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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으로 보여준다 (4)
“연기 어디서 배웠니?”
최미숙의 질문에 정신이 번쩍든다. 곁에 다가온 박태 감독과 그녀가 나를 보는데, 그 시선이 마치 내 몸을 관통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 여자 어떤 배우였더라.
아니 그보다, 지금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지른 걸까?
오늘 나는 카메라만 돌아가면 박춘삼에 빠져들었다.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전력을 다했다. 물론 내 최선이 타인에게도 최선으로 비치기를 바라는 것이 욕심이란 건 잘 알고 있다.
그럼 이제 뭐라고 답해야 할까.
그냥 연기선생님에게 배웠다고 할까. 지난번 유 작가에게도 같은 답을 했는데··· 하긴 그것 말고는 대답할 것도 없지.
당신만큼 살아봤습니다, 혹은 미래에서 왔습니다, 라고 하면, 아마 박태 피디와 최미숙의 얼굴이 볼만해질 것이다. 훗··· 실소라도 뱉고 싶은 상황인데, 지금은 웃을 힘도 없다. 생각을 복잡하게 이을 힘도 없고.
“그게 회사에서 연기선생님께······.”
겨우 입을 열었더니 갈라진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최미숙이 나를 보고 미소를 보인다.
“너 괜찮다. 요즘 너도나도 연기한다고 뛰어들어서 걱정이었는데··· 지난번 리딩에서도 그렇고, 내 눈이 아직은 살아 있네.”
칭찬인가.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인가.
“선생님, 바로 다음 씬 갈 수 있으시겠어요?”
“나야 상관없지, 근데 저렇게 지쳐서 되겠어?”
박태 감독이 묻자 최미숙이 나를 가리키고 되물었다. 그러자 감독이 이마를 긁적이고 나를 본다.
“하나만 더 가는 게 어떨까? 지금 아주 좋은데.”
차라리 질문을 하지 말지. 그냥 갔으면 모르겠는데, 선택권을 주니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다. 물론, 나는 그래도 할 것이다.
“예. 할 수 있습니다.”
“하하, 남자네?”
최미숙이 내 대답에 웃는다. 그녀가 호탕한 웃음과 함께 부엌에서 벗어났다. 뒤이어 나도 힘없이 부엌 문턱을 넘는데.
“임마, 조심해야지.”
내가 발을 헛디뎌 비틀대기 무섭게 강 실장이 어깨를 내줬다. 그에게서 여태의 불만은 사라지고 믿음직한 매니저의 모습과 체온이 느껴진다.
“자식.”
강 실장이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뭐지··· 이 그림은.
“오빠, 배 안 고파요?”
곁에 온 한송이가 입술을 쑥 내밀고 눈을 끔뻑이며 묻는다. 나를 안쓰럽게 보듯, 혹은 위로하는 듯한 시선인데··· 이 두 놈 왜 이렇게 오버야? 아무튼 그러고 보니 저녁도 안 먹고 촬영이다.
‘후······.’
또다시 서서히 멈추는 비에 나는 산을 바라봤다. 희뿌연 물안개가 피기 시작했다. 숲이 선사한 아름다움에 잠시 정신을 빼앗긴다.
정신없이 밀어붙인 촬영.
아마 스태프들도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했을 것이다. 시일이 촉박한 건 둘째 치고, 다들 이상할 정도로 열기가 붙어 있다.
“너 지금 완전 엉망이야. 자식이 체력 안배를 해야지.”
강 실장의 말에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입술만 꾹 다물 뿐. 그래, 하루 이틀에 끝날 촬영이 아니건만. 장편 드라마였다면 이러다가 제풀에 지칠 테지.
“너 아직 멀었어.”
“예.”
왜일까. 강 실장의 말에 왠지 마음이 놓인다.
나는 아직 멀었다. 더 배우고, 더 적응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
“자식, 웃기는.”
강 실장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나를 본다. 그래서 진짜 되게 느끼한데, 또 왠지 듬직함이 느껴진다. 혹시 이게 강 실장의 장수 비결인가.
“이제 좋냐? 꿈 이뤘잖아?”
“좋아서··· 죽을 것 같아요.”
그래, 나는 지금 꿈을 이루고 있지.
연기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매니저가 됐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허무함만이 남았는데, 그런 내가 지금은 드라마의 주연으로서 이곳에 있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걸까.
그래서 좋다. 촬영장의 공기가, 숲의 정취가, 비의 냄새가 너무 좋아서 지금 미칠 지경이다.
‘시현아··· 너의 꿈, 이제 나와 함께 가자. 우리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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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있다고? 후··· 다행이다. 그래, 네가 수고 좀 해라. 아니야 바꾸지 마, 피곤할 텐데··· 이만 끊자.”
최재환은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난번 뮤직비디오 촬영을 거치면서 이시현의 연기에 대한 걱정은 더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갑작스러운 주연 교체로 성지훈 팬들이 난리를 칠 게 뻔했기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촬영장 분위기도 좋지 못할 테고. 그래서 어떻게든 촬영장에 가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다행이네.’
5년이다. 그 시간을 이시현은 무명으로 보냈다. 누군가는 쩌리라는 말을 쓸 정도로 회사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였고, 미래가 불분명한 상태였다. 계약만료가 됐을 때만 해도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후······.”
최재환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날의 숱한 기억들속에서 차키를 뽑았다. 그렇게 차 문을 붙잡았지만 바로 내릴 수는 없었다.
가슴의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아마 드라마가 방영되면 그때도 이 같은 감정이 날뛸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도 매 순간 벅찬 감정이 차오를지 모르겠다. 머잖아 이시현은 날아오를 테니까.
겨우 차에서 내린 그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저녁 8시.
지하 주차장에는 몇 대의 대기 차량과 차 대표의 외제차 한 대가 주차돼 있었다. 주인 잃은 밴도 보인다.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최재환은 사무실을 거치지 않고 곧장 경영지원부서로 향했다.
“오셨어요?”
대표실 비서가 퇴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최재환을 바라본다.
“대표님은?”
“잠시만요, 안에서 지금 회의 중이셔서.”
그녀의 속삭임에 최재환은 잠시 창가 소파에 앉았다.
‘응?’
테이블에 놓인 신문에 8.15특집드라마에 대한 기사가 가득하다.
지에스에서는 이시현의 드라마 출연 소식을 공식적으로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이시현의 프로필도 기자들에게 돌리지 않았다. 궁금하면 직접 알아내란 것이었는데, 그 예상대로 기사는 쏟아졌다. 기자들이 앉아만 있는 건 아니니까. 더구나 오늘은 계란세례도 당했고.
웅. 웅. 웅.
바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휴대폰 진동에 최재환이 고개를 숙인다.
‘또 기자인가?’
아침부터 친분이 있는 기자들의 전화가 온다. 그가 이시현의 매니저라는 사실은 몰라도 지에스 하면 떠오르는 매니저가 최재환이니 이럴 때 친분을 써먹으려는 거다.
그런데 휴대폰을 꺼내 폴더를 젖힌 최재환이 머뭇거린다.
‘혜연이?’
전화가 계속 울리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헤어진 연인의 전화. 지난번 최재환은 얼떨결에 그녀와 1년 만의 전화통화를 했었다. 그때, 그녀는 곧 결혼한다는 얘길 했었다.
휴대폰이 잠잠해지자 최재환은 부재중 전화에 찍힌 그녀의 이름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수첩을 꺼내 날짜를 살폈다.
‘8월 5일······.’
이제 사흘 뒤면 그녀의 결혼식이다.
‘왜 전화한 거지?’
단순히 그녀가 결혼한다는 이유로 전화를 받지 않은 건 아니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나중에 통화할 생각이다. 그래서 문자를 보낸다.
[미안하다. 나 회의 중이라서 이따가 내가 전화할게]
.
마침 대표실 문이 열리고 정 이사를 필두로 임원들이 나온다. 기콘부의 변혜경 이사, 엄재우 감사까지. 평소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이 줄줄이 나온다.
“최 실장 왔어?”
정 이사가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든다.
“예, 이사님.”
“요즘 고생이 많아.”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리는 정 이사. 곁에서 변혜경 이사도 한마디를 거든다.
“역시 최 실장이야. 끝내 이시현이를 살렸어. 이거 괜히 미안하네? 우리가 최 실장을 좀 더 도왔어야 했는데.”
변 이사는 그동안 이시현과 최재환을 지원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안한 기색이다.
“지금 현장 분위기 장난 아니라며? 다른 회사에서도 지금 연락 오고 난리야. 허허.”
엄 감사가 껄껄 웃는다.
“그럼, 나중에 자리하자고.”
세 사람은 짧은 대화 끝에 다음을 기약하고 멀어졌다. 최재환은 그들의 뒤꽁무니에 인사 한번 하고 바로 대표실로 들어갔다.
숨 막힐 정도로 고요한 방.
안경을 걸친 차 대표가 결재할 기안서를 살피고 있다. 젊은 애들이나 입을 법한 가죽 재킷에, 가르마로 멋을 낸 그의 헤어스타일을 보면서 최재환은 마음속에서나마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간 대단한 양반이야.’
서 있는 최재환을 차 대표가 힐끗 쳐다본다.
“잠깐만 좀 앉아 있어.”
최재환이 느릿하게 소파에 앉는다. 비가 와서 그런지 흐릿한 하늘이 대표실 통유리 너머로 보인다. 왠지 하염없이 보고 싶은 하늘이었다. 그가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 사이, 차 대표는 부지런히 서류에 사인을 이어갔다.
스슥, 스슥.
펜이 종이에 닿는 소리는 마치 긁는 소리 같기도 하고 미끄러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슥.
마지막 서류의 사인이 끝나고 차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오래 기다리게 했네.”
“아닙니다.”
최재환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늘을 바라봤다. 문득, 이 방의 주인이 되면 저 하늘을 계속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최재환이.”
“예, 대표님.”
소파에 앉은 차 대표의 시선이 최재환을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 보고 있으니 최재환이 바싹 타는 제 입술을 빨아들인다.
“이시현이 잘하고 있다던데.”
겨우 떨어진 그 말에 최재환이 냉큼 대답한다.
“예, 저도 얘기 들었습니다.”
“그래.”
차 대표가 담배를 꺼낸다.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넌 끊었지?”
“예.”
“이거 미안하네.”
그가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흔드는 제스처를 취한다. 최재환은 그 담배를 보며 미소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저도 잠깐 안 피는 겁니다. 담배를 어떻게 끊습니까? 하하.”
최재환은 어울리지 않게 너스레를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차 대표가 다리를 꼬고서 말없이 담배를 태운다.
“이 건물 처음 왔을 때, 뭐가 제일 마음에 들었는지 알아?”
차 대표의 시선이 유리벽 너머 서울의 하늘에 머무른다.
“글쎄요.”
“노을이 좋았어. 건물 보러 왔을 때가 일곱 시인가 그랬는데, 노을이 정말 좋더라고.”
차 대표는 잠시 그때를 회상하고는 허리를 숙여 담배를 비벼 껐다. 짙은 향수 냄새와 담배 냄새가 뒤섞이니 그에게서 묘한 냄새가 난다.
“영상 봤어?”
“예.”
최재환은 이시현의 캐스팅 영상을 확인했다. 차 대표의 얘기를 듣고 긴가민가했는데, 실제로 영상을 확인하곤 놀라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길로 바로 이시현에게 달려가고 싶었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전혀 눈치 못 챘던 거야?”
“시현이하고는 딱히 그럴 계기가 없어가지고··· 죄송합니다.”
노래방 한번 간 적이 없다. 가끔 술을 마셔도 밖에서 마시는 일은 드물었다. 보통은 이시현의 오피스텔에서 맥주 몇 캔 홀짝이는 게 전부였다. 어찌됐든 매니저로서 실격이다.
“참, 사람 일 모르는 거야. 이시현은 자기가 가진 재능을 모르고 있고, 우리는 그걸 찾는 사람들이면서 눈만 멀뚱히 뜨고 있었으니 말이야.”
입맛을 다시더니, 차 대표가 소파 앞 테이블에 놓인 서류 뭉치를 가리킨다. 최재환이 그제야 서류를 눈에 담는다.
“박한영이 거 이제부터 이시현한테 돌릴 거야.”
“CF 말씀입니까?”
“CF든 뭐든.”
그 말에 최재환은 입술만 빨아들였다. 차 대표가 너무 서두르는 느낌이다.
“저, 시현이 얘기도 좀 들어보고 진행했으면 합니다. 솔직히 당장 가수로 데뷔할 수도 없는 거고.”
영상 속 녀석의 노래는 귀를 사로잡는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올 수가 있을까.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영상을 돌려보면서 최재환은 자신의 귀를,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냉정해져야 한다.
재능은 단지 재능일 뿐, 충분한 트레이닝을 거치지 않으면 볼품없는 원석일 뿐이다.
“누가 가수 데뷔를 해?”
차 대표가 무심한 시선으로 묻는다. 최재환이 입술을 망설이자 다시 얘기한다.
“트레이닝은 하겠지만 이시현의 본업은 배우야. 그저 가진 무기를 하나 더 개발하는 것뿐이지. 크게 봐야지. 한국에만 있을 거야?”
그 말에 최재환이 놀란 얼굴로 차 대표를 마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차 대표의 말대로 이시현의 목소리는 앞으로 큰 무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만 ‘한국에만’이라니.
“어떻게 그 목소리에서 그런 음색이 나오지?”
차 대표가 혼잣말을 속삭인다. 영상 속 이시현의 목소리는 미성도, 그렇다고 허스키한 보이스도 아니었다. 딱히 고음이 드러난 것도 아니었고.
그럼에도 차 대표가 놀란 건, 너무도 편안하게 노래를 부르는 이시현의 모습 때문이었다. 물 흐르듯, 심지어 무반주라는 사실도 개의치 못했을 정도로··· 그리고 또 한 가지.
“한이 느껴져. 그렇지 않아?”
차 대표가 눈을 찌푸리고 묻는다. 자신이 느낀 그것을 최재환도 느끼길 바랐다는 듯이 본다.
최재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차 대표가 오른손 주먹을 천천히 움켜쥔다.
이시현의 목소리에는 어떤 한이 담겨 있었다. 고작 1분짜리 무반주 노래를 들으면서 절로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였다. 그 덕에 차 대표는 자신의 메마른 마음이 아직은 물기가 어려 있음도 깨달았다.
“잘 다듬는다면 고음뿐 아니라 풍부한 성량까지 끄집어낼 수 있을 거야. ATTM도 혀를 차더라고.”
차 대표가 움켜진 주먹에 턱을 괴고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턱 끝을 매만지며 생각을 잇는 그의 옆모습을, 최재환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시현이한테는 얘기했어?”
“드라마 촬영 끝나면 얘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잘했어. 촬영 끝나면 앞으로 몬스터팀에서 이시현을 트레이닝 할 거야. 당분간 외부에 입조심하고.”
“몬스터팀이요?”
몬스터 프로젝트를 위해 구성된 국내 최고의 아티스트진.
“문제 있어?”
“아닙니다.”
“그래 가봐. 아, 오소리는?”
차 대표가 턱에서 손을 떼고 묻는다. 최재환이 엉덩이를 떼려다가 다시 앉았다.
“괜찮습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신경 좀 써. 오소리 덕에 이시현이 드라마하고 있는 거니까.”
“예.”
과거의 오소리 일로 차 대표는 KIS와 VVW에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카드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시현을 8.15특집드라마에 꽂아 넣기 위해서 그 카드를 사용했다. 어떻게 보면 그녀를 이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최재환이 소파에서 완전히 일어났다. 벗어나려는데, 차 대표가 다시 부른다.
“잠깐.”
또 뭔가 싶어 최재환이 뒤돌아본다. 그러자 차 대표가 소파 앞에 놓인 유리테이블에 뭔가를 내려놓더니 슥 밀어냈다.
촤르르.
밀려와서 최재환의 정강이에 부딪힌 것은 차 키였다.
“박한영이 밴 너희들이 써.”
“아······.”
갑작스러워서 최재환이 머뭇거린다.
“이시현 니가 키운 거야. 뭐 아직 서두르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한데··· 일단은 지금만 보자고.”
“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수고해. 최 팀장.”
“예. 예?”
대답과 함께 허리를 숙였던 최재환이 고개만 들고 눈을 끔뻑인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수고하라고. 최 팀장.”
“티, 팀장이요?”
“조 팀장을 윤 부장 자리에 올릴 거야. 어쩌겠어? 회사는 돌아가야지.”
“아······.”
“6월에 실장 달았지?”
“예.”
최재환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8월이니까··· 초고속 승진이네? 훗.”
차 대표가 피식 웃는다. 늘 저 웃음이 얄궂다고 느낀 최재환이었는데, 지금 저 웃음을 보고 있으니 복권에라도 당첨된 기분이다.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최재환을 차 대표가 쳐다본다. 그러더니 한마디를 툭 던진다.
“뭐 하고 있어? 나가.”
“아, 예!”
서둘러 대표실을 나온 최재환.
문고리를 잡은 채로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하고 그대로 문에 등을 기댄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고, 후··· 숨을 한번 몰아쉬고, 호기심 어린 비서의 시선이 닿자.
‘아싸!’
최재환이 주먹을 움켜쥔다. 그 어느 때보다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