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51화 (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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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온도 (2)

“이경 씨, 전보다 더 예뻐졌네요. 어떻게 그렇게 관리를 해요?”

“어머, 기자님도 참.”

웨이브가 들어간 갈색의 머리카락이 하얀 남방셔츠에 비스듬히 흘러내려 있다. 그 덕에 작은 머리는 더 작아 보이고, 하얀 얼굴은 더 하얗게 보인다.

이우정 기자는 눈앞의 송이경을 보며 습관처럼 펜을 만지작거렸다.

송이경은 작년에 ‘여고시절’이란 작품에 출연한 이후로 서서히 인지도를 넓히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박한영이 있는 지에스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해 활발한 활동을 앞두고 있다.

“몸매 관리 힘들죠?”

“힘들어도 해야 하는 걸요.”

“근데 내가 많은 연예인 만나봤지만, 이경 씨처럼 이렇게 피부 고운 연예인 못 봤어요.”

“진짜요?”

송이경이 맑게 웃는다. 가지런한 치열에 분홍빛 입술이 이우정 기자의 눈에 비친다.

“진짜지 그럼. 오늘 사진도 정말 잘 나올 것 같아. 인화되면 제일 먼저 보내드릴게요. 기사도 바로 보내줄게요.”

이우정 기자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펜을 꼭 쥐었다. 신변잡기는 이쯤하고, 슬슬 기삿거리를 뽑아야 할 때였다.

“근데 듣기로는 박한영 씨가 지금 소속사하고 다리를 놔줬다고 들었는데?”

묘한 뉘앙스가 스민 질문에 송이경이 선글라스를 벗는다. 타이밍에 맞춰 옆에 있던 카메라맨이 찰칵.

“예. 제가 작년에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때 우연히 선배님을 뵀는데, 상담도 해주시고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셨어요.”

“근데, 박한영 씨 요즘 뭐해요? 조용하네.”

“글쎄요. 저도 그것까지는······.”

송이경이 말끝을 흐리며 커피를 손에 쥐었다. 그러더니 다시금 고개를 든다. 투명한 시선으로 이우정 기자에게 눈웃음을 보이고 말한다.

“이따 한번 물어보세요.”

“예?”

“박한영 선배님 매니저님이 곧 올 거예요.”

“아, 왜요?”

이우정 기자가 의자를 바싹 당기고 물었다. 그러자 송이경이 미소를 보인다.

“앞으로 제 매니저 하실 것 같아서요.”

“진짜요?”

이우정 기자의 눈이 번쩍 뜨인다.

사실 송이경의 인터뷰가 그다지 감흥이 있지는 않았다. 딱히 드라마 소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어필할 만한 게 없었다. 그래도 송이경 쪽에서 먼저 인터뷰를 요청했기에 이 기회에 미리 인연이나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 싶어 자리를 폈는데.

“잘 됐다. 회사에서 제대로 밀어주려나 봐요? 박한영 씨 매니저가 푸시해주면, 이경 씨 뜨는 건 순식간이겠네요?”

“에이, 뭘요.”

송이경이 옅은 미소로 수줍음을 보인다.

그 얼굴을 보며 이우정 기자는 약간은 설레는 마음을 가졌다.

이유야 물론 박한영의 매니저가 온다는 소식 때문.

내일 정오에 박한영의 기자회견이 있는데, 기자들 사이에서는 그게 다음 영화에 대한 기자회견이 아닌, 뭔가 중대 발표를 할 거라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그걸 잡으면 특종이다.

‘뭘까? 혹시 은퇴?’

사실 들은 게 있었다. 그래서 박한영의 팬이기도 한 이우정 기자이지만, 솔직한 마음으론 지금은 박한영이 정말 은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었다. 특종 하나 잡아서 어깨 좀 세우고도 싶고.

아무튼 지금은 송이경에 대한 기사가 우선이니까.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하등 궁금하지는 않지만 레퍼토리대로 한번 훑고 가면서 박한영 매니저를 기다려야겠다 싶은 이우정 기자다.

**

“너희도 들어가서 뭐라도 마실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강 실장이 물었다. 한송이가 동그란 눈을 끄덕이자 이시현이 대답한다.

“예.”

“그래라.”

강 실장은 서둘렀다. 송이경을 기다리게 해서 기선제압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이시현이 곁에 있으니 이상하게 신경이 쓰여서 마음이 급해졌다.

주차장을 벗어나자 카페 테라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송이경과 기자를 볼 수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힐끗 고개를 돌려 쳐다볼 정도로 송이경이 오늘 제대로 준비를 하고 나왔다.

“우와, 예쁘네요.”

한송이가 강 실장의 시선을 따라갔다가 송이경을 눈에 담고 감탄사를 터트린다.

“들어가자.”

강 실장은 우선 카페 안을 둘러본 뒤에 이시현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뭐 마시고 싶은 거 마셔. 나는 그동안 저기서 볼일 좀 볼 테니까.”

“예.”

“여기.”

지갑에서 법인카드를 꺼내 이시현에게 건네고, 강 실장은 송이경에게 다가갔다. 그를 본 이우정 기자가 곧바로 일어나 알은 척을 한다.

“아, 매니저님!”

무척 반가운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강 실장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세요? 예전에, 박한영 씨 영화 들어가기 전에 인터뷰했었는데.”

“당연히 기억나죠. 나 그때 깜짝 놀랐잖아? 이렇게 아름다운 기자분이 있으셨단 말인가, 하고 말이에요.”

“에이.”

“아 왜? 진짠데.”

“뭐, 빈말이어도 기분은 좋네요. 어서 앉으세요.”

이우정 기자가 직접 의자를 빼줬다. 강 실장이 의자에 앉으면서 송이경의 어깨를 살짝 두드린다. 마치 오래된 파트너처럼.

“근데, 박한영 씨 은퇴한다면서요?”

이우정 기자는 돌려 묻지 않았다. 빙빙 돌려서 상대가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 꿈틀대는 거라도 잡아두고 파고든다. 그리고 그 작전은 유효한 듯했다. 강 실장이 움찔했기 때문이다.

드르륵.

괜스레 의자를 한 번 더 끌어 앉는 강 실장.

“누가 그래요? 하하, 그냥 뜬소문이지.”

“진짜요?”

“하, 요즘 만나는 기자들 다 그거 물어보는데, 봐요? 아무 소식도 없잖아?”

강 실장이 어깨를 으쓱 올리고 말한다. 그 모습에 여유가 묻어 있다. 저것이 진짜인지, 노련미가 담긴 페이크인지. 이우정 기자의 눈이 매섭다.

“그럼, 내일 기자 회견은 뭐예요?”

“아이고··· 자, 오늘은 우리 송이경 씨 인터뷰하러 오신 거니까, 이경 씨만 집중하고, 내가 나중에 기자님 특종 하나 챙겨줄게.”

“진짜요? 약속한 거예요?”

“후훗. 알았다니까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그런데, 이우정 기자의 눈웃음이 갑자기 멈추고 입술이 동그랗게 말아졌다.

“어?”

“왜요?”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등 뒤를 향하고 있자 강 실장은 뭔가 싶어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커피를 고르고 있는 이시현과 한송이가 있었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의 이시현이 하얀 목을 빼 들고 메뉴판을 보고 있다. 카페 안에 채워진 빛이 녀석에게 머물러 있었다. 순간 강 실장은 그런 생각을 했다.

‘새끼··· 열라 멋있네.’

**

“기자님.”

송이경이 기자를 부른다. 그제야 넋 나가 있던 이우정 기자가 고개를 돌렸다.

“아, 죄송해요.”

그 말을 던지고도 한 번 더 고개를 돌려 이시현을 눈에 담은 이우정 기자. 아쉬움 속에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도 가슴이 진정이 되질 않는다.

‘우와··· 뭐야 쟤?’

근래 본 비주얼 중 단연코 탑이다. 입안이 바싹 탈 정도로. 그뿐 아니라··· 두근두근.

‘이런 느낌 오랜만이네. 박한영 처음 봤을 때도 이랬었는데··· 누구지? 연예인인가? 처음 보는데?’

보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고개가 돌아간다. 그녀의 시선이 한 번 더 벗어나자, 강 실장이 손뼉을 치고 얘기를 꺼냈다.

“회사가 이경 씨한테 참 기대가 커요.”

“아, 그래요?”

이우정 기자가 정신을 차리고 귀를 기울인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질문이 이어졌다.

“요즘 지에스 장난 아니던데. 오소리 씨도 곧 드라마 들어간다면서요?”

“소리야 뭐 연기력 검증됐고, 아역 이미지만 벗으면 금방이죠.”

강 실장이 계속 운을 떼자 이우정 기자가 다시 묻는다.

“보이스레이드 뮤직비디오는 언제 나와요?”

“지금 편집 들어갔죠.”

“궁금하다. 기대가 정말 커요, 3W 권혜선이 출연하는 뮤직비디오니까.”

“하긴 권혜선이 연기는 처음이니까.”

강 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관리팀이 다르다 보니 3W의 인기를 잠시 잊고 있었다. 아무래도 뮤직비디오 홍보는 오소리보다는 권혜선의 출연을 좀 더 중점으로 밀어야 할 듯 보인다.

‘나도 참, 감이 줄었구만.’

그동안 너무 박한영 곁에서 안주하고 있었던 걸까.

강 실장은 잠시 스친 생각에 이어 송이경을 돌아봤다. 그 옆모습을 향해 이우정 기자가 묻는다.

“이제 매니저님이 이경 씨 담당하시는 거예요?”

“응?”

강 실장이 눈썹을 올린다. 송이경이 옅은 미소를 보이자, 강 실장이 다시 이우정 기자를 돌아보며 미소를 끄덕인다.

“이경 씨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부을 겁니다. 우리 이경 씨도 한영이처럼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우와 자신감······.”

“나 지에스 강 실장입니다. 하하.”

**

“오빠, 이거 되게 맛있죠? 그죠?”

한송이가 딸기 시럽이 오른 아이스크림을 담뿍 퍼서 스푼과 함께 입에 문다.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눈가에 애교가 넘쳐흐른다.

“오빠, 그럼 우리 당분간 강 실장님이랑 같이 다니는 거예요?”

“응.”

“아, 그럼 매니저님 한동안 못 보겠다.”

“너 왠지 좋아하는 얼굴이다?”

“에이, 설마.”

씩 입꼬리를 올리는 한송이의 모습에 나도 피식 웃어버린다. 그래도 회식 자리 이후 최재환이 한송이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유해져서 다행이다.

“요즘 많이 무리하셨는데,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히려 더 바빠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최근 최재환은 많은 일을 겪었다. 어머니와의 관계, 배우의 문제, 자신의 미래로 고민했던 그는 모든 일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한동안 슬럼프였다. 정작 본인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아마 이제 괜찮을 거야.”

사람이 묵직한 것을 쥐고 있다가 내려놓게 되면 흔들리기 마련이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풀어간다. 최재환은 미련하게도 그걸 일에 몰두하는 거로 집중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과의욕 상태였고.

“오빠는 매니저님 안 무서워요?”

“어? 왜 무서워?”

무슨 말이야, 이해가 안 가네.

“왜요? 얼마나 무섭게 생겼는데. 입술 꾹 다물고 있으면 가끔은 악마 같다니까요.”

야.

“하하, 그래?”

“그럼요!”

너 내가 최재환한테 이를 거다. 진짜로.

아무튼 나는 잠시 시선을 돌려 카페 한가운데 세워진 유리벽을 바라봤다. 그곳에 송이경의 모습이 비친다. 청초한 롱 웨이브 헤어스타일, 생기 넘치는 피부톤··· 흔한 말로 여신 포스를 제대로 풍기고 있다.

‘강 실장이 그래도 감은 있네.’

2016년의 송이경은 대세를 넘어 강세. 그녀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으며, 아시아의 공주로 불린다.

본래 송이경은 지에스에서 별다른 활동이 없다가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서 1인 기획사를 설립한다. 거창한 건 아니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것을 원했던 그녀였기에 소소한 활동이 이어진다.

그렇게 서서히 불던 바람이 어느 날 크게 불어오기 시작했고, 그녀는 눈 깜짝할 새 대중의 인기를 손에 쥐게 된다.

‘그래, 주원경 작가의 덕을 톡톡히 봤지.’

인성도 괜찮아서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편이었는데, 그중에 주원경 작가라는 사람이 있다. 단막극 공모전 출신 작가로 결국에는 대박을 터트렸고, 자신을 챙겨준 송이경을 잊지 않고 주연으로 캐스팅한다. 그 이후의 결과는 뻔했다.

이 바닥은 그런 바닥이다.

우연이, 운명이, 인연이 수시로 뒤엉킨다.

어떤 이는 드라마 하나에 빵 뜨기도 하고, 예능 출연 한 번에 몰매를 맞기도 하고, 오랜 무명의 걸그룹이 5분짜리 동영상 하나에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사라지기도 하고.

“송이야.”

“예?”

“······.”

“왜요? 왜 사람 부르고 웃기만 해요? 기분 나쁘게.”

한송이를 가만히 보면 표정이 참 다양하다. 어쩜 저리 입술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까. 빼죽 나왔다가도 쏙 들어가고, 뒤집었다가도 삐뚤어지기도 하고.

‘후훗.’

그래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남자 둘만 있는데, 한송이라도 활발하게 움직이니까. 그리고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최고의 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아 왜, 왜 자꾸 웃어요오?”

“내 맘이거든?”

새초롬하게 눈을 흘기는 한송이를 두고 커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컵을 들고, 빨대를 입에 물고, 다리를 꼬며 출입문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때, 카페에 들어온 익숙한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유 작가?’

바닷사람들 이야기의 유가희 작가. 지난달 이후로 처음 보는 거다. 그런데 그 곁에.

‘김은수 작가?’

의외의 만남이다. 저 두 작가를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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