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66화 (6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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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시현입니다 (2)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시현은 차창 너머를 바라보며 침묵했고, 그 옆모습이 공허해 보여서 강 실장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서울이다.”

톨게이트에 도착하니 하늘이 맑게 갠다. 마치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위로해주 듯 눈부신 하늘이다.

“손님, 여  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톨게이트비를 계산한 강 실장이 잔돈을 내려놓는 중에 문득 고개를 든다. 이시현이 물끄러미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실장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노력을 알아준다는 것.

그것만큼 사람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것도 드물다.

“그래, 너도 수고했다. 그리고 한송이!”

“예?”

뒤에서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있던 한송이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너도 수고했어.”

“뭐예요. 괜히 눈물 나잖아.”

그녀의 너스레에 강 실장이 피식 웃는다.

“야, 입에 침이나 닦고 말해. 하품해서 나온 눈물을 감동의 눈물로 포장하면 안 되지.”

“앗, 들켰네.”

오랜만에 맘 편히 웃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내일이면 다시 지옥의 월요일이 시작되지만, 어찌됐든 지금은 어깨의 들썩임 속에서 차가 숭숭 나아간다.

“저녁에 호프 한잔할까?”

강 실장이 들뜬 얼굴로 이시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녀석의 눈이 망설이는 게 보인다.

“하긴 피곤할 텐데··· 쉬어야지.”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송이 너는?”

“우와, 저녁까지 저를 보고 싶은 거예요? 이 인기 어떻게 해야 해? 오케이! 단, 저는 무임승차.”

“아이고 저 뺀질이. 임마, 법인카드가 괜히 있는지 알아? 오늘 먹고 싶은 거 다 얘기해!”

강 실장의 얼굴이 싱글벙글이다.

촬영 내내 다들 고생이 많았는데, 이시현은 외줄을 타듯 집중 상태였고, 강 실장은 그런 이시현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게끔 곁에서 돕는 데 집중했다.

한송이 역시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촬영장을 기웃거리며 다른 배우들의 스타일리스트가 하는 일들을 눈치껏 배우는 요령도 보였다.

환상의 팀워크는 아니었어도 첫 드라마 촬영치고는 그럭저럭 괜찮은 팀워크였다.

“다 왔다.”

청담동에 도착했을 때야 강 실장을 비롯한 셋은 촬영이 정말 끝났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끝내고, 차에서 내리면서 강 실장이 이시현을 돌아본다.

“시현아.”

“예?”

“첫 드라마 촬영 마친 소감이 어떠냐?”

이시현에게 드라마는 생에 처음.

“처음이라······.”

이시현이 혼잣말을 속삭이며 옅은 미소를 보인다.

“글쎄요. 너무 정신없이 지나가서.”

겨우 열흘 남짓 촬영. 2시간 분량의 드라마.

16부작 드라마, 혹은 영화 촬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이시현에게 있어 ‘우리 오빠’는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드라마였다.

“그냥, 꿈을 이룬 기분이네요.”

꿈, 바로 그 꿈.

그걸 위해 이시현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게 정말 꿈이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즐겨.”

강 실장은 오늘로 끝나는 임시 매니저의 자격으로 이시현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조언을 건넸다.

당장 시청률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른다.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고, 다들 기대하는 눈치지만, 겨우 2시간짜리 드라마에 파급력이 얼마나 있겠는가.

물론 이제부터는 이시현의 하루하루가 달라지겠지만, 당장 내일은 그저 내일일 뿐이다.

하지만 강 실장은 그런 말들을 이시현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녀석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게 미안할 따름이고, 오늘 이 순간만은 녀석이 맘 편히 즐기게 해주고 싶었다.

“알았지? 맘껏 즐겨.”

“예. 그럴게요.”

“그래, 이따 제대로 한잔하자고.”

엘리베이터에 오른 셋은 조금 지쳐 있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다. 뭔가를 해냈다는 그런 마음들이 엘리베이터 안을 두둥실 떠돌았다.

셋은 4층에서 내렸다. 복도를 지나서 사무실 문을 여는데.

팡! 팡! 팡!

난데없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강 실장의 어깨며 얼굴에 색색의 종이끈들이 달라붙었다. 사무실 직원들이 미니폭죽을 터트린 것이다.

“수고했다!”

조 부장이 입꼬리를 올리고 강 실장을 바라본다. 매니저들과 사무실 직원들도 세 사람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야 자식아, 넌 눈치가 없냐. 네가 시현이를 제치고 폭죽을 받으면 어떻게 해?”

말투와 달리 조 부장은 실실 웃고 있었다. 그러자 강 실장도 이시현을 슥 쳐다보고 너스레를 떤다.

“우리 배우는 이런 거 싫어하거든요?”

“어이구, 우리 강 실장님 사려도 깊으셔!”

담배 한 대 태우러 가자는 매니저들의 제안에 강 실장이 사무실을 나가고. 한송이는 그동안 식비며 숙박비며 사용한 영수증들을 한데 모아 강 실장의 자리에 올려놨다.

“오빠, 저 ATTM 내려갔다 올게요.”

“그래. 일 봐.”

스타일리스트는 ATTM 소속으로 회사와 아티스트에 준하는 계약을 한다. 그래서 ATTM이 있는 3층에 그녀들만의 공간이 있다.

혼자가 된 이시현은 매니지먼트 사업부 한편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들어올 때의 요란한 박수와 달리 그에게 살갑게 말을 붙여오는 직원들은 없었다. 어쩌면 다들 눈치만 살피는지도 모르겠다.

‘흠.’

이시현은 테이블에 놓인 신문을 집었다.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어 잠시 관심을 가져보는데, 사무실 문이 열리고 눈에 익은 여자가 들어왔다.

송이경.

양 갈래로 땋은 갈색 머리와 작은 얼굴, 체크패턴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은 이시현이 재빨리 소파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짧게 인사를 나누고, 송이경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강 실장님 찾으세요?”

이시현이 눈치를 채고 물었다.

“예, 상의할 게 있어서. 어머, 내 정신 좀 봐. 미안해요, 제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촬영 마치셨다면서요?”

“예.”

“고생 많으셨어요. 계란세례는 진짜 내가 다 화나더라.”

그녀가 콧잔등을 찌푸리고 제 일처럼 화를 낸다.

“그래서 당분간 계란은 안 먹으려고요. 근데, 무슨 일인데요?”

“오늘 저녁에 영화사 관계자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혼자 가기가 그래서요. 제가 지금 기댈 사람이 없잖아요.”

그녀의 맑은 미소에 이시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오늘 강 실장과 한잔 하는 건 미뤄야 할 듯싶은데··· 사무실 직원이 이시현을 부른다.

“시현 씨, 경영지원팀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요?”

“왜요?”

“박 상무님이 올라오라네요.”

“아, 알겠습니다.”

바로 고개를 끄덕인 이시현은 송이경에게 짧게 눈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6층에 올라가니 카리스마 박 상무가 사무실에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는데, ATTM 팀장이자 지에스의 프로듀서인 한지웅도 같이 있었다.

“부르셨어요?”

“어, 들어와.”

박 상무의 굵은 목소리.

이시현이 안에 발을 들이자 소파에 앉아 있던 한지웅이 일어난다.

“시현 씨, 그동안 수고 많았어.”

“감사합니다.”

“그래, 그동안 수고 많았고. 오늘 부른 건 말이야······.”

박 상무는 긴 얘기를 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바로 본론을 꺼냈고, 얘기가 이어지는 내내 이시현의 입술은 꾹 다물어져 있었다.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고··· 흠, 지금 대표님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어.”

“새로운 프로젝트요?”

“그래. 어떻게 결론을 내실지 모르겠지만, 너하고 최 팀장의 앞으로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달라질 거야.”

“예.”

이시현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눈썹을 추켜세운다.

“팀장이요?”

“몰랐겠구나. 최 실장 승진했다. 아직 정식으로 결재 떨어진 건 아니지만.”

무미건조한 말투였지만 이시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튼, 오늘은 가서 푹 쉬어.”

“예.”

이시현이 사무실 문을 붙잡고 나온다. 엘리베이터에 다시 올라, 4층의 매니지먼트 사업부로 향했다.

철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 이시현이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얼굴의 남자.

곰 같은 남자가 이시현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본다.

“오랜만이다.”

그 한 마디에 이시현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최재환은 그런 이시현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마침 문이 열리고 들어온 한송이. 그녀도 최재환을 보고 멈칫하는데.

“한송이.”

“예예?”

“뭐해? 너도 이리와.”

이시현, 그리고 얼떨결에 다가온 한송이까지.

최재환은 두 팔을 벌려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시현은 키가 크니 오른팔이 높이 올라왔고, 한송이는 작으니 왼팔은 내려온 어정쩡한 자세지만, 그 상태로 말한다.

“수고들 했다.”

그 감동적인 모습에 사무실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는데, 이때 한송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매니저님.”

“왜?”

“땀 냄새나요.”

“하여간··· 넌 내가··· 넌 이제 죽었어! 그동안 편했지?”

“헤······.”

맑은 웃음의 한송이와 달리 당황해서 얼굴이 붉게 핀 최재환.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시현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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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북측 방문단 100명이 특별기편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남측 방문단도 평양에 도착한 이 날, 이들은 꿈에 그리던 가족을 만나 반평생의 한을 달래며 통곡했다.

전국이 울음바다가 된 2000년 8월 15일 화요일.

저녁 9시.

“예, 민 팀장님. 우리 지금 회사지.”

조 부장은 어깨와 목 틈에 휴대폰을 딱 붙이고 바이바이 민다영 팀장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민 팀장님도 지금 사무실이라고요? 하하! 진짜? 내가 드라마 내용 물어볼 겁니다. 예, 그럼 이따 다시 전화해요.”

통화를 끝낸 조 부장이 소파에 앉아 있는 강 실장을 돌아본다.

“바이바이도 지금 드라마 보려고 대기 중이라네.”

“후, 이거 여기저기서 난리네요.”

강 실장이 휴대폰을 흔든다. 조연출 황동태의 문자에, 기자들의 문자, 촬영장에서 만난 매니저들의 문자까지 휴대폰이 좀처럼 조용히 있질 않았다.

“시현이하고 최 팀장은 지금 집에 있나?”

팀장이라는 단어에 강 실장의 동공이 잠시 흔들린다. 괜스레 입맛을 쩝 다시고.

“뭐, 이럴 때 둘만 있어야죠. 나도 한영이 드라마 첫 방 있을 때 둘이서 자축했는데요.”

“그래!”

조 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강 실장의 마음을 잘 알기에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냈다.

“근데, 권혜선은 어떻게 해요? 걔 생각보다 많이 다쳤다면서요?”

“그것 때문에 1팀 또 정신없지.”

조 부장은 팔짱을 한 채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휴일을 맞아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는 띠리리··· 전화기가 울렸다가 잠잠해진다.

“이 밤에 전화하는 놈들은 뭐야?”

“기자들 전화겠죠.”

“흠··· 하긴, 이번에 뭔가 심상치가 않긴 해.”

조 부장이 입술의 부스럼을 떼며 생각에 집중한다.

주연 배우 교체로 인해서 구설수든 찌라시든, 이시현이 언론에 자주 노출됐다.

계란세례 건이 확실히 기폭제가 됐는데, 덕분에 동정여론이 형성될 수 있었다. 그 덕에 드라마도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렸고, KIS도 간판 프로그램들을 통해 드라마를 밀었다.

지에스는 그 과정에서 잠자코 있었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행동에 나섰는데, VVW에서 이시현을 트집 잡는 기사를 내면 그 기사에 부채질을 했다. 더 안 좋게, 더 악의적으로 내달라고.

“윤 부장님은요?”

강 실장은 생각에 잠긴 조 부장에게 윤 부장의 행방을 물었다.

“글쎄··· 며칠 전에 보니까, 그만둘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만둬요?”

강 실장이 놀라 눈을 끔벅인다.

“일본에 보내는 것 자체가 회사 일에서 빼겠다는 거니까, 거기에 가면 말도 안 통하는데 부장님이 가서 뭘 하겠어?”

“···그렇단 말이죠.”

강 실장이 아랫입술을 깨무는 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기콘부 성시원 팀장이다. 그녀의 손에는 캔 맥주가 담긴 하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또 그 뒤로 들어온 이는 성 팀장의 부하직원인 백유진. 그리고··· 3W 슬기와 레니, 매니저 욱이까지.

“야, 니들은 뭐야?”

조 부장이 욱이에게 묻는다.

“오늘 행사 펑크 났어요. 대행사 이 죽일 놈들이··· 그쪽에서는 대행사에 연락했다는데, 이 자식들은 우리한테 연락도 안 주고, 하여간 개판이라니까요. 성 팀장님. 우리 대행사 바꾸면 안 돼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소음의 90프로를 책임지려는 욱이의 모습에 조 부장이 피식 웃는다.

“그럼 바로 퇴근하지 그랬냐?”

“그럴까 했는데, 궁금해서요. 내일 스케줄도 오전에 비었고.”

욱이가 씨익 웃더니 소파에 바로 앉는다. 레니와 슬기도 자리에 앉자 성 팀장이 봉지를 벌린다.

“자자, 일단은 즐기자고요. 오늘 휴일이잖아요.”

이때 조 부장이 서둘러 엉덩이를 떼고 바로 자세를 잡았다. 사무실에 정 이사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사님 오셨어요?”

“내가 못 올 데 왔어?”

“아닙니다.”

멋쩍게 웃는 조 부장. 뒤이어 카리스마 박까지 사무실에 들어오자 제법 사무실이 꽉 찬다.

치익!

정 이사가 먼저 캔 뚜껑을 따고 TV를 켰다.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히들 마셔.”

눈치를 살피던 이들이 슬금슬금 맥주를 손에 집고,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졌다.

촬영장에서의 에피소드를 털어내는 강 실장, 맥주를 넘기는 소리, 과자를 깨부수는 소리, 웃음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어느새 저녁 10시가 찾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8.15특집드라마 ‘우리 오빠’가 시작했다.

웅장한 사운드를 시작으로 박춘삼과 박희재 남매의 이야기가 흐른다.

박태 감독이 KIS 편집실을 죄다 붙잡고 작업했다는 얘기가 결코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전투 씬은 박진감에 전율이 일었고, 노인과 박춘삼의 만남은 뭉클했으며, 유이와 박춘삼의 관계는 설렘과 아픔이 가득했다.

전쟁의 악귀가 된 박춘삼의 모습에서는 팔에 소름이 돋는데, 가슴 한편에서는 슬픔이 차오른다.

‘박태··· 이 미친 인간.’

예상보다 퀼리티가 높아서 강 실장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난 열흘 개고생했던 시간이 2시간으로 압축됐지만, 너무도 후련할 정도로 완벽하다.

“흑흑······.”

기콘부의 백유진이 눈물을 훔쳐낸다.

박춘삼의 몸을 뚫는 총알들.

허공을 바라보는 박춘삼의 시야가 흐려지고, 나직이 이어지는 그의 혼잣말. 그가 눈을 감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유이의 노랫말.

드라마가 끝났을 때, 폭풍 뒤의 고요함이 찾아온 것처럼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다들 정 이사만 바라본다. 그는 팔짱을 한 채로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 팔뚝에서 까딱까딱 움직이는 손가락.

띠리리.

사무실 구석에서 전화가 울린다. 강 실장이 정 이사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로 향했다.

띠리리.

그런데 또 다른 전화기가 울린다. 걸음을 멈춘 강 실장이 사무실을 둘러보는데.

띠리리. 띠리리.

일시에 울린 전화벨 소리에 사무실의 공기가 들썩인다. 강 실장은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전화들이 왜 울리는지를. 그리고 마침내 정 이사가 팔짱을 풀고 박수를 쳤다.

“다들 전화 좀 받자고!”

그 목소리가 유난히 밝고 힘차다. 직원들이 서둘러 전화를 받는다. 박 상무와 정 이사까지 전화를 받는데도 전화는 계속 울어댔다.

“예, 기자님. 지금 무슨 얘기를 해? 밤이잖아. 내일 전화할게. 에효, 내일 할게, 끊읍시다.”

강 실장이 서둘러 전화를 끊고 멀리서 울리는 전화를 흘깃 보는데,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렸다.

“···대표님?”

차 대표가 성큼성큼 들어와 전화를 붙잡는다.

“예, 지에스엔터테인먼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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