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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은 상황 (2)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기 무섭게 안전띠를 풀고 최재환이 내렸다.
나도 서둘러 차에서 내려 그를 쫓았다. 한바탕 쏟아진 비에 기온이 내려간 밤공기가 코끝을 스쳐 간다.
“혜선아! 권혜선!”
응급실로 뛰어 들어간 최재환은 그 이름을 외치며 정신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뒷모습은 땀에 젖었고, 머리카락은 조명등이 내려앉아 번들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보다가 안내데스크로 몸을 돌렸다.
“여기, 권혜선이라고······.”
바싹 다가가자 조금은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느껴진다. 피곤에 젖은 안내데스크 직원의 눈이 나를 담는다.
“환자분하고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같은 회사 직원입니다.”
안내데스크 직원은 더 묻지 않고 키보드 위에 놓여있던 손을 들어 전화기를 집었다. 통화를 하고, 잠시 뒤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환자분 CT 찍고 있어요. 안에서 기다리시면 곧 나올 겁니다.”
“많이 다쳤나요?”
“여기서는 몰라요. 들어가서 물어보세요.”
피곤해 보이는 그녀를 더 괴롭힐 마음은 없었다.
“예, 고맙습니다.”
나는 안내데스크를 벗어나 응급실 안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곳은 이미 최재환이 의사를 붙잡고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누군가 저 모습을 본다면 정신을 어디에다가 반쯤 흘렸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매우 급해 보였고, 다급해 보인다. 어이고··· 저 미련한 놈.
“많이 다쳤나요? 얼마나 다친 겁니까?”
“하나씩 물어보세요.”
의사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다. 그나마 내가 다가가자 그 찌푸림이 서서히 퍼지는 듯 보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먼저 의사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최재환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일단은 이 곰부터 진정시키고.
“저, 권혜선 씨 상태는 어떤가요?”
내 질문에 의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우리를 조용한 처치실로 데리고 갔다. 그 뒤를 쫓는 최재환의 발걸음이 느리고 무겁다.
내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자, 마주 본 시선 속에서 그는 나직이 숨을 토했다.
우리는 한 평 남짓 공간에 들어갔다.
이상한 약품 냄새가 난다. 뭐 그런대로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의 공간이었다. 잠시 뒤 의사는 삐걱 의자에 앉아 우리를 마주 봤다.
“환자분은 지금 CT 찍고 있습니다. 곧 나올 겁니다.”
“CT요? 많이 다친 겁니까?”
최재환이 또 성급하게 나선다.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닙니다. 가벼운 접촉사고였는데, 그래도 확인 차.”
“아니, 부장님은 뭘 하다가.”
그 말을 꺼내던 최재환이 순간 눈을 부릅떴다. 의사도 나도 당황할 정도의 표정 변화다. 그러더니 현기증이라도 느낀 듯 잠시 입술을 빨아들이고, 숨을 토한다.
CT실에서 권혜선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잠시 응급실을 벗어났다. 안에서 계속 버틴다고 환자 상태가 달라질 건 없으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이 정 이사가 도착했다.
“이사님!”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정 이사는 아무 얘기도 못 듣고 온 모양이다. 그래서 최재환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나마 처음과 달리 조금 정신을 가다듬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한송이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이었고, 마침 윤 부장에게 연락을 받았다. 빗길 사고를 냈는데 권혜선이 급히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연락이었다.
“아니 무슨 사고야? 비도 얼마 안 왔구만.”
정 이사가 젖은 바닥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담뱃불을 붙인다.
‘후······.’
나는 최재환이 걱정돼 그에게 시선을 가져갔다. 그가 뒷머리를 쓸어 올린다. 근데, 아까부터 계속해 뭔가를 머뭇거리는 듯한 모습이다. 정 이사도 그걸 눈치챈 듯했다.
“최 실장 뭐야? 뭐 문제 있어?”
“아닙니다. 그냥 혜선이가 걱정돼서요.”
잠시 그를 뚫어지게 보는 정 이사. 최재환이 마른세수를 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집에 계시다 오신 거예요?”
“때마침 근처에 있었어. 너무 걱정하지 마, 괜찮다잖아?”
정 이사가 최재환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런 뒤 차 대표에게 전화를 걸면서 다시금 담배를 입에 물고 우리를 돌아봤다.
“커피 하나 뽑을 데 있나? 갈증이 나네.”
“아, 저쪽에 자판기 있더라고요.”
우리는 정 이사를 두고 주차장 근처에서 본 자판기로 걸음을 돌렸다.
“시현아, 미안하다.”
최재환의 목소리.
나는 굳이 돌아보지 않고 계속 걸으며 물었다.
“뭐가?”
“괜히 너까지 끌고 왔네. 피곤할 텐데.”
오피스텔로 향하는 중에 소식을 들었다. 최재환은 오는 내내 걱정과 조바심을 보였다. 눈앞에 차 한 대만 어슬렁거려도 욕을 쏟아냈다. 그런 모습을 이 눈으로 본 건 처음이다.
“미안할 것도 많다. 나 다치면 안 그럴 거야?”
사실은 조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가 이 정도로 3W에게 애정이 있었나?
“나는 혜선 씨 나오면 얼굴 한번 보고 들어갈게.”
내 말에 최재환이 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내 건넸다.
“차 끌고 가.”
최재환은 자판기 앞에서 지갑을 꺼내 천 원짜리를 빼들었다.
드르륵. 덜컹··· 덜컹······.
콜라, 사이다, 캔 커피를 뽑았다.
정 이사에게 다시 왔을 때, 그는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어, 고마워.”
목이 탔는지 건네기 무섭게 캔 커피를 마신다. 나도 목이 타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최재환이 멍하니 있어서 먼저 캔 뚜껑을 따서 그에게 권했다.
“형.”
“어? 어.”
그가 엉거주춤 받아들고 사이다를 마신다. 그 와중에도 찌푸린 눈으로 응급실 입구를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권혜선이 구급차에 실려 들어오는 모습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치익.
나는 콜라를 단숨에 마셨다. 목이 타고, 가슴이 들썩인다. 트림이라도 거하게 뱉고 싶었지만 기침만 나온다. 콜록, 한 번 하고 긴 숨을 토했다.
여름의 밤, 응급실 앞의 가로등이 눈에 들어온다. 날벌레들.
통화를 마친 정 이사와 우리는 다시 응급실로 들어갔다. 권혜선이 CT실에서 나올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새로운 환자들과, 구급차에 실려 온 환자들까지 정신없이 응급실을 찾았다.
그런 공간 속에서 최재환은 뭔가를 상실한 사람처럼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그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쉰 건··· 권혜선이 CT실에서 나왔을 때였다.
“혜선 양, 괜찮아?”
정 이사가 서둘러 다가가 묻자 권혜선이 지친 미소를 보인다. 풍성한 머리카락 사이로 비친 미소에 최재환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괜찮아요, 이사님.”
“어이고 다행이네. 천만 다행이야. 보라 넌?”
스타일리스트 강보라가 권혜선을 부축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녀도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다.
“저도 괜찮아요. 약간 삐끗했어요.”
그제야 정 이사는 숨을 내쉬고 보라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러고 나서 묻는다.
“근데,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정 이사는 이유를 듣지 못했다. 지금 휴대폰이 울렸고, 휴대폰을 꺼내 본 그의 얼굴이 굳는다. 그가 최재환을 돌아봤다.
“여기는 최 실장이 좀 수습해. 1팀장도 곧 올 거야. 나는 사고 현장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런 뒤에 주위를 둘러본다. 우리에게 쏠린 사람들의 시선에 얼굴이 따갑다.
“홍보부에 얘기해서 미리 기사 돌리라고 해.”
“예, 그러지 않아도 오는 길에 연락해뒀습니다.”
“잘했어. 근데··· 오늘 신입이 같이 나간 거 아니었어? 왜 윤 부장이 사고 현장에 있어?”
가벼운 질문인데, 다들 대답을 안 한다. 정 이사가 이내 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뭔 일 있으면 전화해.”
“고생하십시오.”
정 이사가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적막이 찾아왔다. 나는 고개를 숙인 권혜선을, 그녀를 보는 최재환을, 그다음으로 강보라를 차례로 보고 물었다.
“보라 씨는 정말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큰 사고도 아니었고··· 안전벨트도 매고 있었고.”
“형, 그럼 어떻게 할까? 보라 씨 내가 태워다줄까?”
이번에는 최재환을 향해 물었다. 지금은 그가 결정을 해줘야 할 위치니까. 여기에 강보라가 있은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리고 내가 있은들, 역시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래라. 보라는 니가 좀 데려다줘.”
“아니에요, 저 그냥 여기 있을게요.”
강보라는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최재환이 다시 말했다.
“너 여기 있다고 달라질 것 없어. 오히려 사람들 눈에 띄니까, 일단 너는 오늘 집에 들어가고 내일 다시 와. 혹시 모르니까 내일 검사도 다시 받고. 알겠지?”
최재환이 이마를 찌푸리고 강보라의 동의를 구한다. 그제야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제 나는 권혜선을 바라봤다.
“몸조리 잘하시고요. 저도 다시 들릴게요.”
“오늘 고마웠어요.”
그녀가 미소를 보인다. 이제야 좀 마음에 드는 얼굴을 하고 있다. 다행히 외관상 크게 다친 부분도 없어 보이고. 이마가 조금 찢어져 있고 눈이 좀 붉게 충혈됐지만··· 걱정은 걱정이다.
‘골치 아프게 됐네.’
활동 중에 사고가 났다.
길게 생각지 않아도 골치 아픈 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너, 어떻게 할 건데?’
나는 최재환을 바라봤다. 녀석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윤 부장과 관련돼 있음을 나는 눈치챘다. 정 이사가 윤 부장을 언급했을 때, 최재환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럼.”
나는 강보라와 함께 응급실을 빠져나왔다. 절뚝거리는 그녀를 부축해서 차에 태웠다. 그녀가 안전띠를 손에 집는다. 하지만 제대로 붙잡지를 못했다.
“괜찮아요, 내가 할게요.”
나는 떨고 있는 그녀의 손등에 손을 얹고 미소를 보였다.
“···고마워요.”
이 밤, 안 좋은 상황으로 얼룩진 밤이 지나고 있다.
**
이시현이 응급실을 떠나자 의사들 얼굴에 아쉬움이 서린다. 여자고 남자고 응급실 출입문을 바라본다. 심지어 환자들도 그쪽을 보고 있었다.
“저기, 선생님.”
최재환은 지나가던 의사에게 부탁해 권혜선을 데리고 비어있는 처치실로 이동했다. 어차피 사람들 눈에 띄었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했다.
잠시 뒤 푸른색 바지에 큰 가운을 걸친 남자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처치실에 들어왔다. 피곤한지 두 눈을 깜빡이더니, 안경을 고쳐 쓰다가 깜짝 놀란다. 최재환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권혜선 씨, CT 찍은 거 설명해드릴게요.”
의사는 의자를 끌어안고 컴퓨터 모니터를 두 사람이 볼 수 있게끔 방향을 틀었다. 그런 뒤 CT 촬영본을 가리켰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으세요. 그래도 목 근육이 많이 놀랐으니까, 당분간 안정 취하셔야 돼요.”
“정말 괜찮은 거죠?”
최재환은 재차 물었다. 안심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물을 수 있었다.
“예, 괜찮습니다. 보시면 디스크도 없으시고, 당분간 휴식을 충분히 가지시면 됩니다.”
“그럼, 입원 좀 부탁합니다.”
최재환이 단호하게 말하자 의사가 잠시 둘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3W 권혜선을 모를 리 없었다.
“입원실이라··· 잠시만요.”
의사가 어디론 가로 전화를 건다. 그러더니 누군가와 입원실이 있네 마네 실랑이를 했다. 잠시 뒤에 그가 송화부를 가리고 최재환을 쳐다봤다.
“VIP실로 하실 거죠?”
“예.”
고개를 끄덕인 최재환.
입원실을 잡아주기 위해 의사가 방을 빠져나갔다.
덕분에 잠시 두 사람만 남게 되자, 권혜선이 쭈뼛거리며 제 손만 만지작거린다. 그러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트린다. 뚝뚝.
“미안해요··· 오빠.”
최재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괜스레 고개가 숙여진다. 가슴이 답답한 것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실수였어.’
윤 부장이 술을 마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설마 하고 넘겼다. 회사에서 다른 누군가 올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 때문에 하마터면.
‘젠장!’
최재환은 자신의 안일함에 참을 수 없는 화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시현을 옆에 두고도 제대로 챙길 수가 없었다.
병원에 오는 길에도, 응급실에 와서도 계속 권혜선만 챙겼다. 녀석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후······.”
겨우 바닥에 한숨을 내쉬고,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권혜선과 눈을 마주했다. 걱정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녀의 얼굴을 뜯어본다.
“애가 초주검이 됐네.”
흐트러진 머리카락, 놀란 눈, 그리고 여전히 짙은 무대화장.
“하······.”
목이 메는 안쓰러움에 최재환은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 주려 했다. 그런데, 그녀가 다가선 그의 손목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오빠.”
“왜? 어디 아파?”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최재환이 마른 침을 삼키고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저 오빠······.”
권혜선이 입술을 망설인다. 뭔가를 얘기할 듯, 얘기할 듯, 촉촉한 눈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처치실 문이 덜컥 열리는 바람에 그녀는 최재환의 손을 놓았다.
“언니!”
슬기와 레니였다.
두 사람은 평소와 달리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그리고 하얗게 얼굴이 질려 있었다. 얼마나 급하게 달려왔을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언니, 괜찮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슬기.
그 옆에서 레니가 한숨과 함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속삭인다.
“바보야, 내가 괜찮다고 했잖아. 죽긴 누가 죽어.”
최재환은 오랜만에 레니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신없는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