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50화 (50/227)

────────────────────────────────────

체감온도 (1)

「다음 날, 2000년 7월 27일 목요일」

아침부터 회사가 발칵 뒤집힌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무실은 뒤숭숭했고, 각 층 부서에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기사가 터진 것도 순식간이었다.

[단독] 3W 권혜선 빗길 추돌 사고

[단독] 권혜선 사고로 의식 잃어

[단독] 3W 활동 적신호, 리더 권혜선 XX병원 입원

병원에는 기자들과 팬들이 진을 쳤고, 매니지먼트 사업부는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전날의 사고는 빗길 사고였다.

갑자기 쏟아진 비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가로수를 들이박은 차량. 3W 스타일리스트 강보라는 다행히 안전띠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권혜선은 미처 안전띠를 하고 있지 않았다.

이는 공식적으로 기자들에게 제공된 사고 경위였다.

회사는 벌어진 모든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했다. 기자들에게는 최대한 협조했으며, 3W의 스케줄에 소속 가수와 배우들을 탄력적으로 투입하기로 했다.

어찌 됐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수습이 될 사건이고 피해규모였지만, 내부에서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새벽에 차 대표와 정 이사, 박 상무, 윤 부장, 최재환이 대표실에 모였다. 그리고 대표실에서의 일은 그 안에서만 머물렀다. 그 외 누구도, 심지어 임원진도 그들이 모였다는 사실을 알아선 안 됐다.

회사의 결론은 윤 부장의 일본행이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일본 진출을 위해 설립할 조이치 기획사와의 합작 프로덕션(ZS MUSIC JAPAN Inc)을 위해서였지만, 이는 사실상의 아웃이었다.

“윤 부장님 요즘 뒤숭숭해 보이더니만··· 기어이 사고를 치네.”

“근데, 너무 센 거 아니야? 사고 한번 냈다고 쫓아내? 그것도 반나절 만에 결정을?”

“뭐, 팬들 눈이 있으니까. 근데 말이야, 음주운전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에이, 그건 아니지. 음주운전이면 이 선에서 끝냈겠어? 그거 밝혀지면 3W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하긴.”

직원들이 수군거리는 모습. 강 실장은 입에 문 빨대로 커피를 빨아들이며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윤 부장······.’

쌤통이다, 라는 생각도 잠시. 그래도 그동안의 정이 있어서인지 안타깝다.

‘이게 다 회사 때문이야. 씨팔 대우를 해줘야 할 것 아니야?’

윤 부장이 괜히 뒤숭숭했겠나. 요즘 들어 회사가 1팀에 힘을 실어주고, 몸집 불리면서 들어온 낙하산 애들만 신경 써주고, 더구나 2팀을 외부로 내보내고 관리직군을 재편성한다고? 그러니 윤 부장이 똥줄이 탈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

‘안 되겠어. 나도 내 살길 살아야지.’

권혜선하고 송이경을 자신의 배우로 만들려고 했던 강 실장이다. 조금 길게 보고 움직였는데, 아무래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권혜선은 포기하자. 송이경만 잡자.’

일단은 잡아서······.

자리에서 일어난 강 실장이 손목시계를 살폈다. 오늘 송이경과 약속을 잡았다.

그녀는 지에스와 계약을 하면서 기존의 매니저와 함께하겠다고 했지만, 해당 매니저가 전 회사와 트러블이 생기면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그래서 현재는 지에스에 새로운 매니저를 요청한 상황이다.

‘쓰읍······.’

강 실장은 괜스레 입술을 괴롭히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사실 박한영이라는 탑급의 배우를 담당했던 그를 송이경이 거부할 리 없었다. 문제는, 강 실장 자신이었다.

‘확신이 없단 말이야.’

송이경이 될 재목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다. 보통 지에스에서 영입하는 배우는 다들 알아서 클 재목들이거나 이미 클 만큼 큰 친구들이다. 그렇지만 송이경은 아직까지 큰 활약상이 없다.

그리고 대개는 어중간한 친구들이 또 따지는 건 무지하게 따진다. 아무래도 조급한 마음도 있겠다, 서포터에 목마르다 보니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하긴, 이시현도 그런 쪽이었지.’

그 녀석도 회사 내 유일하게 불안한 배우였다. 사실 거의 내놓은 자식이었는데, 갑자기 기사회생했다.

‘최재환이 확실히 끌고 가는 힘이 있어.’

그건 인정해야 하는데.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강 실장은 한발 물러났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내린 이는 이시현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시현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어, 그래.”

뭔가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 사이 이시현은 그를 지나쳐갔다.

‘얘기해서 뭐하냐.’

회사가 미우니, 이놈 저놈 다 밉다.

띠리리.

엘리베이터에 오르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강 실장은 1층 버튼을 누르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어디냐?

조 팀장이다.

“저 지금 약속이 있어서요. 송이경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직 회사지?

“예.”

-잠깐 올라와.

툭 끊어진 전화.

“아이 개새x 진짜.”

강 실장은 욕을 내뱉으며 휴대폰을 노려봤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지만 그는 내리지 않고 4층 버튼을 눌렀다.

‘좆같아서 정말······.’

박한영이 있었을 때 팀장까지 올라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아쉽게 스쳐 간다.

“뭐야?”

잘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문이 열리고, 이시현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강 실장은 옆에 선 그를 쳐다봤다. 자식··· 잘생기긴 잘생겼단 말이야.

“넌 어디 가냐?”

“예, 팀장님이 잠깐 올라오라고 해서요.”

“팀장? 조 팀장님?”

“예.”

강 실장이 눈을 찌푸린다. 뭔가 이상한 느낌인데.

사무실에 들어가자 조 팀장은 강 실장과 이시현을 자신의 테이블이 아닌 윤 부장의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유리문이 닫힌다. 그래 봐야 유리벽이라 밖이 훤히 보이는데.

“당분간, 비상체제야. 알지?”

소파에 앉자마자 조 팀장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윤 부장 한 사람이 일으킨 사고로 인해서 전 직원이 비상이다.

“뭐, 배우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시현이 너는 하던 대로 하면 되고. 문제는 강 실장인데.”

“저요?”

“당분간 시현이 좀 데리고 다녀.”

“예?”

놀란 강 실장.

이게 무슨 밥 먹다 뺨 맞는 소리인가 싶은데.

“최 실장이 오소리 붙어 다닐 거야. 소리도 지금 한창 뛰어다닐 때라 정신이 없으니까, 당분간 상황 정리될 때까지만 최 실장이 좀 붙어 다닐 거야.”

그 말에 이시현의 표정이 무겁다. 조 팀장이 잠시 한숨 뒤에 얘기를 이었다.

“시현아, 널 무시하는 거 아니니까, 이번만 좀 이해해줘라.”

“알아요. 형하고 얘기했습니다.”

“그래, 어쩌겠냐. 오소리 좌초시켜? 아니잖아. 걔는 못해도 실장급이 따라다녀야 해. 네가 좀 이해해줘라.”

하지만 둘의 모습을 보는 강 실장이야말로 지금 어이 상실이었다.

‘이해는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오소리 붙이려면 나를 붙이던가. 왜 최재환인데? 어이가 없네.’

물론 지금 상황에 송이경 하나 신경 쓰기도 벅차니 다행이긴 한데, 아무튼 짜증 제대로다.

“시현이 너, 오늘 스케줄 없지?”

조 팀장이 윤 부장의 책상에 엉덩이를 기대고 물었다.

“예.”

“그러면, 강 실장이 얘 좀 집에 데려다줘.”

“저 약속이······.”

조 팀장이 말없이 쳐다본다.

“알았어요, 가는 김에 데려다줄게요.”

“당분간 니 배우니까, 신경 써서 데리고 다녀. 그리고 이거······.”

조 팀장이 차 키를 건넸다. 카니발. 차 키를 받아든 강 실장이 찌푸린 얼굴로 이시현을 돌아본다.

“가자.”

**

강 실장은 좀처럼 찌푸린 얼굴을 펴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뒤이어 이시현이 타자, 버튼을 꾹 누르며 묻는다.

“바로 집에 데려다주면 되냐?”

“예.”

이시현의 대답을 들은 강 실장이 한숨을 길게 내쉰다. 뒷머리를 긁적이며 ‘닫힘’ 버튼을 꾹꾹.

‘골치 아프네.’

얼마나 같이 다녀야 할까. 앞으로 녀석과 함께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회사에서 최재환에게 오소리를 맡기고 되레 이시현을 이쪽으로 넘겼다는 것은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생각에 사로잡힌 강 실장. 곁에 있는 이시현은 안중에도 없다.

‘뭐, 당분간 쉰다고 생각해야지.’

물론 지금도 쉬고 있지만.

“송이도 데리고 가야 하는데요.”

강 실장이 1층 로비에서 내리자 이시현이 그를 불러 세웠다.

“송이?”

“예.”

이시현의 스타일리스트 한송이.

“어디 있는 데?”

퉁명한 목소리가 뱉은 질문에 이시현은 대답 없이 휴대폰을 꺼냈다.

“송이야 내려와. 로비.”

그쯤하고 전화를 끊어야 하는데, 뭔 얘기를 계속한다.

“어, 강 실장님이 데려다주실 거야. 뭐? 그럼 들렸다가 내려와.”

강 실장은 그 모습을 보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주 동네 마실 나왔지.’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마음에 안 든다.

회사가 왜 이시현을 푸시 해주려는지 이해할 수도 없다. 따지고 보면 박한영 덕에 가경 작가와 이어진 거니 특별할 것도 없는 요행이라고 봐야 했다.

짜증. 짜증.

강 실장의 이마에 같은 글자가 계속 맴돈다. 반면 이시현은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1층 로비를 지키는 여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하셨나요?

서 있느라 힘드시죠?

호호. 하하.

그 모습을 보는 강 실장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지랄들이 풍년이라고 생각될 즘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간다. 잠시 뒤 내려온 엘리베이터에서 짐 가방을 든 한송이가 발을 내디뎠다.

“오빠!”

한송이가 함박미소를 보이며 이시현에게 쪼르르 붙는다.

‘어휴.’

강 실장은 고개를 내젓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자동문이 열리고, 거침없는 발길인데, 그가 멈추고 말았다.

“뭐야?”

구름떼같이 모여 있는 여학생들. 입구 계단 아래서 웅성거리는 그녀들을 보며 강 실장은 입술을 핥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오늘 블랙보이 들어오나?”

소녀 팬들이야 걔들 보러 오는 것밖에 더 있나. 이 정도로 모여 있으면 필시 그러한데.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시현이 강 실장의 곁에 발을 딛고 서자, 그녀들의 표정이 달라진다.

마치 치어 가득한 양식장에 먹이 줄 시간이라도 된 듯, 소녀들이 모여듦과 동시에 소란이 일었다. 이시현도 자연스럽게 그녀들 사이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빠, 요즘 안 나오더라?”

“바빴지.”

“치사해요!!”

“오빠, 오빠가 바이바이 광고 모델이라면서요?”

“응.”

이시현이 피식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그리고 웃을 때마다 보이는 저 눈웃음. 그 모습에 소녀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그녀들은 흡사 친구와 어울리듯 이시현의 팔을 툭툭 때리기도 하고, 말도 붙이고, 또 여기저기서 디지털카메라가 번쩍.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우와 어떻게 얘들은 점점 늘어.”

강 실장의 곁에서 한송이가 입을 벌리고 속삭였다.

“점점··· 늘어?”

강 실장은 마른 침을 삼켰다.

‘이시현이······.’

이놈 진짜 물 만난 고기란 말인가.

대체 이시현의 매력이 뭔데? 짝사랑 하고 싶은 이웃집 오빠? 혹은 교회 오빠? 친근함? 하긴, 예전에는 그렇게 표정이 없더니 지금은 웃고만 있다.

그때 멀리 떨어져 있던 여학생 몇 명이 동시에 합창했다.

“이시현!!”

그러자 이시현이 눈앞의 소녀에게 사인을 해주다 말고 고개를 돌려 그녀들에게 대답한다.

“어!”

“꺄!!”

좋아서 비명을 지르는 여학생들. 강 실장은 황당해서 그 모습을 계속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손목시계를 살폈다.

“자, 이시현 가야 됩니다.”

그가 소녀들 사이를 가로질러 이시현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이시현이 그네들에게 미안한 표정을 보인다.

“미안, 나중에.”

“오빠, 오빠, 이거이거.”

한 소녀가 커피를 건네자 이시현이 고맙다며 소녀의 머리에 살짝 손을 올린다. 붉게 핀 소녀의 볼, 그러자 곁에 있던 소녀들이 너도나도 뭔가를 건넨다. 껌, 풍선, 휴대폰, 빗······.

“나와, 나와!”

강 실장이 그녀들을 밀치고 이시현을 끌고 나갔다. 겨우 차에 타고서야 숨을 고른다.

‘후······. 미치겠네.’

좀 전에 대체 뭘 본 건지?

‘그리고, 카니발이라니.’

밴을 몰다가 카니발을 몰아야 하니 자존심이 팍 상하는 강 실장이다. 한편으로는 놀고 있는 박한영의 밴이 언젠가는 이시현의 것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기분 나쁜 생각이 스쳐 갔다.

‘최재환이 이 자식··· 올해 뭐가 되는 해인가.’

강 실장이 차 키를 돌리자 한송이의 목소리가 바로 이어진다.

“출바아알!”

그 요란한 목소리에 강 실장이 찌푸린 얼굴로 룸미러를 쳐다봤다. 그 날선 시선에 한송이가 숨을 흡 들이킨다.

“아, 죄송해요. 습관이 돼서.”

지랄들 하네. 이러고 노는 거야? 그런 생각 뒤로 강 실장은 회사를 벗어났다. 평소라면 듣지 않을 라디오를 켜고 조수석을 향해 묻는다.

“시현이 너, 성수동 살지?”

“예.”

회사에서 이시현의 집까지는 20분이면 되지만, 지금은 시간이 애매하다. 점심 무렵이라 차가 막히는 건 둘째 치고, 일단은 송이경을 만나야 하는데.

강 실장은 조바심 끝에 이시현을 돌아봤다.

“너 바쁘냐?”

“예?”

“미안한데, 나 일 좀 잠깐 보고 가면 안 되냐? 한 시간 정도면 되는데.”

그 말에 이시현이 뒤를 돌아보자, 한송이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그래, 금방 끝낼게.”

곧바로 방향을 틀어 압구정으로 향했다. 라디오에서는 간추린 뉴스가 흘러나왔고, 다가올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소식이 이어졌다. 그리고 찾아온 무료함.

강 실장은 입이나 풀까 싶어 이시현을 힐끗 쳐다봤다.

“근데, 너 게임 좀 하냐? 스타 같은 거.”

“아니요.”

짧은 대화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