재환의 이마가 찌푸려지자 여자애가 깜짝 놀란다. 직원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

“아하하. 매니저님이 곰처럼 듬직하잖아요. 그래서······.”

“이것 봐라? 니들 평소에 나를 곰이라 불렀다 이 말이지? 야··· 이거 배신감 장난 아니네.”

최재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당황한 직원들이 서둘러 그를 위로하느라 어깨를 주물러주고, 팔을 주물러주고.

“에이, 친근해서 그렇죠. 얼마나 듬직해요?”

“됐거든?”

“삐지셨어요? 정말?”

“야 하지 마. 하지 마.”

작은 손들이 주물럭거리니 최재환이 간지러워서 몸을 배배꼰다. 그런데 순간 최재환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그가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탕비실 한쪽의 스케줄 보드에 있는 사인펜을 집었다.

[곰]

이렇게 적더니 고개를 기울인다. 그러자 글자가···

[문]

그걸 보는 순간 최재환의 눈이 번뜩 뜨였다.

“하안소옹이!”

**

“여보세요?”

-민 팀장님, 잠깐만요.

퉁명할 정도로 거친 상대방의 말투에 민 팀장은 잠시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화면을 다시 살폈다.

“최 팀장님 맞는데?”

그래서 다시 휴대폰을 귀에 가져가니, 저 너머에서 최재환의 폭풍 잔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대체 누구를 혼내고 있는지 잘못했다는 얘기만 계속 들리고 나서.

-후··· 팀장님 미안해요.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야? 팀장 되시더니 잔소리가 느셨나 봐?”

-그런 게 있어요. 뺀질이가 하나 있어서.

“후후. 최 팀장님 좀처럼 잔소리 안 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어지간히도 까불었나 보다. 누구예요?”

-별거 아니에요··· 촬영장에서 사고 칠까 봐. 이럴 때일수록 긴장해야지. 근데, 왜 전화하신 거예요? 바로 본론으로 안 들어가시고 빙빙 도는 거 보니까, 어려운 얘기인 것 같은데?

“하여간 눈치 백단이야.”

민 팀장은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지난번 행사 요청 때도 최 팀장은 단칼에 잘랐었다. 그때는 서운함에 화도 냈지만, 지금이야 뭐.

“어제 드라마 봤어요.”

-어땠어요?

“잘 알면서.”

민 팀장은 최대한 차분하게 얘기를 꺼냈다. 실은 사무실이 난리가 났다. 여직원들은 드라마 얘기 삼매경에, 남직원들은 이시현 싸게 잡았다고 난리고··· 물론 광고주가 배우 앞에서 호들갑스러워 좋을 건 없으니.

“아무튼, 그래서 말이죠.”

-뭔데요? 할 얘기가.

왠지 최재환의 목소리가 뭐든 들어줄 것 같은 톤인데.

“문화의 밤이라고 알아요?”

-문화의 밤?

“시립대에서 이맘때쯤에 하는 건데, 배우 초청해서 영화나 드라마에 관해서 얘기하는 시민 축제 같은 거예요.”

-시립대 축제면 규모야 작을 테고··· 거기에 시현이가 갔으면 좋겠다?

“하··· 이거 무슨 말을 못하겠네.”

-거기랑 바이바이하고 무슨 관계인데요?

“우리 사장님이 시립대하고 인연이 좀 있어요. 해마다 장학금도 쾌척하시고, 문화의 밤 행사 때는 지원도 하고.”

-날짜하고 시간은?

“뭐야? 진짜?”

바로 거절할지 알았던 민 팀장이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금요일 저녁 10시.”

“이번 주 금요일? 저녁 10시요?”

“1시간··· 정도만.”

그 말을 하고 숨죽여 기다린다. 최재환이 말이 없자.

“···그럼 30분 정도만? 너무 늦나?”

-뭐, 해줘야지. 바이바이 일인데.

전에는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무슨 바람이 들었데.

민 팀장은 들썩거리는 입꼬리를 애써 누르고 최재환의 맘이 바뀔까 봐 바로 다른 얘기를 꺼냈다.

“아, 우리 CF 2탄. 그거 시현 씨 스케줄만 잡히면 당장 이달에 촬영하고 바로 9월부터 내보낼까 하는데.”

-그렇게 빨리요? CF 반응 아직 좋잖아요?

“에이, 요즘 트렌드가 얼마나 빠른데,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에도 나갈 거예요.”

-일본이요?

“예, 지금 정확히 결정이 안 나서··· 최 팀장님만 아세요. 호호호.”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민 팀장의 목소리가 크다. 사무실 사람들 다 들릴 정도다.

“뭐, 세부적인 거야 그쪽 성 팀장님하고 얘기할 거고요··· 그럼 문화의 밤은 참석하시는 거예요? 딴말 안 하기?”

-알았다니까요. 단, 젖소 옷 안 입습니다.

그 말을 들은 민 팀장이 몇 번이나 입맛을 다시고 침울한 표정을 숙인다.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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